인사말
"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해"
주님 사랑하는 기장교회 성도님들!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한 달 한 달 한 해 한 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실 당연하지 않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말하자면 해마다 날마다 우리는 선물을 받고 삽니다.
찬송가 73장은 노래합니다.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산악이라 날 돕는 구원 어디서 오나 그 어디서 하늘과 땅을 지은 여호와 날 도와 주심 확실하도다.’ 한 해의 시작 앞에 서면 올 한 해 내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넘어야 할 험산 준령만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올 한 해와 남은 우리 날들도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믿음 가지고 올 한 해도 감사하며 기도하며 담대하게 걸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 표어는 ‘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해’입니다.
우리 자녀가 몸도 마음도 영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곁길로 빠지는 일 없이 바른길로만 가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자기 일은 알아서 척척 책임 있게 성실하게 해 주면 또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자녀 몇이나 있겠습니까? 다들 때로는 아파서 마음 졸이게 하고 때로는 엉뚱한 길로 가려 해서 염려하게 하고 때로는 성실하게 자기 일을 안 해서 부모는 속을 썩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무도 그런 자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고 곁길로 빠지면 밤을 새서 라도 그 자녀 찾아 바른길로 데려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자녀를 한 번 낳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는 한 번 낳지만, 사랑으로 다시 낳는 일을 수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부모는 뼈를 녹이고 살을 떼 주는 사랑으로 날마다 다시 해산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나는 절대 시험에 들지도 넘어지지도 않아!’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인 베드로조차 십자가 시험 앞에서는 넘어졌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가 넘어질 줄을 아시고 미리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22:32)’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생 내 자신의 영혼을 위해, 또 서로를 위해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감당할 마음의 각오로 살아야 하는 줄 압니다.
‘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해’라는 표어로 시작하면서 실천사항을 세 가지로 잡았습니다.
첫째는 ‘코로나로 연약해진 지체들 돌아보기’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가 정상적인 일상과 평소 활발했던 영적 사역들이 제한을 받은 지가 2년을 넘어 3년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 대부분 성도님들은 전혀 요동하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또 많은 분이 흔들리고 시험 중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분들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해 주어서 저들도 베드로처럼 다시 돌이킨 후에 다른 형제들을 굳게 하는 사람 되도록 위하여 기도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실천사항은 ‘가정에서 영적 부모 되기’입니다. 부모 없이 자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부모가 될 때 우리 자녀들도 영적인 자녀들 될 것입니다. 흔히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영적 부모 되면 우리 자녀도 영적 자녀 예수 믿는 자녀가 다 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그런데 자녀의 신앙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정말 경건함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의 길 따르지 않는 일이 발생합니다. 히스기야 왕 다음에 므낫세 같은 왕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전혀 다윗의 길로 가지 않는 왕들이 일어납니다. 교회사에도 그런 일은 수없이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을 보십시오. 그렇게 경건한 어머니 밑에서 그렇게 방탕한 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니카가 그 아들 포기하지 않고 평생 눈물로 씨를 뿌릴 때 어거스틴은 결국 어머니의 기도를 먹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우리 자녀들이 경건한 자녀되도록 우리 성도님들 올 한 해 다시 자녀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해 가십시다.
마지막 셋째는 ‘즐거운 주일학교, 복음에 집중하는 주일학교’입니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재미가 있어야 옵니다. 그러니 즐거운 주일학교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녀들의 즐거움에 대한 욕구만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복음을 다시 듣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녀들 마음에 ‘나는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올 한 해 우리 부교역자들과 교사들은 다른 것 말고 복음을 반복해 전하십시다.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6:21)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2;2)’
우리 자녀들 마음에 복음이 새겨지게 하라십니다. 돌에다가 글씨를 새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못이든 뾰족한 도구를 가지고 힘을 주어서 반복해서 긁어야만 새겨집니다. 우리 주일학교 친구들 마음에 ‘하나님의 창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믿음, 구원, 천국’이 새겨지게 해야 합니다. 눈만 뜨면 자동으로 ‘예수님, 믿음, 구원, 천국’이 기억나도록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도록 마음 판에 새겨 주어야 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성도님들! 올 한 해와 남은 우리의 시간들을 먼저는 내 자신을 위해서 이어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인생길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정말 후회 없이 멋지게 살았다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칭찬 듣는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이 일마다 때마다 우리 모든 기장교회 성도들과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 한 달 한 달 한 해 한 해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실 당연하지 않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말하자면 해마다 날마다 우리는 선물을 받고 삽니다.
찬송가 73장은 노래합니다.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산악이라 날 돕는 구원 어디서 오나 그 어디서 하늘과 땅을 지은 여호와 날 도와 주심 확실하도다.’ 한 해의 시작 앞에 서면 올 한 해 내 앞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넘어야 할 험산 준령만 보입니다. 그렇지만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 동행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올 한 해와 남은 우리 날들도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믿음 가지고 올 한 해도 감사하며 기도하며 담대하게 걸어가기를 소원합니다.
올 한 해 우리 교회 표어는 ‘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해’입니다.
우리 자녀가 몸도 마음도 영혼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곁길로 빠지는 일 없이 바른길로만 가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자기 일은 알아서 척척 책임 있게 성실하게 해 주면 또 얼마나 뿌듯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런 자녀 몇이나 있겠습니까? 다들 때로는 아파서 마음 졸이게 하고 때로는 엉뚱한 길로 가려 해서 염려하게 하고 때로는 성실하게 자기 일을 안 해서 부모는 속을 썩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부모라면 아무도 그런 자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고 곁길로 빠지면 밤을 새서 라도 그 자녀 찾아 바른길로 데려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자녀를 한 번 낳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는 한 번 낳지만, 사랑으로 다시 낳는 일을 수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부모는 뼈를 녹이고 살을 떼 주는 사랑으로 날마다 다시 해산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중 아무도 ‘나는 절대 시험에 들지도 넘어지지도 않아!’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도인 베드로조차 십자가 시험 앞에서는 넘어졌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가 넘어질 줄을 아시고 미리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22:32)’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평생 내 자신의 영혼을 위해, 또 서로를 위해 그리고 모든 성도들을 위해 해산의 수고를 감당할 마음의 각오로 살아야 하는 줄 압니다.
‘다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해’라는 표어로 시작하면서 실천사항을 세 가지로 잡았습니다.
첫째는 ‘코로나로 연약해진 지체들 돌아보기’입니다. 코로나19로 우리가 정상적인 일상과 평소 활발했던 영적 사역들이 제한을 받은 지가 2년을 넘어 3년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 대부분 성도님들은 전혀 요동하지 않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그렇지만 또 많은 분이 흔들리고 시험 중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분들 비판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는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해 주어서 저들도 베드로처럼 다시 돌이킨 후에 다른 형제들을 굳게 하는 사람 되도록 위하여 기도하고 섬겨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실천사항은 ‘가정에서 영적 부모 되기’입니다. 부모 없이 자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부모가 될 때 우리 자녀들도 영적인 자녀들 될 것입니다. 흔히 아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론적으로는 우리가 영적 부모 되면 우리 자녀도 영적 자녀 예수 믿는 자녀가 다 됩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6)’
그런데 자녀의 신앙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정말 경건함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부모의 길 따르지 않는 일이 발생합니다. 히스기야 왕 다음에 므낫세 같은 왕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 전혀 다윗의 길로 가지 않는 왕들이 일어납니다. 교회사에도 그런 일은 수없이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을 보십시오. 그렇게 경건한 어머니 밑에서 그렇게 방탕한 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니카가 그 아들 포기하지 않고 평생 눈물로 씨를 뿌릴 때 어거스틴은 결국 어머니의 기도를 먹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런 소망을 가지고 우리 자녀들이 경건한 자녀되도록 우리 성도님들 올 한 해 다시 자녀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해 가십시다.
마지막 셋째는 ‘즐거운 주일학교, 복음에 집중하는 주일학교’입니다. 아직 어린 우리 아이들은 재미가 있어야 옵니다. 그러니 즐거운 주일학교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녀들의 즐거움에 대한 욕구만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복음을 다시 듣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자녀들 마음에 ‘나는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심기 위해서입니다. 올 한 해 우리 부교역자들과 교사들은 다른 것 말고 복음을 반복해 전하십시다.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6:21)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2;2)’
우리 자녀들 마음에 복음이 새겨지게 하라십니다. 돌에다가 글씨를 새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못이든 뾰족한 도구를 가지고 힘을 주어서 반복해서 긁어야만 새겨집니다. 우리 주일학교 친구들 마음에 ‘하나님의 창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믿음, 구원, 천국’이 새겨지게 해야 합니다. 눈만 뜨면 자동으로 ‘예수님, 믿음, 구원, 천국’이 기억나도록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도록 마음 판에 새겨 주어야 합니다.
주를 사랑하는 성도님들! 올 한 해와 남은 우리의 시간들을 먼저는 내 자신을 위해서 이어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그리고 연약한 성도들을 위해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하십시다.
그래서 우리 인생길 다 마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정말 후회 없이 멋지게 살았다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칭찬 듣는 모든 성도님들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위로와 은총이 일마다 때마다 우리 모든 기장교회 성도들과 함께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