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설교

    성경구절
    베드로전서 4:1-11
    설교일
    2011-12-31

지나간 때와 육체의 남은 때 벧전4:1-11

 

 

서론. 지금 이 시간은 닫혀지는 과거로는 2011년의 마지막 시간이면서, 열려지는 미래로는 새로운 2012년을 맞이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한 해는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면서 인생의 시작과 끝이 우리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금은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지만, 머지않아 이 땅에서의 생애는 마무리하고 저 하늘에서의 새로운 생을 맞이할 것을 깨닫게 된다.

더 멀리는 언젠가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려, 첫 창조의 역사는 마무리되고 영원한 천국의 역사가 시작될 것을 또 깨닫게 된다.

이런 영적인 깨달음을 가지고 송구영신예배에 나오신 우리 성도님들 마음에 감사와 회개의 영, 지혜와 순종의 영을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지난 2011년 한 해를 돌아보면서는 먼저 받은 은혜 있음에 감사하고 나아가 회개할 것은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되기를 바란다.

또 2012년 새해를 바라보면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2012년 새해를 하나님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리는 귀한 시간되기를 바란다.

 

 

1. 우리 인생에게는 두 때가 있다. ① 한 때는 지나간 때이다. 3절에 그러죠?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② 또 한 때는 육체의 남은 때이다. 2절에 그러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지금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2011년은 지나간 때이고, 2012년은 육체의 남은 때이다.

이렇게 인생의 날은 지나간 때와 육체의 남은 때 곧 두 때가 있는데, 한 가지 주의해서 생각할 것이 있다. 뭔가? 육체의 남은 때가 그리 길지 않다는 사실이다. 7절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면 2011년이 정말 빨리 지나갔죠? 2011년 한 해만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온 수십 년 세월이 얼마나 빨리 지나갔는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다. 아침에 보이다가 이내 사라지는 안개처럼 그렇게 세월은 덧없이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흘러간 과거의 시간만 그런 게 아니다. 이제 우리에게 허락된 남은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만 빨리 지나는 게 아니라, 더 넓게는 만물의 마지막 날이 곧 올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종말이 다가온다고 외쳐도 세상 사람들은 그저 광신도들이 정신없이 하는 소리처럼 여길지 몰라도, 정말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오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남은 시간도 얼마 되지 않고, 만물도 그 마지막이 속히 올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신을 차리고’ 하신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쓸데없는 일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유익하지 않는 감정싸움 자존심 싸움 하다가 의미 없이 흘러 보내버릴 시간이 없다. 헛된 세상 욕심만 따라 살아갈 시간이 없다.

우리에게 남은 인생의 날이 그리 길지 않기에,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는 일에 온 마음과 힘을 쏟고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에 전심전력해도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깝고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도 그리 길지 않은 줄 알고, 정신을 차리고 남은 시간을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사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란다.

 

 

2. 그러면 정신을 차리고 사는 믿음의 삶은 어떤 삶인가?

정신을 차친 믿음의 삶은 먼저 과거를 돌아보면서 감사할 일은 감사하고 회개할 일은 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1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하신다. 또 3절에서는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하신다.

무슨 말인가? 과거를 돌아볼 때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베푸신 크신 은혜가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또 과거를 돌아볼 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도 부끄러운 일들을 많이 했던 것을 기억하고 철저히 회개함으로 과거를 잘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사를 보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과거 청산’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우리 성도야 말로 하나님 앞에서 정말로 한 번은 제대로 ‘과거 청산’을 해야 한다. 그래야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 보시기에 또 부끄럽고 후회스럽게 살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며 살 수 있다.

 

1) 먼저 우리는 지난 한 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제가 기장교회 목회자로 와서 보니 참 감사하게도 담임목사 공석 중에도 성도님들의 신앙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다들 자기 자리를 잘 지켜 주신 것을 볼 수 있었다. 참 감사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2011년 한 해 우리 교회에 약 100여명의 새가족들이 등록을 했고, 그 중에 많은 분들이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고 있다. 역시 참 감사할 일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주님 사랑하는 기장교회 담임으로 오게 된 일이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정말 순전한 성도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그것도 감사한데, 며칠 전에 어떤 성도님 심방을 갔더니 우리 교회 성도님은 아닌데 제 소문을 들었다면서, 저에게 유익할 것이라 생각하고 책을 두 권 선물로 보내주셨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분에게 뜻밖의 책 선물을 받고 집에 가서 곧장 읽기 시작했는데, 저에게 참 은혜가 되어 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제가 선물 받은 책은 아프리카 케냐의 임은미 선교사님 책이다. 미국에 이민 가서 겨우 잘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지만, 다 내려놓고 아프리카 선교사로 가셨다. 그 선교사님 책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선교지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도둑을 맞았다. 집 마당에 세워놓은 차바퀴를 훔쳐 가 버렸다. 도둑을 맞고 놀라서, 자기를 케냐로 초청한 선배 선교사님 사모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배 선교사님이 묻는다. ‘차바퀴 하나 훔쳐 갔어요 둘 다 가져갔어요?’. 임 선교사님이 하나만 훔쳐갔다고 대답을 하니까, 선배 선교사님이 하는 말이 ‘오 그래요 감사한 일이네요 하나만 훔쳐가고 다 가져 가지 않아서요’ 그러신다. 아프리카에 먼저 와서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는 선배 선교사님은 차바퀴 하나밖에 도둑 안 맞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임 선교사님이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게 뭐냐 하면 ‘아 감사가 선교지의 언어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면서 또 고백한다. 선교지에서 이 언어 곧 감사의 언어를 배우니까, 모든 상황에 다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4가지 감사의 구호를 소개한다. “그러니까 감사!”. “그러면서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럼에도 감사!”.

그 글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감사가 선교지의 선교사만의 언어이겠는가? 우리 모든 성도는 사실 어떤 의미에서 모두 다 선교사다. 우리 성도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을 나그네로 살아간다. 그러기에 모든 성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보냄 받은 선교사다. 그렇다면 모든 성도가 이 나그네되고 선교사된 땅에서 배워야할 언어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감사이다. “그러니까 감사!”. “그러면서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럼에도 감사!”. 이 감사의 언어가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성도님들에게 항상 충만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두 번째로 과거를 돌아보며 회개할 것은 회개해야 한다. 정리할 것은 정리해야 한다.

엡4:22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랬다. 옛날에 하나님 모를 때 행하던 모든 묵은 습관들을 청산해야 한다. 그저 내 욕심만 차리고 살던 옛사람의 행실을 끊어버리시라. 내가 잘 나고 똑똑해서 살아온 것처럼 그렇게 큰 소리치고 위세 등등하던 교만한 모습들을 다 버리시라.

엡4:31에도 보면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그랬다. 여기 엡4:31에서 버리라고 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성내고 분내는 일들이다. ‘욱’하면서 화내는 모습들이다. 예수를 믿은 지 오래 되어도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서 화를 잘 내는 분들이 더러 있다. 그런 분들은 하는 말이 있죠? 자기는 솔직해서 화를 내지만 뒤끝은 없다 그러죠. 그런데 자기만 뒤끝이 없으면 뭐하는가? 상대방은 이미 상처를 받았는데. 그러니까 뒤끝 없다는 말로 화내는 일을 합리화시키지 말고, 이제부터 노함과 분냄을 버리시라.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본받아 오래참고 인내하라. 그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다. 둘째는 남을 비방하고 욕하는 말들이다. 우리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지, 정말로 자기 눈에는 들보 같은 허물이 있어도 그건 나름대로 이유가 다 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자기 허물은 정당화시킨다. 그런데 남의 눈에 작은 티끌만 있어도 그걸 봐 주지를 못하고 입을 댄다.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엡4장은 분명이 말씀한다. ‘떠드는 것과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이제 이 말 저 말 여기저기 옮기는 일 곧 떠드는 일을 그치시라. 있는 말 없는 말 지어 가면서 남을 비방하는 일을 그만두시라. 셋째로는 또 ‘모든 악의를 버리라’ 하신다. 악의가 뭔가? 모든 악한 마음, 악한 생각이다. 원수 갚아주고 싶은 생각, 누군가 한 대 쳐 주고 싶은 생각, 남이 못 되기를 바라는 마음, 남 잘 되는 것 못 봐주는 마음까지, 이제 이 모든 악한 생각을 버리시기 바란다.

 

오늘 벧전4:3에서도 뭐라 하는가?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함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지금까지 음란하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노엽게 하기에 충분하다. 지금까지 육신의 정욕을 좇아 살면서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한 것이 충분하다. 술 취하고 방탕하면서 이미 충분히 허송세월 보냈다. 우리 청소년들은 게임에 빠져서 그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쓸데없는 일에 낭비하여 하나님 싫어하는 모습 이미 충분히 보였다. 우리 여성도들은 아무 의미 없이 TV 앞에 앉아 헛되이 날려버린 시간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육신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며 산 시간이 이미 충분하다. 그러니 더 이상은 내 육신을 어떻게든 편하게 하고 육체의 쾌락을 얻고자하는 마음으로 살지 마시라.

오늘 6절 말씀을 같이 한 번 읽자.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이 6절은 오랜 교회 역사를 통해서 난해구절로 유명하고, 그래서 해석도 참 다양했던 말씀이다. 로마 천주교에서는 이 구절에 근거해서 연옥교리도 만들 정도다. 이미 죽은 자들이라도 하나님이 다시 복음 들을 기회를 준다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해석을 한다. 그런데 조금만 문맥을 주의 깊게 보면 6절 말씀이 그런 뜻이 아니다.

6절을 이해하려면 먼저 1절부터 이해해야 한다. 1절에 보면 크게 두 가지 말씀을 하신다. 하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신 동안 그 육체로는 고난을 당했다. 예수님의 영혼은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한량없이 부으시는 성령의 위로로 언제나 기쁨과 평안이 가득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육체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속하시기 위해 끊임없는 고난을 당하셨다. 1절이 두 번째로 증거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사실 동안 육체의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이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들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입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된 성도는 예수님처럼 땅에서 육체로는 고난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 믿는 길은 우리 육체가 편안해지고 안일해지는 길이 아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를 않으니까 우리 성도들이 자꾸만 시험에 든다. 왜 예수를 믿는데 내 육체는 이렇게 아프고, 왜 우리 가정에는 또 어려운 일이 계속되나 그런다. 그런데 성경은 아무리 보아도 예수 믿는 우리의 육체를 편안하게 하겠다고 하지 않는다.

이 1절 말씀을 생각하면서 6절을 다시 보자. 먼저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것은, 육신으로 죽어 저 세상 간 사람들에게 복음을 또 전한다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한다는 말이다. 복음을 들은 자들 중에 어떤 이는 아직 살아있고 어떤 이는 죽어 저 세상 가기도 했지만, 여하튼 이 땅에 있을 동안에 복음을 들려 주셨다는 말이다. 그러면 영적으로 죽은 자들에게 하나님이 왜 복음을 듣게 하시는가? 6절 하반절에 두 가지 이유를 말씀하신다. 하나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게 하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기 위함이다.

무슨 말인가? 복음을 듣고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 육체는 심판받는 삶이 시작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와 예수님 십자가 사랑으로 넘치는 생명과 은혜의 삶을 살게 된다는 말씀이다.

복음을 믿는 그 순간부터 우리 육체가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모를 때는 우리가 육체의 소욕대로 마음대로 하고 살았는데, 죄짓고 싶으면 죄짓고 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욕하고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 예수를 믿은 다음부터는 우리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육체를 가지고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육체를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살던 우리 육체가 무엇을 받은 것인가? 바로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 육체가 심판을 받을 때, 우리 영이 살아서 놀라운 하늘의 은혜 가운데 하늘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삶은 한 마디로 어떤 삶인가? 육체의 소욕을 따라 그저 편하게 사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육체의 본능을 은혜로 제어하는 삶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는 그저 내 육체가 시키는 대로 육체가 원하는 편안함과 쾌락을 추구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예수님 안에서 내 육체는 심판을 받고 내 영이 하나님을 따라 사는 그런 생명의 삶을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

 

 

3. 이렇게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 옴으로 정신을 차린 삶은 과거를 돌아보며 감사하고, 또 과거의 육체를 따르던 삶을 청산하는 것이 첫째라면, 이제 미래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두 번째 요소다.

2절을 다 같이 읽자.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육체의 남은 때를 어떻게 살라구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러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은 어떤 삶인가? 오늘 말씀 7-10절을 보면 크게 네 가지를 말씀하신다.

 

1)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첫째 ‘근신하여 기도하는 삶’이다. 하나님 뜻을 따르는 삶에서 기도가 왜 중요한가?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깝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래서는 자꾸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이 땅에 보물을 쌓는데만 관심이 간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다. 우리의 남은 시간이 얼마 안 되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둘째로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육체의 남은 시간을 하나님 뜻을 따라 살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내 육체의 소욕을 끊어버릴 힘을 주신다. 내 힘으로 음란한 습관을 끊을 수 있는가? 못한다. 내 힘으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 버릴 수 있는가? 못한다. 그러나 기도할 때 음란한 습관도, 술취하던 습관도, 남을 미워하던 마음도 끊게 하신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

 

2)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둘째 사랑하는 것이다. 8절에 그러죠? ‘무엇보다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남편된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아내를 정말로 사랑하라. 아내만 사랑하고 딴 여자에게 눈 돌리지 마시라. 아내된 성도 여러분! 남편을 사랑하라. 남편이 세상에서 최고인 줄 알고 남편만 쳐다보고 살라. 자녀된 성도 여러분! 부모를 사랑하라. 부모된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욕심만 내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를 따라 자녀를 사랑하라. 사랑하되 뜨겁게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 구역 식구들을 사랑하라. 여러분 전도회의 회원들을 사랑하라. 목회자를 사랑하라. 여러분 직장의 상사도 사랑하고 동료도 사랑하고 부하 직원도 사랑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깝다. 마지막 날이 되면 우리가 사랑하며 살았던 일들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지 못하고 보낸 시간들은 모두 허송세월일 뿐이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우니 정말로 뜨겁게 사랑하며 사시는 우리 모든 성도들 되시기 바란다.

 

3)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셋째 서로 대접하는 삶이다. 9절이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지난 한 해 돌아보라.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라.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많이 받았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고마운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그 분들에게 이제 몇 분 후면 새해가 시작되는데, 새해를 맞아서 작은 선물이라도 나누어 보라. 여러분 아이를 맡은 주일학교 교사에게 감사의 편지라도 한 통 써보라. 여러분의 마음의 감사와 사랑을 표현해 보라. 누군가 그랬죠? 표현하기 전에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표현하기 전에 감사는 진짜 감사가 아니라고.

이제 여러분이 감사하는 마음을, 사랑하는 마음을 서로 대접하는 것으로 꼭 표현해 보시기 바란다. 아마 그 감사가 배가 되고 그 사랑도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이 감사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이 베풀고 대접하고 섬길 것을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 가정과 손에 한 아름 선물로 주실 것이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4)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 뜻을 따라 사는 삶은 넷째 하나님 주신 은사를 따라 봉사하는 것이다. 10절이다.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아직도 2012년도에 내가 무엇을 봉사할 것인지 지원하지 못하고 정하지도 못한 분 있는가? 이제 내일 주일이 지나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을 봉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시간이 안 되고 몸도 아프고 너무 바빠서 도저히 몸으로 하는 봉사가 불가능한 분 있는가? 그러면 그런 분은 기도의 봉사자가 되라. 물질로 봉사하는 자리에도 서라. 선교헌금에 동참하고 구제하는 일에도 참여하라.

그래서 2012년에는 몸으로 하는 봉사든지, 기도로 하는 봉사든지, 물질로 하는 봉사든지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정말로 한 가지 이상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따라 봉사하는 자리에 서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 좋은 터를 쌓는 일이 될 것이다.

 

 

결론. 지금 이 순간 2011년이 저물어 간다. 그리고 2012년이 밝아오고 있다. 지금 우리는 그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지만, 머지않아 이 땅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저 하늘에서의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날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감사하며 살라. “그러니까 감사!”. “그러면서 감사!”. “그럴수록 감사!”. “그럼에도 감사!”하라.

육체의 정욕을 따라 더 이상 살지 말라. 육체의 고난 받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입고, 육체의 남은 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라.

기도함으로, 사랑함으로, 서로 대접하고 섬김으로, 받은 은사를 따라 봉사함으로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가라. 평강의 하나님, 자비의 하나님이 육체의 남은 시간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 심령에 차고 넘치는 하늘의 위로와 소망 은혜와 능력으로 함께 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