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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구절
    요한계시록 19:11-21
    설교일
    2013-03-13

백마 타신 분과 그 군대 19:11-21, 12-3수요

 

 

서론. 지난 수요일에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대해 살펴보았다. 어린 양의 신부된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어린 양의 피에 씻음 받은 거룩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삶 곧 옳은 행실로 신부의 예복을 예비하여서 혼인잔치에 참여할 것이라 하였다.

오늘 말씀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의 강림과 악한 영적 세력들에 대한 심판에 관한 것이다.

 

 

1. 먼저 v.11a을 보시면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하고 시작한다.

 

1) 계시록 전체에서 하늘이 열리는 장면이 몇 번 나온다. 4:1에서는 열린 하늘문을 통해 요한이 하늘로 초청을 받는다. 11:19에서는 하늘 성전이 열려 언약궤가 보이고 우레와 번개가 나온다. 15:5에서는 증거 장막이 열림으로 대접 재앙 심판을 시작된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늘의 문이나 성전이 열린다고 하지 않고, 하늘 자체가 열렸다고 한다. 하늘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열린 것이다. 하늘의 일부가 열렸을 때는 하늘 세계를 보는 이들이 특별한 은혜를 입은 소수였다. 그러나 이제 하늘 전체가 열림으로 몇몇 사람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늘의 세계를 보게 된다.

믿음으로 하늘 세계를 사모하던 성도들도 보겠지만, 하늘 세계를 부정하고 땅만 보고 살았던 사람들도 하늘 세계가 임하는 것을 볼 것이다. 복음이 증거하던 하늘 세계의 실재를 모든 인생들이 똑똑히 볼 것이다.

 

2) 이어서 요한이 외친다.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하늘이 열린 후에 요한이 갑자기 소리치는 것은 드디어 주님이 등장하시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망하던 주님의 재림을 요한은 환상 중에 보고 있다.

 

3) 하늘이 열리고 드디어 주님이 오시는데, 오늘 말씀에서 주님은 백마를 타고 오신다.

주님이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계시록에서 흰색은 승리를 상징한다고 여러 번 말씀 드린 것을 기억하실 것이다. 또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은 전쟁이나 정복자를 상징한다.

따라서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것은 승리자이신 그리스도가 최후 승리를 마무리하기 위해 심판자로 오시는 것을 의미한다.

 

4) 여기서 우리 성도님들이 조금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성경에서 전반적으로 주님이 오실 때 무엇을 타고 오신다고 하시는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한다. 24:30이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같은 계시록 말씀 1:7이다.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이렇듯이 성경은 대부분 주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라고 하시는데, 여기 계19장에서는 왜 백마를 타고 오신다고 하시는가?

사실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도,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도 모두 상징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무슨 탈 것이 꼭 필요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구름을 타고 오신다 혹은 백마를 타고 오신다 하는 것은, 주님이 오시는 일의 신비로움과 오시는 목적을 알려주기 위한 상징이다.

먼저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만인이 볼 수 있도록 오신다는 것을 뜻한다. 2000년 전 초림 때는 베들레헴 한 작은 마을에 조용히 오셨지만, 다시 오실 때는 온 세상 만민이 보는 눈앞에 공개적으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무론하고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모두가 알게 된다. 은밀히 오시지 않으신다.

우리 성도님들이 이것 하나만 확실하게 알고 계셔도 오늘날 수많은 이단의 거짓된 가르침에 속지 않는다. 신천지를 비롯해서 우리 한국에만 스스로 재림 예수라 하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50명 가까이 된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읽었다. 문선명 정명석 박태선 이만희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재림 예수라고 미혹하면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할 때 구름은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구름타고 온다는 것은 신실한 백성 가운데 온다는 뜻이요, 따라서 깨어 있는 신자는 재림주를 알아본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구름 타고 오신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다. 1:7에서 분명히 말씀하시듯이 만민이 보는 눈앞에 옴으로 모든 인생이 그 눈으로 주님을 보게 될 것을 의미한다.

또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영광 가운데 오신다는 것을 뜻한다. 구약 시대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백성들에게 보이시려고, 하나님 임재하신 곳에 구름이 가득하게 하셨다. 시내산에서 그랬고, 솔로몬이 성전에서도 그랬다. 이처럼 구름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상징한다. 그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초림 때처럼 낮고 비천한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심을 뜻한다.

이렇게 구름 타고 오신다는 말은 만민이 볼 수 있도록 영광스럽게 오심을 뜻하고, 백마를 타고 오신다는 것은 최후의 심판자로 오심을 뜻하는 거다.

 

 

2. 그 다음 v.11b-13을 보시면, 백마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과 이름과 사역에 대해 말씀하신다.

 

1) 먼저 그리스도의 이름을 뭐라고 하는가? v.11에서는 충신과 진실이라 한다. v.13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도 한다.

주님을 가리켜 충신과 진실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은 주님이 오심으로 성경에 약속되고 예언되어진 모든 일들이 진리였음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드러나고, 모든 약속하신 일들은 완전히 성취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오심을 기다리며 고난 가운데서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았던 우리의 소망은 충신이요 진실이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헛되지 않을 것이다.

 

2) 백마 타고 오시는 주님의 사역은 무엇인가?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하신다. 백마 타고 오신 주님은 모든 악의 세력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거다. 공의로 심판하심으로 바벨론에서 흘린 성도들의 피를 신원하신다. 백마 타고 오셔서 심판하시는 구체적인 내용은 이제 v.19에서 20:15까지 자세하게 언급된다.

 

3) 백마 타고 오시는 주님의 모습은 어떠하는가? v.12-13을 보시면 주님의 모습을 4가지로 묘사하고 있다. 첫째 그 눈이 불꽃같고, 둘째 머리에 많은 관들이 있다. 셋째 이름 쓴 것 하나가 있는데 주님 자신 밖에 아는 자가 없다. 넷째는 피 뿌린 옷을 입고 계신다.

계시록에는 예수님 모습을 자세히 묘사하는 구절이 제법 많다. 대표적으로 1:13-16이 있다. 거기 보면 주님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띄고 있다. 그 머리와 털이 양털처럼 희었고, 그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았다. 1장에 묘사된 주님의 이런 모습이 무엇을 뜻한다고 했는가? 부활하신 후 하늘에 승천하신 예수님의 영광과 권세를 보여준다고 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권세 있는 분인가를 보여준다.

이제 오늘 말씀 19:12-13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들, 곧 그 눈은 불꽃같고 머리에는 많은 관이 있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름 쓴 것이 하나 있고 피 뿌린 옷을 입고 계신 이 모습들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영광과 권세를 보여주는 말씀이다.

1장은 승천하신 예수님의 영광, 19장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의 위엄이다. 그러면 재림 하시는 예수님의 4가지 모습이 무엇을 뜻하는가?

먼저 그 눈이 불꽃같다는 것은,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이 세상의 모든 일의 시비를 분명하게 드러내실 것이라는 말이다. 역사 속에 묻혀 버린 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일까지도 남김없이 드러내실 것이다. 불꽃같은 눈으로 주님은 인생들이 품고 살았던 모든 생각들과 행하였던 모든 일들을 백일하에 드러내신다. 만물이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시는 주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나타날 것이다.

두 번째로 주님의 머리에 많은 관들을 썼다는 것은, 주님이 그야말로 만왕의 왕이요 최후의 승리자로서 이제 후로 영원히 왕노릇하실 것을 보여준다.

세 번째 주님의 모습은 이름 쓴 것 하나가 있는데, 주님 당신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하신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사실 계시록에는 이것과 비슷한 말씀이 한 구절 더 있다. 2:17인데 같이 한 번 찾아보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여기 2:17은 버가모교회에 보낸 편지의 결론인데, 이기는 자를 위하여 2가지를 주시겠다 한다. 감추었던 만나와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이다. 감추었던 만나는 영생하는 양식을 주신다는 말인데, 새 이름이 기록된 흰 돌을 주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먼저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는가? 전에는 죄의 종이었는데 이제는 의의 종 되고, 전에는 나를 위해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 위해 산다. 이렇게 우리가 거듭남으로 한 번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이제 장차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때 다시 한 번 우리는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그래서 새 이름을 주신다 한다. 그런데 그 새 이름은 받는 자 외에는 모른다고 한다. 무슨 말인가? 우리가 장차 변화 받을 모습, 장차 받게 될 하늘의 기업은 영광스러우면서도 또 신비한지 지금은 다 모른다. 세상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된다. 새 이름을 받은 자의 놀라운 모습은 그렇게 새로움을 덧입은 그 사람만 알 수 있는 신비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그렇게 신비로운 새로움의 영광을 덧입혀 주실 것이다.

이렇게 장차 우리도 받은 사람만 알 수 있는 영광스러운 새 이름을 받을 것인데, 오늘 말씀에는 다시 오시는 주님께도 주님만 아시는 이름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다시 오실 주님의 영광과 신비로움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다시 오시는 우리 주님의 모습에는 너무나도 신비로운 것이 많을 것이다. 우리 인생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신비로움와 경이로움이 다시 오실 주님께 있으신 거다.

네 번째로 다시 오시는 주님은 피 뿌린 옷을 입었다고 하신다. 재림하시는 예수님이 왜 피 뿌린 옷을 입었는가? 이 피는 누구의 피인가?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주님 옷에 뿌려진 피를 주님 자신의 피로 보는 해석과, 성도들의 피로 보는 해석과 심판당할 이들의 피로 보는 견해이다.

이 피를 주님 자신의 피로 본다면 이 피는 혼인잔치에 들어갈 자기 백성을 정결케 하는 피일 것이다. 성도들의 피로 본다면 주님이 성도들이 흘린 피를 신원하러 오신 것을 의미할 것이다. 심판당할 이들의 피로 본다면 이 피는 주님이 악인들을 심판하러 오셨음을 의미할 것이다.

이 세 가지 견해 중에 어느 견해가 옳은지 확정하기는 참 어려운데, 이어지는 v.15-16의 심판 장면을 염두에 두면 이 피는 심판당할 악인들의 피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어느 것이 반드시 옳다고 확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3. 이렇게 v.11-13은 다시 오시는 주님의 영광과 권세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면, 이제 v.14에서는 주님이 재림하실 때 거느리고 오는 무리에 대해 말씀하신다. 같이 v.14을 보자.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열린 하늘을 통해 강림하시는 주님을 따르는 이 무리들은 누구인가? 천군천사일수도 있고 성도들일 수도 있다.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종합하면, 주님은 먼저 좌우에 수많은 천군천사들을 거느리고 오신다. 16:27이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살후1:7에서는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라고 하신다.

이렇게 주님이 오실 때 천군천사들을 거느리실 뿐 아니라, 주님은 또 믿음으로 살다가 먼저 간 모든 성도들을 데리고 오신다. 살전4:14이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 신자는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살다가 육신이 죽음을 당하면, 우리 영혼은 주님 재림 할 때까지 죽은 상태나 혹은 수면 상태로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육신은 죽음은 당하지만 우리 영혼은 결코 죽음을 당하지 않아서, 육신을 떠나는 그 순간 하늘 세계에 들어가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축복된 상태로 머문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다시 온다.

이렇게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천군천사도 거느리고, 먼저 간 성도들의 영혼도 거느리시는데, 오늘 계19장에서 백마 타고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따르는 이 무리들은 누구냐는 것이다. 이 부분도 우리가 확정적으로 천사인지 성도인지 결론짓기가 어려운데, 둘 다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해 보인다.

 

 

4. 이제 v.15-16은 하늘의 군대를 거느리고 주님이 영광과 권세로 오셔서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내용이다. 세 가지 그림을 가지고 심판을 묘사한다.

첫째는 그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와서 만국을 치실 것이라 한다. 여기 보면 만국이 심판을 받는다. 아무도 예외가 없다. 모든 인생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신 주님께 선악 간에서 행한 바를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

둘째로 철장으로 다스리실 것이라 한다.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했던 모든 원수들을 이제 주님은 철장으로 다스림으로, 다시는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도록 징치하실 것이다.

셋째는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을 것이라 한다.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 장면은 이미 14장에서도 나왔었다. 14장에 곡식추수심판과 포도추수심판이 나오는데, 포도추수 심판에서 포도주 틀에 밟힌 원수들의 피가 말굴레 높이로 1600 스다디온이나 되는 큰 강을 이룬 환상을 우리가 보았다. 오늘 19장도 다시 한 번 주님의 심판이 마치 포도주 틀을 밟는 것 같을 것이라 하시는 거다.

 

 

5. 그 다음 이어지는 19:17-20:15까지 내용은 주님이 오심으로 행하실 모든 악의 세력에 대한 최후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그러니까 19:11-16은 주님께서 심판주로 오신다는 말씀이고, 이어지는 말씀은 오셔서 행하실 심판에 관한 말씀인데, 오늘은 v.19-21만 보자.

 

v.19 같이 읽자.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여기 보면 그 짐승이 나온다. 누구를 가리키는지 아시죠? 13장에 나온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바로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적그리스도가 땅의 임금들과 군대들을 모아서 주님과 그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킨다 그랬다. 이 내용 이미 여러 차례 보았죠? 어디에서 보았는가? 16장의 여섯 번째 대접 재앙 곧 아마겟돈 전쟁에서 보았다. 16:14에서 더러운 영들이 땅의 모든 왕들을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해 모았다고 했다. 바로 종말의 최후 전쟁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종말의 최후 전쟁이 어떻게 된다고 했는가? 세상의 모든 세력들이 한 통석이 되어 다 모여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고 멸하려 하지만, 주님의 재림과 심판으로 제대로 전쟁을 하지도 못하고 끝난다고 했다. 기억나시죠?

그래서 오늘 본문 v.20-21 보라. 먼저 v.20 같이 읽자.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v.19 끝에서는 전쟁을 일으키다가그랬는데, v.20에서는 먼저 짐승이 잡히고 또 거짓 선지자도 잡혔다고 한다. 전쟁을 시작하는가 싶었는데, 바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곧 적그리스도도 잡히고, 거짓 선지자 곧 땅에서 올라온 짐승도 잡혀 버린다.

사탄의 대행자였던 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그렇게 잡혀서 최후심판을 받아 유홍불 붙는 못에 던져져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심판을 받아 멸망하고, 그들을 따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던 모든 악한 군대들은 말 탄 자 곧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온 검에 죽임을 당하여 멸망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v.21과 앞의 v.17-18에서는 악한 영들을 쫓아 하나님을 대적하던 세상의 권세자들이 받을 심판의 엄중함과 비참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죽임 장한 저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들이 와서 배불리 먹는 새들의 시체 잔치가 열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비유인데, 그만큼 최후 심판의 날이 두려운 날이 될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결론. 오늘은 여기까지 살피고 다음 주에는 최후 심판 중에서도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마귀에 대한 최후 심판 장면을 살피도록 하겠다.

같이 찬송가 310장 부르면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