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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낮은 눈으로 본 천국 ;다시 찾아온 겟세마네 -


  역대급 태풍이 쓸고간 아침 저녁으로 습기가 빠진 날선 바람이 콧끝을 스치우고 교회 옆 건물 사이로 찍어낸듯 높게 드리운 반쪽짜리 달빛이 본격적인 가을을 알리고 있었다. 여느 시즌 같으면 계절의 농익은 센치해짐도 큰 축복이니 최대치로 극대화시켜 즐기자는 메시지 위에 예수사랑의 양념을 살짝 얹어 많은 분들에게 전하곤 했는데 올해는 과 성경공부에서 격이 풍성하신 어느 여집사님께서 너무 찰지고 앙칼스럽게 발음하여 유행어로 번진 "이기 뭐꼬?!~~" 이 외마디 탄식과 감탄사(?)만이 나의 죽은 가을의 시작을 반기고 있었다.

  일시적 증상으로 생각해 수개월동안 여러 병원을 오고갔으나 그 수고들은 보기 좋게 사라졌고 엎드린 자세로 자판을 두드리려 오른팔을 올릴 때마다.. 근육이 일정 주기로 뒤틀어질 때마다 고압선에 감전된듯한 고통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해갔다. 마약 성분이 들어간 알약과 근육이완제는 주사가 들어간 그때뿐 치료제 역할은 하지 못했다. 부모님 걱정끼쳐 드릴까 병원 순례 중단과 더 이상 아픈 내색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국민 배우 황정민 뺨을 두어번 칠법한 아카데미급 연기 또한 함께 늘어갔다.

  이제는 예수 믿어 변화된 밝은 성격으로 포커페이스를 유지시키는 것도 한계가 다다랐음을 느꼈다. 병원 규모를 막론하고 MRI를 찍어봐도 명확한 진단과 처방을 내려주는 곳은 없었지만 뇌성마비를 앓는 이들이 일생에 한두번 일으킨다는 몸의 변형이 전혀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어릴적 개인 물리치료사로 일하셨던 분의 예언(?)도 있었거니와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들 10에 8할은 몸상태가 극단적으로 나빠지며 심한 경우 진행되다가 죽음에 이르는 것까지 실감나게 목격했기에 애써 부인하기도 어려웠다.

  오랜 훈련에 주님께서 뭔가 또 큰 깨달음을 주시려 단단히 준비하시고 계신다는 확신과 요나서 말씀으로 완전한 보호를 약속 받았지만 당장 갈하고 고프니 그대로 가슴에 들어올리 만무했다. 이따금씩 빛을 발하는 숨이멎는 묵직한 통증은 둘째치고 별것 없는 작은 일상은 매일 융단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생각의 70% 이상을 문자화 시키는 삶인데 타이프가 안되니 그것은 걷는 이에게 다리가 짤리우는 사형선고와 같은 맥락의 것이었다.

  꼼짝 못하고 옆으로 누워 있어야 할 상황이 많다보니 성경읽는 시간은 많아졌지만 혼을 싣지 못하는 묵상으로만 그치기 일쑤였다. 특수 입력장치가 개발 중인 단계에 할 수 있는 것은 음성을 문자로 바꿔주는 앱을 사용하는 것인데 정확한 성우 발음을 요구해 사용이 불가하였고, 일일이 남의 손을 빌리는 것도 오히려 더 번거러운 일이 되고 있었다. 인간관계는 어긋나고 있었고 열방을 품어 열매를 거둬들여도 부족한 시간에 자신의 생각과 지친 마음 한자락 어찌하지 못해 무기력함의 저돌적인 공격은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몇 안되지만 맡겨준 영혼도 있는데.. 타이트하게 붙어 신경써야 할 사람들도 있는데.. 수감자들은 서신 없으면 일주일을 지루해할텐데.. 제자훈련반 등 성실히 임해야 할 부분도 많은데.. 몇 개월에 걸친 이런 쉼없는 키작은 고민에 더욱 위축되게 만드는 것은 평소 그렇게 디테일하게 코치해 주시던 주님의 음성이 증상이 나타난 이후로는 뚝 끊긴 일이었다. 어느 곳에서 어떤 기도를 하여도 그가 계시지 않고, 다른 이들을 통해 그가 일하고 계심을 느끼나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는 순도 높은 욥의 고백은 어느덧 내 고백이 되고 있었다.

  합심기도의 필요성을 느껴 제목을 전하려 했지만 남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영향력 없는 이는 더) 요즘 현대인들의 특성을 잘 파악한 것인지 마음에 크게 동함이 없었고 아니.. 나의 모가난 요주의적(?) 성격으로 다른 분께 누가 될거란 생각에 처음부터 구역예배를 드리지 않아 억지로라도 기도제목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게 맞는 표현이었다. 다만 초기 증상이 일어날 당시 권목사님과 다른 것으로 연락이 이어지던 한 권사님께 대강 알려드렸을 뿐이었다.

  여러 악재가 겹친 암흑 속에서도 전해지는 분별력으로 성경쓰기(워드) 아르바이트를 시킨적이 있는 젊은 한 청년의 "형님은 교회 다니니 뭐가 가장 좋아요?" 이 짧고 진지한 문자 하나만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주님의 침묵은 기다리라는 싸인임을 알면서 무의미한 삶에 대한 체중은 줄어들지 않았다. 다행히 신기한 것은 휠체어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통증을 완하시키시어 피할 길을 열어주시고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여 감사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해주셨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감사제목보다 일상의 무기력감이 절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을 즈음 중보기도 미션을 실행하려 집을 나섰다. 교회에 이르러 버스 정류소 부근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중앙 분리대를 조금 지나칠 순간 온몸이 경직되어 아플 때 오는 통증이 그대로 전해지며 휠체어 조정스틱을 잡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그날 따라 차량들이 왜그리 즐비하게 늘어있는지 요란한 클락션 소리는 한동안 그칠줄 몰랐다.

  주위 이목이 집중되게 쏠리자 당황되고 부끄러워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저 아버지 소리만 속으로 채울 뿐 내가 들어갈 만한 큰 쥐구멍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보다 못해 버스를 기다리던 중년으로 보이는 마른 체격의 아저씨 한 명이 급히 뛰어 들어와 스틱을 움직여 휠체어를 길옆으로 몰아 가까스로 위기는 마무리되었고 시간이 지나자 경직된 몸도 풀리기 시작했다.

  불과 20~30초 가량의 짧디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수난 하루 전 겟세마네의 풍경을 나의 삶으로 그대로 대입해 체험토록 해주신 것을 느꼈다. 십자가 외 선택의 항목을 철저하게 잃은 막막함과 쓸쓸함.. 나를 위한 사명이었기에 거절하지 않으셨고 육신으로 오셨기에 공포감을 떠 안으셨고 사랑의 고통을 먼저 아셨기에 아버지께 순종의 잔을 맡길 수 있었던 장면 하나 하나가 한 폭의 수묵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원망과 은혜가 교집합을 이루며 버라이어티한 찰라가 흐른 뒤 호의를 베풀어주신 아저씨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교회 본당으로 가 앞 센터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 같으면 머리 속에 찬양 몇 곡을 재생한 다음 기도에 임할텐데 휠체어 전원을 끄자 무작정 눈물부터 흘러나왔다. 몇 개월 전 견디지 못해 서러움이 북받쳐 흘린 눈물과는 사뭇 다른 차원의 것으로 영혼을 가져가시기를 애원하는 산 자의 눈물이었다.

  중보기도 책임은 잠시 잊은 채 눈물.. 콧물.. 대방출(?) 시간으로 변해갔다.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고.. 누군가 알아서도 안되는 절묘한 상황에 그나마 마음 열어 맘껏 울 수 있는 최적화된 공간은 이곳뿐이었다. 옷소매로 분비물을 비비고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듯한 떼쓰는 말로 대화를 청했다.

  "아버지~ 어떻게 인생이 이래요? 머물러 있어도 온갖 것들로 인내하기 어려운 한서린 삶인데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당신 자녀 아닌가요? 취하실 것이 뭐그리 더 남았다고! 한순간도 떨쳐내지 못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못남.. 추함을 언제까지 백향목 곧게 뻗은 시선으로 바라만 보고 계실건가요?"

  생각은 이렇게 말하는데 입술로는 다른 외래어로 표현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것은 예전부터 은사들 중에 가장 불편하게 여겼던 방언이었다. 목사님 가르침을 통해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냉한 가슴이 따라갈 수 없었던...

  "아버지~ 그냥 보통 말하는 것도 남들 귀엔 방언처럼 들릴텐데 언제 구했다고 제게 이런 쓸모없는 것을 주십니까? 이 땅에서 쓰임받지 못하고 당신께 돌아갈 부질없는 여정이거늘 난이도 최상급의 이 가혹한 훈련과 연단을 무슨 근거로 받아들여야할지 모릅니다. 그러니 죽이시든 살리시든 빨리 어떻게 좀 해주시란 말입니다~~"

  주께서 협박성에 가까운 내 기도의 울부짖음을 안쓰러이 여기신 탓인지 몇 달동안 들어보지 못한 음성 한토막을 떨꿔 놓으시고 다시 자취를 감추셨다. "니가 내 나라를 아니?" 듣는 순간 과거 oo수산 CF 속 명대사(?)가 떠올라 웃음이 한바탕 터져나왔다. 역시 못하시는 것 전혀 없는 하나님은 우는 자를 미소짓게 만드는 개그에도 능한 분이셨다.

  주신 음성으로 몇 번이고 곱씹어 묵상하는 가운데 코믹하게 들렸던 말씀이 나를 세우게 하실 큰 진리임을 깨달았다. 그랬다. 택함 받은 모든 믿는 이들이 일방적 주의 은혜로 크고 작은 천국(복음)의 비밀을 깨달아 가는 범위 안에 있을 뿐 실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고 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요 3:13).

  날마다 신학을 파는 이도.. 고퀄리티 삶을 지향하는 이도.. 이생의 자랑거리가 쌓여가는 이도,, 신분 여하에 구분없이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주의 푯대로 경주할 힘으로.. 주를 의지할 수 있는 용기로.. 주께 사랑 받을 이유가 되기에 충분스러웠다.

  "아버지~ 그래도 남들이 고개 흔드는 낯선 이방인 같은 삶을 주셨으면 제대로 된 것 하나쯤 남겨주실만도 하셨잖아요! 그저 숨쉬기 운동에 족해야 하는 삶이 어떻게 당신의 영광이 되고 기쁨이 되겠는지요?" 천박함의 끝을 모르는 기도가 이어지자 마치 나의 가장 핵심적인 곳을 원점타격이라도 하듯 12년간 신앙 공백기 동안에도 불러내 들은 적이 없던 추억의(?) 찬양 한곡을 들려주셨다.

  ♪ 나는 행복해요 죄사함 받았으니.....이 세상 무엇이든 채우고도 남아요 ♪ 실로 가공할 은혜였다. 무의식 중 잊고 지낸 죄사함의 축복.. 구원의 기쁨이 흐르고 내 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면 나의 스팩&지식&열심&업적.. 등의 것이 가미가 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가 그분의 영광이 되는 것을... 나의 것으로 나를 채우려 했던 불순한 생각을 정리하는 귀한 사건이었다.

  이날 이후로도 일상을 무너뜨리는 자극적인 통증은 여전히 그칠줄 몰랐지만 하나님이 고통을 제거해주셔야 한다고 고집부리는 기도는 다시 하지 않았다. 설령 나의 상황이 지금보다 나빠진다 하더라도 이 땅에서의 한시적 고통은 아버지의 선하신 손 안에서 영원한 영광.. 이것이 겟세마네의 원리였으리라!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나를 쓰시고자 마음 먹으신다면 눈 한번 깜빡임으로 걷게도 만드실 분이고, 잎새에 이는 그분의 작은 콧김으로도, 나를 돌려 높이 세워주실 분이지만, 주님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환경을 통해 나의 악독함이 묻은 자아의 본질과 정체성이 그대로 노출되길 강하게 원하셨고, 이제 그리스도의 묵상 단계를 넘어 십자가의 삶으로 들어오라 하셨다. 위에 나열된 옷깃만 스치는 그런 작은 믿음과 연약함을 안고서...

  지나간 몇 년보다 더 길게 느껴진 겟세마네 4개월.. 이제 시작 단계일지 알 수 없지만 더 낮아지지 않도록 나를 받치고 계시는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을 구하고 인내의 잔을 들고 끝까지 십자가에 내 영혼의 밤을 맡길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지만 전기도 허락하신다는 독보적(?) 고백으로.. 2016년 최악의 죽은 가을을 생애 최고의 가을로 기억시키실 그분의 뜻 안에서... - 2016.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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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주전부터 주저주저하다 올리지 못한 저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 기도제목을 전합니다. 보시는 분마다 많은 기도 부탁드리겠구요, 너도 나도 익어가는 추수 감사주에 하나님과 더 알차고 달달한 케미를 이뤄가시는 기장교회 모든 식구들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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