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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Dec 10, 2014
  • 3067

평범한 것에 감사, 그럴지라도 감사 살전5:18, 14-11추수감사

서론. 우리는 오늘 감사주일로 지킨다.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마음을 은혜로 기경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가 차고 넘치기를 소원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면 그 자체가 정말 큰 축복이다.

일본 교회 역사를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이 그랬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를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나 죽음으로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고서도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는 막힌 귀로,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 은혜로 살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메마른 심령으로 하실 것입니다’.

우찌무라 간조 목사님의 말을 거꾸로 생각하면 어찌 되는가? 이 시간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축복은 하나님 말씀이 하나님 말씀으로 들려지는 열린 귀와 우주 만물과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믿어지는 믿음과 내가 하나님 은혜로 사는구나 하는 깨달음에서 오는 감사의 마음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축복인 것이다.

마음이 겸손하여 늘 감사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우리 마음이 편안해 진다. 긴장이 풀어지고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오랜 시간 같이 있어도 길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반대로 사사건건 불평하는 사람 남을 비난하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몸도 굳어져 경직되고 마음도 긴장되고 거칠어지며, 짧은 시간 같이 있어도 오랜 시간 마치 중노동을 한 것처럼 힘들고 지치게 된다.

감사는 우리 하나님도 기쁘시게 하는 일이지만, 더불어 사는 주변 사람들과 주 안에서 같은 믿음의 형제들에게도 위로와 기쁨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그 마음 중심에 모시고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고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성도에게는 현저하게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는데,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바로 감사다. 예수 신앙은 감사를 나타낸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은 내 마음을 항상 감사로 적신다. 무슨 일을 만나도 감사하게 하신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말씀 오늘 본문에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하신다.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속한 자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주 예수를 믿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감사함으로 예수 향기를 나타내시기 바란다.

1.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주보에 오늘 설교 제목이 뭔지 한 번 보라. 뭔가? ‘평범한 것에 감사, 그럴지라도 감사’이다. 그렇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보다 평범한 것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감사하려 한다. 제 집사람 사촌 동생 중에 미국에서 목회를 하는 동생이 있다. 그 동생은 어릴 때 부모님을 다 잃고 누나와 둘이 남았다. 남동생은 신앙생활을 잘 해서 목회자가 되었는데, 이 누나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점점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결혼을 하면서는 더 그랬다. 그러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중앙 분리대에 부딪히는 사고가 났는데, 참 기적적으로 차는 바로 폐차할 지경이 되었는데 사람은 전혀 다치지를 않았다. 그 순간 이 누나의 마음속에 동생의 말이 떠올랐다. ‘누나! 빨리 하나님께 안 돌아오면 큰일 난다. 내가 누나 위해 매일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그러셨다’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는 그 자리서 회개하고 ‘하나님 이렇게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서는 그 사고 이후로 지금은 해운대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는 거의 감사를 잊고 살다가 무슨 특별한 일을 당하고서야 감사한다.

그런데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지 않는다. 물론 특별한 일이 있을 때도 감사하지만,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평범한 하루하루의 일상에 대해 감사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들을 자기도 모르게 당연하게 생각하고 산다. 당연한 자기 권리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사실 감사가 나오지를 않는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살 때 저는 예닐곱 명의 친구 선배들과 함께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다. 학교에 갔다가 돌아와서 집에서 씻고 밥 먹고 나면 바로 교회로 간다. 집에 있으면 특별히 할 일도 없거니와 책상도 제대로 없었다. 그런데 교회 가면 작은 도서관이 있어서 거기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고 탁구도 치고 그렇게 지냈다. 그렇게 같이 지낸 고향 친구들 중에 두 사람이 눈이 유독 안 좋았다. 요즈음은 학생들 중에도 안경 쓴 사람이 거의 태반이지만, 그때만 해도 안경 쓴 사람이 그리 많지가 않았는데, 같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한 두 사람이 눈이 안 좋아서 일찍부터 안경을 썼던 거다. 안경을 쓰고 사니 옆에서 봐도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골에 겨울이 얼마나 춥는가? 그렇게 날씨가 추워지면 안경에 습기가 차서 수건으로 자꾸 닦는 것을 보았다. 또 같이 운동을 하다가 여러 번 안경이 깨지는 것도 보았다. 그런 일들을 보면서 제가 속으로 ‘아니 눈을 좀 잘 관리하지 왜 저렇게 사나’ 그랬다. 그러면서도 제가 눈이 좋은 것에 대해서는 한 번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해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신대원에 갔는데, 어느 날부터 칠판에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도 안경을 쓰는 신세가 되었는데, 아 최근에는 노환까지 와 가지고 안경을 벗으면 멀리 있는 물체가 안 보이고, 안경을 쓰면 가까운 책의 글씨가 안 보인다. 제가 이리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저에게도 노환이 온 것이다. 그래서 요즈음 절실히 느낀다. 눈이 좋은 것이 얼마나 복인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생각을 하는 것이다.

눈만 그렇는가? 사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면서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다. 매일 매일 아침이 되면 눈을 떠는 것 당연한가? 그렇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어제 밤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다음 날 아침 깨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늘도 새 날을 주어 눈을 뜨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해야 맞는다. 병원에 가 보라. 특히 중환자들을 잘 보라. 자기 힘으로는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기계의 힘을 빌어 겨우 숨을 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호흡 한 번 하는 것도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하루 세 끼 풍성하게 먹을 것이 있다는 것도 알고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굶주림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으며, 음식을 두고서도 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정말 평범한 우리의 모든 일상들이 알고 보면 다 은혜이다. 남편이 있는 것도 은혜고 아내가 있는 것도 은혜다. 부모님 계신 것도 은혜고 가족과 더불어 사는 것도 다 은혜다.

이렇게 우리가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긴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음을 알면 모든 일이 사실 감사할 일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은, 모든 일이 다 감사할 일이 아닌데도 억지로 감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인즉 모든 것이 다 감사할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피조물인 우리 인생은 어느 것 하나 하나님께 빚지 않은 것이 없이 모든 것이 다 감사할 일인 것이다.

헬런 켈러를 다들 아실 것이다.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병으로 눈이 멀고 귀는 못 듣고 말도 못하게 되었지만, 훗날 이 모든 장애를 딛고 유명한 작가요 세계적인 위인이 되었지 않는가? 핼런 켈러가 쓴 글 중에 ‘내가 삼일 간 눈을 뜰 수 있다면’ 하는 글이 있다. ‘나에게 삼일만 눈을 뜨게 해 주시면 나는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겠습니다. 사흘 간 내가 보게 된다면 나는 첫째 날에는 내 손가락 끝으로 만져서 알던 나의 스승 애니 슬리반을 찾아가서 그 인내심 많고 인자한 모습들을 내 마음 속 깊이 간직해 두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도 다 만나서 저들의 특징들을 잘 새겨 두겠습니다. 둘째 날에는 아침 일찍 산에 올라가 밤과 낮이 구분되는 장엄한 일출을 보고, 영롱한 이슬도 보고, 화가들의 그림도 보면서 색깔들의 하모니를 감사하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관찰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미소를 보면서 행복해하고 슬픈 표정을 보면서 동정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간이나 볼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던 지극히 평범한 일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평생의 소원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 것도 당연한 게 없음을 의미한다. 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당연하게 여긴 평범한 모든 것이 정말 하나님 주신 선물들임을 알고 평범한 것에 늘 감사함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란다.

2. 범사에 감사하려면 둘째로 ‘그럴지라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대개 평범한 일이 아니라 특별한 일이 있어야 감사하려 하듯이, 또 궂은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 있어야 감사하려 한다. 궂은 일이 있을 때,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하는 것이 쉽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한다면 결코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될 수가 없다. ‘범사’라는 것은 말 그대로 모든 일이지 않는가? 좋은 일만 아니라 궂은 일도 포함된다. 즐거운 일만 아니라 슬픈 일도 포함된다. 내 뜻대로 되는 일만 아니라 내 뜻대로 안 되는 일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감사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 손에 없을지라도 감사한다. 때로 마음이 아프고 힘들지라도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감사에는 두 종류의 감사가 있다고. ‘상대적인 감사’가 있는가 하면 ‘절대적인 감사’가 있다. 상대적인 감사는 조건적인 감사이다. 좋은 일 있으면 감사하고 병이 나으면 감사하고 자녀들이 좋은 데 취업하면 또 감사한다. 사실 이런 상대적인 감사조차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인 감사도 감사하지 않는 것에 비하면 성숙한 마음이다. 그러나 상대적인 감사만으로는 우리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다. 황소를 드림보다 더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감사의 제사에는 절대적인 감사가 필요하다. 상황을 초월하는 감사, 환경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감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환경과 조건을 초월하는 절대적인 감사 곧 ‘그럴지라도 감사’는 훈련이 필요하다. 어떤 형편 속에서도 감사거리가 있음을 발견하는 믿음의 눈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 그러지 않는가? 감사는 가진 자의 것이 아니라 깨닫는 자의 것이라고. 그렇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진 것이 적어도 깨닫는 자는 감사하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건 감사할 것이 눈에 보이는 사람이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는 사람이다.

어릴 때 강가에서 자석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강가 모래 속에서 자석을 이렇게 굴리면 희한하게도 작은 쇳가루들이 무수히 자석에 붙어 나온다. 육안으로는 안 보였다. 그런데 자석을 가져다 대면 모레 흙 속에 상상 외로 많은 쇳가루들이 숨겨져 있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의 삶 속에는 사실 무수한 감사거리가 숨겨져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은혜의 자석으로 그 수많은 감사거리를 찾아내고 발견해 낸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은혜의 자석이 없는 사람은 하나도 감사거리를 찾아내지를 못하는 법이다. 감사거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감사할 이유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것이다.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매튜 핸리라는 유명한 청교도 주석가가 있다. 어느 날 이 목사님이 길을 가다 강도가 순간적으로 달려들어서 잠시 정신을 잃고 가진 것도 다 틀리고 말았다. 정신을 차리고 피투성이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신 다음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한다. ‘오늘 강도를 만났지만 하나님이 목숨을 또 살려주셔서 이렇게 가족들 다시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예수님 몰랐다면 저도 저를 때리고 도둑질한 강도처럼 살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강도가 안 되고 강도를 맞은 사람이 되고 목사가 되었으니 감사합니다. 또 제가 가졌던 것 다 잃었지만 여전히 제 마음에는 천국이 있으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지 않는가? 그 마음속에 은혜의 자석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사의 쇳가루들을 발견해내는 것이다.

이번 우리 교회 증축 감사예배 때로 오셨던 울산교회의 한 구역이 있다. 윤종휘 목사님 어머니가 구역장인 구역인데, 그 분들이 올해 봄에도 우리 교회를 방문하신 것이 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일광 바닷가 왼편에서 학리로 이어지는 둘레길 만들어 놓은 곳을 산책을 했다. 제가 그 분들과 같이 산책을 하면서 본 것 중에 마음에 참 와 닿은 장면이 바다가 아니고, 바닷가 옆 돌산에 자라는 나무들이었다. 저 돌산에 어떻게 나무가 자라나 싶은데, 그 바위 틈새를 나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리고 생명력을 뽐내면서 자라고 있었다. 제가 작은 소나무 하나를 당겨 보았다. 워낙 가늘고 작은 나무여서 아주 얕보면서 당겼는데, 이게 바위 틈 속에 얼마 뿌리를 깊이 내렸든지 꼼짝을 하지 않았다. 뭔가? 나무가 물을 찾아서 그렇게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그리고 급기야 물길에까지 뿌리가 닿아서 거기서 수분을 빨아들임으로 어떤 태풍이 와도 뽑히지도 부러지지도 않는 튼튼한 나무가 되어 거기 서 있었던 것이다. 제가 속으로 그랬다. ‘너 참 대단하다. 니가 나보다 더 낫다’.

여러분! 마찬가지다. 강풍에도 끄떡하지 않는 건강한 나무는 물이 뿌리를 찾아와 주어서가 아니라 나무의 뿌리가 물을 찾아가서 그렇게 되듯이, 예수를 믿는 우리 성도들도 어떤 환경 속에서도 믿음으로 뿌리를 내려서 감사를 찾아내는 법이다. 감사할 거리가 저절로 나를 찾아와 주는 것이 아니라,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도리어 믿음의 뿌리로 감사를 찾아낸다. 그렇게 믿음의 뿌리로 감사를 찾아내는 성도는 그야말로 견고한 신앙이 된다.

뿌리 깊은 나무가 흔들리지 않듯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를 찾아내는 성도 역시 은혜 속에 강한 성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내는 성도, 하나님 살아계심을 어떤 환경 속에서도 보여주는 성도가 되는 것이다.

교회를 조금만 오래 다니신 분이라면 ‘그럴지라도 감사’ 그러면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선지자가 한 사람 있을 것이다. 누구인가? 하박국이다. 호박국이 아니고 하박국이다. 같이 보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 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3:17-19)’. 여러분 하박국의 형편이 어떻는가? 없고 없고 없다 한다. 열매도 없고 소출도 없고 양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없다. 없고 없고 없는 상황이라면 그 다음 뭐라 해야 한다. 이것이 없어 못 살겠고 저것이 없어 죽겠고 그것마저 없어 미치겠고 고것도 없어서 돌겠다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하박국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을지라도 즐거워할 것이라 한다. 기뻐하리라 한다. 왜요? 내 손에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지만, 내 마음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내 영혼을 하나님이 붙드시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이다.

당장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 죽을 것 같지만, 그러나 나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이 계셔서 이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리라 확신하고 있다. 나의 발을 사슴의 발과 같이 하셔서 어떤 원수도 미치지 못하는 높은 산까지 지치지도 않고 달려 올라 가게 하실 것이라 한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일어나리라 한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기에 정말로 세상에 있는 것 내 손에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 것이요 또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리라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그렇다. 신자에게 있어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는 것은 이것도 하나님의 은헤를 경험하는 기회요 저것도 하나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된다. 광야의 이스라엘 보라. 마실 물이 없다. 하나님이 반석을 물을 주셨다. 먹을 양식이 없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다. 추운 밤에 추위를 피할 따뜻한 방과 이불이 없다. 하나님이 불기둥이 되셨다. 더운 낮에는 작렬하는 태양을 피할 그늘도 에어컨도 없다. 하나님이 구름기둥 되셨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으니 오직 하늘만 쳐다 본다. 하나님만 바라본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힘이 되시고 구원이 되셔서, 도리어 이것과 저것이 있었다면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높은 신앙의 차원 높은 영적인 자리 정말 하나님의 역사하는 손을 경험하게 하신 것이다. 이런 하나님을 믿기에 하박국은 없고 없고 없어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하였던 것이다.

결론.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수감사주일이다. 범사에 감사하자. 너무나 평범한 하루하루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지극히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해서부터 감사하자. 오늘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자. 오늘 이렇게 예배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천국 소망 있음에 감사하자. 입을 열어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자.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는 또 그럴지라도 감사한다 했다. 나무가 물길 닿을 때까지 뿌리를 내려 결국 물을 찾아내듯이, 아무리 우리 삶이 척박해도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고 찾을 줄 아는 믿음의 뿌리를 내려서 정말로 그럴지라도 감사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박국처럼 없고 없고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 계심을 인하여 하나님이 내 하나님 되심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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