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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Jun 10, 2015
  • 1015

심판의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합시다 롬2:1-5

서론. 주님을 사랑하여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함께 한 우리 모두에게 살아계신 우리 하늘 아버지가 은혜와 진리로 함께 하시기를 소원한다.

오늘부터 몇 주간 다시 로마서를 살핀다. 로마서는 설교하는 저에게도 어려운 성경이다. 그러나 우리가 꼭 깨달아야할 중요한 구원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성경이기에, 딱딱한 말씀이지만 주일 오전에 함께 살피려 한다.

1. 오늘 1절 앞부분에 보면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한다. 남을 판단하는 일은 참 조심스럽고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우리 인생은 죄로 인해 이기적이다. 자기중심적이다. 그러기에 자기중심적인 판단을 하고 자기 잣대로 남을 판단하기에 우리의 판단은 잘못되기가 참 쉽다. 바른 판단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내 판단이 맞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알게 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살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한 일이 참 많다. 내 기준 내 경험 내 가치관 따라 이 사람 저 사람 이렇게 저렇게 정말 많은 판단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남을 판단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주셨다. 마7:1-3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미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의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고린도전서 4장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의 일도 자기가 판단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왜 바울은 그랬나? 바울은 우리와는 좀 다르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한 사람이다. 뛰어난 신학자요 신앙인이다. 그런데도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인가? 나도 나 자신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자기가 나름대로 판단을 내린 것이 반드시 옳은 판단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에,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판단마저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 자신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자신에 대한 판단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는가? 우리가 살다보면 그 사람의 어떤 면에 대해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데, 정작 자기 자신은 그걸 모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자신을 모르니까 자기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인데도, 늘 모든 잘못과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그런 답답한 일이 많은 거다. 뭔가? 사실인즉 우리 인생은 자신 조차도 제대로 판단을 못하는 거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은 참으로 남을 판단하는 일을 극히 조심하고 말을 아껴야 한다.

한 번 따라 하라 ‘내 눈의 들보부터 먼저 뺍시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 보면, 그 사람 자신도 별 수 없다. 판단은 잘 하지만 정작 판단하는 그 사람이 더한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자기에게는 대들보 같은 허물이 있으면서도 그것은 못 보고 남에게 있는 작은 티끌 같은 허물은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것이 이기적이고 죄많은 인생의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 허물이나 잘못을 보면 용납하거나 참지를 못하고 지적하고 분노하고 흥분하는 것이다. 자기 눈의 들보는 뺄 생각을 안 하고 남의 눈에 티끌은 어떻게든 뽑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갈수록 교회도 그렇게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간혹 든다. 그래서 ‘기도하는 소리는 줄어들고 남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소리는 커지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될 때가 있다. 이제 우리가 설 명절도 보내도 음력으로는 새해 첫 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올 해는 어찌든지 기도하는 소리가 커지고 남을 판단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우리 교회과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1. 작년에 열 한 주에 걸쳐 로마서 1장을 살폈었는데, 한 번 간단히 복습해 본다.

1) 먼저 v.1-17에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덧입음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

우리 성도님들이 마22장에 나오는 혼인잔치 비유를 기억하실 거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준비한 임금과 같다 했다. 잔치 날이 되었는데 초청받은 자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오지를 않는다. 그래서 임금은 종들을 보내서 어디에서 누구든지 만나는 대로 데려와서 잔치 집을 채우라 한다. 드디어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왔는데,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 왜 예복을 입지 않았느냐 물어도 대답이 없다. 결국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 그렇다. 혼인잔치 비유가 가르쳐주듯 하나님은 누구든지 오라고 천국문을 활짝 열고 초청하고 계신다. 그러나 그 천국잔치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한다. 합당한 예복 없이는 천국잔치에 참여치 못한다. 천국잔치에 필요한 예복이 뭔가? 바로 ‘믿음으로 얻게 되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의’는 천국잔치 입장권과 같운대, 그 입장권은 돈으로 사지 못하고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

오늘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은 복음 곧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꼭 마음에 구주로 믿어서 ‘하나님의 의’를 덧입고 천국 잔치에 다 참여하게 되시기를 바란다.

2) 그 다음 1:18-3:20까지는 “천하의 모든 인생 가운데는 한 사람도 스스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의인)’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가는 말씀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주인 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려면 ‘의’가 필요한데, 타락한 인간은 ‘의’는 커녕 도리어 ‘불의’가 가득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1:18-3:20에서 핵심 구절은 1:18이고 핵심되는 단어는 ‘불의’‘하나님의 진노’이 다. 같이 읽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여기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한다. 모든 인생들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해 하나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지 못하여서 그 불의가 그대로 하나님 앞에 노출되는 모든 인생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있다는 것이다.

3) 그러면 하나님 진노를 초래하는 인생들의 불의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떠하다 했는가? 1:18-32을 통해 크세 세 가지로 말씀을 드렸다. ① 영적타락 ② 성적타락 ③ 전적타락. 기억나시는가? 하나님이 창조주이신데, 자기를 창조해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엉뚱한 것을 믿고 섬기는 것이 영적 타락이요, 그렇게 영적으로 타락하여 인생들이 그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지워버리니 이제는 브레이크 고장난 자동차와 같아서 온갖 죄악을 마음대로 짓고 사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2. 이렇게 영적으로 성적으로 전적으로 타락한 인생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크게 두 단계로 나타난다.

첫째는 버려두심이다. 우리가 1장에서 배웠다. 인생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을 안 하고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주장을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므로, 너무나 어이가 없으신 하나님이 ‘그래 마음대로 해 봐라’하고 버려두셨다 했다. 1:24, 26, 28까지 세 번이나 버려두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여기 ‘버려두심’에는 긍정적인 목적도 있는데, 오늘 말씀에서 나타난다.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당장 심판하시지 않고 버려두고 계시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둘째 ‘그 날의 심판, 최후심판’이다. 그렇다. 그 날의 심판이 있다. v.5을 같이 보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여기 보라. 1장에서는 제멋대로 생각하고 사는 인생들을 하나님이 그냥 버려두셨다고 했지만, 이제 2장에서는 영원히 버려두기만 하시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때가 오는 거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임하는 날이 온다. 하나님이 의로우시기 때문에 모든 불의에 대해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과 다음 주에 살필 2:1-16은 때가 되면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심판 날에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합시다’ 이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남김없이 쏟아 부어진 심판의 날이 오는 줄 알고, 피난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덧입음으로, 그 날에 있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지혜로운 인생이 돼야 한다. 흔히 ‘비는 피하고 봐야 한다’ 하지 않는가? 세상 살면서 될 수 있으면 큰 위기 혹은 큰 매는 피하고 봐야 한다 그러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진노는 어떻게든 피하여야 하는 것이다.

3. 로마서의 이런 큰 흐름을 이해하고 이제 오늘 2:1-5의 말씀을 살펴보겠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v.2이다. 같이 보자.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1) 여기 먼저 ‘이런 일’ 그랬는데 어떤 일인가? 1장에서 나열했던 온갖 죄악된 일들이다. 첫째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부정해버리는 일이다. 사람이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를 보고 ‘나는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소’ 한다면 그게 될 일인가?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지으셨고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고 공급하신 분이신데, 그 하나님을 없다하고 무시하고 사는 것이 어찌 죄가 아닌가? 둘째로 이런 일은 온갖 성적인 죄악들이라 했다. 제가 다시 설명 안 해도 오늘 이 세상이 얼마나 음란한 세상인지 우리 성도들이 잘 아실 것이다. 셋째로 이런 일은 v.28-32에 열거된 21가지 죄악들이다.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자랑 악을도모함 우매함 배약 부모거역 무정함 무자비함’이라 했다. 인생들이 이런 온갖 죄악된 일을 저지르고 사는데 대해 1장에서는 하나님이 당분간 버려두고 계신다 했지만, 이제 2장에서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 여기 v.2에서 잘 보아야할 것이 있다.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되 무엇을 따라 심판하신다구요? ‘진리대로’다.

이런 뜻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 나름대로 자기 생각이 있다. 자기 삶에 대해서도 각자 판단이 있다. 그래서 v.1에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하신다.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판단을 하는 거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래도 나 정도면 괜찮다’ 그렇게 생각한다. 도둑질 하다 잡혀도 ‘세상에는 나보다 더한 사람이 천진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 그런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잘못이 보여도 ‘그러면 안 되지’ 하고 가혹한 판단을 하면서,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한 판단을 하는 거다. 자기 눈 속의 들보는 못 보면서 남의 눈 속의 티는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심판받을 만한 죄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은 심판받아 마땅하다’ 그렇게 판단을 한다.

그래서 만약 하나님의 심판이 각자 자신에 대한 판단으로 이루어지면, 아무도 심판받을 사람이 없을 거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각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느냐가 기준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 하고 판단을 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내린 판단대로가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행하고 살았느냐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래서 ‘진리대로’라고 한다. 아무리 내가 나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변명을 해도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진리대로 그가 어떻게 살았는가 보시고 심판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마음까지 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 진리대로 심판을 하시는 것이다. 진리를 기준으로 심판이 이루어지기에, 감추어진 죄악이 다 드러나고, 아무도 나는 억울하다는 변명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러면 안 되지’ 하고 바르게 판단을 해도 역시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 판단은 제대로 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그런 잘못된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잘 판단했다고 심판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대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게 되어 질 것이다.

4. 이렇게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될 것인데, v.4-5을 보면 진리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이 v.4-5을 보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용납하심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화개하지 않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1) 여기 v.4-5은 생각할 것이 많은 구절이다. 먼저 하나님을 가리켜 ‘인자하심 용납하심 길이 참으심’을 말한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정말 인자하시고 용납하시고 길이 참으시는 분이시다. 만약 우리 하나님이 인자하시지 않거나 오래 참으시지 않는다면, 사실 우리 개인도 그렇거니와 인류의 역사도 오래 전에 이미 다 끝장이 났을 거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했을 때 끝을 내실 수도 있었고, 노아 홍수 때도 노아와 여덟 식구 남기실 것 없이 끝내실 수도 있으셨다. 그 외에도 이 땅의 역사 속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죄악이 너무 가득해서, 하나님의 인자와 오래 참으심이 없었다면 끝을 내실 시대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이 풍성하시기에,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려고 참 오랜 세월 많이 참으셨다. 그리고 지금도 참고 계신다.

이것은 인류 역사만 아니라 사실은 우리 각자도 그렇다.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하나님과 나 자신은 너무 잘 아는 온갖 죄에 빠질 때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마다 하나님이 참지 않고 우리 죄를 다 갚아 버리셨다면 오늘 여기 앉아 있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한 사람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수없이 죄를 짓고 이기적으로 살았는데도 오늘 우리가 여기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우리 하나님이 인자하시고 우리에게 많이 참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런 인자하심과 길이 참으심에 대해 산상수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6:44-45)’. 참 기가 막힌 말씀이다.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라신다. 믿음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도 저주하지 말고 도리어 기도해 주라신다. 왜 그렇게 하라시는가? 그것이 우리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 법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아버지를 닮아서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자비한 마음을 품되, 원수에게도 자비한 마음을 품으라 하신다. 우리 하늘 아버지는 얼마든지 악인에게는 해를 안 비추고 선인에게만 비추실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신다. 얼마든지 의로운 자에게만 비를 주고 불의한 자에게는 안 주실 수 있지만 그러시지도 않으신다. 하늘 아버지는 선하고 인자하고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라, 악인과 선인에게 공히 해와 비를 주시는 분이시다. 그렇게 인자하고 오래 참는 하늘 아버지를 본받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2) 이처럼 우리 하늘 아버지는 인자하신 분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면 왜 그렇게 인자하시고 오래 참으시는가? 다시 v.4을 보자.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인생들을 어디론가 인도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어디로 인도하시는가? ‘회개하게 하심’이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인자하신 분이시라 한 심령도 자기 죄의 책임을 지고 심판받아 멸망하기를 원하시지 않으시다. 인자하신 하나님은 모든 인생이 다 회개하여 영원한 심판을 면하고 의의 예복을 입고 천국 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신다.

겔33:11이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어떤 악인이라도 그 악한 길에 계속 머물다가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오히려 어떤 악인이라도 그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 사는 것을 원하신다.

악인이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는 것을 무엇이라 하는가? ‘회개’이다. 오늘 우리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당장 심판하시지 않는 것은 세상에 아직은 죄악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이미 세상은 죄악으로 충만하지만,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하여 살기를 바라셔서 오래 참고 계실 뿐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회개는 천국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라는 것을 잊지 말라. 아무도 회개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자가 없다. 반대로 어떤 죄인이라도 진심으로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 줄 알고 그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우리 하나님이 넉넉히 용서하지 못할 죄인도 없다. 누구든지 진심으로 회개할 때 하나님은 천국의 문을 기쁨으로 열어 주신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중에 오순절 성령이 임하였다. 성령으로 충만해진 베드로가 담대하게 서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였다. 나사렛 예수는 온전한 의인이시지만 온 인류의 죄를 지고 죽으신 것과, 그의 죽음이 의인으로서 죄인을 대신하는 죽음이었기에 하나님이 삼일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생명의 주가 되게 하신 것을 설교했다. 의인이셨던 예수의 죽음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되묻는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어떻게 해야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겠는지 물었다. 베드로가 대답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여러분! 그렇다.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구원을 받는 첫 번째 열쇠가 바로 ‘회개’이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자기 죄를 회개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당장 심판을 행하시지 않고 그 인자하심으로 오래 참고 계신 것이다.

3)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오해한다. 하나님이 세상에 가득한 죄악을 당장 심판 안하신다고, 심판하는 하나님은 없다고 여기거나 심판하실 능력이 없다고 여긴다. 혹은 하나님 계셔도 심판 같은 일은 안 하실 것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믿어 버린다. 그런 사람을 가리켜 뭐라 하는가? ‘그 인자하심과 ...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한다. 하나님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참고 있는 것뿐인데,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해하여 하나님을 완전히 무시하는 일들이 벌어지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참고 계신 줄을 모르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계속해서 무시하면 어찌되는가? v.5이다. ‘네 고집과 화개하지 않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여러분! 하나님이 회개할 기회를 주시려고 참고 계신 줄 모르고, 당장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치 않는 것은 ‘그 날’ 곧 최후 심판 날에 받아야할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더 쌓아가는 일이 되고 만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기회를 많이 주신 만큼, 회개하지 아니한 죄악도 더 쌓여지고, 결과적으로 그 날에 받을 진노 또한 더 쌓이게 되는 것이다.

결론.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 앞에서 우리 인생은 둘 중의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인자와 오래 참으심이 회개하게 하기 위한 것인 줄 알고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천국 잔치에 들어갈 준비를 하든지, 아니면 당장에 심판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계속 무시하다가 진노가 쌓여서 영원히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주님 사랑하는 기장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자기 죄를 돌아보고 회개함으로 장차 임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하나님의 의의 예복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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