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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탁영성
  • Dec 21, 2023
  • 124
  • 첨부1

구역공과 23-51

우리와 구원 사이의 거리는 제로(‘0’) 

롬10:4-10, 내 평생 사는 동안,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 시작하는 이야기. 마19장을 보면 주님을 찾아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물었던 부자 청년이 떠난 뒤에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 이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우리 사람이 천국 가는 길이 너무 멀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놀라서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19:25) 주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19:26).

여기서 한 가지 질문합니다. 사람은 불가능하고 하나님은 다 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은 멀리 있겠습니까? 가까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했기에 구원의 길은 너무나 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구원의 길이 너무 가깝다. 얼마나 가까운 지 오늘 설교제목 ‘우리와 구원 사이의 거리는 제로(‘0’)’라 한 것처럼 거리가 제로(‘0’)입니다.

오늘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구원의 길이 어떻게 ‘제로’일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 음식 및 다과 나눔(모임 전 혹은 모임 후)

■ 찬양(10분) 

■ 말씀과 삶 나눔 

 

1. 로마서 10장 4절과 5절, 6절을 이어서 잘 읽어봅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얻는 의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율법이 요구하는 의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요구하는 의, 곧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얻게되는 ‘의’를 죄 중에 태어나 죄 가운데 사는 우리 인생이 스스로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의 요구 앞에 전적으로 무능한 자신을 발견하고는 탄식을 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6절) ...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7절)’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스스로 이루려는 것은 저 하늘에 자기 힘으로 올라가 의를 가져오는 것이라 말합니다. 무저갱에 내려가 죄사함의 능력을 가져와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렇게 죄 많은 인생이 스스로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루고자 하는 것은 하늘에 올라가거나 무저갱에 내려가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구주 예수님이 우리 위하여 율법을 완성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의는 다른 의가 아닙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입니다.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누가 저 하늘에 올라가 우리 위해 의를 가져다주고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 우리 위해 죄사함의 능력 주겠느냐고도 묻지 말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누가 하늘에서 내려와 온전한 의를 주셨고 또 누군가 무저갱에 내려가 온전한 죄사함의 능력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이미 하늘에서 내려와 온전한 의를 주고 무저갱에 내려가 온전한 죄사함의 능력을 주신 분이 계십니다. 온 세상의 구주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을 위해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고 이 죄악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온전히 하나님께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사심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이루셨습니다.

또 우리 예수님은 우리 죄인들 대신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어 무저갱에 내려갔다 부활로 올라오심으로 온전한 죄사함의 능력을 우리에게 가져 오셨습니다. 

그러니 다른 구원자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우리에게 의를 가져다주십니다.

 

3. 우리에게 율법이 요구하는 온전한 의를 주시기 위해 우리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오시고, 또 무저갱에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 위해 낮아지고 자기 목숨을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 받은 우리 성도의 삶이 어떻게 주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까?(요3:16, 행2:44-47 참조)

우리는 우리 주님처럼 이웃에게 의를 줄 순 없습니다. 죄사함의 능력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신 주님 마음을 본받아 우리의 소중한 것들을 이웃과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성도가 나누며 사는 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믿음으로 의를 얻는 성도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이 나눔인 것입니다. 사랑을 나누고 위로를 나누고 때로는 소유도 나누면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나눔을 하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요3:16)’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4-47)’

 

4. 만민이 언제나 어디서나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구원의 말씀을 어디에 두셨습니까?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8절)’ 

우리의 입과 우리의 마음에 있다 하셨습니다. 그만큼 가깝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구원의 말씀 의의 말씀이 우리 입에 있고 우리 마음에 있어 너무 가깝기 때문에 사실 천하 만민이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5. 만민이 언제나 어디서나 구원받을 수 있는 증거를 강도의 예를 가지고 말해 봅시다. 

강도가 구원받은 장소는 십자가 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죄를 대신하는 대속의 십자가지만 그러나 강도의 십자가는 의미가 다릅니다. 자기 죄로 인해 사형을 집행당하는 십자가였습니다. 따라서 평생 지은 죄로 인해 사형당하는 십자가가 구원의 장소로 합당할 수 없습니다. 강도가 구원받은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도는 죽기 직전에 구원 받습니다. 죽기 직전 자기 옆에서 죽어가는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주님이 하나님 아들 세상의 구세주임을 알고 회개하고 자기 영혼을 부탁드렸습니다. 이처럼 구원은 언제나 어디서나 만민에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6. 9절은 가능하면 외워 봅시다. 우리 입에 있고 마음에 있는 구원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음으로 어떻게 하고 입으로 어떻게 해야 구원 받습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9절)’

우리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우리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것을 마음으로 믿고 우리의 입으로 시인을 하면 누구든지 구원받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진실로 만민이 언제 어디서나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영생을 얻게하는 이 복음의 말씀을 만민의 입에 그리고 마음에 두셨습니다.

 

■ 함께 하는 기도

우리 위해 아들 주신 하나님, 자기 목숨 주신 주님을 본받아 사랑의 나눔 실천하며 살도록.

구원의 말씀이 내 입에 있고 마음에 있음 알고, 오늘 여기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소서.

구원의 말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내 가족부터 땅 끝까지 전파하게 하소서.

성탄의 계절 낮아지신 주님 마음 본받으며, 새해 교회와 복음 위해 섬길 일꾼 보내주소서.

 

■ 찬양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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