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열매 맺으며, 기도로 승리하라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
열매 맺으며, 기도로 승리하라. 마21:15-22, 18-고난특새①(권위의 날)
서론. 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고난과 사랑을 묵상하는 고난주간 특새에 함께 하신 성도님들 모두를 환영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십자가를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은혜 베푸시며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소원한다.
몇 년 동안 고난 주간에는 주로 한 복음서를 택하여 주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 당하셨던 일이나 가르치셨던 말씀을 함께 살폈다.
올해는 그렇게 하지 않고, 주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시던 때 마지막 한 주 동안 요일별로 있었던 일을 살펴보려 한다.
1. 주님은 흔히 ‘종려주일’이라고 부르는 부활주일 전 주일인 어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성전에 들어가셔서는 만민이 기도하는 거룩한 집을 더러운 욕망만 가득한 장사의 소굴로 만들 것을 책망하시고 청결하게 하셨다. 그리고 날이 저물 때 예루살렘 성 밖 베다니로 가셔서 주무셨다.
종려주일 다음 날인 월요일을 흔히 사람들은 ‘권위의 날’이라고 부른다. 무슨 큰 의미가 있는 표현은 아니지만, 고난주간에 요일을 따라 주님이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기억하는 데는 도움이 되기에 저도 사용해 본다.
‘권위의 날’이라고 부르는 고난주간 첫날에 주님이 하신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오늘 읽은 말씀 곧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아 말라버린 일과 관련된 일들이다.
베다니로 가서 주무신 주님은 다음 날 일찍 다시 성으로 들어오시는데 시장하셨다. 길 가에 한 무화과나무가 보인다. 마가복음을 보면 잎이 무성했다. 혹 열매를 얻을 수 있을까 기대하시고 가까이 갔는데 잎만 무성했지 열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주님은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신다. 주님 말씀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무는 뿌리까지 말라 버린다.
제자들이 보고는 이 일들이 뭔가 이상해서 어찌하여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렸는지 묻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더 이해하기 어려운 대답을 하신다. 무화과나무가 왜 말랐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믿고 기도하면 반드시 다 받게 된다고 하신다.
2. ‘권위의 날’이라고 부르는 고난 주간 첫날에 있었던 이 사건은 사실 우리에게 많은 의문을 가지게 하는데, 두 가지만 생각해보자.
먼저 주님이 배가 고픈데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내 놓지 못했다고 저주해서 말라 죽게 하는 일이 옳은 일인가? 게다가 마가복음을 보면 ‘아직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 하셔서, 열매가 없는 것이 정상인데도 주님이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시다니, 너무 하신 것 아닌가?
둘째 의문은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왜 말라 죽었는지 물었는데, 주님은 엉뚱하게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받게 된다는 대답하신 것이 정상적인 대화인가 하는 점이다.
이렇게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면, 오늘 주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를 저주하신 사건의 의도가 결단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3. 먼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부터 생각해보자. 마가복음에서 아직 무화과의 철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주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진짜 의도는 배가 고픈데 열매를 내놓지 않은 나무가 미워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철이 아니기에 당연히 지금은 열매가 없는 것인데도 저주한다면, 주님이 이상한 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알 듯이 주님은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화를 못 참고 욱해서 무슨 일을 하시는 분 아니시다.
그러면 주님이 왜 열매 없는 무화과를 저주하셨는가? 다시 마가복음을 생각하면, 마가는 주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과 그 저주대로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일 사이에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무슨 뜻인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더러운 욕심으로 강도의 굴로 만들어버린 이스라엘의 타락한 영적인 상태를 상징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주님은 언약 백성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끝없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불순종하여 열매 없이 살아온 이스라엘의 역사를 생각하셨던 것이다.
흔히 포도원의 노래라고 부르는 이사야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까닭에 대해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됨인고?(사5:4)’ 하신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은혜를 베푸셨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좋은 포도열매를 맺기는커녕 들포도만 맺었다고 탄식하신다.
이사야 시대 이스라엘만 아니라 주님 시절의 유대인도 마찬가지였다. 주님 앞에 서 있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처럼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믿음과 의와 순종과 사랑의 열매를 전혀 맺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주님이 열매 없는 무화과를 저주하셔서 뿌리까지 마르게 하셨던 까닭은, 이 사건을 제자들에게 표적으로 보여주고 싶으셨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이렇게 저주받아 마르게 되듯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인생도 그렇게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는 표적으로 삼고자 하셨던 것이다. 일찍이 세례요한은 이 일에 대해 분명히 밝혔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주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첫날 ‘구원의 날’에 주님이 하신 무화과나무의 표적을 보면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 삶에는 작은 것일지라도 하늘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 가야 하는구나!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열매를 맺듯이, 우리가 주님 안에 붙어있고 주님을 배우고 따르고 살면 우리 삶에는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회개하는 열매, 겸손히 은혜에 감사하는 열매, 온전하지 못해도 주님 때문에 사랑하고 봉사하고 복음 전하고 우리 인격은 주님을 더 닮아가는 열매 맺는 성도 되도록 은혜를 구하는 고난주간 되시기 바란다.
4.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도 그렇지만, 사실 오늘 말씀은 그 다음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은 이유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 더 이해하기 어렵다. 왜 나무가 마른 것인지 묻는데, 주님은 왜 기도 응답의 확실성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가? 이것을 이해하려면 오늘 마태복음 21장의 큰 흐름을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니 수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주님을 환영한다. 심지어 오늘 말씀 v.15을 보면 성전에서도 계속해서 어린 아이들이 ‘호산나’를 외치고 있다. 이것을 보고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화가 나서 예수님께 따져든다. 왜 사람들이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을 가만 듣고 있느냐고 나무란다. 그리고 이어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받아 말라 죽는 사건이 일어남으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인 우리는 열매를 맺어야할 것을 보여주셨다.
이 두 사건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겉으로 볼 때 서로 아무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이 두 사건은 아주 깊은 관련이 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인생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오늘 저주받아 말라 죽은 무화과나무처럼 아무 열매를 못 맺는 인생과, 또 한 부류는 비록 자신은 약하지만 하나님께 은혜를 받아 순종함으로 열매를 맺는 부류이다.
그런데 이 두 부류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영적인 갈등과 전쟁이 있다. 오늘 성전에서 어린 아이들은 주님을 사랑하여 ‘호산나’를 외치고 있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주님을 미워하여 왜 그런 찬송을 당신이 듣고 있느냐고 싸움을 걸듯이, 하나님 앞에서 열매 맺는 인생과 그렇지 못한 인생 사이에는 근본적인 영적인 차이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는 열매가 없어 저주받는 무화과나무 같은 인생이 아니고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는 맺는 과정에서는 영적으로 마귀에게 속한 자들과의 갈등과 전쟁도 겪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힘으로 마귀에게 속한 자들과 영적인 전쟁을 감당하며 또 결코 무너지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며,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 그런 영적 전쟁을 통해 결국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까지 맺는 복된 인생이 되겠는가?
여기에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말라 죽게 하신 다음 그 이유를 묻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신다. 우리가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으면, 과거에 열매 없이 살아온 삶이 이제 마무리된다는 뜻이다. 이제는 우리 삶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삶은 사라지고 열매를 맺는 삶이 시작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열매 없이 그저 세상을 위해 살라고 유혹하고 핍박하는 영적 전쟁에서도 넉넉히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승리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결론. 주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첫날 주님이 하신 무화과나무의 표적이 주는 교훈을 마음에 잘 새기자. 그래서 이제부터 정말 주님 말씀처럼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능력과 지혜와 은혜로 무장해서, 넉넉히 영적 싸움을 감당하며 열매 없는 인생이 아니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인생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