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자기 변호를 거절하십시오
1. 자기 변호를 거절하십시오.
사람들은 누구나 비난받고 오해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남을 쉽게 판단하고 비방하는 사람도 막상 자신이 그러한 대접을 받으면
잘 견뎌내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이 더 그런 경우를 잘 참지 못합니다.
우리의 본성은 우리가 애매하고 억울한 비난을 받을 때 그것을 해명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해받는 것은 괜찮지만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실족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우리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 우리는 자신이 오해받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자신을 위하여 변호하고 해명할 때
주님은 우리를 변호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변호하지 않을 때 주님은 우리를 변호할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열심히 변호하고 스스로 억울해 한다면
주님은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모세가 그의 누이에게서 일신상의 이유로 비난을 받았을 때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지만 아무런 자기 변호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의 누이 미리암을 꾸짖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변호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결코 우리 자신을 변호하기 위하여 부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도 우리를 변호하지 않고 아무도 우리를 변호해주지 않으며
주님도 우리를 변호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묵묵히 비난과 욕설을 감당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분량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인내를 가르치시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교만을 처리하시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낮아짐, 회개를 가르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뭏든 주님의 훈련 속에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분노와 원망과 이그러진 얼굴로 씨근거리는 것은 사실이야 어디 있는지 간에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그가 그렇게 억울해하면
공연히 훈련의 기간이 길어질 뿐이며 그 훈련의 강도도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성품이 우리 안에 형성될 수 있도록 자기 방어를 거절하십시오.
우리의 주님도 한마디도 자기 방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애매하게 공격하는 수많은 말들이 있었으나
그분은 일체 자신을 위하여 입을 벌리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종이라면
결코 그분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으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방어하지 말고
변호하지 말고
오직 조용히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짧은 기간에 우리 안에
주님의 생명이 이루어지게 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2.소중한 관계를 위하여
고통의 사람들은 우리 자신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의 본성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편협하며 이기적이며 일방적인 사람인지를 보지 못합니다.
특히 어릴 적부터 항상 사랑을 받고 칭찬을 듣고 자란 사람은 자신이 선한 사람으로 착각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고통의 사람이 오게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 속의 악이 드러납니다.
우리 속의 분노, 미움, 거짓됨, 교활함.. 온갖 악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런 사람이었는지에 대하여 놀라게 됩니다.
아직 어릴 때 사람들은 자신을 변호합니다.
자기는 여전히 선한 사람이며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며 건드리는 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망을 품으며 사람들 때문에 너무나 괴롭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만 없으면 자기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이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좀 더 영이 자라고 눈이 뜨여지게 되면 그는 문제는 상대에 있지 않으며
자신의 편협하고 누추한 모습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해도 자기의 스타일에 맞는 사람,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만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자기와 다른 기질의 사람을 포용하지 못합니다.
도대체 저 사람은 생각이나 하고 살까...하고 그는 생각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하고 그는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는 자기에게 무례하고 나쁘게 대하는 사람을 참아내지 못합니다.
영이 좀 자라고 눈이 조금 떠진 후에야 그는 자기가 예전에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의 아집이며 육적인 취향이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고통의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에게 절망한 사람들은 주님께로 옵니다.
그들을 통하여 우리의 본성을 보게 되면 우리는 회개하게 되며
우리의 완악함, 이기심, 잔인함.. 등에 대해서 눈이 뜨여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앞에 엎드러져서 그분의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속의 교만과 판단과 편협함, 이기심을 처리해달라고
주님께 간절히 호소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앞에 엎드러져서 그분의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은총의 결과 우리는 폭이 조금 넓어지게 되고
그들을 마음 속에서 조금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우리는 한단계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판단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자신의 의견, 자신의 기질,
다 내려놓고
부드럽게 섞이고 포용하십시오.
고집을 부리면 고통의 분량, 훈련의 분량이 증가될 뿐입니다.
고통의 사람들을 통하여 자신을 발견해 가십시오.
고통의 사람들을 통하여 배우지 않는 사람은
오직 자신의 기질에 맞는 이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고통의 사람들을 통하여 배우는 사람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들,
의견이 다르고 기질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철학이 달라도
그 어떤 누구이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조금더 가까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3.악역의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로부터,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잉태하지 못하여 고통하고 있었을 때
브닌나라는 여인은 그녀에게 혹독한 비난을 퍼붓고 많은 고통을 그녀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성경에서처럼, 아니 모든 소설과 연극, 드라마에서도 악역이 등장하는 것처럼,
인생에도, 우리의 삶에도 악역이 있습니다.
그러나 연극이 끝난 후 주인공과 악역을 맡은 사람은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식사를 함께 나누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를 괴롭히도록, 우리에게 고통을 주어
우리를 실족시키도록 배역을 맡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미워하고 이를 갈며 어두움의 세계로 떨어지든지,
아니면 그를 용서하고 더 깊은 자기 반성을 통하여 높은 영계로 상승하든지,
이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다, 억울하다,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원통해하지만
사실 억울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우연이란 없으며 우리 자신의 영적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억울한 일들은 다 자기 영혼 속에 잠재된 악의 반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반성 없이는 결코 그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증오는 성장과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악역을 맡고 있는 사람은 피해자에 속합니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폭력을 사용하고 빼앗고, 속이고, 학대하고, 은혜를 배반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고... 그러므로 이 물질계에서는 당연히 악인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그들은 우리 자신의 영적 성숙을 돕기 위해서 그러한 배역을 받은 희생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 반성을 통하여 좀 더 성장된 곳으로 가면
그들의 임무는 끝이 나게 되어 그들은 더 이상 악역의 사람으로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적인 통찰력이 부족합니다.
그리하여 현실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억울하게 보이는 일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며
오직 논리적으로, 합리적으로만 생각하여 본능적으로 반응합니다.
나는 왜 이리 운이 없냐고, 어떻게 그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고 푸념합니다.
그리하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여 영계의 낮은 곳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분노와 적개심, 자기 연민 등의 감정에 휩쓸려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모든 악역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들은 피해자이며
우리가 마음을 변화시키면 그들도 그들의 악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명을 부여한 사람들이며
오직 나 자신의 변화와 성숙 외에는 그들의 역할을 바꿀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을 증오함으로, 그들을 판단함으로서 그들이 그들의 악역을 오랫동안 계속하도록
비참한 사명을 맡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에게도 비극이지만, 그들에게는 더욱 큰 비극이며 고통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그들의 악역이 그들의 사명이라면, 나도 악역을 맡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 지요?
부디 그러한 생각을 버리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악역을 맡기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악역은 영혼이 발전되지 않은 어린 영혼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그들도 다른 영혼을 괴롭힘으로 성장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악한 행동에는 심판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영적으로 성숙하여 영혼들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섬기고 도와주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악역을 맡은 사람이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잘 되는 듯이 보이지만
영원한 세계에서 그들은 진정 비참한 위치에 빠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으로 환경을 보십시오.
영적인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십시오.
당신을 무례하게 대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존중해주십시오.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서 태어난 그들의 사명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당신을 괴롭히는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격려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그를 축복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애쓰십시오.
날마다 당신의 사명에 힘쓰게 되면 자연히 그의 역할은 끝이 나게 되며,
그는 다시 다른 사명을 받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으로 당신의 고난이 끝인 것은 아니며 잠시의 휴식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다른 사람을 통하여, 다른 환경을 통하여
당신의 성숙을 위한 훈련이 시작되겠지만,
어차피 인생자체가 그러한 성장을 위한 훈련학교이므로
그것은 즐거웁게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부디 시험에 합격하십시오.
악역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들을 축복하십시오.
당하지 않으려고, 뺏기지 않으려고,
자신을 지켜서 손해보지 않으려고,
너무 긴장하지 않고,
그저 평안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시험에 합격하고
한 과목씩, 학점을 이수할 때마다
당신에게는 새로운 차원의 통찰력과 시각이 열리고 새로운 사랑과 평화가
마음속에 생겨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는 그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으며
이 세상이 주는 평화와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