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구역공과 1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구역공과 1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본문 마5:1-4
시작하는 이야기. 요즈음 매주일 마다 산상보훈, 그 중에서도 팔복의 말씀을 살피고 있습니다. 팔복은 우리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교훈하는 사명이기 이전에, 먼저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어떤 존재로 만들어 주셨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청사진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복되고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가시는지 잘 배우고 깨달아서, 우리에게 그런 모습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기를 갈망하고 기도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주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에 이어 ‘애통하는 자’의 복에 대해 살펴봅시다.
말씀과 나눔.
⇨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께 가장 먼저 얻게 되는 것이 심령의 가난함이다. 절대적으로 의로우시고 홀로 만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것,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란 사람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죄악 투성인지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
1) 우리 각자가 가진 가난한 심령을 고백해 봅시다.
⇨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하고 죄 많은 모습을 적나라게 보게 되면 하나님 앞에 선 사람이 가지게 되는 첫 번째 감정이 예외 없이 슬퍼진다. 내가 이런 사람 밖에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 때문에 탄식이 나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애통하는 심정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자기 모습을 똑바로 직시함으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의 눈에는 눈물이 흐리기 마련이다. ⇨ 남자의 자존심이 이 눈물을 막지 못한다. 어른의 체면도 애통하는 마음에서 흐리는 눈물을 피할 수는 없다. (참고) 우리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셔서 택하신 백성들,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죽게 하셔서 구원하신 성도들, 한량없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언제나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먼저 애통하는 마음과 눈물을 주신다. 우리가 거룩하고 은혜로우시며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날 때 맨 먼저는 지식적으로 내가 죄 많은 인생임을 깨닫는 마음 곧 가난한 마음이 되고, 그 다음은 감정의 변화가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애통하는 마음이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우선 애통하고 눈물 흘리게 된다. |
1)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애통함으로 울었던 기억들을 서로 나누어 봅시다.
⇨ 복되도다! 애통하는 자여! 애통하는 사람은 너무나도 복되다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특별한 위로가 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누렸던 기쁨과는 근본이 다른 기쁨, 애통하는 심령에는 하늘의 신령한 위로가 반드시 임한다. ⇨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대적인 브닌나가 마음을 격동시키므로 그저 울기만 하고 밥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이 괴로웠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니 눈물이 폭포수처럼 터져 버렸다. 그리고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원통함을 애통하면서 다 쏟아낸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1:10)’ 얼마나 애통하는 마음의 기도를 토해냈든지 제사장 엘리가 보고 술에 취한 줄 알고 책망했다. 그때 한나가 뭐라 했는가?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이오니(삼상1:15)’ 그렇게 하나님께 애통하는 마음을 다 쏟아낸 한나가 어찌되었는가? 한 마디로 하나님이 그 마음을 만져 주셨다. 위로해 주셨다. 마음을 짓누르는 모든 상처와 고통을 이길 힘을 주셨다. ‘한나가 ...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근심 빛이 없었더라.(삼상1:18)’ |
⇨ 애통하며 우는 자의 마음에는 세상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하나님의 위로가 성령 하나님을 통해 부어진다. 그래서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비밀스러운 성령님의 위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입으로 찬송하게 된다.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 애통하는 심령에 하나님이 성령으로 주시는 위로를 경험한 사람은, 그 위로가 너무 좋아서 아직 이슬이 걷히지도 않은 새벽길이지만 오늘 새벽에도 부어주실 그 위로를 기대하면서 주님 전으로 나아온다. 그리고 또다시 받아 본 사람 외는 알 수가 없는 그 위로의 기쁨으로 채움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간다. ⇨ 3절은 계속해서 노래한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시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 죄 많은 세상을 다시 연약한 육신으로 살자면 또 괴로운 일 당하고 애통한 일 겪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주님이 이미 부어주신 위로 그리고 앞으로도 나를 친구 삼고 나와 동행하며 베풀어주실 위로의 힘이 있기 때문에, 할 일 많은 괴로운 세상을 피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다. |
⇨ 첫 번째,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다. 나사로 무덤 앞에서 왜 우셨는가?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다. 주님이 나사로를 살리려 오셨고 그래서 잠시 후에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을 아시기 때문에, 나사로가 죽었다는 그 사실 때문에 우실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신 것은 이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꼼짝할 수 없는 모든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셨다. 죽음의 고통을 가져온 죄의 세력에 사로잡힌 영혼들의 오늘의 비참함과 내일의 비참함의 진실을 아시기에 우셨다. 두 번째, 주님은 또 공생에 말기에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실 때 예루살렘을 보시면서도 우셨다.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으로 택함을 입었지만 지금은 죄악이 관영한 도성, 그래서 장차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그 도성의 아픔을 보시고 우셨다. |
⇨ 롬12장의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4)’하신 말씀이나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히13:3)’ ⇨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주변에서 고난당하는 영혼들을 가슴에 품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애통하며 기도하라고 하신다. |
결론. 오늘 진심으로 바라기는 하나님이 우리 성도님들 영혼 속에 성령으로 환하게 진리의 빛을 비추어 주심으로, 내가 누구인지 이제는 제대로 보게 해 주시기를 바라고, 그럼으로 하나님 앞에 애통할 줄 아는 거룩한 마음 가지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애통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한 위로를 알고, 그 받은 위로를 가지고 이제는 내 문제에만 붙들려 아무 선한 일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주변에 아파하고 신음하고 고통하는 영혼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할 줄 알고 섬길 줄도 알아서 세상을 치유하는 위로자의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