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구역공과 해설 17-1
종교개혁 - 왜곡된 ‘플러스(+) 신앙’을 성경적인 ‘오직 신앙’으로
본문: 딛2:1-10
시작하는 이야기. 2017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입니다. 교단(고신)의 정책에 맞추어 우리 교회도 ‘오직 말씀 위에 교회를(The Church on the Word Alone!)’이라는 표어로 성경적인 바른 신앙과 바른 생활 회복에 마음을 모으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왜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종교개혁의 정신은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 말씀과 나눔.
⇨ 바로 믿고 바로 살자는 의미에서 일어났다. 바로 믿고 바로 산다는 것은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자인데, 결국 “바른 신앙 바른 생활”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
2.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중세 로마교회의 문제점들을 나누어 봅시다.
⇨ 종세 말기 교회는 비성경적인 잘못된 교리와 부패한 제도와 교회의 도덕적 타락이 하늘을 찔렀다.
⇨ 중세 로마교회는 우리 주님 예수님을 제치고 교황이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자가 돼 버렸다. 그리고 교회 안에 권세를 강화하기 위해 성경적 근거가 없는 거대한 계급조직을 만들었다. ‘교황-추기경-주교-사제-장로-집사’의 조직이고, 이 성직자들이 집행하는 7가지 성례를 만들어서, 성례에 참여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저절로 주어진다고 가르쳤다. 쉽게 예를 들면, 세례만 받으면 누구나 자동적으로 은혜를 얻는다고 가르친다. 세례라는 예식 자체가 구원을 주는 것처럼 가르친다. 그래서 갈수록 신앙생활이 의식 중심, 형식화 되다보니 중세교회는 말씀 없이도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예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
2) 고해성사와 연옥교리의 문제점
⇨ 모든 신자는 고행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죄는 용서받는데 죄에 대한 벌은 다 용서받지를 못한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죄를 용서 받은 것 위에 벌까지 용서 받기 위해서는 특별한 경건생활과 선행이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기도, 구제 , 성지순례, 헌금과 같은 선행. 그러다보니 특별히 성인으로 살지 않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에 대한 벌을 다 해결 하지 못하고 죽게 되는데, 죽고 나서도 죄에 대한 벌 곧 죄책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바로 연옥이다. 기본적으로 세례를 받으면 세례 받는 날까지의 원죄와 지은 죄를 용서 받지만 세례 받은 그 후의 죄는 고해성사로 해결해야 하고, 죽을 때 다 해결 못한 죄는 연옥에서 죄 값을 치루면 된다고 본 것이다. |
⇨ 연옥 교리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나타난 중세 교회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는 악습이 바로 면죄부였다. 교황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팔았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면벌부인데 죄를 면하는 것은 고해성사로 되는데, 고해성사를 하고 나서 신부가 정해 주는 벌을 면하도록 해 주는 것이었기에 면벌부가 더 적합하다. 처음에는 자기 죄를 위해 면벌부를 샀지만, 나중에는 이미 죽은 자기 부모나 조상들을 위해서도 면벌부를 사게 한다. 그러면 연옥에 가 있는 조상을 위해 면벌부를 사주기만 하면, 그 조상이 연옥의 고통을 면하고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 당신들이 가진 돈을 아끼는 동안 당신의 죽은 친척들이 연옥에서 고통으로 신음으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금고 안에 동전이 떨어질 때 한 영혼이 연옥에서 뛰어 오른다” |
4) 성인숭배의 문제점
⇨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으로 숭배,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까지 신격화, 그 외에도 수많은 성인들을 만들어서 혼자 천국 가기에는 너무 많은 선행을 행한 성인들의 공적을 나누어 가짐으로 천국을 바로 갈수 있다고 한다. |
3. 종교개혁은 루터로부터 시작됩니다. 복음을 깨닫기 전에 루터가 이해한 ‘하나님의 의’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시31:1을 왜 루터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까?
⇨ ‘여호와여.. 주의 의로 나를 건지소서’ 루터는 그때까지 하나님의 의는 죄인을 철저히 벌주시는 의로만 알았다. 그래서 루터의 마음에 하나님은 늘 우리가 뭔가 잘못할 때면, 화를 내고 채찍질하는 분이셨다. 그런데 시편 31편은 하나님이 그 의로 구원해 달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롬 1:17절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심판하시는 의가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의, 죽을 죄인을 그리스도의 공로로 값없이 구원하시는 의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무슨 고해성사나 성인들의 공로나 혹은 우리 개개인의 선행이나 공로나 금식과 같은 것으로 의로워 질수가 없고 죄인이 의롭게 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의 속죄에 근거한 의이다. |
⇨ 플러스 신앙은 구원을 은혜를 받고 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중세로마교회는 예수님만으로는 부족해서 예수님에다가 계속해서 뭔가를 더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예수+성인(마리아포함)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축복 보호를 받기 위해 예수님만 아니라 성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인들의 선행은 자신을 구원하고도 남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성인숭배를 한 것이다. 둘째, 믿음+행위이다. 저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한 제물 되심으로 우리가 받아야할 벌을 다 받으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온전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만으로 부족하고 자기 죄의 형벌을 감당하기 위한 선행과 행위가 채워져야 한다고 가르친다. 셋째, 성경+전통이다. 성경만이 우리 믿음의 근거가 아니고 교회가 전통적으로 전해주는 모든 것도 다 믿음의 충분한 근거라고 한다. 로마 교황이 무슨 말을 하면 그것이 바로 성경과 똑같은 권위의 하나님말씀이요, 진리가 된다고 주장이다. ※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구원도 위로도 오직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고 가르친다. (행4:11, 골1:19). |
⇨ 첫째 ‘오직 성경’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성도들이 신앙과 삶의 유일한 표준은 성경 말씀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직 우리 신앙과 거룩한 삶의 표준은 성경 말씀 밖에 없다. 둘째 ‘오직 은혜’이다. 죄인인 우리 인생이 구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서 나오는 은혜이지 여기에 무슨 인간적인 자유의지나 노력이나 공로가 기여하는 바가 없다. 오직 은혜이다. 셋째 ‘오직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죄사함 받고 성령을 받고 중생하는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요, 행위가 아니다. 넷째 ‘오직 그리스도’이다. 예수님 외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데 더 필요한 것이 없다. 다섯째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알파와 오매가 되신 하나님, 홀로 거룩하시고, 영원한 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 홀로 하나이신 우리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이 돌려져야 한다. |
결 론 오늘 본문 딛2장은 두 구절을 소개한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2:1)..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네 하려 함이라(딤2:10). 그렇다. 우리 신자는 항상 성령의 가르치심을 따라 바른 교훈과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 곧 바른 생활을 추구해야 한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교훈이 빛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것이다. 종교개혁은 바로 이런 바른 교훈과 바른 생활을 회복함으로 세상에 어두워진 하나님 영광을 되찾자는 운동이었다. 이제 진실로 바라기는 이런 종교개혁적인 삶은 남이 아니라 바로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나 자신부터 하나님 말씀을 바로 배우고 그 말씀 따라 나를 복종시키는 거룩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내자.
함께 기도하기
1. 날마다 하나님 말씀 위에서 잘못된 악습이나 신앙을 고쳐가게 하소서
2. 바른 종교개혁 신앙을 배워서 ‘바른 신앙 바른 생활’의 삶을 실천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