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16-15 구역공과해설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종합시다"
16-15 구역공과해설
그리스도를 본받아 순종합시다
벧전2:18-25
시작하는 이야기
‘교회는 병원이다’는 책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교회와 병원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기에 이런 책이 쓰였을 것입니다. 첫째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와서 고침 받고 회복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이 아프고 지친 사람들이 와서 하나님 사랑과 말씀의 권능과 성령의 위로와 성도의 교제를 통해 회복됩니다. 둘째 병원은 치료된 사람을 계속 붙잡아 두지 않고 일상의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냅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모여서 영적인 힘을 공급받은 성도는 세상으로 직장으로 돌아가서, 이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세상의 빛을 비추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균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주는 국가제도 안에서 흩어진 교회의 사명을 살폈다면, 이번 주는 직장에서 흩어진 교회로서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말씀과 나눔
1. 부당한 고난을 받을 때 신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19-20절,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 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본절이 말씀하는 바처럼 신자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을 때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아야 한다. 여기서 ‘하나님을 생각함으로’라는 말은 ‘하나님을 의식해서, 하나님을 잊지 않음으로써’라는 뜻이다. 즉, 우리가 고통과 시련 가운데 있음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고, 나아가 그 현장 가운데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슬픔을 참으라는 것이다(하나님은 어떤 분? 부당한 것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하시며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 ‘부당함 가운데 있는 것이 슬픔이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부당함을 당하면 힘들고 서럽고 아프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신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하늘 시민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법에 따라야 한다. 부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생각하며 은혜를 구하는, 은혜를 의지하는 하늘 백성이 되자.
-애매하고 부당한 고난을 하나님 생각하며 참으면 어떤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까?
a.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아름답다’라고 번역된 단어는 ‘은혜’라는 단어이다. 눅6:32-34에 이것은 ‘칭찬’으로 번역되었는데, ‘칭찬받지 못할 행동을 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인정이나 보상을 받을 수 있는가.’하는 문맥을 고려한다면, 이 단어는 ‘칭찬+보상’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b. 칭찬이 있으리요
∴부당한 고난을 하나님 생각하며 참으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으며, 나아가 ‘그 모든 고통을 잊어버리게 할 만한’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매하고 부당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 생각하면서 참으며 끝내 하나님께 인정받고 칭찬받은 자가 있는가? -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시다.)
2.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은, 사실 부당한 고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 22절,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본절이 말씀하고 있는 바처럼, 예수님은 입에 거짓도 없으실 뿐 아니라 죄를 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한 죄인이 받는 형벌(십자가형)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그럼, 왜 예수님이 부당한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 나니”
본절이 말씀하고 있는 바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죄를 위해 부당한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죄로 죽어 마땅한 우리를 의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 유일한 방법이 이것뿐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부당한 (십자가 형벌의)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부당한 고난을 받으실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23절,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본절이 말씀하고 있는 바처럼, 예수님은 부당한 고난 속에서도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셨고, 부활하신 후에 복수하겠노라고, 너를 엄히 벌하겠노라고 위협하시지도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하나님)에게 부탁하셨다. 이는 자신의 복수를 하나님께 맡긴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신 것이다. 즉 예수님은 인내를 초월하면서까지 하나님을 생각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고난’일 뿐 아니라 또 우리에게 어떻게 하라는 고난입 니까?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는 바처럼, 본이 되는 고난, 자취를 따라오게 하는 고난이다. 여기서 본은 ‘붕어빵틀’을 생각하면 되고, 자취는 하얗게 덮인 길에 난 앞 사람의 발자국을 따르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당하신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 당신을 따르게 하는 고난이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대로 모방하며 따르는 본이요, 자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그대로 본받아야 한다.
마무리하는 이야기
사랑하는 구역식구여러분, 세상에서 선을 행하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부당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은 이제 전과 같이 길을 잃은 양이 아니라 목자가 있는 양임을, 본받고 따를 목자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영혼의 목자 되신 주님께서 먼저 그 길을 가셨고, 그 길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우리를 칭찬해 주시기 위해, 위로해 주시기 위해, 상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끝까지, 낙심하지 아니하고 인내하며 끝까지 선을 행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기
1. 선을 행하되 고난이 있어도 끝까지 선을 행하며 살게 하소서
2. 우리 영혼의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자취와 본을 배우고 따르게 하소서
3. 하나님을 위하여 범사에 순종하는 자세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