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신년예배 설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5:13-16, 16-1주일오전
서론. 2016년 새해 첫 주일에 함께 예배함을 감사하다. 신년예배 때마다 생각나는 말씀들이 있다. 먼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약속하신 말씀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11:12)’. 이번에는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이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올 한 해 주야에 하나님 말씀 붙잡고 살아서 연초부터 연말까지 주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란다.
1. 작년에는 ‘신앙교육의 기초를 다지는 해’라는 표어로 한 해를 보냈다. 실천사항으로 가정예배 교안을 주보에 실어 매주 한 번 가정예배를 드렸고, 매달 첫째 주 토요일은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해 자녀들과 함께 새벽을 깨워 자녀들에게 신앙의 추억을 남겨 주려 했다. 이 두 가지 가정예배 특새 그리고 성경읽기는 올해도 계속된다. 혹 가정예배가 중단된 가정은 다시 시작하기 바라고, 이번 주 토요일이 특새다. 새 마음으로 다시 기도에 힘을 쓰자.
올해 표어는 우리 성도들이 잘 아시는 산상보훈 말씀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
작년 특별새벽기도회 때 벧후1장 ‘신의 성품’을 매달 반복해서 설교했더니, 상당수의 성도님들이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외우는 것을 보았다. 8가지 신의 성품 한 번 외워보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1:5-7)’.
작년 특새를 통해 반복교육이 얼마나 유익한지 깨달았다. 올해는 세상에서 우리 신자의 사명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씀 마5:13-16을 매주일 오전에 반복해서 암송하려 한다.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봄에 기관별 암송대회를 할 때 이 구절도 포함하려 한다. 잘 외워보자.
2. 올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는 표어를 잡은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세상과 관계되고 다른 하나는 교회와 관계된다. 우리 성도들이 매일 보고 듣고 느끼시는 대로 세상이 갈수록 악해져간다. 사람들은 과학이 발전하고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세상살이에 참 소망을 얻을 줄로 기대해 보지만, 현실은 반대다. 디모데후서에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딤후3:1-4)’라고 말씀하듯이 세상은 갈수록 죄악의 어둠이 깊어져 고통이 커져갈 뿐이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세상의 빛이 돼야 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는 표어가 절실한 교회적인 이유는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정말로 맛 잃은 소금처럼 쓸데없어 밖에 버려져 밟히고 말 아래 숨겨버린 빛처럼 아무 가치가 없게 돼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상당한 부분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맛을 잃고 빛을 잃어가는 현실을 본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개별적이다. 부부라도 함께 심판받지 않는다. 남편은 남편의 삶에 대해 책임을 묻고 아내는 아내의 삶에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교회와 성도들이 맛을 잃고 빛을 잃어도 우리마저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은 다시 영적으로 재무장하고 은혜를 받아서 세상이 소금으로 빛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올 한 해만 아니라 우리 남은 평생 동안 ‘나는 세상의 소금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기를 소원한다.
3. 13절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시고 14절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다. 오늘 말씀을 잘 보면 ‘너희’가 강조돼 있다. ‘너희’가 다섯 번이나 나온다. 이 점에 대해 로이드 죤즈 목사님은 ‘너희, 너희만이 소금이다. 너희, 너희만이 빛이다.’고 해석하셨다. 그렇다. 죄로 어두운 세상 특별히 영적 어두움 가운데 처하여진 세상에 우리 성도가 아니면 소금과 빛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 없다. 소금과 빛의 사명은 우리 신자가 반드시 해야 하고 또 우리 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13절 중간에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그런다. 소금이 맛을 내지 못하면 다른 것이 대신 맛을 내 줄 수가 없다. 빛이 빛을 비추지 않으면 빛을 대신할 다른 뭔가가 없는 것이다.
속담에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한다. 세상에는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있다. 자가용 없으면 택시 타면 되고, 밥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것 없으면 아무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태양이 없어지면 대신 할 게 있는가? 그와 같이 신자가 감당해야할 소금과 빛의 역할은 대신할 것은 없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 받고 영적 새생명을 얻어 영혼의 눈을 뜬 신자가 아니면, 세상을 생명의 빛으로 살리는 소금과 빛의 사명은 아무도 대신하지 못한다. 교회만이 성도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신자는 반드시 소금과 빛이 돼야 한다.
4.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셨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과 소금이라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조금 차이가 있는데, 먼저 세상의 소금은 썩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소금이 음식에 녹아들어서 맛을 내고 썩지 않도록 하듯이, 우리 신자는 세상 속에서 세상과 구별되어 세상의 부패를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우리 성도가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우선 세상 속에 들어가야 한다. 수도원 같은 데 들어가서 세상과 아예 담을 쌓고 살면 우리가 세상에 물들지는 않을지 몰라도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의 소금이니’ 하신다. 세상 속에서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소금이 되려면 둘째 확실하게 소금의 짠맛을 내야 한다. 세상은 내지 못하는 맛을 내야 한다. 소금이 짠맛을 못 내면 녹아져도 부패를 방지하지도 좋은 맛을 주지도 못한다. 소금만이 낼 수 있는 그 맛, 세상은 낼 수 없는 그 맛을 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신자는 세상과 구별된 맛을 내야 한다.
1) 우리 신자도 원래는 세상과 똑 같이 부패하고 타락한 죄인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다. 죄를 씻음 받은 은혜 성령이 부어진 은혜 하나님 말씀이 깨달아진 은혜가 임했다. 그렇게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성결하게 변화된 모습을 세상에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이다.
신자가 세상의 소금이 되는 길은 다른 것 아니라 우리의 인격 생각 생활이 하나님께서 본래 창조하신 선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저렇게 아름답게 변하는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죄악의 욕망을 따라 사는데, 하나님을 만나면 죄인이 저렇게 변할 수 있구나 거룩함 선함이 사람에게 나타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 자가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하나님을 믿으면 변화될 수 있겠구나 하는 소망과 가능성을 세상이 보게 하는 것이다.
신자의 소금으로서의 사명에 대해 로이드 죤즈 목사님은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먼저 무엇보다도 생활로 말을 해야 하겠습니다. 만일 우리의 입술이 생활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한다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2) 13절 끝에 보면 신자가 소금의 역할을 못할 때 발생할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신다.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신자가 소금의 역할 못하면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하나는 신자 자신의 문제다.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밟히게 된다. 세상 사람들에게 짓밟힐 뿐 아니라 마지막에는 하나님께도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난다. 맛을 잃은 채 천국에 가는 것 아니다.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버려짐 당한다. 신자가 소금의 역할 못할 때 두 번째 문제는 세상이다. 소금의 역할을 다른 것이 대신할 수 없기에 세상은 극심한 부패로 내달리고 어디에서도 구원의 소망을 찾지 못하게 된다.
5.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하신 데 이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신다. 소금이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극적인 측면이 강하다면 세상의 빛은 적극적인 사명이다. 마귀에게 속아서 죄악으로 참 진리에 눈이 가려짐으로 생명의 빛을 보지 못하는 세상에 우리 신자가 진리의 빛을 환하게 비춤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사명이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는 말씀은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신 말씀과 깊이 연관된다. 주님은 진리를 밝히 비추심으로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 주는 길이 되신다. 그리고 주님이 걸어가라고 명하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 생명에 이르는 길이다. 주님 안에만 세상의 시작과 끝에 관한 참된 진리가 있기에 주님 가르침이 길이요, 그 길만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좀 더 쉽게 말씀 드려보겠다. 여러분! 세상은 천지만물과 인생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빅뱅으로 우주가 생겼고 앞으로 과학이 발달하면 진화와 우주 생명의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고 교묘한 말로 사람들을 속인다. 그래서 창조를 믿는 사람들은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미개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주님의 말씀처럼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만물이 나왔고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진리다. 우리가 진리를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사는 길이 완전히 달라진다.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의로운 길을 따라 살 것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하나님 예비하신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 신자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한다. 진리를 밝히 드러냄으로 죄로 죽을 세상을 돌이켜 의로 살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 진리를 위탁받았다. 그래서 그 진리를 증거할 뿐 아니라 보여줌으로, 세상이 의의 길 생명의 길을 따라오게 한다.
우리 신자가 세상의 빛이라고 할 때 주의해서 볼 말씀이 16절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우리가 진리의 빛을 비추면 사람들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게 될 것이라 하신다. 그렇다. 생명의 빛 진리를 빛을 똑바로 비추는 것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서 된다. 착한 행실을 통해서 빛을 비추지 않으면 그것은 등불을 켜서 말 아래 숨겨 놓는 것과 똑 같다.
요즈음 도시 생활에서는 칠흑 같은 어둠이 뭔지를 잘 모른다. 그래서 밤이 되도 랜턴을 쓸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옛날 시골생활에서는 랜턴이 가정의 필수품 중의 하나다.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그런 기억이 있다. 한치 앞이 안 보이는 깜깜한 밤에 대여섯 사람이 랜턴 하나를 가지고 길을 걷는다. 그때 랜턴을 잡은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같이 길을 걷는 모든 사람이 앞을 잘 볼 수 있도록 방향을 잘 잡고 잘 비추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랜턴 잡은 사람이 자기 발 앞만 비춘다거나 길을 똑바로 안 비추고 주변 산이나 하늘을 향해 이리저리 비추면, 같이 걷던 사람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마찬가지다. 우리 성도들이 착한 행실을 통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진리의 빛을 똑바로 비추지 않으면 세상은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어진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빛을 착한 행실을 통해 똑바로 비추어야 하는 것이다.
6. 그래서 올해 표어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이다. 신자의 가장 기본 되면서도 핵심되는 사명 빛과 소금의 사명을 날마다 일깨우면서 한 해를 살아가자.
실천 사항으로 크게 세 가지를 잡았다. 첫째 ‘말씀의 거울보기’다. 날마다 말씀의 거울로 자기를 돌아보자. 내 모습 속에 지워야할 부끄러운 모습, 끊어야할 죄악의 습관이 있다면 지우고 끊어내자. 그래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 인격 말을 가꾸어 가자.
둘째는 ‘좋은 성품 익히기’다.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 위해 좋은 성품을 몸에 익히자. 주보에도 나오고 플래카드에도 붙었듯이 ‘굿 파이브 성품’를 생활화 하자. “① 서로를 ‘좋게 생각’하고 ② 서로를 ‘좋게 보고’ ③ 서로의 말을 ‘좋게 듣고’ ④ 서로에게 ‘좋게 말하고’ ⑤ 서로에게 ‘좋게 행동’ 합니다.”(머리 눈 귀 입 손발)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려면 우리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좋은 성품 습관이 몸에 익어야 한다. 올해는 서로 좋게 생각하고 좋게 보고 좋게 듣고 좋게 말하고 좋게 행동하는 품위 있는 성도가 되자.
셋째 ‘이웃 섬기기’다. 이웃 섬기기는 우리 성도들이 지금부터 지혜를 모아 주시면 감사하겠다. 개인적으로 구역에서 기관에서 또 우리 교회 전체로 어떻게 세상을 섬기면 좋을지 생각들을 모아 보자.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기장교회에 뭔가 있다고 관심을 갖도록 우리가 뜻을 모아서 세상을 섬겨 갔으면 좋겠다. 좋은 뜻을 모아 섬김을 통해 세상에 빛이 되자.
7. 오늘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다. 여러분!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할 때 주의할 것은, 우리가 소금과 빛이 된다고 온 세상이 다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 될 때 세상은 두 가지로 반응한다. 일부 세상은 감동을 받아 자기들도 우리처럼 소금으로 빛으로 살고 싶어서 하나님의 은혜의 집으로 나아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또 한 부류는 우리가 소금과 빛으로 살면 살수록 자기들과 우리가 다름을 알고 우리를 더 미워하고 핍박하는 일도 생긴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앞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신다. 여러분! 우리가 소금으로 빛으로 산다고 세상이 다 박수쳐 줄 것이라고는 생각지 말라. 오히려 의 때문에 박해받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해서 욕 듣는 것이 아니라 의를 위해 핍박 받으면 영광의 주께서 함께 하시고 큰 상을 주실 것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세상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던 우리는 소금과 빛의 길을 가야 한다.
결론.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가 밝았다. 올 한해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 착한 행실로 하나님 영광 드러내는 복된 한 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