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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Mar 15, 2015
  • 1596

로마교회를 인한 바울의 감사와 기도 롬1:8-13, 14-8 주일오전

서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감사와 기도 두 손을 높이 들고 주께 감사하네’.하는 찬양을 들어 보셨을 거다. 감사와 기도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감사와 기도가 내가 하는 일 중에 제일 소중한 일이라는 뜻인 줄 안다.

사도 바울도 감사와 기도를 제일 소중하게 여긴 사람이었다. 그래서 대부분 바울 서신이 인사말 다음에 가장 먼저 감사와 기도가 나타난다. 로마서도 그렇다. 오늘 읽은 말씀 v.8에는 바울의 감사가 v.9-13에는 바울의 기도가 나온다. 바울이 무엇을 왜 어떻게 감사하고 기도했는지 살펴보면서 피차 은혜 받는 시간되기 바란다.

1. 본문 v.8을 같이 보자.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v.8은 딱 한 절이지만 감사에 대해 생각할 것이 많은 구절이다.

1) 첫째 바울은 ‘먼저 ..... 감사함은.....’ 그랬다. 한 달 전 맥추감사주일에 감사에 대해 설교한 것을 기억하시는가? ‘항상 감사, 범사에 감사, 넘치도록 감사’ 그리고 ‘먼저 감사’ 하자고 했었다. 그렇다. 바울은 범사에 항상 감사할 뿐 아니라, 늘 감사를 우선하는 ‘먼저 감사’의 신앙을 몸에 익힌 사람이다. 먼저 감사하는 사람은 어려움이 있어도 감사할 것부터 생각한다. 먼저 감사부터 하면 감사의 눈으로 모든 일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끝까지 감사하게 된다. 먼저 감사하고 그 다음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감사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그랬다.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 불평은 마귀가 들어오는 문이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감사하는 법을 배우면 마귀가 틈을 탈 수가 없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부터 하시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우리교회 홈페이지에도 그런 글을 썼는데, 요즈음 저는 하나님 은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정말 모든 게 은혜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은혜요,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내가 필요한 것 준비해놓고 오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다 은혜로 준비해 놓으셨다. 그렇게 은혜로 살다가 죽으면 우리는 또 하나님이 은혜로 준비해 놓으신 하늘의 영광스러운 집에 갈 것이다. 살아도 은혜 죽어도 은혜 저 천국에서도 은혜다. 그러니 사나 죽으나 감사할 것 밖에 없는 인생이다. 무슨 일을 만나도 정말로 먼저 감사부터 하시기 바란다.

2) 둘째 바울의 감사는 로마교회 성도들을 인한 감사였다.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대개 우리의 감사는 이기적인 경우와 육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가 잘 되고 내 아들딸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감사한다. 그런데 오늘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인해 감사한다. 저들 속에 예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이 있음을 감사한다.

로마에 어떻게 믿는 사람이 생겨났는지 참 신기하다. 아무도 로마에 가서 복음 전한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대개 이렇게 생각한다. 오순절 날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는 천하 각국에 흩어졌던 유대인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저들은 오순절 성령을 받은 신자들이 각기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하는 것을 들었다. 특별히 성령충만한 베드로가 예수 십자가와 부활 사건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들었다. 그렇게 설교를 듣고 3,000명이나 회개를 했다. 행2:10에 보면 바로 이때 모였던 사람 중에는 로마에서 왔던 사람들도 다수가 포함되었는데, 오순절이 지난 후에 다시 로마에 돌아가서 저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잘 지켰을 뿐 아니라, 이 생명의 예수 복음을 이웃들에게 전하여 구원받은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바울은 참으로 감사했다. 선교사가 간 것도 아니고, 예루살렘에 와서 복음을 듣고 돌아가서는 꾸준히 믿음 생활을 잘 하고 사는 모습을 볼 때 너무나 기특하고 감사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국내 다민족 사역의 중요성>

이것은 오늘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한 분 한 분 얘기를 들어보면 다 나름의 사연이 있다. 어떤 분은 왜 그리도 고달프고 힘든 인생을 살았는지, 어떤 분은 부도를 만나서 그야말로 빈털터리로 빚만 안고 기장에 온 분들도 많다. 또 어떤 분은 정말 예수 믿는다고 가문에서 핍박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도 우리 성도들이 그 어려운 시절 다 이겨내셨거나, 혹은 지금도 힘든 시기를 견디면서 오늘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계시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예수 믿고 사는 것이 다들 기적 같은 일이다. 여러분 옆에 앉아 있는 한 분 한 분이 다 기막힌 사연들 속에서 예수 믿고 사는 것 보면서 감사하라. ‘내가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라

3) 바울의 감사에서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감사를 드리면서 그냥 ‘하나님께’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한다. 오늘 롬1장만 아니다. 곳곳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본다.

제가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싶다. 여러분! 기도하실 때 우리 성도님들은 ‘나의 하나님’ 혹은 ‘내 아버지’ 혹은 ‘나의 주님’하고 불러지시는가? 정말 저는 우리 기장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주님을 ‘나의 주님’으로 부르실 수 있기를 소원한다. 우리 목사님의 하나님,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부르라.

여러분!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하고 부르는 것이 별 것 아니라 여기실지 모르겠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나의 하나님’ 혹은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는 것은 정말 큰 은혜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하고 부르려면 먼저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롬8장에 말씀하듯이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나의 하나님’하고 부를 수 있다. 그것만 아니다. 또 ‘나의 하나님’하고 부를 때는 나 역시도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결단, 더 나아가 내가 연약해서 온전하지는 못하지만 그것이 늘 죄송하지만 그러나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범죄하며 살지 않으리라는 마음이 있어야 ‘나의 하나님’하고 부를 수 있다.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여’하고 부르면서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는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 잊어버리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 수 있는가? 그러지 못하는 거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님들이 이제부는 하나님을 부르실 때 꼭 ‘나의 하나님’라고 부르시고, 나의 하나님 사랑을 누리고 사시고, 나의 하나님을 늘 가까이하고 친밀하게 교제하며 사시기를 축원한다.

2. 로마교회를 인한 감사에 이어 v.9부터는 바울의 기도다. v.9 끝에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그랬다. 바울은 항상 교회를 위해 기도했다.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다. 자기의 육신을 위한 기도만 아니라, 바울은 항상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한 것이다. 바울은 감사의 사람일뿐 아니라 또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1) 우리 성도님들이 마라의 쓴 물 사건을 기억하실 줄 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홍해를 건넜다. 바닷물이 마치 벽처럼 서고 바다 가운데 길이 열려 마른 땅을 지나듯 홍해를 건넜다. 여러분! 직접 이 광경을 목격했을 때 저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가슴이 터질 듯 감격스럽고 벅차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감격한 마음으로 이제 약속의 땅을 향해 광야 행군을 시작했다. 그런데 사흘 길을 가도 마실 물이 없었다. 마라에 이르렀는데 마치 물을 발견했다. 얼마나 기뻤겠는가? 정신없이 물을 퍼 마셨는데, 아 이 물이 바다의 소금기가 섞여 도저히 쓰서 마실 수가 없다. 그때 백성들의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오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러분! 불평하고 원망해서 뭔가 바뀌었나?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한 사람 모세는 달랐다. 자기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이 절박한 상황 앞에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했다.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마라의 그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셨다. 수만 명의 불평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지만, 한 사람 모세의 기도는 모든 문제를 잠재워 버렸다.

기도의 사람 모세처럼 혹은 바울처럼 우리 성도님들도 정말 기도의 사람 되시기 바란다.

2) 오늘 로마서를 보면 참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다. 로마교회를 생각하면서 바울이 했던 기도는 자기가 로마교회에 갈 수 있는 길을 얻는 것이었다. 그래서 v.10에 하나님 뜻 안에서 너희에게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한다 한다. v.11에는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한다. v.13에는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했지만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 한다. 종합해 보면, 바울은 로마교회를 가고 싶어서 여러 번 계획도 세웠고 또 기도도 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바울의 기도대로 되지가 않았다. 그러면 바울의 기도는 헛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 그렇지 않는가?

먼저 바울이 로마교회에 그렇게 가려고 애를 쓰고 기도했지만 지금까지 하나님이 막으신 덕분에 사실 우리가 살피고 있는 이 귀한 말씀 로마서가 쓰이게 되었다.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계획과 하나님의 계획이 달랐던 거다. 하나님은 바울의 계획과 기도 응답을 지연시킴으로 로마서라는 이 귀한 유산을 역사에 남기려 하신 것이다.

그것만 아니다. 결국 하나님이 바울의 기도대로 로마교회 방문은 이루어진다. 우리가 잘 알듯이 3차 선교 여행 후에 예루살렘에서 붙잡힌 바울은 로마 군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결국 로마에 가게 되었다. 그렇게 떠들썩하게 로마로 가는 길을 여심으로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로 가는 그 과정을 통해 총독에게 왕에게 또 로마제국의 높은 지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하셨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가? 로마교회를 두고 바울이 기도했던 것보다 더 넘치고도 놀라운 것으로 하나님은 응답해 주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가 구하고 생각한 것보다 더 놀랍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정말로 바울과 같은 ‘기도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3. 오늘 세 번째로 생각할 것은,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너무나도 로마교회 성도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v.11-13에 세 가지 이유가 나온다.

1) 먼저 v.11 같이 보자.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 말씀을 보면, 로마교회 성도들을 보면서 바울은 한편으로는 목회자도 없이 믿음을 잘 지키는 것 보며 기특해하고 감사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 연약한 저들의 믿음을 어떻게든 굳센 믿음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주고 싶은 소원이 간절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인 바울이 로마에 가서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은사들, 이 신령한 은사의 핵심은 하나님 말씀을 더 깊이 전하는 것인데, 아무튼 사도가 가서 로마교회 성도들을 잘 가르치고 양육함으로 저들의 믿음이 더 견고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저는 기장교회 목사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이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저도 우리 기장교회 성도들을 볼 때 늘 두 가지 마음이 같이 이다. 하나는 저 분이 저런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예수 믿고 살아서 너무 감사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왕 예수 믿으며 사는데 좀 더 말씀을 제대로 배워서 믿음이 견고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견고한 믿음인가? 예수님 믿어 천국 갈 사람으로,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견고한 믿음인가? 교회 안팎에 일어나는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인가? 내가 무엇을 믿는지 확실하게 알아서, 내가 믿는 바를 내 이웃 친구 세상에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견고한 믿음인가?

목회를 하면서 종종 ‘목사님 저 시험 들었어요’ 혹은 ‘아무개가 시험 들어 교회 안 나온대요’ 하는 말을 듣는다. 눅17장에도 실족하게 하는 일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에 교회 안에는 늘 시험에 드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 모두는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거나 실족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 맞다.

그런데 여러분! 조금 달리 생각해보면 우리 믿음이 견고한 믿음 위에 서면 어떤 경우에도 시험 들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실족하지 않는 거다. 시험에 든다는 말 자체는 사실 아직 어린 아이 신앙이라는 말이다. 견고한 신앙이 아니라는 말이다. 여러분! 이제 예수 믿고 산 연수가 있는데, 다른 사람을 시험에 들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시험에 들지 않는 견고한 믿음 위에 서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말씀, 특별히 구원의 도리를 명확하게 배우고 깨달아서 어떤 이단이나 세상의 사상이 미혹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사는 동안 재물의 유혹이나 핍박이 와도, 성령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기 때문에 내가 계속 예수를 믿을까 말까에 대해서는 달리 고민의 여지가 없는 그런 견고한 믿음 위에 서야 한다.

우리네 인생은 창조주요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 청지기 인생인 줄 알기에, 나만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산다하는 확고한 인생의 목표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 위에 서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견고한 믿음 위에 세워주고 싶어서 로마를 방문하여 신령한 은사를 주기 원했는데, 지금까지 길이 막힘으로 대신 이렇게 로마서를 씀으로서 저들을 견고하게 세워주려 하고 있다. 제가 로마서 강해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성도님들이 분명한 믿음을 가질 뿐 아니라, 견고한 믿음 위에 세우고 싶어서 로마서를 살핀다. 여러분!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이 복음을 분명히 깨닫게 하시기 원한다. 로마서를 통해 하나님이 넘치는 성령의 역사와 은혜 주시기 원한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쉽게 흔들리고 쉽게 시험에 들고 삶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는 어린 아이 신앙을 벗어버리고, 이제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으며 날마다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고 살고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하며 사는 견고한 신앙 위에 서시기를 축원한다.

2) v.12-13을 보면 바울이 로마교회를 그렇게 방문하고 싶어 했던 두 번째 세 번째 이유가 나온다.

둘째 이유는 뭔가? v.12을 보면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하신다. 바울의 믿음 때문에 로마교회 성도들이 위로를 받고, 로마교회 성도들의 믿음 때문에 바울도 위로를 받도록, 피차 위로를 받도록 바울은 소원하고 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이 하나 있는데, 뭐냐 하면 로마교회 성도들 인해 사도인 바울이 위로를 받는 것은 첫 번째 목적인 저들의 믿음이 견고해진 결과라는 사실이다. 로마교회 성도들이 어린 아이 신앙을 버리고 견고한 신앙 위에 서면, 그것이 사도인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 성도님들이 처음 신앙생활할 때는 목회자가 늘 영적으로 노심초사하면서 돌보아야할 믿음의 상태다. 그러다가 자라고 견고해지면 어찌되는가? 이제는 목회자에게 위로를 주는 성도가 되는 거다. 늘 돌봄을 받기만 하는 성도가 아니라, 목회자와 함께 하나님 나라 위해 같이 고민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이 헌신하면서 목회자에게 위로가 되는 성도가 되는 거다. 우리 기장교회 성도님들! 여러분 믿음이 견고해져서 목회자와 더불어 피차 안위함을 주고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셋째 이유는 뭔가? v.13에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한다. 이것 역시 v.11에서 말한 ‘견고한 믿음’의 결과다. 우리 성도들이 말씀과 성령 안에서 견고한 믿음이 되면, 그 다음에는 열매가 맺히는 거다. 사랑의 열매, 헌신의 열매, 감사의 열매, 충성과 절제와 인내의 열매가 맺히는 거다. 우리는 열매 맺는 성도로 자라야 하고 견고해져야 하는 거다.

결론.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로마교회를 향한 바울의 기도처럼 우리 성도님들이 견고한 믿음, 목회자에게 위로가 되는 믿음,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는 멋지고 아름다운 믿음의 거목들로 살아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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