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롬1-5-7주일오전설교
믿어 순종하게 하는 복음 롬1:5-7, 14-7주일오전(94장)
서론. 지난 주에는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드렸다.
복음은 먼저 누구의 복음이라 했는가? 하나님의 복음이라 했다. 우리 사람은 아무도 자기를 위해 구원의 길을 만들 수도 찾을 수도 없는데, 자비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구원의 길을 만드시고 또 알려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님을 구원자로 세우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 그래서 복음은 또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 한다. 범죄한 인생을 위해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약속대로 세상에 오신 유일한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은 원래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미 계셨던 영원한 하나님 아들이셨다. 그런 하나님 아들이 우리를 죄로부터 속량하시려고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는 의인으로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셨기에 부활하심으로 성결의 영이 되셨다.
이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의 복을 받는다. 그래서 복음이다. 우리 성도님들은 그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란다.
1. 이제 오늘 말씀 v.5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여기 ‘그’는 복음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게 있다 한다. 예수님을 통해 바울이 무얼 받았는가? 두 가지다. ‘은혜’와 ‘사도의 직분’이다.
1) 먼저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 ‘은혜’라는 말은 값없이 그저 주시는 호의라는 뜻인데,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핵심은 바로 ‘구원’이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의 공로로 우리에게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셨다. 그런데 구원의 선물만 은혜가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인생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졌다. 내가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난 것도 은혜요, 세상에 와서 먹고 마시고 숨 쉬고 사는 것도 다 은혜다. 햇빛도 은혜요 내 안에 있는 영혼도 은혜다. 은혜 아닌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성도 여러분!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아니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까지도 모든 것이 은혜이되 특별히 죄와 죽음에서 구원받은 것이 은혜인 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란다.
2) 하나님은 은혜에 더하여 바울에게 ‘사도의 직분’까지 주셨다. 바울은 자기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사도의 직분을 주셔서 온 세상에 복음 전하게 하신 것을 자기 인생의 가장 큰 특권으로 여겼고 감사했다. 그리고 그 직분을 따라 복음 전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자기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바울에게 ‘사도의 직분’을 주신 것은 하나님이 바울을 그만큼 인정하시고 믿어 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바울을 사랑하고 인정하시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일을 맡기신 것이다.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는가? 회사의 사장이나 대통령이 중요한 일을 누구에게 맡기는가? 믿을 만하고 인정받는 사람에게 맡긴다. 그와 같이 우리 하나님도 하나님 나라의 가장 귀한 일을 바울에게 맡기신 것은 그만큼 바울을 사랑하고 인정하신다는 말이기에, 바울은 자신이 사도된 것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했고 그 사명 감당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이었다.
3)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자. 바울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만 아니라 사도가 되어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 일하고 쓰임 받고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는데, 오늘 우리는 어떠하는가? 혹 이런 분은 없는가? ‘나는 구원의 은혜만 받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직분이나 사명은 부담스러워서 싫어요’ 그런 분은 없는가? 만약 그런 분이 있다면, 복음이 뭔지를 많이 오해했거나 아직도 복음이 뭔지를 진심으로 깨닫지 못한 분이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이 다음에 천국 간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구원 받으면 먼저 이 땅에서 우리 삶이 변하게 된다. 구원의 은혜가 임하면 가치관이 바뀌고 인생의 목적도 달라지는 거다. 그래서 정말로 복음을 깨달아 구원을 받은 성도의 마음에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주신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해 뭔가 하고 싶은 거룩한 소원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 영적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을 내 마음대로 내 욕심대로 허비하며 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으면서 살고 싶은 소원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셔서 나에게도 뭔가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을 주시는 것이 기쁨이고 보람이 되는 거다.
오늘 우리는 함께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명예와, 행복과 바꿀 수 없네’ 하고 찬송했다. 이 94장 찬송가를 작곡한 죠지 비블리 쉬는 뛰어난 가창력과 목소리로 인정받던 가수였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는 늘 두려움이 있었다. 언젠가는 인기가 식을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불안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진심으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거듭났다. 형식적으로 한 번씩 교회에 나갈 때와는 정말 달라졌다. 마음에 구원의 기쁨과 평강이 충만했고, 내가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 하는 소원이 생겼다. 어느 날 한 방송국에서 전속 계약을 하자고 제의가 들어왔다. 정말 좋은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런데 비블리 쉬의 마음에는 그 제안에 아무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조금 늦었습니다. 저는 이제 제 목소리를 제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 전화를 끊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마음에 한 선율이 떠오른다. 그래서 작곡된 찬송이 바로 94장이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은혜를 받되 특별히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이제부터 하나님께 뭔가 쓰임 받고 하나님 나라 위해 나도 뭔가 사명 감당하고 싶은 거룩한 소원이 충만하고 또 실제로 하나님 나라 위해 사명 감당하며 사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한다.
2.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통해서 은혜도 주시고 귀한 사명과 직분도 주시는데, 그러면 복음에 합당한 우리의 반응은 뭔가? v.5을 다시 보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여기 마지막에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랬다. 복음에 합당한 반응은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믿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믿고 순종하는 것이 복음이 요구하는 반응이다.
전문가가 아니면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 쉽지가 않다. 우리 성도님들이 모파상의 소설 ‘진주 목걸이’를 많이들 아실 거다. 거기 보면, 허영심 많은 여 주인공이 어느 파티에 가면서 친구에게 고급 진주 목걸이를 빌려 갔다가 그만 잃어버린다. 그게 진짜인줄 알고 빚을 내서 진짜 보석을 사서 친구에게 주고, 자기는 그 빚을 갚는다고 온갖 고생을 하며 젊음을 다 날려 버린다. 다 늙어서 길에서 우연히 다시 목걸이를 빌렸던 친구를 만나 지나온 얘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그 목걸이 가짜였는데’ 그러지 않는가?
여러분! 우리 믿음도 그렇다. 사실 사람은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치신 비유 중에 알곡과 가라지 비유도 있는 거다. 나는 믿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주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 가짜 믿음으로 드러난다면 그것은 정말 허무하고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고후13:5에 너희가 진짜 믿음에 서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라 하셨다. 그러면 내 믿음의 진위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믿음의 진위를 판단하는 몇 가지 시금석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복음에 대한 순종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짜 구원받을 믿음을 가졌다면, 예수님께 순종하여 살려는 의지가 생긴다. 비록 연약하여 온전하지는 않지만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싶어서 기도하게 되고, 작은 것부터 순종하는 삶이 하나씩 생기고 되고, 어느 덧 자기도 모르게 순종의 모습이 조금씩 쌓여져 가는 거다. 아무런 순종에 대한 영적 소원이나 삶이 없다면, 그건 진짜 믿음이 아닌 거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복음에 대한 합당한 반응이 ‘믿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믿을 뿐 아니라, 그 믿음대로 순종하는 삶이 이어지는 거다.
우리 주님이 하신 두 아들 비유를 기억하실 거다. 한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포도원에 가서 일을 좀 하라 했다. 큰 아들은 대답을 시원하게 잘 했다. ‘예 아버지 그러겠습니다’. 둘째 아들은 철없이 대답한다. ‘싫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정작 일할 시간이 되었을 때 큰 아들은 가지 않았고,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 잘못한 것을 뉘우치고 일 하러 갔다. 그러면 누가 아버지 뜻을 행한 것인가? 물론 둘째 아들이다.
마찬가지로 참된 믿음은 마음으로 믿고 삶으로 순종하는 거다. 믿는다고 말만 하고 내 삶은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이 산다면 그건 진짜 믿음 이 아니다. 여러분! 가라지 신앙 가짜 믿음을 버리라. 알곡 신앙 진짜 믿음을 가지라. 참된 믿음은 순종의 삶으로 열매를 맺는다.
3. 오늘 세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가 은혜를 받은 자로 사명도 감당하는 것, 또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하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5절 중간 부분을 다시 보라. ‘그의 이름을 위하여’ 라고 한다. 그의 이름 누구의 이름인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영광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구원받은 성도는 살아간다. 우리 삶의 모든 동기가 주님이시다. 삶의 이유가 주님의 사랑이다. 주님의 기쁨이다.
로마서 강해설교자로서는 필적할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분이 계시다. 로이드 죤즈 목사님이시다. 로이드 죤즈 목사님은 여기 ‘그의 이름을 위하여’ 하는 부분을 ‘그의 이름에 목숨을 걸고’라고 해석하셨다. 그렇다. 성도는 예수 이름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예수 이름에 인생을 건 사람이다.
‘내가 예수 그 이름에’ 하는 가스펠송이 있다. 더러 들어 보셨을 줄 안다. 가사가 이렇다.
내가 예수 그 이름에 내 삶을 걸었네 내가 예수 그 이름에 생명을 걸었네
내가 예수 그 이름에 죽음을 걸었네 내가 예수 그 이름에 영생을 걸었네
잠자는 영혼아 깨어라 앉아있는 영혼아 일어나라 이제 깰 때라 일어날 때라 빛을 발하라
외치어라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요 주는 오직 한 분 만유의 주요 유일하신 그리스도라
살아계신 하나님 만유의 주 유일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에 삶을 건 사람, 생명을 건 사람, 죽음도 영생도 다 걸고 오직 그 이름을 위해 일어나 빛을 발하는 사람이 신자다.
제가 참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에는 많다. 그 중의 한 분이 평생 별세신앙을 외치신 고 이중표 목사님이시다. 목사님이 하나님 부르심 받고 후임으로 한신교회는 이윤재 목사님이 오셨는데, 이 분도 참 훌륭하시다. 이윤재 목사님은 공부를 참 잘해서 법관의 꿈을 꾸고 살았다. 그런데 고3때 시험을 한 달 앞두고 하숙집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머리가 너무 아파서 시험을 제대로 못 보고 꿈이 깨졌다. 인생을 방황하고 좌절하다가 늦게 서야 주님을 만나고 소명을 느끼고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셨다. 늦게 시작한 목회인 만큼 누누보다 열심히 잘 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정말 밤낮도 휴일도 없이 공부하고 목회에 전념하셨단다. 그러다 유학의 길이 열려 이스라엘로 가셨다. 유학 중 어느 날 예수님이 제자들과 거니시던 갈릴리 바다를 보러 갔다. 갈릴리 바다에 서니 갑자기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를 만난 장면인 요21장이 읽고 싶어졌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는 말씀을 읽는데,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이 마치 자기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하시는 것만 같았다. 갑자지 목사님 마음이 답답해졌다. 주님이 차라리 ‘너 열심히 공부했지 너 열심히 목회했지’ 그렇게 물으시면 ‘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윤재야 너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물으시니 아무 대답을 할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지만 그리고 밤낮없이 달려왔지만, 솔직히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목회 성공과 자기 이름과 야망을 위해서 했다는 것을 속일 수가 없었다. 그날 갈릴리 바다에 엎드려 그저 펑펑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공부에 주님이 없었음을,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음을,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그 날부터 마음을 새롭게 다잡으셨다. 이제는 정말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아야지, 주님 이름 위해서 공부하고, 주님 이름을 위해 목회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러분! 무엇을 위해 사시는가? 누구의 이름을 위해 사시는가? 오늘 바울은 사도의 직분을 받아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믿어 순종하게 한 것이 오직 ‘그 이름을 위하여’라고 했다. 예수 그 이름이 이방인 가운데서 높임을 받도록, 예수 그 이름이 모든 민족 가운데 존귀함을 얻으시도록, 예수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하였다. 우리의 인생도, 가정생활도, 직장생활도 이제 다 예수 이름을 위하여 하시는 성도들 되시기 바란다. 예수 그 이름에 정말로 내 인생도 걸고 자존심도 걸고 살아가자. ‘그 이름을 위하여’.
4. 오늘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생각하고 싶은 것은 v.7의 바울의 인사만이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1) 먼저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보라.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우리 성도를 가리켜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라 했고, 둘째는 부르심을 받은 자라 했다. 여러분! 이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구원의 복음이신 주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셨기에 믿음의 길에 서게 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기에 이 믿음의 길을 가게 하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실 것이다. 세상 살면서 때로 어려움이 오고 힘든 일을 만나도, 이 사실을 잊지 마시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사랑하신다. 하나님 사랑을 확신하고 어려울 때 도와 달라고 하라. 힘들 때 붙들어 달라고 하라. 지혜를 달라고 도움이 되어 달라고 간구하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영육 간에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아버지시다. 성도는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또 구별하여 불러주신 존귀한 자임을 잊지 말라.
2) 이렇게 성도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랑받는 자인데, 그런 로마교회 성도에게 바울이 축복하면서 인사를 한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오늘 짧은 석 절 말씀 안에서 벌써 두 번째 ‘은혜’라는 말이 쓰여지고 있다. v5에서 바울이 이미 은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v.7에서는 로마교회 성도들이 평강과 더불어 ‘은혜’를 받기 원한다고 기원한다. 무엇인가? 우리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지만 계속해서 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다. 천국 갈 때까지 날마다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은혜 없이는 바로 살 수가 없고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연약한 우리 모습이다. 은혜 없이는 아무도 사랑할 수도 없고, 하나님 모를 때 행하던 나쁜 습관들을 끊어버릴 수도 없고, 사명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은혜는 마치 주유소에 가서 자동차에 기름을 넣는 것과 같다. 기름을 넣어야 차가 움직이듯이, 계속해서 은혜를 받아야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있다.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복음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 수 있는 거다. 지속적으로 은혜 받지 않으면, 옛날 모습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는 것은 금방이다.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
이것을 잊지 말고 날마다 주님 앞에 엎으려 은혜를 달라고 구하라. 내 영혼에 은혜가 메마르지 않고 내 마음이 늘 은혜에 젖어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라. 은혜 받기 위해 새벽을 깨우시고, 은혜받기 위해 조용히 하나님 말씀을 마음속에 음미하고 묵상하라. 신자는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결론. 주님의 부름을 받은 기장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은혜를 받아 주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하늘 백성이다. 날마다 더욱더 은혜를 사모하고 은혜를 구하여 은혜 충만하여서, 이제 남은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사는 삶, 나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맡기신 사명을 잘 이루어드리고 사는 거룩하고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