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히브리서6:9-12새벽설교
더 좋은 것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히6:9-12, 14-12새벽
서론. 히브리서 6장에는 우리 신자의 최종 구원의 문제와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두 가지 가르침이 있다. 서로 모순인 것 같으면서도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르침이다.
하나는 배교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요, 또 하나는 구원의 확실성 안정성에 대한 격려이다.
배교의 가능성이란 예수를 믿다가 낙심하고 낙심이 깊어져 불신앙으로 돌아가서 결국 마지막에 구원을 얻지 못하는 위험성이다.
구원의 확실성 안정성은 하나님이 우리 영혼과 믿음을 지키시기에 우리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 안전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간의 논리로는 이 두 가지가 서로 모순 같다. 배교할 가능성이 있으면 구원의 안정성은 확보될 수 없고, 반면에 구원의 안정성이 확보되면 배교할 가능성이 없어야 맞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이 두 가지를 다 가르친다. 그래서 어제 본문 6:4-8이 히브리서에 나오는 다섯 경고단락 중 세 번째 경고 단락인데, 한 번 비췸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 보고 성령에도 참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내세의 능력까지 맛을 본 사람이 타락하게 되면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가 없다 하셨다. 한 마디로 배교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믿다가 낙심하여 구원에서 멀어질 가능성을 경계하신 것이다. 이런 사람은 마치 땅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한 다음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가시와 엉겅퀴를 냄으로 버림과 불사름을 당하는 것과 같다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늘 ‘배교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겸손히 하나님 은혜를 구해야 하고 믿음의 경주를 더욱 힘있게 해 나가야 한다.
1. 그런데 배교의 가능성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찌되는가? 우리 성도들이 믿음 생활 하면서도 기쁨이 없어진다. 늘 두려워 떨어야 할 것이다. 내가 지금은 이렇게 믿지만, 어찌 잘못되어서 배교하여 구원에서 제외되면 어쩌나 늘 걱정 염려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신앙생활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고, 그래서 내가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고, 또 마지막에는 저 천국에 이를 것을 확신하면서 기쁘게 그리고 힘 있게 믿음생활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v.4-8에서 배교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신 다음, 이제 오늘 본문 v.9-20은 반대로 우리 구원의 안정성에 대해 확신 있는 말씀으로 위로하시고 격려하신다.
전체를 다 살피면 좋겠지만, 새벽에 시간이 짧으므로 v.9-12만 살펴보겠다.
2. v.9 보라.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무슨 말인가? 혹 그 마음이 안일해져서 믿음생활이 퇴보할까 염려하여 배교의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지만, 그러나 당시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확실하게 구원받은 사람임을 확신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왜 저들은 확실하게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확신이 들었는가? v.10에 보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이유는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믿음의 행위 때문이다. 저들의 섬김과 사랑 때문이다. 히브리서 수신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 사랑으로 서로 잘 섬겼다. 사랑을 실천했다. 믿음의 행위를 나타냈다. 저들이 예수 믿기에 믿음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 보면, 저들 속에는 진짜 예수 생명이 있구나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 성도님들 보면 가짜 믿음 아니고 진짜 예수 믿는 신앙이 있기에, 주일날 사모하는 마음으로 나와 예배하고 하나님 나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면서 한결같이 믿음 생활 잘 하는 모습 보면 우리도 저분은 틀림없이 천국가실 분이다 확신할 수 있지 않는가?
이렇게 분명한 믿음의 행위를 보고 구원을 확신할 뿐 아니라, 두 번째는 하나님은 절대 불의하시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뜻이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의로운 분이어서, 예수를 믿기 때문에 고난도 감당하고 섬김의 삶도 살고 꾸준히 신앙생활을 하는 그런 성도를 결코 버리실 수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하나님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마지막에 구원 안 하시고 버리시면, 하나님이 의로운가 불의하시는가? 불의한 하나님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절대 불의한 분이 아니셔서, 지금 믿음으로 사랑과 섬김과 봉사로 살아가는 우리를 절대 버리지 못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또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다.
3. 이렇게 v.9-10에서는 히브리서 수신자들의 믿음의 행위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저들은 확실하게 구원에 이를 것을 확신한다고 격려한 다음, v.11-12에서는 목회자로서 히브리서 저자가 바라는 바에 대해 권면하는 말씀을 하신다.
쉽게 생각하면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신앙생활 잘 해 왔고 지금도 신앙생활 잘 해 오신 분들을 보면서, 목회자가 어떤 마음의 바램을 갖겠는가? 당연히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끝까지 잘 해 가기를 바랄 것이다. v.11-12이 그런 내용이다. 지금까지 잘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끝까지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생활 잘 하기를 바란다고 격려하고 권면한다.
그래서 v.11에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그런다. 여기 먼저 ‘너희 각 사람이’ 그랬다. 한 사람도 예외가 없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모든 성도들이 다 끝까지 예수 잘 믿어 한 사람도 천국에 못 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이어서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그랬다. 동일한 부지런함이 뭔가? 지금까지 보여준 부지런함과 같은 부지런함이다. 어제와 동일한 부지런함을 오늘도 나타내라 그 말이다. 과거에는 열심히 믿었는데 요즈음은 그러지 못하다 그러지 말고, 과거에 열심히 믿은 것처럼 오늘도 그렇게 열심히 믿으라 그 말이다. 과거와 동일한 믿음을 오늘도 나타내라는 거다.
그렇게 동일한 부지런함 곧 열심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무엇하라시는가? 첫째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 소망을 붙들어라 하신다.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소망 붙들라 그 말이다. 둘째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참음을 나타내라 하신다. 믿음생활에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여러분! 아무도 그저 순탄하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없다. 저도 그렇다. 이런 어려움 저런 마음의 고생 다 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은혜 구하면서 인내로 믿음생활 하는 거다. 믿음의 인내 인내의 믿음 나타내라 그 말이다. 셋째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 받는 자가 되라 하신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가 누구인가? v.13ff에 보면 아브라함을 예로 들고 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이다. 사실 아브라함만 아니라 이삭 야곱 모세 선지자들 사도들 다 그렇다.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이 믿음의 조상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그 말이다. 우리로 치면 손양원 목사님 주기철 목사님 그런 분들의 믿음을 본 받으라 그런 말이다.
결론.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히6장에는 배교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와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격려가 동시에 나타난다. 우리는 배교의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듣고 더 겸손하게 하나님 의지해야 하고, 동시에 구원의 확실성을 붙들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서 이전과 동일한 부지런함을 가지고 끝까지 믿음 생활 잘 해야 한다. 끝까지 믿음 생활 잘 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