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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Sep 03, 2014
  • 3517

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 롬1:17, 14-8주일오전

서론. 지난 주일에는 로마서의 핵심 구절 중 하나인 1:16을 살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복음은 연약한 인생의 능력이 아니라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능력이기에,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 복음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로마서의 핵심되는 말씀 1:17을 살피려 한다. v.17은 복음이 왜 구원의 능력인지를 밝히는 말씀이다.

우리 한글 성경에는 v.16과 마찬가지로 v.17에도 ‘왜냐하면’이 빠져 있지만, 헬라어 성경에는 v.17 앞에도 접속사 ‘왜냐하면’이 있다. 접속사를 살려서 v.16-17을 다시 읽어 보자.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왜냐하면)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17 (왜냐하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이 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시는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 살필 때, 우리 성도님들이 구원의 도리를 더 분명히 깨닫고 믿음이 더 견고해지는 시간되기를 바란다.

1. 마5:20에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다. 누가 하신 말씀인가? 주님 말씀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이니 빈소리겠는가? 틀림없는 말씀이겠는가? 당연히 틀림없는 말씀이다. 그렇다. 여러분!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의’가 있어야 한다. 그것도 평생 율법을 연구해서 가르치고 자기들도 율법대로 살려고 애썼던 서기관들보다 더 나은 의가 있어야 한다.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 위해 수십 가지 조항을 만들어 지키려 했고 박하와 회양의 십일조도 빠뜨리지 않고 드리며 살았던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있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 보시고 인정하시는 의가 있어야 한다. ‘의’가 없이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의’가 필요한 줄을 알고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를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사람들이 있었다.

1) 우선 성경 인물 중에 한 부자 청년이 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주님을 찾아와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청년의 질문은 영생을 얻으려면 뭔가 선한 일을 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있다. 의를 준비해야 하는데, 무슨 일을 해야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가 준비되느냐 하고 물었던 거다. 주님이 계명을 죽 말씀하시니, 청년은 어릴 때부터 그 계명들 다 지켰다 한다. 아니 어릴 때부터 정말 계명을 다 지켰으면 마음에 평안과 구원의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왜 청년은 굳이 예수님께 와서 물은 건가? 사실인즉 이 청년은 피상적으로 계명을 지켰을 뿐, 실제로는 계명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어릴 때부터 계명을 지켰다고 하는 청년에게, 그러면 너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하니 그 청년이 근심하며 주님을 떠난 데서 알 수 있다. 수박 겉핥듯이 계명을 지켰을 뿐. 계명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에 턱없이 모자랐던 거다. 한 마디로 청년은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를 스스로 준비해 보려 했지만 실패함으로 절망하게 된 것이다.

2) 성경의 인물만 아니다. 로마서와 관계해서 계속 말씀드리는 마틴 루터 역시 그랬다. 하나님은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의에 어울리는 ‘의’를 마련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루터는, ‘의’를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고행 금식 구제를 비롯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너무 금식을 많이 해서 위장병을 얻을 정도였다.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얻어야한다는 조바심에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림이 되면 다른 신부를 찾아가서 얼마나 고해성사를 했든지, 나중에는 루터가 찾아간 신부가 성가시게 한다고 화를 낼 정도였다. 그렇게 노력해도 루터의 마음은 흡족하지가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온갖 죄악된 욕망과 생각이 가득했고 천국 갈만한 의가 준비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절망하였다. 그래서 루터가 복음을 배로 깨닫기 전 로마교회 신부일 때 성경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단어가 ‘의’라는 단어였다. 하나님의 의 공의 앞에 서면 자신의 불의함이 드러나서 구원은커녕 영원한 심판에 떨어뜨리는 것이 ‘의’이기 때문에, 루터는 ‘의’라는 말을 그렇게 두려워했던 거다.

3) 부자 청년이나 루터만 아니라, 오늘도 복음을 제대로 깨닫기까지는 우리 모두도 그럴 수 밖에 없다. 제가 심방을 가면 꼭 묻는 게 있다. ‘천국 갈 수 있습니까?’하고 직접 질문한다. 많은 분들이 ‘천국 가려고 앞으로 노력을 많이 해야 겠지요’ 그런다. 혹은 ‘앞으로 열심히 잘 믿어야지요’ 한다. 이런 식의 대답들이 사실 다 뭔가? 천국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의’를 내 스스로 내 노력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는 거다.

그런데 여러분!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를 우리 인생은 아무도 스스로 마련할 수가 없다. 스스로 의를 마련해서 천국가려하면 부자 청년이나 회심하기 전의 루터처럼 실패하고 절망할 뿐이다.

2. 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를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는가? 두세 구절 성경만 자세히 읽어도 그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있다.

사64:6 보라.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여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철저하게 죄로 물든 우리 인생의 실상을 잘 알았다. 그래서 고백한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다 부정한 자여서, 우리가 나름대로 의를 행한다고 하는 것마저도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하나님 보시기에는 더러운 옷 같을 뿐이라 했다.

롬3:11도 보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여러분! 부패한 인생은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온전한 의를 절대로 스스로 마련할 수가 없다. 스스로 의를 마련해서 천국에 가려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다 실패하고 절망하고 만다.

3. 이렇게 우리네 인생은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를 마련할 수 없는데, 오늘 말씀 롬1:17에 뭐라 하는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우리가 천국 가는 데 필요한 의가 나타난다는 거다. 그런데 그 의는 인간이 율법을 온전히 지켜서 마련하는 의가 아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준비되는 의가 아니다. 누구의 의인가? ‘하나님의 의’다. 그렇다. 타락한 인생은 누구도 스스로 천국 가는 데 필요한 의를 마련할 수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그 의를 마련해 주셨다. 우리는 내 의로서가 아니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의 때문에 천국에 들어간다.

이 의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율법을 지키고 피상적으로 몇 가지 선한 일 하는 바리새인의 의와 다르다. 마음의 부패한 본성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몇 가지 좋은 일 하는 인간의 의와 다른 거다. 이 의는 하나님이 영원히 우리를 의롭다 칭해 주시는 의요, 우리를 점점 거룩하게 만들어서 마지막에는 하나님과 같이 영화롭게 만들어주실 완전한 하나님의 의다.

그러면 우리 같은 죄인도 천국에 들어가게 하는 이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1) 우선 오늘 롬1:17이 말하는 ‘하나님의 의’는 완전무결하신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그 성품이 완전히 의로우신 분,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 성품이 온전히 의롭다는 뜻의 ‘하나님의 의’는 죄인들을 어떻게 하겠는가? 심판하게 한다. 죄에 대해 진노하게 하신다. 하나님 온전한 의의 성품은 죄인들에게는 공의의 심판을 행하시는 것으로 나타나는 거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윤 일병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그랬을 때, 윤 일병의 가해자들에게 아무 처벌을 안 하고 내버려둔다면 의로운 일인가? 불의한 일인가? 불의한 일이다. 의로운 재판은 잘못한 사람에게 상응하는 벌을 받게 하는 거다.

마찬가지다. 우리 하나님은 그 성품이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분이시기에, 죄인에 대해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심판을 하셔야 한다. 그래서 루터가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의’를 가장 무서워했던 거다. 루터가 복음을 깨닫지 못했을 때 롬1:17의 의를 완전히 의로운 하나님의 성품으로 이해했었다. 만약 롬1:17의 이 ‘의’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뜻한다면, 이 하나님의 의는 구원이 아니라 심판을 초래하는 거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그 성품이 완전히 의로우신 분이 맞는데, 다만 롬1:17에서 우리가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성품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이다.

2) 그러면 롬1:17에서 우리의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의’는 무엇인가?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의다. 하나님 아들이요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지불해 주신 의다. 하나님 아들이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인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죄값을 치루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 이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씻을 뿐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분이 되셨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의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의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죄인들을 의롭게 만드는 의’다.

여러분! 우리 죄 대신 죽으심으로 죄값을 지불하신 예수님의 특별한 의로우심이 능히 우리를 의롭게 하며 다시 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됨을 믿으시기 바란다.

4. 이제 오늘 한 가지 더 중요한 주제를 말씀드려야 한다. 오늘 설교 제목이 뭐죠? ‘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다. 무슨 말인가? 여러분! 아무리 하나님의 의가 마련되어 있어도, 그것이 죄인에게 주어지지 않는 한은 천국에 갈 수 없다. 낙동강에 아무리 많은 물이 흘러도 그것을 떠서 마시지 않는 한 목 마른 사람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당신의 의를 우리 죄인들에게 나누어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는 ‘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인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이 의, 그 아들의 죽음 안에서 우리 죄값을 다 지불해 주시는 의, 그 아들의 부활 안에서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의, 우리 본성까지 바꾸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의를 누가 받을 수 있는가? 다시 v.17을 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여기 ‘믿음에서 믿음에’라는 표현은 ‘오직 믿음’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삶과 대속의 죽음을 통해 마련하신 하나님의 의를 받는 길은 오직 믿음뿐이라는 말이다. ‘믿음에서 믿음에’ 그랬기 때문에 첫째도 믿음이요 둘째도 믿음이다. 믿음 외에는 달리 하나님의 의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나의 죄악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내 죄를 고하며 긍휼을 구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의 옷을 우리에게 덧입혀 주시는 것이다.

계7장을 비롯해서 성경이 증거하는 바는 우리가 천국에 갈 때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만 한다. 예복을 입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천국에 들어갈 때 우리가 입어야할 예복이 뭔가? 바로 ‘하나님의 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다.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어떻게 입는가? ‘믿음에서 믿음에’. 오직 믿음으로 입는다.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의, 하나님의 의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고, 이제 후로는 연약하고 부패한 나를 의지하거나 바라보지 않고 오직 예수님 바라보고 의지하는 견고한 믿음 위에 서시기를 바란다.

5. 마지막으로 하나 더 생각한다. v.17 끝에 보면 구약 하박국서 말씀을 인용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이 무얼 뜻하는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첫째 우리 사람이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는 것이 오직 믿음으로 되는 원리는 신약 시대에 새롭게 세워진 원리가 아니라 구약의 성도들도 그러했음을 보여준다. 구약과 신약을 무론하고 모든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서 그 하나님의 의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구약 성도는 율법을 지켜 구원받고 신약 성도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을 무론하고 모두 다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을 받을 뿐이다.

2) 둘째로 이 말씀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공급받아 의인이 된 우리 신자는 여전히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보여준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공급받는 방편일 뿐 아니라, 또 계속해서 성도가 세상을 사는 방식이다.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순종하고 인내하고 섬기면서 사는 거다. 우리 믿음의 길에 환난도 있고 유혹도 있지만, 그래도 믿음의 길을 굳세게 걸어가야 한다.

사실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 신앙이 회의에 빠졌다. 왜 의로우신 하나님이 세상에 악한 자들을 가만 내버려 두시고,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은 고난을 당하는가가 의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지금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냐고 항변했다. 그때 하나님이 대답하신다. 때가 되면 멀리 북쪽에서 한 강한 나라를 데려와서 불의를 행한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이라 하신다. 이 말을 들은 하박국은 더 혼란에 빠진다. 아니 이스라엘 백성 중에 불의한 자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자기가 볼 때 바벨론은 더 악한 나라다. 그런데 어떻게 더 악한 그 나라를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로 쓸 수 있는가 더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불의한 세상을 보면서, 또 자기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방식을 보면서 회의에 빠진 하박국에게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대답이 오늘 말씀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무슨 말인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내 생각과 달리 불의가 만연하고 악인이 형통한 일들이 많은 것 같아도, 그러나 의인은 하나님이 마침내 공의를 세우실 것이고 의인은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뜻의 말씀이다. 세상이 불의하다고 믿음을 잃지 말라는 거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손해보고 핍박을 받아도 믿음을 잃지 말라는 거다. 하나님의 의를 아는 진짜 의인은 세상에 불의가 만연해도 핍박을 받아도, 하나님의 공의와 구원을 끝까지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불의가 만연하고 고난이 많은 세상살이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되라.

3) 마지막 세 번째로 이 말씀은 마지막 심판 날에 의인은 그 믿음을 인하여 살게 된다는 말씀이다. 앞으로 로마서 2장에 가면 자세히 나오겠는데, 장차 하나님이 선악 간에 행위를 따라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날이 온다. 반드시 온다. 그때 의인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된 의인은 그 믿음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영생을 얻는 것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영생을 얻을 것이라 그 말이다.

결론. 오늘은 ‘죄인들을 의롭게 만드는 하나님의 의 ‘죄인에게 나누어 주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의를 범죄한 인간은 아무도 스스로 준비하지 못하는데, 하나님이 그 아들을 통해 죄를 사하시는 의 의롭게 하시는 의를 마련하셔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 이 하나님의 의를 어떻게 받는가?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며, 또 남은 생애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성도들 다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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