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사도신경강해10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엡2:19, 13-4주일오전
서론. 오늘도 예배하려 오신 성도님들을 주 안에서 환영한다. 예배에는 늘 두 방향이 있다. 하나는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방향이요, 또 하나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방향이다.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방향은 우리가 마음과 영혼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심과 거룩하심을 생각하며 ‘하나님 높임 받으시옵소서. 제 영혼과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받으시옵소서’ 하는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방향은, 우리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높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 일이다. 흔히 말씀 기도 성례 찬양과 같은 것을 은혜의 방편이라 한다.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받고 기도하면서 은혜받고 찬양하면서 은혜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배 시간은 말씀 기도 성례 찬양과 같은 모든 은혜의 방편이 한꺼번에 다 동원되어서, 그야말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께는 영광이 우리에게는 은혜가 충만한 시간이다. 우리 성도님들이 예배의 자리에 오실 때마다, 하나님께는 영광이 우리에게는 은혜가 충만하도록 사모하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오늘도 우리 예배가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사도신경 강해 열 번째인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 대해 살핀다.
1. 우리말로 사도신경을 번역할 때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라고 해서 그 뜻이 조금 애매하다. 다행히 한 10여년 전에 새로 번역할 때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라고 했다. ‘공회’대신 ‘공교회’라고 했고, ‘서로’라는 부사가 빠졌고, ‘교통’ 대신 ‘교제’라는 말을 썼다. 이건 아주 잘 한 거다. 우리가 믿는 것이 ‘교회’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내어서 잘 했고, 또 성도의 교제 앞에 ‘서로’라는 말이 있으면 우리의 교제가 단순히 우리끼리만 하는 교제로 오해할 수 있는데, ‘서로’를 뺌으로 우리의 교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제임을 나타내어서 잘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 살필 사도신경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 것이요, 또 하나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은 교제를 나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 중에 오늘은 거룩한 교회를 믿는 믿음에 대해 살펴보겠다.
2.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 여러분! 교회가 뭔가?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교회는 믿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교회를 나타내는 헬라어가 둘인데 ‘에클레시아’와 ‘순아고게’이다. 에클레시아는 ‘부르다’ 하는 뜻이고, 순아고게는 ‘함께 모이다’는 뜻이다. 이 두 단어를 함께 생각하면 교회는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된다.
칼빈은 교회를 ‘신앙의 어머니’로 비유했다. 어머니가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고 기르고 양육하는데, 이와 같이 우리 신자는 교회를 통해 잉태되고 태어나고 양육받고 자라게 된다. 교회는 우리 영혼의 어머니와도 같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신자는 신앙의 어머니인 교회의 품 안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교회를 믿는다’라고 할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는 것인가? 오늘 교회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3. 첫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머리는 그리스도시오 교회는 그의 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하늘로 승천하신 주님은 오늘도 교회 가운데 임재해 계시고 또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선한 뜻들을 이루어 가신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우리 성도 개개인에게 적용하면, 우리 각 사람은 몸된 교회의 지체라는 말이다. 마침 몇 주 전 수요일에 고전12장 말씀에서 몸과 지체의 관계를 살펴보았지 않는가? 여러분! 몸에 붙어 있지 않는 지체가 있는가? 손이 몸하고 상관없이 혼자 움직이는가? 발이 몸에서 떨어져서 몸은 어디 놓아두고 발만 여기 저기 혼자 돌아다니는가? 모든 지체는 몸의 일부로서 존재도 하고 또 움직인다. 그래서 몸의 각 지체는 온 몸을 위해 자기의 은사를 발휘한다. 입이 음식을 먹는 것도 입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온 몸을 위해서다. 손이 부지런히 일하는 것도 온몸을 위해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속의 오장육부도 밤낮 쉼 없이 온 몸을 위해 부지런히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보이는 지체도 보이지 않는 지체도 다 온 몸에 붙어서 온 몸을 위해 가지 기능을 하는 거다.
마찬가지다. 여러분! 교회에 붙어 있지 않는 신자는 없다. 주님은 몸인 교회를 통해서 각 지체에게 생명을 공급하시지, 교회와 상관없이 한 지체만 따로 떼어 내어서 은혜를 주고 사명도 주시는 법은 없다.
마이클 그린피스라는 목사님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교회>라는 책을 쓰셨다. 책 제목이 재미있죠? 교회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단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원래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잊고 있음을 지적하고, 하나님 나라 공동체로서 원래 교회의 모습과 사명을 회복하자는 취지의 책이다. 이 책에서 잘 지적하듯이 오늘날 교회는 두 가지 기억 상실증에 걸린 듯하다. 하나는 원래 교회는 하나라는 기억을 잊어 버렸다. 사도신경에서 이전 번역은 교회를 ‘공회’라고 했고 새 번역은 ‘공교회’라고 했는데, 여기에 공통적으로 ‘공’자가 들어가 있다.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교회는 하나라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완전히 개교회주의에 빠져서, 이웃 교회와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전혀 생각지 못하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에 우리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 점에서 저는 고민이 많다.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우리 교회가 ‘공교회’로서 개교회주의를 조금이라도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 전체를 생각하는 교회로 세워갈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한다. 두 번째 기억상실은 많은 성도들 개개인에게서 찾을 수 있다. 교회의 지체된 것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성도들이 오늘날 많다. 그래서 예배만 드리고 어느 교회도 소속되지 않고, 다른 성도들과 교제도 나누지 않고, 몸된 교회를 위해 봉사도 하지 않으려는 성도들이 많은 거다. 이것은 마치 손이 스스로 ‘나는 몸에 붙어 있지 않아’하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여러분! 손이든 눈이든 어느 지체가 나는 몸에 붙어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고 진짜 몸에 안 붙어 있는가? 몸에 붙어 있지 않는 지체는 없다. 그런데 오늘날 몸된 교회의 지체되기를 거부하는 일이 많다. 자기가 몸의 지체되었다는 것을 잊어버린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다.
여러분! 이제 우리가 기억을 좀 되찾자. 교회는 원래 하나라는 기억을 되찾아서 앞으로 우리 교회는 개교회 이기주의를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 전체를 함께 생각하는 교회가 되고, 또 우리 성도 개개인은 몸의 지체라는 기억을 되찾아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주의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자.
어떤 분은 ‘우리가 몸의 한 지체로서 각기 받은 은사와 사랑으로 서로 봉사하고 섬깁시다’ 그러면 ‘나는 받은 은사가 없고 능력도 없어 못합니다’ 하고 뒤로 물러서려 한다. 그러데 여러분! 그것은 합당한 핑계가 못 된다. 마10:42에서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가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냉수 한 그릇 대접 못할 정도의 사람이 있는가?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냉수 한 그릇은 정성껏 대접할 수 있지 않는가? 믿음이 있으면 가난해도 섬길 수 있고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섬길 수가 없는 거다. 고전12:26도 보자.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눈에 띄고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그런 봉사와 섬김을 생각하면 할 것이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 고통 받는 지체와 마음으로부터 함께 고통하고 즐거워하는 지체와 마음으로 함께 즐거워하는 이 복된 섬김은 누구든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는가? 나는 은사가 없고 능력이 없어 섬기지 못한다는 것은 맞지 않는 말이다. 마음이 없고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아무튼지 이제는 잊어버린 교회와 지체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서, 하나님 나라 전체와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받은 은사와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되시기 바란다.
4. 둘째 교회는 천국열쇠를 가진 이 땅에 심어진 하나님 나라 기관이다. 사도신경 강해를 처음 시작하면서 두 달 전에 살펴본 마16장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는 신앙고백을 듣고 주님이 뭐라 하셨는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하셨고 또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니’ 하셨다. 주님이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신 ‘반석’은 베드로가 대표로 고백한 ‘바른 신앙고백’이요, 바른 신앙고백을 가능케 한 ‘하나님의 계시’를 가리킨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와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선 교회에 하나님은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고 했다. 말하자면 천국문을 열고 닫는 권세가 교회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 땅에 있는 천국의 문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말은 로마 천주교가 그렇게 오해하듯이, 어느 교회 지도자가 자기 마음대로 누구에게든지 천국문을 열어주고 닫고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이 말은 하나님이 교회에 복음을 주셔서, 교회가 받은 복음 외에 다른 구원의 열쇠가 없다는 말씀이다. 교회는 하나님께 받은 복음의 말씀을 바로 증거함으로 이 세상에 천국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하는 천국 열쇠를 가진 기관인 것이다.
그러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교회를 떠나서는 천국문을 열 수가 없다. 요일2:19을 같이 읽자.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그들이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어떤 사람이 교회를 떠났는데, 이 일에 대해 사도는 그 사람은 처음부터 우리에게 곧 구원의 공동체인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간혹 한두 번은 혹은 가룟 유다처럼 3년 이상 장기간 동안 하나님 나라에 속하지 않았으면서도 교회의 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거듭나서 하나님 자녀가 되고 교회의 지체가 되지 않은 사람은 언젠가는 자신이 교회의 지체가 아니요 천국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게 된다.
물론 우리는 지금 현재 교회를 떠난 사람이 잠시 낙심하고 실족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천국에 속하지 않은 사람인지 판단할 수 없다. 그래서 약1:19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것이며’. 무슨 뜻인가? 세상살이 염려나 핍박 때문에 혹은 거짓에 미혹되어 낙심하고 믿음의 길에서 미끄러진 사람들을 우리가 다시 돌이키기 위해 애쓰고 기도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우리는 교회를 떠난 사람에 대해 정죄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 아니라 다시 돌이키도록 긍휼히 여겨야 하는데,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교회를 떠난 것은 바로 주님을 떠난 것과 같다는 사실은 진리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천국열쇠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5. 셋째 교회는 하나님의 가족이다. 주님이 그러셨죠? 막3:35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말고 새로운 가족 관계를 이루시겠다는 말씀이지 않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영적 가족이 혈연관계의 가족보다 더 중요하고 더 친밀하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는 이 땅에서 유효한 임시적인 질서이고, 저 하늘에서까지 계속되지 않는다. 이 땅에서 부부로 살던 사람들이 저 하늘나라에서도 부부로 사는 것은 아닌 거다. 그러나 영적인 가족은 영원하다. 우리는 영원히 함께 한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와 사랑을 누리고 찬송하고 살 것이다.
오늘 본문 엡2:19을 보자.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자 여기 잘 보라. 우리는 교회에서 혹은 하나님 나라에서 나그네가 아니고 외인 곧 손님도 아니라 그랬다. 오히려 다른 성도들과 함께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 곧 가족이라 그랬다. 여러분! 여러분은 외인이 아니다. 손님이 아니다. 가족이요 권속이다. 부디 잊지 말라.
그런데 간혹 그런 분이 계시다. 교회에 오면 뭔가 낯설고 내가 이 교회의 주인이 아니고 외인 같고 손님 같다. 그래서 빨리 예배만 마치면 탈출하고 싶다. 그런데 교회를 벗어나 세상으로 가면 고기가 물 만난 것처럼 왠지 정겹고 편하고 자기 집 같고 그런다. 교회에 대해서는 나그네가 되고 세상에 대해서는 주인처럼 편한 거다.
여러분! 이게 맞는가? 안 맞죠. 성도는 그 반대여야 한다. 교회가 내 아버지 하나님 계신 집이니까 교회가 내 영혼의 어머니이니까, 교회에 오면 왠지 마음이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 반대로 이 세상에 대해서는 우리 성도가 나그네이기 때문에, 교회를 떠나 세상에 살 때는 뭔가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 언젠가는 떠나야할 곳 같고 남의 옷 입은 것처럼 불편하고 그래야 하는 것이다. 사명이 있어 세상으로 나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내 아버지 계신 교회가 기쁨의 원천인 것이다. 하나님의 집 교회에서 성도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다.
여러분! 모닥불을 피워보신 경험이 다 있으실 거다. 나무 가지를 열 스물 한꺼번에 모아 놓으면 잘 마르지 않아서 잘 타지 않을 것 같은 가지마저도 옆 가지의 뜨거운 불기운에 마르면서 활활 타오른다. 반대로 잘 타고 있는 모닥불에서 가지를 한 두 개만 따로 떼어 내면 어찌되는가? 잘 말라서 잘 탈 수 밖에 없는 가지도 곧 꺼져 버린다.
교회가 바로 그렇다. 좀 부족하고 약점이 많은 성도도 함께 한 마음으로 모여서 사랑을 나누고 격려하고 서로 붙들어 주면 없던 믿음까지 생기고 약한 믿음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변화와 성숙을 나타내게 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참 마음 밭도 좋고 신앙생활한 경륜도 있고 좋은 은사도 가지고 있어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위로받고 격려 받지 못하면 그 신앙의 불씨가 점점 희미해져 가게 된다. 하나님 주신 좋은 은사도 사장시켜 버리게 된다.
여러분! 교회는 한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믿음의 가족이다. ‘소 닭 보듯이 한다’는 속담이 있다. 여러분!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주신 영적 가족 하나님의 권속들인데, 서로를 소 닭 보듯이 쳐다보지 말라. 정말 우리는 이 땅에서는 물론이고 저 하늘에 가서도 영원히 함께 하나님을 섬기고 살 가족임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보라. 서로를 긍휼히 여기라. 옆에 앉은 이 분이 같은 하나님 나라 가족이라는 의식을 가지라.
딤전5:1-2. ‘늙은이를 ....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며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여러분! 우리는 서로를 소 닭 보듯이 할 관계가 아니고,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나 동생 보듯이 보아야 할 관계이다. 잊지 말라. ‘거룩한 공교회를 믿사오며’.
한 가지 더 좀 말씀을 드리겠다. 많은 성도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신다. ‘교회에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 그런 말을 들을 때 목회자로서 참 마음이 아프다. 소외되고 사랑에 목마른 분들이 많다는 것 생각하고 더 주의하고 세심하게 살펴야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교회의 가족으로서 ‘사랑이 부족하다’ 그런 말을 하게 될 때, 그건 누구를 기준으로 한 말인가? 자기도 사랑을 나타내고 베풀어야할 자로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는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할 사람으로 생각하고 하는 말이다. 그렇죠? 물론 우리 각자가 다 사랑을 받아야 한다. 사랑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부요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는 자꾸 사랑을 받아야하고 배려를 받아야 하고 관심을 받는 것에만 마음이 있고, 내가 사랑을 베풀고 관심을 보이고 배려해주는 일에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나라 권속 가족이다. 사랑 받을 줄도 알지만 내가 먼저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함을 잊지 말자. 롬12:10이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내가 먼저 사랑하려 하라. 먼저 사랑하는 분이 더 주님 닮은 사람이다. 먼저 하라.
결론. 말씀을 정리한다. 오늘은 ‘거룩한 공교회를 믿습니다’ 하는 고백을 살폈다. 교회에 대해서는 오늘 살핀 것 말고도 사실 공부해야할 것이 너무 많은데, 오늘은 주로 교회가 뭔가 하는 것만 말씀을 드렸다. 그 외에 교회의 사명, 교회의 본질, 교회의 표지 같은 것은 다음 기회에 또 살피겠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이 자기를 축구 선수라고 한다. 그런데 소속된 팀이 없다.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축구 선수로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가? 못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군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소속된 부대가 없다.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데 기여하고 전쟁이 나면 적군과 잘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성도는 주님의 몸인 교회의 지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 나라 가족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 이상 기억상실증에 걸린 성도 되지 마시고, 내가 예수를 믿은 구원받은 사람으로 이제 하나님의 집에서 외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권속임을 기억하고, 다른 지체된 성도들과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잘 세워가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