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사도신경강해3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요20:30-31, 14-1주일오전
서론. 전능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이어 사도신경은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사도신경의 열두 가지 핵심되는 신앙고백 중 절반인 여섯 개가 예수님에 대한 고백이다. 예수님에 대한 여섯 가지 신앙고백을 같이 해 보자.
①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②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③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④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⑤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⑥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색깔로 구별해 놓았듯이, 예수님에 대한 여섯 가지 신앙고백은 다시 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것 곧 ‘예수님의 신분’이다. 둘째는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하는 것 곧 ‘예수님의 사역’이다. 오늘은 예수님 이름과 신분에 대한 신앙고백을 살핀다.
1. 예수님의 신분에 대한 신앙고백은 크게 네 가지 내용으로 돼 있다. ‘① 그 외아들 ② 우리 주 ③ 예수 ④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첫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 고백한다. 둘째는 예수님이 주라고 고백하고, 셋째는 예수님이 구원자라 한다. 넷째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고백이다. 시간 관계상 오늘은 이 중에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2. 첫째로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다.
성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실 때, 육신의 아버지 어머니인 요셉과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 이름을 ‘예수’로 하도록 지시하셨다. 구약과 1세기까지는 예수님 외에도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었다. 여호수아도 그 뜻이 ‘예수’와 똑 같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뜻이다. 골4:11에는 ‘유스도라고 하는 예수’라는 사람이 나온다. 유스도라고도 불리고 예수라고도 불린 인물이 있었던 거다.
이렇게 ‘예수’라는 같은 이름을 썼는데, 예수님과 다른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이름을 지은 이유가 다르다. 예수님 외 다른 여러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그 부모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반대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저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1:21)’. 예수님 이름이 ‘예수’인 것은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의 의로움으로 우리를 살리시는 분이시다.
여러분! ‘예수’라는 이름을 들을 때 마음이 어떻는가? 송명희 시인은 그렇게 고백했다. ‘예수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그 사랑을 말할 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 못해서 비밀이 되었네 그 이름 비밀이 되었네.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버렸지만 내 마음에 새겨진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예수 오 그 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여러분! 그렇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 이름보다 귀한 보석은 없다. 과거 예수님 시절이나 오늘 우리 시대나, 자기 죄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건축자들이 쓸모없다고 내다버린 돌처럼 예수님 이름을 무시하지만, 자기 죄로 인해 절망해보고 아파해본 사람들은 예수 이름 속에 숨겨진 사랑을 안다. 내 죄를 사하는 예수 이름의 비밀을 깨닫고 감격한다.
여기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첫째 예수님이 온전한 구원자임을 믿는 거다. 억만 죄악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 얻는 데는 예수 이름만으로 충분하다. 예수 이름의 권세는 모든 죄와 죽음의 결박을 능히 멸하는 권세다. 구원을 받음에 있어 예수 이름에 뭔가 더 보태야할 것은 없다. 인간이 무슨 선행이나 의나 공적을 보태야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예수 이름 외에 다른 뭔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구원자로서 예수 이름의 완전성을 부정하는 불신이다. 예수 이름은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얻게 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둘째 예수님 외에는 다른 구원자가 없음을 믿는 거다. 행4:12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여러분! 거룩하신 몸으로 온 세상 죄를 담당하신 예수 이름 외에 구원 받을만한 다른 길은 없다. 그것이 철학이든 종교든 과학이든 사람이든, 예수님 외에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요 또 ‘온전한 구원자’시다.
3. 오늘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시다. ‘그 외아들’.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되심을 성경은 ‘독생자’로 번역하고 사도신경은 ‘외아들’로 번역했는데, 같은 거다. 외아들로 번역하든 독생자로 번역하든 두 가지 강조점이 있다. 하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독특한 관계’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의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아들이시라는 말은 사실 인간의 지혜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하고 초월적인 일이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 관계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아버지-아들’이라고 표현했지만, 세상의 여느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람의 경우 ‘아버지와 아들’은 어떤 관계인가? 아버지는 아들을 낳고 아들은 아버지로 인하여 태어나는 관계다. 그러면 예수님도 하나님의 독생자라 할 때,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낳으신 것이냐 그 말이다. 어떻는가?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낳으신 건가? 물론 그렇지 않다. 만약 성부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낳으셨다면,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의 창조주가 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낳으시기 전에는 계시지 않으신 것이 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다른 피조물처럼 계시지 않은 때가 있다가 성부 하나님이 낳으심으로 비로소 존재하게 되신 분이 아니시다. 계1:17이다. ‘이르시되 .....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여기 ‘나’는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고요?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하셨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분이시다. 계시지 않는 때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인생들처럼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태어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 거다. 그래서 신비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가? 먼저 요1:18을 보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여기 말씀에 보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독특성을 ‘아버지 품속에 계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성자 예수님이 아버지 품속에 계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우리 인생의 지혜로 다 이해할 수 있지는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성자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은 서로 다른 분이면서도 같은 본질로 영원히 뗄 수 없는 신비로운 관계 속에 계신 분이라는 말씀이다. 요1:1도 보자. ‘태초에 말씀(예수님)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은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의 독특한 관계를 태초에 이미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도 하고, 또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시라고도 한다. 신비롭게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함께 계시는 서로 다른 분이면서도 또 하나이신 분이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신비에 대해 사도신경 다음으로 가장 권위 있는 신앙고백으로 교회가 받아들이는 니케아 신조에서는 이렇게 고백한다. ‘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사오니, 그는 모든 세상이 있기 전에 성부로부터 나셨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하나님이시오 .......... 나셨으나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고 성부와 한 본질을 가시진 분이십니다’. 여기 니케아신경을 잘 보라. 독생자는 세상이 있기 전에 성부로부터 나셨다는 말만 들으면, 예수님도 성부 하나님이 지으셨구나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오해를 하지 못하도록 ‘나셨으나 지음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랬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셨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에 의해 출생했다는 뜻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는 도저히 나눌 수 없는 특별한 관계임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곧 예수님의 온전한 연합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의 이런 신비로운 나심을 흔히 ‘영원적 출생’이라고 표현한다.
그러기에 사도신경에서 우리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특한 아들이시되 다른 피조물처럼 성부 하나님에 의해 지음을 받은 아들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같은 신성을 지니고 함께 계신 분이심을 믿는다는 뜻의 고백이다.
오늘 독생자에 대한 말씀이 사실 많이 어려운 내용이라 설교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어렵다고 안 하면 우리 성도들이 늘 쉽고 편안한 말씀만 먹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아이에게 평생 밥은 안 먹이고 우유만 주는 것과 같이 된다. 그래서 어렵지만 독생자에 대한 말씀을 준비했다. 우리 성도님들이 오늘 다 이해를 못하셔도 괜찮다. 다음에 또 들으면 된다. 그런데 독생자와 관련해서 우리가 꼭 기억할 것이 있다. 요3:16,18 같이 보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이름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영생을 얻느냐 심판을 받느냐를 가늠하는 일이다. 한 구절 더 마17:5도 보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희의 말을 들으라’. 그렇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이시기에 우리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 말을 듣고 순종하는 일은 우리 영혼이 생명을 얻고 풍성히 누리는 유일한 길이 된다.
4. 오늘 세 번째 생각할 것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그런데 뜻밖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생각해 보지는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 할 때 ‘예수’는 이미 말씀드린 대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이다. 그 다음 ‘그리스도’는 예수님에게 주어진 직책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박근혜 대통령’ 그러면 ‘박근혜’는 이름이고 ‘대통령’은 직임이지 않는가? 그것과 비슷하다. ‘예수’는 이름이고 ‘그리스도’는 직책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라는 직책은 어떤 직책이며 그 뜻은 무엇인가?
1) 먼저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와 같은 말인데,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기름부음을 받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것은 구약 성경을 조금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제사장이든 왕이든 직분을 주어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하게 하실 때는 그 머리에 기름을 붓게 하였다.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울 때 관유를 붓게 했죠? 사무엘이 사울 대신 이스라엘 왕으로 다윗을 찾아와서 기름을 부었죠? 이렇게 하나님 명령을 따라 누군가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어떤 직임과 사명을 맡기셨다는 뜻이었다.
이처럼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직분을 맡겼다는 상징인데, 그렇게 기름을 부어 직분을 맡기면 그 사람 위에는 하나님의 영이 특별하게 임하여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택한 사람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하나님의 영을 주셔서 그 맡은 직임을 감당하게 하신 일이기도 하였다. 기름은 상징이고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 직임을 맡기는 일은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 된 것이다.
이것은 오늘 신약 시대에도 동일하다. 우리가 목사나 장로나 장립집사를 세울 때 어떻게 세우는가? 안수하여 기도함으로 세운다. 왜 안수를 하는가?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이 직분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낸다. 또 하나는 이 직분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라는 것도 나타낸다. 안수는 상징적인 행동이자 우리 마음을 담은 믿음의 기도인 것이고, 더 중요한 본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령님이 그 속에 임하셔서 직분도 주시고 그 직분을 감당할 능력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말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라는 말은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직분을 맡은 자’라는 뜻이다. 요3:34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이 구절은 세 가지를 말씀한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셨다 하나님이 택해서 세운 분이다 한다. 둘째 그렇게 하나님이 보내셔서 그리스도라는 직분을 받았기에 예수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 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분 곧 성부 하나님의 말씀을 한다 하신다. 셋째 보냄 받고 직분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은 예수님께 한량없이 성령을 주셨다 하신다. 여러분! 예수님도 한량없이 성령을 받음으로 그리스도로 사역하실 수 있으셨다. 하물며 우리는 얼마나 더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는가? 날마다 성령의 은혜를 구하라. 한량없이 즉 양을 제한하지 않고 우리에게도 성령을 부어 주시도록 간구하라. 우리는 본성이 부패한 죄인이라 성령으로 행하지 않는 모든 것은 죄다. 성령을 구하셔야 한다.
2) 그리스도의 뜻을 살펴보았다. 이제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셔서 행하신 직분들 사역들을 살펴볼 차례다. 예수님은 한량없는 성령을 받아서 세 가지 그리스도의 직분을 감당하셨다. ‘선지자 제사장 왕’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예수님이 온전하신 최후의 선지자요, 유일한 참 제사장이며 만왕의 왕이요 교회의 머리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① 예수 그리스도는 먼저 ‘최고의 선지자’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말씀, 행하신 일들과 전 생애를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다. 요3:31-32이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되’. 여기 뭐라 하시는가? 우리는 땅에서 왔고 땅에 속한 존재지만, 예수님은 원래 하늘에 계시다가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셨다. 따라서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모든 말씀은 이 땅의 세계에 속한 것들이 아니다. 하늘 세계에 속한 것들, 영적 세계의 일들, 우리 육신으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초월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선지자가 되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어떻게 영생에 이르게 되는지, 이 땅 너머 저 하늘 세계에는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모든 참된 진리를 우리에게 증거하시는 선지자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증거한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영생의 길도 찾을 수 있게 된다.
② 두 번째 예수님은 ‘온전하신 제사장’이시다. 구약 시대도 제사장이 있었지만, 저들은 온전한 제사장이 아니었다. 사람 중에 취함을 받되 저들 자신도 연약하고 죄 가운데 있는 존재들이라, 저들이 짐승을 잡아 드린 제사로는 우리 죄가 실제로 깨끗함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 중에 택함 받은 제사장이 아니라 온전히 거룩하신 하나님 아들로 대제사장이 되어, 짐승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의로운 피를 가지고, 땅에 속한 제단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성소에 들어 가셨다. 그래서 단번에 온 세상의 모든 죄를 위한 속제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셨다. 히9:12이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 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10:12, 18도 보자.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그들의 죄와 불법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렇다.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대제사장이 되어 영원한 하늘 성소에 온전하고 의로운 자기 피를 뿌려 우리를 위한 대속의 근거를 마련하셨다. 하늘 성소에 거룩하게 뿌려진 예수의 피는 능히 우리의 모든 죄를 정결하게 씻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영원한 제사장 되셔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을 믿는 것이다.
③ 세 번째 예수님은 ‘만왕이 왕’이시다. 대개 우리 성도들이 예수님의 선지자되심과 제사장 되심은 비교적 잘 깨닫고 마음에 와 닿기도 하는데, 예수님이 왕이시라는 말은 실감이 잘 안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 그런가? ‘왕’이라 하면 세상의 군왕들을 마음속에 떠올리기 때문이다. 왕은 겉모습부터 위엄 있게 왕복을 갖추어 입고, 누구에게든지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명령하고, 왕의 명을 거역하는 자는 신분고하 이유를 막론하고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죽이든지 형벌을 내리든지 하는 세상의 군왕들 밖에 경험하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무력으로 강제로 사람들을 복종하게 만드는 그런 왕이 아니시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백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왕도 아니시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 백성을 원수 마귀에게서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대속물로 내어주는 왕이시다. 희생의 왕, 섬김의 왕, 겸손의 왕이시다. 세상에서는 그 유(類)를 찾아볼 수 없는 왕이시다. 낮아지신 왕의 사랑과 섬김과 희생에 그 마음이 감화를 입어, 성령 안에서 자원하여 복종하게 하시는 그런 왕이시다. 왕의 사랑 때문에 그 왕을 위해 헌신하게 하는 위대한 왕이시다.
게다가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나라도 아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하셨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권력을 얻고 큰 소리를 치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속하지 않는 신령한 나라이기에, 이 세상에서 예수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의 삶 역시 섬김과 겸손과 나눔과 베풂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특별한 나라, 오직 의가 충만한 특별한 나라가 예수님의 신령한 나라요, 예수님은 그런 나라의 왕이시다. 우리는 오늘 거룩하신 하나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음으로 신령한 예수님 나라 백성으로 예수님의 통치를 받게 된다.
결론. 말씀을 정리한다. 오늘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말씀 드렸다. 여러분!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그 본질이 동일한 하나님의 독생자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한 신앙 고백을 가지시기 바라고, 나아가 예수님이 한량없이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임을 감당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성령충만해서 우리 왕이신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