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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Mar 23, 2014
  • 5154

전능하시고 천지를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 시104:24, 14-1주일오전(79, 478)

서론. 사도신경 강해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사도신경의 12가지 신앙고백 중 첫째인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같이 오늘 살필 부분을 외워보자. ‘① 전능하사 ② 천지를 만드신 ③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번호를 붙여놓은 것처럼,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다. 둘째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는다. 셋째 그 하나님이 바로 나의 아버지 되심을 믿는다.

오늘 이 세 가지를 차례대로 살필 것인데, 그 전에 한 번 더 강조할 것이 있다. 성부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잘 보시면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지난 주에도 신앙고백은 우리 각인이 해야 한다고 말씀드린 것 기억하시죠? 아내의 신앙고백 덕분에 남편이 덤으로 구원받거나, 부모의 신앙 덕분에 자녀가 함께 구원받을 수 없다. 신앙고백은 우리 각자가 ‘내가 믿습니다’ 하고 고백해야 한다. 이번에 사도신경을 살피면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내가 진실로 그렇게 믿습니다’ 하는 믿음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1. 우리가 믿는 성부 하나님은 첫째 전능하신 분이시다.

1)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표현은 창17장에 처음 나온다. ‘아브라함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75세 때 부르셔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하여 저들로 거룩하고 세상의 복의 근원이 되는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25년 사반세기가 지나도록 아내 사라를 통해 자손을 얻게 하지 않으셨다. 이제 내일이면 백세를 바라보는 아브라함도 자식을 얻기에는 너무 늙었고, 더군다나 사라는 이미 여성의 경수가 끊어졌다. 그랬기에 99세 된 아브라함은 사라를 통해 언약의 자손을 얻는 것을 거의 단념하였던 것 같다. 이런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은 윤리적으로 거룩하고 의롭게 서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문맥상 더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다. 아브라함도 그 아내도 이미 노쇠했는데 어떻게 하나님 약속을 믿을 수 있는가? 그래서 먼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셨던 거다. 자기나 아내의 형편을 보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히11:11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전능하신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세워주셨고, 그 믿음대로 전능하신 능력으로 100세된 아브라함이 언약의 자녀를 얻게 하셨다.

2) 이렇듯이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다. 렘32:17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대저 우리 하나님께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민1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디베라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고 있다. 애굽에 살 때는 생선도 먹고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마늘도 먹었는데, 이제는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 밖에 먹을 것이 없어 우리의 기력이 쇠진해졌다고 아우성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말을 너무 잘 한다. 느9:21을 보면, 하나님께서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셔서 농사하지 않았어도 아무 결핍함이 없었고 길쌈하여 새옷을 잦지 않았지만 의복이 해어지지 않았고 늘 걸어서 행군했지만 저들의 발이 부릍지도 않게 하셨다. 그러니 만나 밖에 먹을 것이 없어 기력이 쇠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거짓말까지 하면서 고기를 달라고 울어대는 백성들 때문에 지도자 모세도 심히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소연한다. ‘주께서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잉태하였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 이 모든 백성에게 줄 고기를 내가 어디서 얻으리이까 나 혼자는 이 모든 백성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모세를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70명의 장로를 세워 모세를 돕게 하시고, 내일부터 한 달 동안 냄새도 싫어할 때까지 고기를 먹게 하겠다 하신다. 하나님 말씀이 모세에게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 광야에서 200만이 넘는 백성에게 한 달 동안 먹일 고기를 어디서 구한다는 말인가? 그래서 ‘그들을 위해 모든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까’ 하였다. 하나님이 대답하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여러분! 그렇다. 우리 하나님이 그 권능의 팔을 펼치시면 능치 못할 일은 없다. 권능의 손을 펴실 때 물이 기둥 같이 서고 바다가 육지같이 갈라졌다. 그 하나님이 능력의 손을 드시니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이스라엘 진영 사방에 비처럼 내리게 하셨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다.

3)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날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인생은 요동하지 않는다. 제가 좋아하는 시편 가운데 하나가 62편이다. v.1이 이렇게 시작한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v.5은 또 이렇게 노래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v.1과 v.5이 비슷한데 차이가 있다. v.1은 내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고백이고, v.5은 자기 영혼더러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명령한다.

우리가 다 약하지 않는가? 오늘 아브라함도 나이가 99세가 되고 아내도 쇠약해짐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이 희미해졌고, 모세도 울면서 원망하는 백성들 보면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보다는 인간적인 계산으로 바다의 고기 다 모은들 족하겠느냐 반문했다. 시62편의 기자도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연약한 자기 모습과 그렇게 연약한 인생을 넘어뜨리지 못해 안달하는 원수들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다’ 하고 믿음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낙심되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v.1에서는 나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란다고 했다가 v.5에서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고 함으로 연약한 자기 믿음을 추스르고 있는 거다.

이렇게 낙심하려는 자기 영혼에게 명령까지 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본 시편 기자는 결국 무너지지 않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면서, 다른 성도들에게까지 권면한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 피난처시로다’.

이 시편 기자는 어떻게 자신은 연약하고 주변 원수들은 대적하는 중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는가? 62편 결론부인 v.11에 그 해답이 나온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상황으로는 넘어질 수밖에 없음에도 요동하지 않고 승리한 것은 전에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기억했기 때문이다. 그 기억한 하나님 말씀은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였다. 능력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음으로 모든 환난과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렇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혼은 영원히 넘어지지 않는다. 사40:28-31이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나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니나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앙망하라. 그 분을 피난처 삼으라. 날마다 신령한 힘과 능력을 주실 것이다.

2. 우리가 믿는 성부 하나님은 둘째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1) 우리가 매주 예배 때마다 함께 교독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우리 성도님들이 이제 이 말씀은 다 외우시죠? 암송해둔 말씀이 어려울 때 얼마나 우리 영혼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지혜가 되고 은혜도 되는지 모른다. 말씀을 많이 외워두라.

그런데 여기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은 아주 짧은 선언이지만 생각해야할 것은 많은 말씀이다.

① 먼저 ‘태초에’ 그랬다. 태초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시점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기 전에는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 것도 없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는 오직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만 영원히 영광 가운데 계셨다. 간혹 성도님들 중에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기 전에는 오직 하나님만 계셨으니 참 심심하셨겠다 그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신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요17:5이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 기도는 사실 삼위일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인데, 아무튼 이 말씀을 보면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셨는가를 보여준다.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은 온전한 영광 가운데 계셨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온전한 사랑으로 서로를 온전히 영화롭게 하는 완전함 가운데 계셨던 거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 당신에게 뭔가 부족함이 계셔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만물을 창조하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사람은 그렇다. 공장에서 뭔가를 만들 때 그 목적이 우리에게 부족하고 불편함이 있어서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지 않으셨더라도 아무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런 하나님의 속성을 자충족성 혹은 완전성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당신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다만 당신의 영광을 만물 속에 드러내되 특별히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을 인생에게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태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에서 둘째로 생각할 것은 ‘창조’라는 단어다. 우리 성도님들이 성경을 읽으실 때 유심이 보라. 신비하게도 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40여명의 저자가 기록했음에도 66권 중 어느 한 곳도 ‘창조’라는 단어를 하나님 외에는 주어로 사용하지를 않는다. 오직 하나님이 주어일 때만 ‘창조하다’는 동사를 사용한다. 왜 그렇는가? 여기 ‘창조’라는 말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 인간도 뭔가 창의적인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래서 자동차도 만들고 비행기도 만들고 스마트 폰도 만들어 쓴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것과 하나님이 만든 것에는 절대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뭔가? 인간은 이미 있던 것을 활용해서 변형시킨 것일 뿐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없던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창조하시기 전에 없었다. 창조하심으로 비로소 존재한다.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생물도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없다가 생겨났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있는 것이지, 스스로 있는 것도 우연히 있는 것도 아니다. 천지 만물은 전부 다 우리 하나님이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다. 우리가 코로 숨 쉬도록 공기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목마를 때 마시도록 물도 그리하셨다. 하나님 외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여 있게 하신 것인데, 그 수를 다 헤아릴 수도 없다. 오늘 본문 시104:24에서 뭐라 하는가?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것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나이다’.

③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에서 셋째로 생각할 것은 ‘천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나누자면 ‘천’이 있고 또 ‘지’가 있다. ‘천지’ 그러면 우리 성도님들이 저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시고 또 우리 사람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땅도 창조하셨다는 말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사실은 그게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를 좀 더 의미를 살려 번역 하면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 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태초에 우리 인간의 눈에 보이는 땅의 세계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세계를 창조하셨다. 골1:16이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여기 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이 있고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고 했다. 보이는 세계는 뭔가? 우리가 오감으로 알 수 있는 세계다. 땅과 바다를 포함하여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우주도 다 보이는 세계다. 반면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뭔가? 바로 영적 세계다. 천사들 우리 눈에 보이는가? 안 보인다. 보이지 않는 세계다. 사도 바울이 특별한 은혜를 입어 다녀 온 삼층천도 역시 보이지 않는 세계다.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우리 귀에 들리지 않는 하늘의 신령한 영적인 세계가 있다. 지금은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 그러나 장차 부활의 날이 오면 우리 눈으로도 친히 보게 될 세계, 영원한 영적 세계가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보이지 않는 세계 가운데 하나가 뭔가? 바로 우리 영혼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존재 가장 깊은 곳에 하나님은 영혼도 창조하였다. 창2:7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여러분!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음을 잊지 말라. 우리 생각이 옳지 않다.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우리 존재 가장 깊은 곳에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은 불멸이다. 육신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나 우리 영혼은 불멸이다. 우리 속에 영혼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셨다.

이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고 우리 존재 깊은 곳에는 영혼도 있는데, 인간이 타락하여 죄가 우리의 영적인 눈을 어둡게 만듦으로 완악한 인생들은 하나님이 없다 하고 영혼도 없다 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또 서로를 속인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볼 수 있는 우리의 영적 지각이 죄로 인해 어두워졌기에 요한복음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하셨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영적 눈이 열려지기를 축원한다.

2) 이렇게 우리 하나님은 태초에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를 무에서 유로 창조하셨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두 가지를 생각해 본다.

① 첫째 오늘 찬송한대로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를 생각할 때 그 위대하심을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렇다. 하나님 만드신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증거한다. 태양은 낮 동안에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고 달과 별들은 밤에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한다. 우리도 날마다 하나님 만드신 세상에서 하나님 만드신 것들을 먹고 마시며 살면서,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은혜를 찬양해야 한다.

②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과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인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 다 받아서 사용하는 거다. 세상의 원리를 가지고 말하자면 우리는 마시는 공기의 값을 하나님께 지불해야 하고, 발을 딛고 사는 땅의 임대료도 드려야 하고, 먹고 마시는 식물의 값도 계산해야 한다. 태양의 온기로 살기에 난방비도 드려야 하고, 시원한 바람도 누리기에 냉방비도 드려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그저 다 주셨다. 단 하나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말라 하신다. 하나님의 것임도 잊지 말고, 언젠가는 다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 줄도 잊지 말아야 한다.

대상29:14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다윗이 백성들과 함께 아들 솔로몬 시대에 지을 성전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헌신한 다음 고백한 말씀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하나님이 주인임을 알고, 주인 되신 하나님 뜻대로 쓰고 또 살라.

3. 이렇게 사도신경은 성부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할 뿐 아니라, 마지막으로는 그 분은 바로 ‘나의 아버지’이심을 고백한다. 전능하시고 천지를 지으신 그 하나님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분이 아니라, 먼저는 나를 지으신 나의 아버지시다. 그 분은 나를 지으셨을 뿐 아니라 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하사 새생명을 주셨다. 그 분은 또 성령을 보내 주셔서 영원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우리가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있을 때뿐 아니라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지팡이와 막대기로 안위하시며, 영원히 여호와의 집에 이를 때까지 함께 하시는 우리 아버지시다.

예수님을 주로 믿는 기장교회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고아가 아님을 잊지 말자. 우리 하늘 아버지가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하심을 믿고 감사하자. 기쁠 때도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고, 슬프고 힘들 때도 아버지 품 안에서 울기도 하고 애원도 하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 천지를 지으신 우리 아버지 안에 우리의 영원한 위로도 있고 도움도 있다. 피난처도 있고 방패도 있다. 날마다 아버지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 아버지와 교제하고 아버지와 대화하고 아버지를 섬기며 살아가라.

결론. 오늘은 성부 하나님에 대해 말씀드렸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라.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라.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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