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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Mar 23, 2014
  • 5290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사도신경강해①) 마16:13-20, 14-1 주일오전

서론. 올해 우리 교회는 ‘신앙의 기초를 다지는 해’로 삼았다. 신앙의 기초를 어떻게 다지는가? 지난 주에는 가장 기본적인 경건생활을 꾸준히 하자고 말씀드렸다. 꾸준한 말씀과 기도, 성도의 교제와 세상을 향해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이 신앙의 기초이다.

오늘은 다른 각도에서 신앙의 기초를 어떻게 다질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신앙의 기초는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는 ‘신앙고백’을 확실히 갖는 것이다.

벧전3:15이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해 묻는다는 것을 다리 표현하면 ‘당신은 도대체 무얼 믿습니까?’ 하는 물음이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는(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은 것과 같은 질문이다. 우리 성도님들은 누군가가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하고 질문하면, 망설이지 않고 내가 믿는 바를 명확하고 확신있게 답할 수 있는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지 내가 믿는 바를 담대하고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면, 그런 성도는 신앙의 기초가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내가 믿는 바’다. 그저 내가 지식적으로 아는 바도 아니고, 혹은 교회에서 그렇게 배웠다 하는 바도 아니다. ‘내가 분명히 믿는 바’다. 내가 도대체 무얼 믿는 사람인가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아야 신앙의 기초가 된 거다.

1. ‘내가 무엇을 믿고 있는가’ 하는 것 곧 신앙고백이 왜 그리 중요한가? 오늘 마16장의 말씀을 통해 먼저 신앙고백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자.

1)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신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 중의 누군가가 대답한다.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제대로 깨닫지를 못했다. 예수님은 소경을 눈뜨게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셨다. 바다 위를 걷기도 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도 행하셨다. 심지어 나사로를 비롯해서 죽은 사람을 셋이나 살리셨다. 이런 표적만 아니다. 산상수훈을 비롯해 주님은 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과는 전혀 다른 신적 권위를 가지고 권세 있는 말씀을 전하셨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삶 행하신 일들을 영적으로 잘 분별하면, 예수님은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있었던 여러 선지자 중 하나 정도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예수님은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리라 약속되고 예언된 하나님 아들 메시아이심을 의심 없이 알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 아들되신 영광을 보지 못했다. 저들의 눈이 가려져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별할 영적 지각이 없었다.

사람들의 부족한 대답을 들으신 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신다. 그러면 ‘너희는(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제쳐놓고, 3년 동안 특별하게 구별되어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 물으셨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너희는(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이 질문을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물으신다. 모든 인생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생각과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질문은 우리 영혼이 죽고 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2) 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대답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는 어떻게 자기 앞에 사람의 모습으로 계신 예수님을 보고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쉽게 생각하면 제자들은 누구보다 예수님 가르침을 많이 들었고 예수님 행하시는 기적도 곁에서 직접 보았기 때문이라 여기기 쉽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만약 예수님께 많이 배웠고 많은 기적을 보았기 때문이라면, 가룟 유다도 누구보다 확실한 신앙고백과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유다는 도리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은 30에 팔아먹었다. 그러면 베드로는 어떻게 이런 분명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가? 예수님의 대답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하신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렇다. 베드로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하고도 확실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베드로 속에 이런 영적 깨달음과 믿음을 가지도록 역사해 주셨던 거다.

3) 하나님이 계시하시는 은혜를 따라 예수님을 바로 믿고 바르게 신앙고백 하는 베드로를 보고 주님은 참으로 복되다 하신다. 바른 신앙고백이 왜 그리 복이 되는가? 바른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왜 그리 복된가 하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신앙고백의 중요성이 뭔가에 대한 답변이다. 본문 v.18-19을 보면, 바른 신앙고백의 3가지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같이 읽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②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③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① 바른 신앙고백이 중요한 첫째 이유는,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명확하고도 확신 있는 신앙고백을 듣고 주님이 그러셨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이 말씀은 사실 생각할 점이 많다. 천국열쇠가 뭔가,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주신 것인가, 또 어떻게 사용 하는가 등등 복잡한 문제들이 많은데, 오늘은 그런 문제를 다 다룰 수가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른 신앙고백이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라는 점이다.

바른 신앙고백이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라는 사실은 다른 성경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10:32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롬10:9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처럼 내가 천국의 기업을 분명히 상속받을 자인가 하는 것은 내가 예수님에 대하여 분명하면서도 담대하게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② 바른 신앙고백이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잘못된 이단이나 마귀의 유혹에서 우리를 지켜 준다. 주님이 또 그러셨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천국 열쇠가 신학적으로 고민할 문제가 많듯이,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도 단순한 말씀이 아니다. 이것도 오늘 다 다룰 수 없다. 다만 오늘 설교 주제인 신앙고백과 관련하여 분명한 사실은, 바른 신앙고백이 있으면 악한 영들의 역사와 미혹을 분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아무리 이단이 와서 이런 말 저런 말로 미혹을 해도 넘어지지 않는다.

예를 하나 보자. 요일2:22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하신다.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가지고 보면 이단과 마귀의 미혹이 분별된다 그 말이다.

③ 바른 신앙고백이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바른 신앙고백의 내용으로 우리 자녀들과 초신자들을 교육하고, 세례를 베풀며, 또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하셨다.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계시에 합당한 반응으로 하는 바른 신앙고백이 교회의 토대가 된다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구원의 방주요 진리의 기동과 터인 교회에 소속된 하나님의 가족이 되려면 바른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바른 신앙을 가르침 받고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교회의 지체가 되고, 모든 영적 은혜도 누릴 수 있다. 형식적으로 기장교회 지체는 등록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은 형식이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른 신앙을 배우고 깨달아서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진짜 하나님의 가족 되는 길이다.

2. 그러면 어떻게 바른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고백해야할 바른 신앙의 내용은 도대체 무엇인가? 넓게 보면 성경 말씀 전체가 우리가 믿고 고백해야할 바른 신앙의 내용이다. 그런데 성경 말씀 전체는 너무 분량이 많기에 우리가 신구약 전체를 다 통달해서 바른 신앙고백을 고백하기는 너무 힘이 든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 하는 바른 신앙고백을 쉽고도 분명하게 배울 수 있는 길이 있다. 바로 사도신경이다. 사도들의 신앙 전통을 이어 받아 수천 년 동안 교회가 신앙의 핵심으로 받았고 예배 때마다 성도들이 한 입으로 고백해온 사도신경을 잘 배우면 ‘내가 무엇을 믿는가’에 대해 분명하게 고백도 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도 있게 된다.

그래서 교회 역사를 보면, 세례를 베풀 때 사도신경의 내용을 가지고 신앙을 확인했다. 사실 우리 신앙은 신구약 말씀 전체지만, 세례문답을 하면서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다 읽고 ‘이것을 믿습니까?’ 그렇게 물으려면 문답만 수주 혹은 수개월 해야 할 거다. 반면에 그냥 ‘신구약 성경 내용을 믿습니다’ 그러면 너무 추상적이고 구체적으로 무얼 믿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사도신경으로 서약을 했다. 앞으로 우리 교회도 그렇게 할 생각이 있다.

그리고 오늘부터 앞으로 수 주 동안 주일 오전에 연속해서 사도신경을 강해해 갈 것이다. 사도신경의 내용을 확실하게 배워서 우리가 분명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다.

사도신경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주부터 살필 것인데, 오늘은 사도신경에 대한 서론적인 몇 가지 주제를 더 말씀드리겠다.

1) 먼저 사도신경의 중요성이다.

유명한 교회 역사가인 필립 샤프가 그런 말을 했다. ‘주기도문이 기도 중의 기도요 십계명이 율법들 중의 최상의 율법이듯이 사도신경은 신앙고백(신조) 중의 신앙고백(신조)이다’.

또 어떤 목사님은 사도신경을 이렇게 비유하시는 것도 보았다.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 가치를 보여주는 세 단어가 있다면 ‘믿음 소망 사랑 ’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되는 특별한 믿음이 있고, 그 특별한 믿음에 따른 특별한 삶이 있으며, 또 세상은 가지지 못하는 특별한 비전이 있다. 그랬을 때 우리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요약한 것이 사도신경이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 십계명이요,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꿈과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주기도문이라는 거다. 요약하면 이렇다. ‘그리스도인의 믿음 - 사도신경, 그리스도인의 사랑(행동) - 십계명, 그리스도인의 소망(비전) - 주기도문’. 말하자면 십계명 그리고 주기도문과 더불어 사도신경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그랬다. ‘사도신경은 마치 .... 마치 꿀벌들이 온갖 아름다운 꽃에서 꿀을 모으듯이 위대한 사도들이 전해준 성경의 가르침을 오묘하게 요약한 것으로 ... 순수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즉 신비로운 성경 66권을 아름다운 꽃에 비유한다면, 사도신경은 그 꽃에서 꿀벌들이 모은 꿀과 같다는 거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부터 사도신경 십계명 주기도문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쳤고 가장 중요하게 가르쳤다. 오늘날에도 형식상으로는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을 교회가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찬송가 표지에도 사도신경 주기도문 십계명을 새겨 놓아서, 우리 성도들이 쉽게 자주 볼 수 있도록 해 놓았지 않는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라 그 말이다.

2) 오늘 사도신경 서론으로 두 번째 살필 것은 사도신경 전체 내용과 구조다. 제가 번호를 붙여 놓은 바를 생각하면서 천천히 사도신경 전체 내용을 한 번 읽자.

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②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③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④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⑤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⑥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⑦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⑧ 성령을 믿사오며

⑨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⑩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⑪ 몸이 다시 사는 것과

⑫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제가 번호를 붙여 놓은 대로 사도신경은 우리가 믿는 신앙을 크게 12가지로 고백한다. 그런데 이 12가지 신앙고백을 나누는 방식이 크게 둘이 있다.

하나는 1번은 성부 하나님에 관한 신앙고백이요 2-7번은 성자 하나님에 관한 신앙고백이요 8-12번은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시 1번은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고, 2-7번은 성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고, 8번이 성령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고, 9-12번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축복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사도신경을 3부분으로 나누어야 하는가 4부분으로 나누어야 하는가는 사실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사람마다 이렇게 해도 좋고 저렇게 해도 좋다. 다만 이렇게 구분해 봄으로 사도신경 전체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사도신경을 셋으로 나누든지 넷으로 나누든지 분명한 것은 사도신경은 삼위일체적 신앙고백이라는 점이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사도신경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고백하되, 그 주제를 보면 성부 하나님은 창조가 중심이 되고 성자 하나님은 구속이 중심이 된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부활과 영생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래서 주제 면에서 사도신경은 ‘창조 - 구원 - 종말’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신앙고백인 셈이다.

3. 오늘 말씀을 정리하면서 한 가지 더 말씀을 드리려 한다. 여러분! 서론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신앙고백은 모든 사람이 개인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서로 다른 내용을 고백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고백 내용은 같다. 같은 신앙고백을 하기에 우리는 한 주님의 지체로 영적으로 하나될 수 있다. 이렇게 같은 신앙을 고백하지만, 신앙고백 자체는 각각 해야 한다.

요20장을 보라. 부활하신 주님이 처음으로 제자들이 모인 곳에 찾아오셨을 때 도마는 거기 없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다른 제자들은 기쁨과 확신을 가지고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그 분이 진정 하나님 아들이요 메시아라고 담대히 말하는데, 도마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손으로 못 자국 난 손과 창 자국 난 옆구리 만져 보기 전에는 안 믿겠다 그랬다. 여드레를 지나 도마도 한 자리에 있을 때 주님이 다시 오신다. 도마를 보고 못 자국 난 주님의 손을 보고 창 자국 난 옆구리를 만져도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다. 그때 도마다 고백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사건을 보면 주님은 열두 제자 중 마지막 한 사람까지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들으려 하셨다. 두리뭉실한 고백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분이신가 하는 고백을 듣기를 원하였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을 기뻐하셨다.

왜 주님이 끝까지 도마에게 개인적인 고백을 들으려 하셨는가? 다른 제자가 고백했다고 내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내가 신앙고백을 한다고 남편도 덩달아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신앙고백을 한다고 자식이 함께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신앙고백은 우리 각자가 자기 입으로 자기 마음에 새겨진 믿음을 성령으로 고백해야 한다.

마24:40-41이다.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여기 한 밭에서 같이 일을 하거나 맷돌을 같이 돌린다는 것은 두 사람이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뜻이다. 가족이든지 친구든지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인자가 영광 중에 구름 타고 임하시는 날 한 사람은 영원한 나라로 데려감을 받으나 한 사람은 버려진다. 개인적인 분명한 신앙과 고백 없이는 아무도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는 거다.

결론. 아무쪼록 이제부터 우리 성도님들이 사도신경을 잘 배우고 마음에 새김으로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하고 묻는 말에 분명히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제자들에게 물었던 것처럼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예 주님 저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하고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짐으로 이제부터 믿음이 잘 자라고, 또 그 분명한 신앙고백이 능력이 되어 우리의 삶과 인격이 거룩해지고, 더 나아가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진 자에게 주님께서 성령 안에서 주시는 구원의 확신과 기쁨과 하늘의 평강이 충만한 확신 있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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