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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Dec 08, 2013
  • 6595

떡을 떼어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24:13-35, 13-12주일오전

 

 

서론. 지난 주일 오후에는 세례식이 있었다. 오늘은 성찬식이 있다.

우리 교회는 해마다 4번 성찬식을 갖는다. 새해 첫 신년예배, 부활절 감사예배,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시행하는 세례식 바로 다음 주일까지 모두 4번이다.

성찬을 행할 때마다 제 마음에 고민이 있었다.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 성도님들이 성찬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 성찬을 통해 누려야할 은혜를 풍성히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주님의 거룩한 성찬을 혹 마음으로 경홀히 여기거나 업신여기는 죄를 짓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래서 오늘은 성찬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장 핵심적인 것 몇 가지를 살피고자 한다.

 

 

1. 성찬에 대한 가르침이 성경 여러 곳에 있는데, 24장은 성찬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은 없지만, 성찬의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가장 실감 있게 보여주는 말씀이다.

 

1) 죽으시고 사흘 되던 날 주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셨다. 주님을 사랑하여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주님 부활을 전한다. 주님이 부활했다는 여인들의 증거를 듣고 베드로도 무덤으로 달려가 빈 무덤과 시신을 쌌던 세마포를 확인하였다.

여러 가지 주님 부활의 증거들이 이어졌지만, 의심과 두려움에 싸인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정도 떨어진 엠마오로 가고 있었다. 주님 부활에 대한 소문을 주고받으며 길을 가는 저들에게 어느 순간 주님이 다가오셔서 동행하신다. 그런데 눈이 가리어져서 주님이신 줄을 알아보지 못한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고 믿는 일에는 육신의 눈이 아니라 어두워진 심령의 눈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함께 길을 가면서도 못 알아보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지 물으신다. 이에 두 제자는 지금까지 자기들은 나사렛 예수가 이스라엘을 죄에서 속량할 구주라고 바랬었는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주어 십자가에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이 시체는 보지 못하고 빈 무덤과 부활을 알리는 천사를 만났고, 다른 두어 제자도 예수님 빈 무덤을 확인했다고 대답한다.

이에 예수님은 분명한 부활의 증거들과 증인들이 있음에도 믿지 못하는 저들을 꾸짖으신다.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 눈은 가려지고 마음은 둔해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제자들을 꾸짖으신 후에 주님은 저들의 가려진 눈을 여시고 강퍅한 마음을 고치시기 위해 두 가지 일을 하신다.

먼저는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주님께 대해 기록된 말씀들을 자세히 풀어주신다. 여기서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신자들을 찾아오시는 첫 번째 방식을 발견한다. 바로 성경 말씀으로 부활의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을 나타내신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 시대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하늘에 계신 시대지만, 24장 사건이 기록된 때는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이다. 부활하셨지만 승천하지 않고 이 땅에 계신 시간이다. 따라서 엠마오 가는 두 제자에게 여러 말 하실 것 없이, 그냥 쉽게 나를 똑바로 쳐다봐라 내가 바로 십자가에 죽었던 예수니라 나를 똑 바로 보고 믿으라그러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 게다가 나중에 제자들이 이 분이 주님이시다 하는 것을 깨달은 순간에는 홀연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신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가? 부활하신 주님은 모든 시대 모든 성도들에게 말씀을 통해서 찾아오실 것을 알리신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할 것이 있다. 두려움에 싸여 엠마오로 가던 이 두 제자는 천사들을 만났다는 여인들의 말이나 무덤이 비었다는 부활의 객관적인 증거들만으로는 믿지를 못했다. 그런데 주님께서 성경을 풀어주실 때 저들의 완고했던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저들 마음속에서 믿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v.32 같이 보자.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성경 말씀이 자세히 풀어질 때, 그 말씀을 진실하게 듣는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죄를 인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살리시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갖는 일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하나님 말씀과 그 말씀과 더불어 증거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되어짐을 깨달을 수 있다.

 

말씀을 풀어줄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조금씩 믿음의 역사가 일어났기에, 두 제자는 목적지에 이르렀을 때 성경을 풀어주신 그 분과 좀 더 머물기를 원했다. 이에 주님도 저들과 함께 유하기 위해 한 집에 들어가신다. 식사할 시간이 되었다. 주님은 죽으시기 전에 열두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행했던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저들에게 떼어 주신다. 그런데 주님이 떡을 떼어 주시는 그 순간 저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이신 줄을 알아본다. 그렇게 눈이 열려 드디어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았는데, 그 순간 바로 주님은 홀연히 사라지셔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셨다. 이에 두 제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기쁨에 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열한 제자를 비롯해서 여러 성도가 모인 곳을 찾아가 길에서 된 일과 떡을 떼심으로 저들에게 알려진 것을 전해 준다.

여기서 우리가 조금 주의 깊게 볼 말씀이 있다. 먼저 v.30b-31a이다.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v.35b도 보자.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이 두 구절이 공통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마음이 어둡고 눈은 가려졌던 제자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게 된 것이 떡을 떼어주신 일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우연히 주님이 떡을 떼어주는 그 시간에 저들의 눈이 열린 것이 아니다. 도리어 주님은 이 떡을 떼어 주시는 일을 저들의 눈을 여시는 방편으로 사용하셨다. 말하자면 주님이 떼어 주시는 떡을 받는 일은 주님을 만나는 방편이 되었다. 주님이 떼어주시는 떡을 받는 일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역사를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찬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성만찬은 성경 말씀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 임재하시고 찾아오시는 또 하나의 방편이다. 하나님 말씀과 더불어 성찬을 통해서 주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알리신다.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하나님 말씀과 함께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성찬을 믿음으로 받을 때 우리의 어두운 눈이 열린다. 우리의 굳었던 마음이 녹아지고, 황폐했던 심령이 은혜로 채워지는 것이다. 성찬을 통해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 성경말씀을 들을 때 성령님이 역사하시듯이, 그리스도를 기념하기 위하여 성찬이 행하여질 때도 우리 눈을 여시고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성경말씀이 들리는 말씀이라면 성찬은 보이는 말씀이라고 한다. 또 어떤 분은 성찬을 비가시적 은혜의 가시적 형태라고도 한다.

아무튼지 성찬은 성경말씀과 더불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은혜의 방편 중의 하나이다. 말씀과 성찬 이 두 가지 방편을 가지고 성령님은 오늘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시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성도들의 심령 속에 나타내시며,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게 하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님들은 성찬을 받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눈뜨게 하시고, 하나님의 온전한 임재를 체험하여 우리 심령을 새롭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한다.

 

 

2. 이렇게 성찬은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 중에 하나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성찬식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본다. 오늘은 세 가지만 간단히 말씀드린다.

 

1) 첫째 성찬은 기념입니다’.

22:19 같이 읽자.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한 구절 더 본다. 고전11:25이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면서 주님은 떡을 떼어 주시며, 이 떡을 먹음으로 주님께서 우리 위해 당신의 거룩한 몸을 주신 것을 기념하라 하셨다. 식후에 또 잔을 주시며, 이 잔을 마심으로 주님이 우리 위해 피 흘려주심을 기념하라 하셨다. 성찬은 아무 죄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 아들이 우리 위해 살 찢으시고 피 흘려주심을 기념하는 거룩한 의식이다.

우리는 주님의 몸을 의미하는 떡과 피를 의미하는 잔을 받을 때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숭고한 사랑과 신실하심을 기억한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주님이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감사한다.

여러분!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주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생명을 얻는다. 우리 육신의 몸이 떡을 먹고 물을 마심으로 배고픔과 갈증을 해소하듯이, 우리 영혼은 주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심으로 영적 배고픔과 갈급함을 해소하고 살찌게 된다.

그것만 아니다. 우리는 또 주님의 떡과 잔을 받을 때마다,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하나님 은혜가 영원할 줄을 확신하게 된다. 우리를 죄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주님이 살 찢고 피 흘리셨기에, 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하나님과 우리의 언약은 결코 변개될 수가 없다. 육신의 부모도 살 찢고 피 흘려 낳은 자식을 영원히 버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선하신 주님이 당신의 살 찢고 피 흘려 얻은 영적 자녀들을 버리시겠는가? 그래서 잔을 나누어 주실 때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 자녀되고 하나님은 영원한 우리 아버지요 왕이 되신 언약은 주님의 피로 맺은 언약이다. 주님의 피로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다 씻으시고 맺은 언약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 언약을 변개키 못한다.

주님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할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죄값을 지불하셨다. 우리에게 생명과 평강 자유를 주시려고 스스로 죽음에 저주에 내어짐을 당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시려고 대신 멸시와 천대를 이미 받으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공의로운 하늘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게 되었다. 의인이라는 판결을 받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 거룩하신 몸으로 모든 세상 죄를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를 죄인이라고 정죄하던 율법의 저주는 깨뜨려져 버렸다. 하늘 법정에서 우리를 고소할 율법의 고소장도 찢어져 버렸다.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의인이라고 하늘 법정에서 효력 있게 증거해 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십자가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를 죄에서 살린 십자가, 우리를 정죄하던 율법의 고소장을 찢어버린 십자가, 하늘 법정에서 우리를 의롭다 증거하는 거룩한 피, 우릴 영혼의 양식이 되는 그리스도의 몸을 영원히 기념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성찬은 기념이다.

 

2) 둘째 성찬은 고백과 증거입니다.

고전11:26이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죽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 까지 전하는(선포하는) 것이니라’. 제가 전하는하는 말을 괄호 속에 선포하는이라고 해석을 해 놓았다. 전한다는 말이나 선포한다는 말이 비슷해 보이는데, 사실 조금 차이가 있다.

그냥 전한다고 번역하면, 아 우리가 주님 오실 때까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선포한다고 번역하면, 좀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과 다시 오실 복음을 세상에 나가 전하는 것만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성찬을 받을 때마다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면서 받아야 한다. 어떤 믿음인가? 첫째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가 없다면 나는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고백한다. 둘째 그런 죄인이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온전히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다는 믿음이다. 셋째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어주셨으니 이제 나는 모든 삶을 통해 그리스도만 섬기고 따르겠다는 헌신이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나는 죽었고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믿음의 고백하는 것이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3) 셋째 성찬은 용서와 일치입니다. 요즈음은 성찬식을 행할 때 떡도 그렇고 잔도 그렇고 너무 규격화되어진 것으로 먹고 마신다. 그래서 떡도 네모반듯하게 미리 잘라 둔 것을 받고, 잔도 똑 같은 크기의 잔에 미리 부어져서 준비된 것을 받는다.

그런데 원래는 성찬을 이렇게 행하지 않았다. 오히려 큰 하나의 떡덩이를 준비해서, 거기서 잘라서 나누어 받았다. 그야말로 한 떡을 나누어 참여하였다. 잔도 하나의 큰 병에서 부어서 나누어 주었다. 그야 말로 한 잔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한 떡에 참여하고 한 잔에 참여하는 것이다. 편의를 위해서 미리 나누어 놓았지만, 원래는 한 떡 이요 한 잔이었다.

왜 주님이 한 떡과 한 잔을 여럿이 나누어 먹고 마시게 하셨는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것을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여러분! 우리는 한 잔에 참여함으로 한 지체들이다. 한 떡에 참여하는 한 그리스도의 가족들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하나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인하여 하나인 것을 잊지 말라. 한 몸에 참여하는 한 지체이기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축복하고 서로 허물을 감싸주고 서로 부족해도 용납하고 안아주는 것이다. 하나이다. 성찬은 용서와 일치이다.

 

 

결론.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찬은 말씀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다. 왜 주님이 성찬을 행하라 하셨는가? 성찬은 기념이다. 성찬은 고백이다. 성찬은 일치와 용서이다. 오늘도 성찬을 받을 때 성령께서 우리 눈을 여심으로 우리 위해 살 찢고 피 흘리신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는 놀라운 시간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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