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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Jul 09, 2013
  • 7373

기도할 때마다 감사하노라 골1:3-5, 13-7주일오전(288, 279)

서론. 오늘은 교회가 전통적으로 지켜온 맥추감사주일이다. 요즈음은 농경사회가 아니어서 맥추감사주일이 조금 낯설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일 년에 두 차례 감사주일을 정하여 지킴으로 하나님 은혜에 특별히 감사하는 것은 우리 영혼에 유익하고 복된 일이다.

잘 아시듯이 구약 이스라엘도 명절을 정하여 지켰다. 유월절을 지킴으로 죄로 죽을 인생을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맥추절을 지킴으로 양식을 주시고 늘 지켜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장막절을 지킴으로 나그네길 가는 동안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였다. 말하자면 3대 절기를 지킴으로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은혜에 감사했다.

신약 시대도 마찬가지다. 성탄절과 부활절, 맥추절과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우리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영육 간에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미래에도 우리 영혼을 본향까지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하시고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셨듯이, 진실한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제사요 우리 믿음의 꽃이요 향기다.

우리나라가 파송한 최초의 선교사인 이기풍 목사님 전기를 보니까, 목사님도 참 대단하시지만 사모님 역시 정말 지혜롭고 사랑이 많고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셨다. 특별히 사모님은 자녀들에게도 여러 가지 산 신앙교육을 하셨는데, 그 중에 하나가 감사 훈련이었다. 어린 자녀의 몸에 감사가 배이도록 하시려고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천국에 가면 성도들의 이름표가 달려있는 장미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는데, 세상에서 ‘감사합니다’ 할 때마다 장미꽃이 하나씩 핀다는 거다. 기쁘고 좋은 일이 있어 ‘감사합니다’ 하면 찔레같이 작은 장미꽃이 피고, 어려운 일이나 불행이 닥쳤는데도 ‘감사합니다’ 하면 커다란 장미꽃이 피고, 이것도 저것도 감사가 없는 사람은 잎만 무성하게 된다 하셨다. 아주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 자녀들은 자기 이름의 감사 장미나무에 꽃이 만발한 것을 상상하면서 늘 감사하려 애썼고, 세월이 가면서 정말로 매사에 감사가 느껴졌다 한다. 몸에 감사가 배여서 나중에는 역경이 와도 감사를 잊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상징적인 얘기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은 세상에서도 아름다운 향기가 되는 거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사에 늘 감사하자. 이 다음에 천국 가면 세상에서 많이 감사한 만큼 감사하고, 감사하지 못한 것은 후회할 거다. 늘 감사함을 잊지 말자.

1.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감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골로새서를 전체적으로 읽어보면, 골로새교회에도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문제부터 다루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래서 어떤 목사님은 이것을 ‘선 감사, 후 권면’ 이라고 했다. 그렇다. 바울은 범사에 감사했을 뿐 아니라 또 먼저 감사했다. 우리가 감사의 눈으로 보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할 이유는 항상 있다.

<주는 나의 피난처>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코리 텐 붐 여사의 간증을 보면,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독일군에 잡혀서 자매인 뱃시와 함께 독일 감옥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레이븐스브록 감옥에 투옥되었다. 감방에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지만 벼룩이 들끓고 있었다. 투옥된 첫 날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읽고 묵상했다. 그리고 뱃시가 자매인 코리에게 이 말씀대로 감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도 감사하자고 했다. 그때 코리가 뱃시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저 벼룩들은 감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자 뱃시는 ‘아니다. 벼룩까지 감사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두 자매가 마음을 모아서 벼룩까지 감사한다고 기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수감 된 후 몇 달 동안 감옥에서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감옥에는 벼룩이 너무 많아서 간수들이 그 감옥에 오려고 하지를 않았던 것이었다.

감사의 눈으로 보면 언제나 감사할 게 남아 있고, 또 감사는 다른 감사를 불러오는 거다.

2. 범사에 감사할 뿐 아니라, 또 먼저 감사부터 하는 바울이 오늘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감사하는가? v.4-5을 같이 읽자. ‘이는 ①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②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③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그렇다. 바울의 감사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부어주신 ‘믿음 소망 사랑’ 때문이다.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붙잡아야할 가장 핵심적인 신앙의 덕이요 감사의 이유이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로부터 정말 끔찍한 박해를 많이 받았다. 네로 황제를 비롯해서 기독교를 박해한 대표적인 10명 정도의 황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하드리안 황제다. 이 하드리안 황제 때 10살 전후의 세 자매가 한 자리에서 순교하는 일도 있었다. 그 부모는 세 자매를 기독교 신앙의 핵심되는 덕목으로 이름 지었는데, 첫째는 ‘피데스, 믿음’이었고 둘째는 ‘스페스, 소망’이었고 셋째는 ‘까리따스, 사랑’이었다. 이 세 자매가 다같이 잡혀서 황제 신상 앞에 절하고 기독교 신앙을 버리라고 위협을 받는데, 첫째인 피데스 곧 믿음이 ‘나는 주님을 믿을 뿐입니다’ 그랬다 한다. 둘째인 스페스 곧 소망은 ‘나는 천국을 바라볼 뿐입니다’ 그랬다. 셋째인 까리따스 곧 사랑은 ‘나는 예수님을 사랑해요’하고 대답하고 모두 참수형을 당하게 되었다 한다.

그렇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 육신의 생명보다 더 값진 것이다. 믿음 소망 사랑은 우리의 영원한 기쁨이요 생명이요 감사의 제목이다.

3. 오늘 바울은 먼저 우리에게 주신 ‘믿음’ 때문에 감사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 그랬다.

복음서를 잘 읽어보면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이요 감사할 제목인지 모른다. 요6장에서 주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행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 가득 거두었다. 이런 표적을 보고서도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이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메시아요 예수 안에 길 진리 생명이 있음을 안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요6장은 우리에게 무엇을 증거하는가? 현장에서 주님이 친히 먹여주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떡을 먹고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이 땅의 썩을 육신의 양식을 더 달라고 혈안이 되었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지 않았다. 표적을 본 것만 가지고는 저들이 참된 믿음에 이를 수 없었던 거다.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베다니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서 이미 그 시체가 악취를 풍기는 나사로를 다시 살려 내셨다. 이로서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 사는데 유익한 몇 마디 교훈을 주는 여러 선생 중의 하나가 아니라, 죄로 죽을 인생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다시 살렸는데도 예수님을 안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사로 연고로 믿게 된 사람들도 더러 있으나, 나사로 연고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싫어서 예수님은 물론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까지 다시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자들이 많았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병들은 어떠하는가? 저들은 몸소 천사들이 내려와 돌을 굴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여 무덤이 비게 된 것을 체험했다. 인생들 가운데서는 예수님 부활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가까이서 체험한 사람들이 군병들이었다. 저들은 그 된 일을 인하여 너무 두려운 나머지 마치 죽은 자 같이 떨기도 했다. 그런데 이 군병들이 무얼 하는가? 유대 지도자들에게 돈을 받고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 시체를 훔쳐가고서는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지 않는가?

요한복음의 이 일련의 역사들을 보면, 믿음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요 선물이요 기적인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죄사함을 받고, 소경되었던 영안이 열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보고 천국을 보고 영의 세계를 보고, 귀머거리 되었던 귀가 열려서 하나님 말씀의 뜻이 깨달아지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축복인지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우리는 평생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이유가 있다.

오늘 예배 시간에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와 279장 <인애하신 구세주여>를 불렀다. 이 두 곡은 공통점이 있는데 혹시 뭔지 아시겠는가? 같은 사람이 작곡한 찬송이다. 바로 ‘화니 크로스비’이다. 우리 성도님들이 한 번 인터넷으로 ‘화니 크로스비’를 검색해 보세요. 그러면 그런 그들을 읽을 수 있으실 거다. ‘감사와 찬송으로 자기를 이긴 여인’. 화니 크로스비는 태어난 지 1개월 되었을 때 독감에 걸리면서 눈병도 같이 왔다. 그런데 가정부가 안약인 줄 알고 약을 잘못 넣어서 두 눈의 시력을 모두 잃게 된다. 그런 크로스비를 외할머니가 늘 눈이 되어서 데리고 다니면서 그 마음에 주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다. 어른이 되어 하나님이 자기에게 글을 잘 쓰는 은사를 주신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수많은 찬송시를 지으면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크로스비를 찾아와서 묻는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많은 재주를 주시면서 왜 맹인이 되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한다. 그때 크로스비가 진심으로 답변하다. ‘저는 만약 다시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 한 가지 부탁할 수 있다면 제가 소경이 되게 해 달라고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저는 처음으로 제 두 눈이 뵙기를 원하는 분이 주님이시기를 바라거든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이 묻는다. ‘당신의 환경은 감사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무엇이 그렇게 늘 감사하세요?’. 크로스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감사의 조건은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게 된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4. 오늘 바울은 두 번째로 무엇을 감사하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골로새교회 성도들 마음속에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있음을 인하여 바울은 감사하고 있다.

우리가 너무 잘 안다. 인생의 참된 기쁨과 행복이 순전하게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받는데 있다는 것을. 사랑을 받는 것도 기쁨이지만, 하나님 사랑을 체험하고 나면 사랑을 하는 것은 더 큰 기쁨이 된다. 사랑을 받는 기쁨은 아는데, 사랑하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 불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가 뭔가? 사랑하면 사랑받는 사람도 행복하지만 사랑하는 나도 너무나 행복한 것을 우리가 머리로는 잘 알지만, 그런데 실제 사랑을 하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 생각은 사랑하며 살아야지 하는데, 정작 내 가슴은 차가울 때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하며 사는 것이 귀하고 복된 줄 알면서도, 돌처럼 완고하고 거머리처럼 이기적인 내 마음속에서는 사랑이 나오지를 않아서 어떤 때는 마치 내 모습이 괴물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 지금 골로새교회 성도들을 보고 바울이 뭐라고 하는가? 모든 성도에 대한 저들의 사랑을 들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골로새교회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 거다.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바로 골로새교회였던 거다. 골로새교회 성도들 마음에 사랑이 꿈틀거리고, 그 마음속의 사랑이 행함과 진실한 섬김으로 나타나는 그 모습, 이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정말로 감사할 일이지요.

이런 사랑이 그냥 생기는 게 아니다. 그래서 롬5:5에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고후5:14에도 말씀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그렇다. 아담의 부패한 성품을 물려받은 우리의 본성으로는 남을 진심으로 사랑할 힘이 없다. 이런 우리의 죄악을 주님께서 십자가로 담당하시고, 우리 심령에 새 마음을 주셨다. 새 영을 주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부어 주셨다. 바로 사랑의 마음이다. 하나님 마음이 우리에게 부은 바 됨으로 우리는 서로 사랑할 수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감사하라. 내 마음에 미움과 시기가 가득한 것은 그야말로 저주다. 그러나 내 마음에 남편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부모님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다. 감사할 제목이다. 내 가족만 아니라, 몸된 교회에서 믿음의 지체된 성도들을 사랑하고 구역식구를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이 있다면 감사하라. 그 귀한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거다. 우리 영안이 열려서 세상을 주님의 눈으로 쳐다보면서, 저들의 영혼을 긍휼히 여기고 저들에게 생명의 복음 전해서 구원하고자 하는 영혼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그것 역시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우리 마음에 부어진 사랑의 마음이야 말로 우리 인생을 인생답게 만드는, 우리 성도를 성도답게 만드는 보석 중의 보석이다.

설교를 준비하는 중에 어떤 목사님이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건강한 성도의 표징이라 하면서 이런 비유를 하시는 글을 읽었다. 우리 몸에 세균이 들어오면 백혈구가 그것을 잡아먹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나를 좀 섭섭하게 하고 때로는 험담을 해도, 건강한 성도의 마음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어진 하나님 사랑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랑이 백혈구가 되어서 서운한 마음 미운 감정 시기하는 마음을 다 잡아먹어서 시험에 들지 않고 항상 평안하다 하셨다.

여러분! 맞는 말이다. 우리 속에 하나님 사랑이 부은 바 되면, 시험에 들 일도 없거니와, 항상 평안함 가운데 사랑받는 기쁨을 넘어 사랑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줄 믿는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신 주님의 말씀처럼, 사랑도 받는 사랑을 넘어 주는 사랑을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쁨이요 감사할 일인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주셔서 골로새교회 성도들처럼 항상 마음속에 하나님 사랑이 충만히 부어지기를 축원한다.

4. 오늘 세 번째 감사의 제목이 뭔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성도들에게 대한 사랑에 이어 하늘에 쌓아둔 소망이 우리의 영원한 감사 제목이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참 감사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지금도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를 드리거나 찬송을 부를 때면, 제 마음속에 하늘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솟아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새벽에 기도할 때면 곧잘 그런 기도를 드린다. ‘주님 어서 오시옵소서. 주님 속히 오셔서 이 땅에 주의 온전한 영광과 의를 나타내옵소서. 선악 간에 심판하시고, 하나님 살아계심을 온 세상이 보게 하옵소서. 세상 나라가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 되는 것을 속히 보여 주옵소서’.

주 예수를 믿는 성도 여러분!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속히 거닐어 보고 싶지 않으신가? 새 예루살렘 성에서 달마다 다른 열매를 맺는 그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싶지 않으신가? 생명수 샘물에서 주께서 친히 내 눈에 눈물 닦아 주시는 그 기쁨을 맛보고 싶지 않으시는가? 24장로와 네 생물과 수많은 천군천사와 함께, 옛적에 신실한 믿음으로 살았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비롯해서 모세 여호수아 다니엘 욥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과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우리 앞서 주님 나라 위해 살았던 그 수를 다 헤아리기 어려운 모든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는 그 자리에 서고 싶지 않으시는가? 하나님이 친히 예비하신 보좌에 앉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되,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기쁨, 다시는 죄도 눈물도 아픔도 없이 살아가는 기쁨, 그 놀라운 천국의 기업을 누리고 싶지 않으시는가? 저는 정말로 속히 주님이 오시면 좋겠고, 주님 나라가 임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제 속에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여러분! 우리 신자는 하늘에 쌓아둔 영원한 소망이 있기에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저앉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오뚝이 인생이다. 그래서 고후4:16에서 고백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영원한 하늘 소망은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한다. 우리 겉사람이 후패해져도 우리 마음은 새롭다. 때로 비바람이 불어오고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도, 하늘소망이 있기에 우리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는다. 어엿이 승리한다.

결론.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사도 바울의 감사의 고백을 살펴보았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과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하여 바울은 감사함이 넘쳤다.

일본의 신학자 중에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분이 있다면 우찌무라 간조이다. 그 분의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세상에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일도 아니다. 만약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세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 말씀 성경이 깨달아지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여러분! 맞는 말이다. 믿음 소망 사랑 더불어 감사가 없는 것은 저주다. 그러나 믿음 소망 사랑을 인하여 우리가 감사하며 사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아니 모든 축복을 다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금보다 귀한 믿음 있음에 감사하라. 내 안에 하나님 사랑이 부은 바 되어 사랑 받을 줄도 알지만 사랑하며 살 줄 아는 것에 감사하라.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늘 소망 있음에 감사하라. 항상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먼저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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