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군 살전2:1-12 특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군 살전2:1-12, 12-10특새
서론. 특별새벽기도회 둘째 날이다. 오늘도 우리 하늘 아버지가 기도하는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은혜 베푸시며, 그 얼굴빛을 비추어 주시고 귀를 기울여 부르짖는 간구에 응답해 주시기를 소원한다.
어제는 데살로니가교회가 좋은 소문 난 것을 살펴보았다.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로 말미암아 좋은 소문이 났다.
오늘은 2:1-12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영적으로 데살로니가교회를 어떻게 섬겼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주님의 교회를 어떤 자세로 섬길 것인가, 특별히 이번 전도축제 때 태신자들을 어떤 마음으로 섬길 것인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1. 먼저 v.1-2 보시면, 하나님의 교회에 생명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나면 고난과 어려움도 뒤따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의 열매는 고난을 이기고 어려움도 딛고 일어서야 기대할 수 있는 거다.
2절 같이 보자.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여기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서 말씀을 전할 때 많은 고난과 능욕을 당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행16장에 나온다. 한 귀신 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을 따라 다니면서 복음전파를 방해하므로 그 귀신을 쫓아 내 버린다. 귀신 들린 여종 때문에 점을 쳐서 이익을 얻던 주인이 바울 일행을 모함하여 관원에게 넘겨 버린다. 귀신들려 비참하게 사는 한 여인을 고쳐 새 삶을 준 일 밖에 없는데도, 바울과 실라는 모함을 당하여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힌다. 이렇게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수고하는 복음사역에는 사람들로부터 수모를 당하는 일도 있고,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정말 뜻하지 않았던 예기치 못한 어려움도 있더라는 말이다.
그렇게 행16장에서 빌립보교회 사역을 마치고 행17장에서는 데살로니가 지방으로 갔는데, 데살로니가 지방에서는 더 큰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빌립보 지방에서는 개인이 원한을 품고 모함을 해서 바울을 괴롭혔지만, 데살로니가에서는 유대인들이 시장 거리의 깡패들을 돈으로 사서 패거리로 몰려와서 핍박한 것이다.
이렇게 가는 곳마다 고난도 당하고 모함과 능욕도 당하는데, 그때 어찌하는가? 너무 힘겨워서 이제 더 못하겠다고 주저앉지 않았다. 고난과 능욕을 인해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줄 알고 더욱 하나님 의지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 그래서 빌립보 감옥에서는 밤이 맞도록 기도하고 찬미할 때 하나님께서 옥문을 여시고 차꼬를 푸신다. 지키던 간수들이 회개하고 예수님 믿는 역사가 일어난다. 데살로니가에서도 극심한 핍박으로 짧은 세 안식일 동안만 사역하고 쫓겨나지만,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열매로 남았다. 이것이 바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 하시는 말씀이다.
바울 시대만 아니라, 오늘 우리 시대에도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성도에게는 고난도 있다. 하나님의 생기가 살아 움직이는 교회에는 뜻하지 않은 사탄의 방해와 어려움이 일어난다. 사탄은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성도는 건드리지 않는다. 죽은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 확장하는 일에 관심 없는 교회는 내버려 둔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 받아 영혼 살리는 일 하고, 우리 교회가 깨어서 부흥의 깃발을 세우려 하면 사탄도 그냥 가만 버려두지 않는다.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고난도 오고 능욕도 올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하나님 나라 역사를 이루려 하기에 당하는 고난과 능욕에 대해서 바울처럼 하나님을 힘입어 담대하게 영적 싸움을 해야 한다. 성령으로 충만해서 후퇴하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능력과 위로와 은혜로 우리를 도우실 줄 믿는다.
누군가가 ‘위대한 항해사는 거친 바다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나라의 신실하고 위대한 일군은 복음을 위해 모함도 당해보고, 억울하게 욕도 얻어먹어 보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도 흘려보면서 길러지는 법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고난을 당하면서 사람에게서는 누구에게도 위로 받을 길이 없어 열린 하늘문을 쳐다보며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목이 쉬도록 불러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 진짜 일군이 길러지는 것이다.
순전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는데 환난이 있는가? 영혼구원을 위해 섬기려니 자존심이 상하시는가? 누군가가 말도 안 되는 없는 말을 지어 내어 모함을 하는가? 바울처럼 하나님을 힘입어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시라.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시고 구원의 열매 맺게 하시고 눈에서 눈물 닦아 주실 줄 믿는다. 고난과 눈물 속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줄 믿는다.
2. 오늘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우리 마음 중심이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하는 바른 중심을 가지고 섬기자 하는 것이다. 4절을 같이 읽자.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 중심이 정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면 사실 신앙생활 하면서 크게 시험들 일이 없다. 우리가 다 연약한 사람들 아닌가? 다들 허물도 많고 부족함도 많다. 그런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 하다 보면 때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생각이 짧아서 실수할 수도 있고 서로 좀 서운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중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사람은 ‘그럴 수도 있지’ 그러고 지나갈 수 있다. 사람이니 좀 실수 할 수도 있지 그러면 된다. 그리고 내가 좀 서운하고 상처받은 일은 하나님이 아시니까 위로해주시고 사람이 주는 것보다 더 크고 많은 은혜로 갚아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이 하나님 기쁨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기쁨을 찾는 사람은 작은 일도 그냥 넘기기가 어렵다. 내 생각과 다르면 일일이 따져야 적성이 풀린다. 내 마음이 상한 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 해야만 풀어진다. 이게 뭔가? 아직 하나님의 기쁨이 우선이 아닌 것이다. 여전히 사람 앞에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면, 하나님의 은혜의 용광로에서 웬만한 일은 다 녹여버리는 것이다.
우리 교회는 그렇게 어린 아이 같은 성도는 없는 줄 알지만, 어떤 교회 성도들은 늘 담임목사에게 눈이 가 있다. 담임목사가 오늘은 넥타이를 파란색을 했다, 누구에게는 눈길을 주고 누구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늘 담임목사 얘기하기 좋아하는 성도들이 있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담임목사에 대한 이야기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건강한 신앙 아니다. 모이면 예수님 이야기해야 한다. 예수님의 인격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삶을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명령을 나누고 예수님 이야기가 가득해야 한다. 예수 충만한 교회, 예수 충만한 성도 되라.
전도 축제를 준비하면서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해서 담임목사님께 발 보여야지 그러면 참 서글픈 일이다. 담임목사가 인정한들 무슨 상을 줄 게 있는가? 아무 힘없는 목사가 무슨 도움이 되는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걸로 족하다.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주의 일에 열심을 내라. 사람에게서는 어떤 영광도 구하지 마시고 누가 나 좀 알아달라고 목매지도 마시고, 하나님이 알아주도록 하시라. 우리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그 마음 중심 보시고 그 간구하는 바를 다 들어주시고 상 주실 줄 믿는다.
3. 오늘 마지막 세 번째로 생각할 것은, 영적 아비의 마음을 가지고 마음에 품은 태신자 한 영혼 한 영혼을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돌아보라. 11절 말씀 같이 보자.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여기 보면 바울은 이제 갓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어린 신자, 혹은 아직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배워가는 구도자를 어떻게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아버지가 자식에게 하듯이 첫째는 권면하고 둘째는 위로하고 셋째는 경계했다고 한다. 우리 가정에 자녀들도 건강한 자녀로 자라기까지 사실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과 희생이 얼마나 필요한가? 마찬가지다. 한 사람의 제대로 된 건강한 교인 얻는 데는 그 이면에 그를 위해서 오랜 세월 수고하고 땀 흘리고 눈물 흘리는 영적 아버지 영적 어머니의 관심과 돌봄과 사랑과 희생이 있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좋은 교인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는 게 아니다. 콩나물처럼 오랜 세월 반복된 사랑의 권면과 위로의 돌봄과 눈물의 경계가 제대로 된 한 교인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예수를 믿은 지 오래된 우리 성도들은 더 이상 자신을 영적 어린 아이로 생각하고 여전히 내가 관심 받고 내가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도리어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다른 성도들을 돌아보고 사랑하고 위로하는 영적 아비 영적 어머니가 되어 주라. 오늘 하나님은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당신을 대신해서 당신의 이름으로 어린 영혼을 섬기고 잃어버린 영혼을 섬길 영적 아비 영적 어머니를 찾고 계신 것이다.
결론. 전도축제를 위한 가을 특새 둘째날이다.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생기로 일할 때 사탄의 시험과 환난도 찾아온다.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자. 더 이상 사람에게서 기쁨을 구하는 허무한 신앙의 자세를 버리고 이제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기쁨을 구하는 성도 되라. 영적 아비 영적 어머니를 찾으시는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길 잃은 영혼 찾아 섬기는 성숙한 주의 자녀 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