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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윤종휘
  • Jul 17, 2012
  • 11789

복음의 종이 되십시오

고린도전서 9장 19-27절

 

어제 본문을 통해 우리는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일을 200%하기 위해서, 즉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신 사명,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직 복음전파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는 바울의 구체적인 행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권리가 없어서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권리가 없는데도 사용하는 것은 월권입니다. 무례함이요 범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그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복음전파자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각오입니다.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복음만을 위하여 복음의 종이 된 사도의 비장한 모습을 오늘 본문을 통해 만나게 됩니다.

19절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자신의 삶 속에서 내려 놓을 수 있는 권리는 다 내려놓았습니다. 이전에 살펴보았던 6장 12절에도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즉 ‘그 어떤 것도 나에게 거리낌이 될 수 없다, 모든 것이 나에겐 다 자유하다’라고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은 이전에는 율법의 종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율법에서 자유케된 자유인의 신분을 가진 사도였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자유는 단순히 먹고 마시는 데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자유함은 더 업그레이드 되어서 그 자유함을 버리고 스스로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 그랬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20절에 유대인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유대인이 되었다라고 합니다. 아니 혈통적으로 유대인이었던 바울이 또 다시 유대인이 되었다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비록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기는 했지만 그는 결코 자기 동족의 구원에 대한 관심을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동족 유대인을 얻기 위하여 방문하는 도시에서 으례히 유대인 회당을 찾았고, 끊임없이 그들의 가진 율법의 눈높이에 맞추어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신의 동역자요 제자였던 디모데에게 유대인의 상징인 할례를 받게 했고, 또 예루살렘에서는 결례를 행했던 것을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율법에 대해서 자유했지만 끊임 없이 유대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율법아래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은 사도 자신이 유대인 사회에서 소외되는 것을 두려한 것도 아니요, 그들을 무서워 한것도 아닌 오직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이나 혹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을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사도 자신이 유대인이 되었다라는 것은 유대인을 얻기 위한 복음의 종이 되었다라는 말입니다.

 

또한 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종이 되었습니다. 21절에 그 내용이 나와 있지요. 율법아래 있던 유대인들과는 달리 율법없는 자를 가리키는 말은 당연히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방인을 얻기 위하여 유대인에게 했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철저히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언급하는 10장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바울은 철저히 음식을 베푼 이방인의 호의를 위해서 “양심을 묻지 말고 먹으라”고 가르칩니다. 만약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에게 우상의 제물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호의를 거절한다면 복음의 문이 닫혀버리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바울은 약한 자들을 얻기 위하여 자신이 약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약한자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통틀어서 복음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믿음에 약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복음을 듣긴했지만, 교회에 나오긴 하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거나, 약한 믿음으로 쉽게 상처받고 시험에 늘 넘어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바로 약한자들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도로서 믿음이 강한 상태에 있었지만 그러나 바울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얻기 위하여 교만하지 않고 철저히 그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자신의 자유를 제한했던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 없이 낮아짐으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도왔다라는 겁니다.

 

여러분, 왜 바울이 이렇게 행동 했습니까? 22절 말미에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바울의 목적은 오직 영혼 구원에 있었기 때문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여러 모습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본질을 흐려버리는 일방적인 타협이 아니라, 철저한 낮아진 모습으로, 복음의 종으로 영혼들을 섬긴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복음의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상황과 사람의 형편에 맞추어 눈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형편대로 나를 낮추고 눈높이 맞추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기장교회 모든 성도들이 영혼구원의 열정을 가진 복음의 종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사실은, 바울이 구원은 행위가 아닌 믿음을 통하여 얻어진다는 사실, 율법으로부터의 참된 자유를 언급하는 복음의 진수를 포기하고 타협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간, 쓸개 다 빼주고 은혜의 복음을 값싼 저질 복음으로 바꾸지 않았다는 겁니다. 바울은 철저히 영혼을 섬기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복음을 제시하고 그들의 생각과 사상을 변화시켜 나갔습니다. 성령의 역사라는 강력한 도구를 통해서요. 그래서 복음의 종인 우리들이 복음을 전할 때, 비록 우리의 신분은 종이지만 세상앞에서 당당해야 합니다. “한 번 믿어 볼래요?, 교회 한번 나와줄래요?”가 아니라 “예수 믿으세요. 교회에 나와서 복음듣고 천국백성이 되십시오”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복음의 종의 자세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종이 되어 영혼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설명하면서 이 당시 유행했던 운동경기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올림픽의 근원지가 그리스인것은 잘 아실겁니다. 지금 바울이 편지하고 있는 지역인 고린도는 지금의 그리스지역이지요. 그래서 아테네뿐만 아니라 고린도에도 달리기, 격투기, 승마 같은 운동경기들이 활발하게 열렸다고 합니다. 여러 운동경기 중에서 바울은 지금 달리기를 두고 말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당시의 달리기의 상은 오늘날과 같이 메달이나 상금을 주지 않고,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수여했습니다. 그러나 이 월계관이 받을 때는 싱싱하고 보기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됩니까?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 명예라 할지라도 볼품없이 시들어버리는 것이 바로 월계관이지요. 그러나 지금 바울이 하고 있는 경기, 복음 전파라는 달리기를 통해 장차 얻을 월계관은 결코 썩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명예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명예가 있는,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거룩한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이 면류관을 사모하십시오. 세상의 헛된 욕망에 이끌린 썩어빠질 월계관이 아니라, 마르지 않는 하늘의 생수로 자란 영생의 면류관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썩지 않는 영생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우리 인생의 방향을 오로지 복음전파의 열정을 가지고 살 때 우리 인생은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엉뚱하게 방향을 잃고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달리기 선수, 자신의 주먹을 상대를 겨누지 못하고 허공만을 치는 권투선수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방향은 오직 복음전파입니다. 오로지 영혼의 구원의 열정으로 영혼을 섬기는 복음의 종이 되어 썩지 않는 영생의 면류관을 주님께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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