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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구절
    계7:9-17
    설교일
    2012-08-01

서론.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일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은혜를 사모하여 기도의 자리에 오심을 환영한다. 오늘은 계시록 7장 후반부 말씀을 살필 차례다.

 

 

1. 계시록 7장에는 두 가지 환상이 나타난다.

첫 번째 환상은 지난 주에 살핀 1-8절로, 하나님의 종들 곧 새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인침을 받은 144,000에 관한 말씀이다. 그 이마에 인침 받은 144,000은 두 가지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수가 충만하다는 뜻이요, 또 하나는 구원의 확실성이다. 하나님께서 인 치신 충만한 수의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는 거다.

오늘 읽은 7장의 두 번째 환상도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에 대한 말씀이라는 점은 첫 번째 환상과 동일하다. 차이점은 두 번째 환상은 이미 세상에서의 영적 싸움을 끝내고 승리하여 하늘 도성에 이른 하나님의 백성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1-8절의 처음 환상이 전투하는 지상의 교회 모습이었다면, 9-17절 두 번째 환상은 승리한 천상의 교회의 모습이다.

 

하늘의 승리한 교회를 보여주는 7장의 두 번째 환상은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9-10절은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어린 양과 보좌에 앉으신 이를 찬양한다.

둘째, 11-12절은 하늘의 모든 천사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한다.

셋째, 13-14절은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누구인 지 밝혀준다.

넷째, 15-17절은 흰 옷 입은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에서 누리는 축복을 말씀하신다.

 

 

2. 먼저 9-10절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찬송을 보자.

9절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여기 ‘이 일 후에’라는 표현은 사건이 일어날 순서가 아니라 요한이 환상을 본 순서라고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다.

144,000에게 인치는 환상에 이어 요한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온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본다. 능히 셀 수도 없는 많은 무리가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 앞에 서 있다. 4-5장에서 일곱 영이 있었고, 네 생물과 24장로가 둘러 있었던 바로 그 하늘의 보좌 앞에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모여 있는 거다.

➀ 하늘 보좌 앞에 능히 셀 수도 없이 많은 무리가 서 있는 것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능히 셀 수도 없이 많음을 의미한다.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이미 약속하신 일이다. 창13:16이다.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창15:5에서도 말씀하신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창32:12에도 한 번 더 말씀하신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나님은 이렇게 하늘의 별처럼, 혹은 땅의 티끌처럼, 혹은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백성들이 구원 받으리라 약속하셨는데, 그 약속대로 지금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 있다.

➁ 그런데 이렇게 셀 수도 없는 큰 무리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왔다. 어느 한 민족 한 나라 한 언어에서만 나오지 않고,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언어에서 나온 거다. 하나님이 어느 한 백성이나 한 족속만을 특별하게 대우하지 않고,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게 동일한 구원의 기회를 주시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선교에 대한 거룩한 소원을 가져야할 필요성을 본다. 마24:14에서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주 전에 살핀 계시록 6장의 다섯 번째 인재앙에서, 하나님의 제단에 부어진 순교자들의 피가 채워지는 것이 주님 오시는 때를 알려주는 모래시계와 같음을 말씀하셨다. 마찬가지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일도 주님 오실 때가 된 줄을 알려주는 바로미터와 같다. 주님은 이 천국복음이 우리를 통해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기뻐하신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교회 안에서는 영혼구원과 말씀양육에 온 힘을 다 쏟을 것이고, 밖으로는 선교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우리 성도님들께 한 분씩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기도하고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이 있으면 한다. 우리 각 구역이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후원선교사님을 정해서, 위하여 기도하고 성령 안에 교제하면서 선교사역을 펼쳐 나갔으면 한다. 우리 교회 전체적으로는 전략 선교지와 선교사님을 정해서 단기선교도 다녀오고, 우리가 개척하는 마음으로 지속적인 선교 사역을 펼쳤으면 한다. 나아가 우리 교회 출신 가운데 선교사로 부름 받는 분이 있다면, 우리가 협력만 하는 관계가 아니라 파송 교회가 되어 함께 선교의 사역들을 이루어 갔으면 한다. 그런 말 많이 들어 보셨지 않는가? ‘가든지 보내든지 하라’. 그렇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능히 셀 수도 없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일어나도록, 마지막 때 우리 교회와 성도는 가는 선교사가 되든지 보내는 선교사가 되든지 해서 어떻게든 선교의 사명 감당하기를 소원한다.

➂ 이렇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 보좌 앞에 섰는데, 이들의 모습이 어떠한가? 흰 옷을 입고 손에는 종려가지를 들고 있다.

계시록에서 흰옷이 여러 번 나온다. 3장을 보면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흰옷을 입게 하실 것이라 한다. 6:11에서는 제단 앞에 있는 순교자들이 흰 두루마기 옷을 입고 있다. 이렇게 흰 옷을 입은 것은 상징하는 바는 동일한데 승리라 했다. 말하자면 하늘 보좌에 나아간 자들은 낙오자가 아니요 패잔병도 아니다. 모두가 다 승리자들이다. 저들은 세상에서 그저 목숨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일에만 얽매이다 살다온 자들이 아니다. 저들은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겁이 나서 도망만 다니다가 온 자들도 아니다. 저들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담대하게 살다 온 승리자들이다. 어떤 이는 그리스도 이름을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웠고, 어떤 이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강도만난 자를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긍휼을 베풀다가 왔다. 어떤 이는 죽어가면서도 한 권의 성경을 전해주며 세상살이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극심한 가난으로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웠지만, 그래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하늘 소망을 놓지 않고 승리했다. 저들 각인이 감당했던 영적 싸움의 모습은 다르지만, 저들 모두는 결국 믿음을 지켰고 승리한 자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에게 흰 옷을 입혀 주셨다.

또 손에는 종려가지를 들었다. 우리는 문화가 달라서 종려가지를 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유대인들은 손에 종려가지를 든 것을 보면 금방 그 뜻을 안다. 바로 기쁨이다. 축제이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맞을 때 종려가지를 흔들며 맞는 것이다.

➃ 이렇게 흰 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든 셀 수 없는 무리들이 어디에 서 있는가?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 있다. 6장의 여섯 번째 인재앙에서 땅에 속한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이 그 얼굴을 나타내실 때, 그 진노하심이 너무 두려워서 산과 바위를 보고 제발 우리 위해 떨어져 달라고 애원했었다.

그런데 지금 흰 옷을 입은 셀 수 없는 이 무리들은 바로 그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 앞에 아무 두려움 없이 어엿이 서 있다.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기뻐하며 서 있다. 이들은 하나님이 진노하실까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길까 염려하지 않는다.

➄ 도리어 저들은 큰 소리로 외쳐 찬송하고 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 찬송은 계시록에 나오는 여섯 번째 찬송이다. 4-5장에 보면 하늘의 신령한 천사들의 입을 통해 다섯 번의 찬송이 이미 울려 퍼졌다. 이제 여섯 번째 찬송이 울려 퍼지는데, 천사들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이다. 그러기에 저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구원하신 은혜를 찬송한다.

억만 죄악으로 멸망당할 죄인을 위해 아들을 보내주신 보좌에 앉으신 이의 사랑을 찬송하고, 우리 위해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구속의 은혜를 찬송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이렇게 구원의 은총을 찬송할 때 저들은 맥없이 힘없이 찬송하지 않는다. ‘큰 소리로 외쳐’ 찬송한다. 구원의 감격에 벅차서 온 마음을 다하여 찬송하는 거다. 셀 수 없이 많은 무리가 한 마음 감격하여 부르는 찬송을 상상해 보라. 장차 저와 여러분도 감격하여 찬송하는 저 무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서 있을 것이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3. 이어지는 11-12절을 보면 모든 천사들의 화답송이 울려 퍼진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는 영광스러운 구원의 찬송을 들을 때, 천사들도 감격해서 모든 영광과 존귀와 좋은 것을 모두 하나님께 돌리며 엎드려서 경배하고 찬송한다.

 

 

4. 이렇게 흰 옷 입은 무리들은 영광스러운 하늘 보좌 앞에서 천군천사와 함께 기쁨의 찬송을 부르는데,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어디서 온 자들인가? 무얼 하던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큰 영광과 복을 받게 되었는가? 도대체 이들이 이런 영광을 얻는 이유가 뭔가?

14절에서 답한다. 같이 읽자.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하늘 보좌 앞에 승리자로 서서 찬송하는 저들에 대해 두 가지를 말씀하신다. 첫째 큰 환난에서 나왔다고 하신다. 둘째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희게 씻었다 하신다.

여기 ‘큰 환난’은 성도가 믿음 때문에 당하는 모든 고난과 아픔을 의미한다. 마지막 승리자로 영광의 찬송을 부르기 전에 모든 성도는 이 땅을 사는 동안 ‘큰 환난’을 겪는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 나라를 위하여 ‘큰 환난’을 겪지 않고 흰옷을 입을 성도는 없다. 큰 환난을 지나지 않고 영광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성도는 없는 거다. 우리 성도는 큰 환난을 통해서 마지막에 보좌 앞에서 부를 영광의 찬송을 배우게 된다(요16:33). 그러기에 행14:12에서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도 당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성도가 당하는 이 큰 환난은 물론 인 재앙이나 나팔 재앙 혹은 대접 재앙에서 말하는 그런 재앙이 아니다. 인재앙 나팔재앙 대접재앙은 하나님이 세상에 부으시는 것들이라 했다. 그래서 성도가 당하는 ‘큰 환난’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악한 마귀와 불신 세상 때문에 당하는 핍박과 환난을 의미한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심같이, 우리도 반드시 큰 환난의 시간을 통과해서 저 영광스러운 하늘 집에 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래서 예수 믿는 길에 환난이 있고 낙심하지 말고, 험난하다고 이상하게 여기도 말아야 한다. 예수님 때문에 환난이 오고 어려움이 닥치면 ‘아 내가 예수를 제대로 믿기는 믿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믿음 때문에 당하는 환난이 없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이처럼 성도는 반드시 큰 환난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러면 어떻게 이 ‘큰 환난’에서 실족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는가?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하신다. 만약에 우리의 힘과 지혜로만 ‘큰 환난’을 지나서 구원 받으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큰 환난’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있지 않고 어린 양에게 있기에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모든 죄와 어둠과 마귀의 권세에서 건져, 우리 옷을 희게 씻어 주심으로 우리는 이길 거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능력이 되어 큰 환난이라도 능히 이기는 거다. 예수 보혈이 우리를 죄의 유혹에서 이기게 하실 것이요, 어린 양의 피가 우리를 세상의 미움과 핍박도 견디게 할 것이다. 승리하신 어린 양의 보혈이 우리 심령을 깨끗하게 함으로, 죄악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마귀의 권세까지 능히 이기는 것이다.

 

 

4. 오늘 마지막 단락 15-17절은 승리한 하늘 교회가 누리는 축복에 관한 말씀이다.

 

1) 먼저 15절이다.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해 장막을 치시리니’. 우리 성도가 이 다음 하늘 세계에 가서 누릴 축복의 핵심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뵈옵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며 경배하는 일이다. 물론 그 날에는 우리의 모습도 지금같이 연약하고 죄 많은 상태로 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같이 변화될 것이다. 그렇게 변화된 가운데 영광의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과 한없는 은혜의 교제를 나누며 살 것이다.

사실 영광의 하나님을 친히 만나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요 축복인지를 지금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한다. 우리 속에는 아직도 부패한 본성의 찌꺼기가 너무 많아서, 주일날 한 시간 예배드리는 것도 지루할 때가 있는데,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예배한다면 그게 무슨 기쁘고 즐거운 일일까 염려스러운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아직 영광의 하나님을 있는 그래도 만나지 못했기에 드는 허망한 생각이요, 죄악된 본성 때문에 참되고 신령한 기쁨을 맛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다. 영광의 하나님을 친히 만나고 우리 자신도 영광스럽게 변화를 입은 후에 보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하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이요 축복이며, 새로운 기쁨이 끊임없이 거기서부터 솟아나는 삶이 될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여행을 가게 되면, 여행지도 좋아야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곳을 여행해도, 같이 동행하는 사람이 원수 같은 사람이면 결코 그 여행이 기쁘지 않다. 반면에 그다지 아름답지 않는 곳을 여행해도, 정말로 내가 좋아하고 또 나를 좋아하는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행복한 여행이다.

마찬가지다. 저 하늘 세계가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어서도 좋지만, 그곳에서 가장 복된 일은 좋으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에 하늘에서의 삶은 복된 것이다. 우리 성도가 하늘 세계에서 누릴 축복의 핵심은 바로 영광스럽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거기에 있는 것이다.

 

2) 이렇게 하늘세계에서 성도가 누릴 축복의 핵심은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인데, 마지막 16-17절을 보면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거하기 때문에 덤으로 주어지는 축복에 대해 3가지를 더 말씀하신다.

➀ 첫째,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는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여러 가지 굶주림과 목마름을 경험하고 산다. 어떤 분은 육신적으로 가난하고 어려워서 늘 세상살이 염려에 매여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산다. 육신의 양식은 부족함이 없는 분들도, 그 마음에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 때문에 목말라 하며 살 때가 많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주리고 목마를 때가 너무 많다. 그런데 하늘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육신의 욕망도, 마음의 갈급함도, 영적이 목마름도 전혀 느낄 일이 없도록, 항상 배부르고 만족하고 항상 충족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 보며 시기할 일도 없으며, 내일 무엇을 먹을까 생각하며 염려할 일도 없다.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거다.

➁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거할 때 둘째로는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할 일이 없다. 여기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두려움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을 살 때 사실 수많은 위험과 두려움에 싸여 산다. 이미 인재앙에서 살핀 대로 끊임없는 전쟁과 갈등이 우리 삶을 둘러 싸 있다. 온갖 재난과 사건들이 우리 삶을 위협한다. 무작위로 찾아오는 육신의 질병이 우리 마음의 평안을 가져간다. 거기에 더해서 우리 성도는 믿음으로 인해 미움 받고 박해 받고 환난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저 하늘에서는 이 모든 위험과 두려움에서 벗어난다. 우리 육신을 상하게 할 모든 위험이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 마음과 영혼을 해롭게 할 아무것도 있지 않는다. 주 하나님이 우리의 완전한 피난처요 산성이 되사, 우리는 영원하고도 완전한 평안을 누릴 것이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하며’.

➂ 영광의 하나님과 함께 거함으로 인해 마지막 세 번째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백성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다시는 애통하고 눈물 흘릴 일이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 위해 아파했던 것에 배나 갚아 주실 것이다. 우리가 영혼을 섬기기 위해 고통했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으로 더해주실 것이다. 그야말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아무 부족함이 없도다’하고 날마다 찬송하며 기뻐하게 될 것이다. 모든 고통과 슬픔과 아픔은 기쁨과 감격에 삼키운 바 될 것이다.

제가 여기 계7:17 말씀 나눌 때마다 농담 삼아 하는 얘기가 있다. 이 다음에 천국 가서 하나님이 우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생명수 강으로 데려가서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는데,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씻어줄 눈물이 없으면 어찌되는가? 하나님 나라 위해 흘린 눈물, 주님 복음 위해 흘린 눈물, 한 영혼 구원하려고 흘린 눈물이 없으면, 그날 우리는 참 민망할 거다. 그러니 그 날에 하나님이 씻어주실 하나님 나라 위한 눈물이 있는 인생 되시기 바란다.

 

 

결론.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의 승리한 교회가 누릴 영광스러운 축복을 바라보라. 그래서 아직 이 땅에서 믿음의 순례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예수님 십자가 사랑 힘입어 큰 환난이라도 능히 이기고 하늘나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