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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이성진
  • Dec 16, 2025
  • 7
  • 첨부1

25-50

제목 : 유종의 미를 위하여 12:1-3 찬송 : 120, 시선/여정

 

오늘이 12월 둘째 주일이니까,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지막 달 12월이 되면 대개 생각이 많아집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생각도 하고, 새해에 대한 소망을 품기도 합니다. 12월에 또 하나 생각하게 되는 일은 유종의 미입니다. 어김없이 연말이 찾아오듯 내 인생에도 내 신앙 여정에도 마지막이 올 것인데, 끝까지 인생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끝까지 내 믿음도 잘 지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 시간이 오면 어떤 사람이 가장 안타까운 사람이겠습니까? 믿음의 길 들어섰다가 중간에 낙오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모든 것을 환하게 알게되는데, 세상 살 동안 내가 버린 믿음의 길이 영생의 길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후회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과 탄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모두가 끝까지 믿음을 잘 지켜 살자는 의미로 유종의 미를 위하여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말씀과 삶 나눔

1. 우리 믿음의 여정을 히12:1-3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습니까?

12장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사는 평생의 여정을 경주에 비유한다. 이러므로 ..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1)’ 믿음의 여정이 경주는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주이다. 단거리 100m 같은 경주는 완주하는게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마라톤 같은 장거리 경주는 아무나 참여할 수도 없고, 참여했다고 다 완주하는 것도 아니다. 평생을 달려야 하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믿음의 마라톤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일은 너무나 후회할 일, 목숨을 잃는 것보다도 더 안타까운 일이기에, 하나님은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있도록 지극한 사랑으로 권면의 말씀을 주신다.

 

2.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잘 완주하기 위한 히12:1-3의 세 가지 권면을 말해 봅시다.

☞ ① 허다한 증인들의 응원 소리를 잘 듣자12장 앞 11장에 나오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을 의미한다. 우리 앞서 세상을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으로 아름답게 잘 마무리한 믿음의 선배들의 발자취가 우리 믿음의 삶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들을 벗어버려야 한다.’ 믿음으로 세상을 달려가는데 발목을 무겁게 만드는 것들을 다 벗어 버려야 한다. 1절 후반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믿음의 경주를 할 때 벗어버려야 할 것이 둘인데, 첫째는 모든 무거운 것이라 했다. 여기 든 무거운 것 그 자체는 죄라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것은 무거운 것들만 아니라 얽매이기 쉬운 죄도 있다. 죄를 가리켜 얽매이기 쉽다고 그랬는데, 죄는 믿음의 경주를 방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우리 발목을 끈으로 묶어 놓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번역을 조금 바꾸면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되게 하시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우리 믿음을 시작하신 분이요 이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우리 믿음의 경주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우리 믿음이 결국 완성에 이르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라고 했는데, 여기 바라본다는 것은 한 번씩 쳐다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시선을 고정시킨다, 주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는 뜻이다.

 

3. 다니엘 욥 요셉은 어떤 면에서 우리 믿음의 경주를 응원합니까?

☞ ① 다니엘은 정말 아무 잘못 없는데 다만 하나님께 기도했단 이유로 사자굴에 던져진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자의 입을 막으셨다. 믿음 때문에 핍박 받는 성도들은 다니엘 같은 증인들의 응원소리를 들으면서 담대함을 얻고 믿음의 경주 끝까지 달릴 수 있다.

도 사람이기에 중간에 자기 생일을 저주하기도 하고, 하나님과 한 번 논쟁해 보고 싶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욥은 끝까지 하나님 향한 믿음을 붙잡았다. 내가 ..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6:1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나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16:20)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내가 ..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낯선 사람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19:27) 내가 가는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23:10)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 향하여 끝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머금고 끝내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던 욥은 결국 그의 눈으로 친히 하나님을 뵈었고 갑절의 복과 은혜을 받았다.

형들을 위해 먹을거리 가지고 해맑게 찾아온 요셉을 잡아 옷을 찢고 웅덩이 빠뜨린 사람이 누구였는가? 심지어 요셉을 죽이려 한 사람은 누구였는가? 30에 동생을 아예 노예로 팔아먹은 사람은 누구였는가? 모두가 다 혈육으로도 형제요 영적으로도 믿음의 울타리 안에 있던 형들이었다. 요셉이 원한에 사무쳐 살았다면 요셉의 인생은 그냥 분노 속에 노예로 살다 끝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요셉은 그렇게 기막힌 일을 형제들에게 당하고도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하나님 눈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고 살았다. 하나님 눈 의식하면서 입과 몸을 삼가하며 살았다. 훗날 복수할 기회가 왔어도 하나님 안에서 다 용서하고 사랑하였다. 그런 요셉 위해 하나님은 요셉이 어디서 무얼 해도 형통하게 하셨다. 그래서 요셉은 교회 밖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사람 있어도, 그 사람 인간적으로 상대하지 말고 하나님 바라보고 내 자신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길을 가는 일에 집중하면, 하나님이 모든 일들을 선으로 바꾸어 주신다고 우리에게 응원해주는 것이다.

 

4. 나에게는 벗어버려야할 무거운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5. 나는 자녀에게 지금 어떤 신앙의 발자취를 남겨주고 있습니까?

6. 주님께 우리 시선을 고정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시선이 주님 아니라 사람을 보면, 이 사람도 내 마음에 시험거리 저 사람도 내 믿음의 시험거리다. 그래서 주저앉는다. 우리 시선이 주님 아니라 환경을 보면 내일에 대한 염려가 폭풍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아 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머뭇거리게 된다. 우리 시선이 또 주님 아니라 나를 보면, 조금만 뭔가 더 가지거나 일이 잘 되면 교만의 올무에 넘어지고, 조금만 뭔가 덜 가지거나 일이 잘 안 되면 열등감의 올무에 걸려 넘어진다. 그래서 믿음의 경주에서 우리 시선은 한 시도 주님에게서 옮겨지면 안 되는 것이다. 주님에게 우리의 시선이 고정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바울과 실라를 보라. 복음 전하다 매 맞고 억울하게 옥에 갇혔어도, 지금 내가 당하는 일을 내 머리로는 다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주님이 택한 백성이요 사도이기에 나에게 일어나는 이 일 배후에 주님이 계시고 주님이 구원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 옥에서도 원망 불평 하지 않고 감사와 찬송을 드렸다. 이에 하나님이 그들이 믿은 대로 옥터를 뒤흔들고 옥문과 차꼬를 다 풀고 열어 버리셨다. 주님에게 우리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면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포기할 이유도 없고 주저앉을 이유도 없다. 주님에게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힘과 은혜가 주어진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의 경주에서 끝까지 달려갈 모든 힘과 지혜 은혜와 능력의 창고와 같으시다.

 

함께 하는 기도

구름같이 둘러싼 선배들의 응원 소리를 듣는 귀를 주셔서, 끝까지 믿음의 경주 완주하도록

고난에 고난이 있는 성도들도 욥처럼 끝까지 하나님 바라봄으로 마침내 복과 은혜 받도록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말씀대로 기도함으로 무거운 것을 벗고 달려가도록

우리의 시선이 세상도 타인도 나 자신도 아니라, 오직 주님에게 고정되어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푯대 향해 달려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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