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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최석영
  • Sep 25, 2025
  • 39
  • 첨부1

 제목 : 아름다운 인생, 칠전팔기의 믿음 요한복음 13:21-35

  찬송 :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주님여 이 손을, 너는 내 아들이라

 

■ 시작하는 이야기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에서 말합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아름답고 꽃이 피고 향기를 내는 일은 순탄하게 되지 않고 시련과 아픔, 그리고 거기서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견디면서 된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잠 24:16) 의인은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의인은 비록 연약하여 넘어질 수 밖에 없지만 그 때마다 주님의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 쓰러짐과 다시 일어섬을 반복하며 우리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게 됩니다. 

 

■ 말씀과 삶 나눔

1. 유다가 주님을 은 30에 팔려는 마음을 굳게 가진 것 아시고도 주님은 유다로 인해 마음이 어떠하셨고 또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심령이 괴로워...”(21절) 

  예수님은 유다의 굳은 마음을 보시고 분노하거나 배신감을 느끼시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다를 보며 마음 아파하시며 서글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곧장 버리시지 않고 계속해서 고쳐주려 하십니다.   

 

2. 주님이 유다에게 돌아서라고, 다시 주님 손 잡고 일어나 믿음의 길로 가자고 세 번 손을 내미십니다. 그 세 번의 내용을 말해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절) 

  지금까지는 유다의 마음을 아시고도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에게 주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전능한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 유다의 마음을 알고 계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완고한 유다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한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도, 자기 자신도 속입니다.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26절) 

  예수님께서는 주를 배반할 자가 누구인지를 떡 조각을 주심으로 표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 26절에 따르면 이 때 예수님은 유다에게 떡 조각을 주신 후 다른 제자들에게도 떡을 나눠주셨습니다. 유다가 배신자라는 것이 발각되지 않게 하시면서 유다에게는 손을 내밀어 주시고, 동시에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어주실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27절에서는 “조각을 받은 후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라고 말씀합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사랑의 손을 내밀어주시는 순간에 사탄이 주는 마음을 붙잡은 것입니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27절)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다시 유다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이 말씀을 하지 않으셔도 유다는 이미 자기가 마음 먹은대로 예수님을 배반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다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30절은 말씀합니다.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끝내 유다는 예수님의 손을 뿌리치고 어둠의 길로 들어갑니다.

 

 

3. 주님이 아버지를 어떻게 영화롭게 하였고, 아버지는 독생자 하나님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십니까?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31-32절) 

  예수님은 가룟 유다 뿐 아니라, 남은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린다고 할지라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것입니다. 결국 순종함으로 이 길을 가심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십니까? 3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예수님의 손에 맡기”십니다. 그 뿐 아니라, 3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께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종의 길 끝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나라가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순종하는 이 땅에서의 삶은 좋은 선물이고, 이후에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는 더 좋은 선물인 것입니다

 

4. 베드로의 넘어짐과 다시 일어섬에 대해 말해봅시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37절) 

  베드로는 주님이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고백합니다. 언뜻보면 베드로의 고백은 아름다워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3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이후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세 번 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함으로 넘어지고 맙니다. 유다의 배신과 베드로의 부인 자체를 두고 보자면 누구의 죄가 더 큰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베드로는 한 부분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부끄럽고 염치 없지만 주님의 손을 붙잡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선진들은 다 넘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다시 일어났기에 그 인생들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5.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내 인생에 대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봅시다. 

  우리네 인생은 마치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떠서 서쪽 바다 너머로 지는 것과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시작인 일출이 먹구름으로 가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성령의 은혜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네 인생의 일몰은 단연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넘어질 때마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서서, 어린시절보다 아름다운 장년, 그보다 아름다운 노년, 그보다 더 아름다운 영원이 되기를 기대하며 소망합니다.  

 

 

■ 함께 하는 기도 

때로 넘어지고 실수해도, 주님은 언제나 손 내밀어 주심 알고 다시 주님 손 붙잡게 하소서

마귀의 생각과 세상 사상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오직 주님만 왕으로 모시게 하소서

주님처럼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좇아 살아서, 끝까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인생되게 하소서

부활의 권능과 한량없는 성령의 은혜 주셔서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끝까지 주를 따르게 하소서

기장교회 모든 성도들 영육 간에 넘치는 은혜와 복 주셔서, 주님 손잡고 가치있게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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