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구역공과 25-16
제목 :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눅24:1-12,36
부활주일입니다. 우리 주님 우리 위하여 온갖 고난과 멸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주님의 죽음은 죄인들을 살리려는 거룩한 죽음이기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삼일 만에 죄와 죽음과 무덤의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이 전부라고 죽으면 끝이라고 큰소리치며 땅만 보고 삽니다. 그러나 막상 죽음 앞에 서면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인간 존재 깊은 곳에 심어 놓으신 영혼의 소리, 양심의 외침이 있어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자는 인생의 연약함을 알기에 겸손하게 큰소리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지만, 그러나 죽음 앞에 담대합니다. 나는 죽음에 대한 대안이 없지만, 우리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구주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우리에게 영원한 부활생명 주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아멘.
‘예수 안에서 나도 부활할 것입니다.’ ‘진실로 부활할 것입니다.’ 아멘.
■ 말씀과 삶 나눔
1. 주님 없는 세상 사람은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들 가집니까? 이에 비해 우리 신자는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 갖습니까?(고전15:55 참조)
☞ 동서고금을 떠나 사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을 다양한 방식으로 극복해보려 애쓴다. 죽음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저 사는 데만 집중해 살기도 하고,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죽음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 보려고 한다. 하지만 신자는 죽음 앞에 두려워 떨거나 서러워하는 게 아니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15:55)’ 라고 죽음을 향해 외치는 자들이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더 이상 사망이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망이 승리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더 이상 죽음의 권세가 위협해도 두렵지 않다는 말이다. 성도는 영원한 이김을 주시는 그리스도 부활의 능력으로 죽음을 비웃어버리는 자들이다. 죽음의 권세 향해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담대하게 승리를 선포한다.
2. 주님의 부활이 우리 신자의 삶에 가져오는 변화가 어떤 것인지 무덤을 찾아갔던 여인들의 경우를 가지고 말해 봅시다.(눅24:8-9참조)
☞ 누가복음 24장 8-9절. ‘그들이 ..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이에게 알리니’ 주님 부활은 죽음의 땅을 찾아 죽음을 위해 일하려 하던 여인들로, 이제 죽음의 땅을 떠나 사명의 땅으로 나아가게 한다. 부활신앙을 회복한 여인들은 무덤을 떠나 두려움에 빠져있는 다른 제자들을 위로하려고 찾아갔다. 기독교 신앙에서 주님이 묻혀 있는 무덤은 없다. 향품을 발라줄 시체도 없다. 그러기에 주님은 무덤 대신에 눈을 들어 세상을 보라 하신다. 주님의 시체 대신 주님이 사랑하여 목숨주신 영혼들을 보라고 하신다. 주님을 위해 향품을 준비하는 대신 주님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들려줄 복음의 나팔과 사랑의 손을 준비하라 하신다.
3. ‘주님이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는 말씀이 신자의 죽음에 대해 주시는 위로를 말해 봅시다.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주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는 말은 주님 안에 살던 우리 신자도 숨이 끊어질 때 이미 다 살아났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여기 있지 않지만 낙원에 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다 숨이 멈추는 순간 우리 영혼은 주님 계신 낙원에서 바로 살아난다. 우리 신자에게 있어 죽음은 여기에 있지 않고 낙원에서 살아나는 일일 뿐이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살아생전 숨 쉬고 죽어 세상 떠나서 거룩하신 주 앞에 끝날 심판 당할 때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부활하신 주님 안에 있는 우리 신자에게 죽음은 단지 찬송가의 가사처럼 만세 반석 열리는 영광의 문일 뿐이다.
4. 우리가 죽음의 길 갈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 주십니까?(고후5:1 참조)
☞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의 길 갈 때 우리 영혼을 너무나 존귀하게 맞아 주신다. 나아가 우리 위해 좁고 썩을 관이 아니라, 영원한 집을 준비해 주신다.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 하늘의 영원한 집은 이중이다. 우선 영혼만 거하는 낙원이 있고, 장차 부활의 몸을 입고 거할 새 하늘과 새 땅도 있다. 우리는 썩어질 관이 마지막 집 아니다. 하나님이 우리 위해 영원한 영광의 집 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살았을 때나 죽을 때나 너무나도 존귀하게 대해 주시니, 우리도 하나님을 가장 존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나아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 사랑으로 존귀하게 대하면서 살아야 한다.
5. 부활신앙이 우리가 세상사는 동안 어떻게 세상과 다르게 살게 합니까?
☞ ‘부활신앙은 부활을 모르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한다.’ 주님이 부활했다는 천사의 말을 듣고 여인들은 주님 말씀을 기억한다. 그리고 더 이상 무덤에 머물 이유가 없다. 무덤을 떠난다. 그렇게 주님 말씀을 기억하고 부활신앙으로 드디어 죽음의 땅을 떠날 때 주님이 친히 찾아와 만나주신다. 이에 여인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주님 발을 붙잡고 기쁨으로 경배한다. 부활신앙으로 주님을 만났을 때 여인들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주를 경배한다. 부활신앙은 우리 신자에게 항상 주를 경배하게 한다. 기쁠 때도 경배하지만 슬플 때도 경배한다. 죽음도 이긴 주님이 우리 슬픔도 이기게 하실 줄 알기 때문이다. 주님 부활도 나의 부활도 믿는 신자는 부활 때문에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소망,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기쁨. 세상이 이해 못 할 섬김의 삶을 살게 된다.
■ 함께 하는 기도
⚫ 예수 안에서 사망의 시대가 끝난 줄 알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확고한 믿음에 서도록
⚫ 부활의 주님 손잡고, 이제 주님이 사랑하는 영혼들 찾아가서 부활의 기쁨으로 섬겨 살도록
⚫ 우리를 너무나 존대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 안에, 만나는 모든 사람을 존대하며 살도록
⚫ 부활신앙으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주님 찬양하고, 결국 승리주실 줄 알고 담대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