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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이성진
  • Jan 16, 2025
  • 26
  • 첨부1

25-2

제목 :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요나 1:-16

 

시작하는 이야기

 

앞으로 3주간 이어지는 신년사경회를 통해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여러분 한분 한분을 너무나도 사랑하십니다. 오늘 요나서 말씀을 통해 요나를 끝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그 사랑이 한편으로는 우리 생각과 다르게 과격하고 집요해서 깜짝깜짝 놀라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한번 곰곰이 그 놀라운 사랑을 묵상해볼 때 그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너비에 압도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요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한없는 감동과 감격으로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과 삶 나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그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6:16)을 적고 암송해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시작부터 선포하고 계신 것 입니다. 11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2025년 한해도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616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요나가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2, 9)

 

2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였던 요나는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자신이 니느웨에 가서 그들의 죄를 외치면 니느웨가 회복될 것을 알았습니다. 그 증거로 요나는 42절에서. 주께서는 은혜롭고 자비하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실 줄을 내가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요나의 마음이 상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적국인 앗수르의 수도였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 될 만큼 매우 악독한 곳이었습니다. 앗수르의 악독함은 역사를 돌이켜 보아도 비교할 곳이 없을 만큼 잔인하고 극랄 하였습니다. 사지가 멀쩡한 적을 포로로 사로잡은 후, 두 다리와 한쪽 팔을 잘랐다고 합니다. 그나마 한쪽 팔을 남겨둔 이유는 죽어가는 포로의 그 손을 잡고 조롱하기 위함이었다고 역사는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굉장히 잔인하고 악랄한 나라가 바로 앗수르 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앗수르가, 니느웨가 회복된다니 그리고 거기에 요나 자신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요나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더라도 이것만은 순종할 수가 없었습니다.

9절에서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나는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보면 요나가 자신이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는 것보다 먼저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나는 히브리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보다 자신의 민족이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나를 규명할 수 있는 여러 정체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에게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는, 내가 가진 것들을 잃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면서 정작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요동함이 없다면 그런 우리 모습을 그리스도인답다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이 여러 정체성들의 뒤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에게는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인이라는 정체성은 요나로 하여금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멀리, 더 멀리 도망치게 만들었습니다. 이게 요나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우리가 가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들의 저 뒤에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다!라고 말을 할지라도 서로를 향해 비난하기를 멈추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여러 가지 삶의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것도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넘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우리가 가진 최고의 정체성으로 삼지 않으면 우리도 요나처럼 언제라도 기꺼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어도 듣기만 할 뿐 순종하지 못하는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를 어떻게 대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요나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끝까지 쫓아오셨습니다. 폭풍우로, 큰 물고기로, 박넝쿨로 끊임없이 쉬지 않고 요나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도망치는 요나에게 폭풍우를 보내어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4절 말씀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창을 던지는 것처럼 큰 바람을 바다위에 던지시매, 배가 깨지기로 생각했다. 이것은 피조물도, 심지어 사람이 만든 배조차도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 마땅히 순종해야 하는 선지자 요나를 몰아세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말씀하시며 거친 폭풍으로 요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니 요나의 입장에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그래서 다시 배 밑으로 하나님을 외면해 도망쳐버립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요나가 무시하고 있던 선장을 통해 다시 찾아오십니다. 선장의 입에서 하나님께 들었던 음성! 일어나라!는 음성이 들려옵니다. 요나는 이 상황이 몹시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수치스럽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격렬하게 이제는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서 저항합니다. 나를 바다에 던져라 말합니다. 나는 죽어버리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니느웨에 가는 것보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낫다고 이 악물고 저항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나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십니다.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를 죽음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당한 입장에서, 차마 상상도 가지 않는 물고기 뱃속에 갇혀버린 입장에서 요나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그렇게 달갑지 만은 않습니다. 그래서 2장에 보면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인지 불평인지 아리송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과 상황에 폭풍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추적하시기 위해서 따라오시기 위해서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요나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도망갔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쫓아가셔서 요나의 얼굴을 대면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내신 것이 폭풍입니다. 배가 깨질 것 같은 폭풍입니다. 이것이 때로는 요나같고, 때로는 니느웨 같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4. 요나를 구원한 물고기는 요나를 어디에 토하였습니까?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요나를 어느 자리로 이끌어가십니까?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로 요나를 구원하신 것에서 그치지 아니하시고 그 요나를 다시 육지로 옮기셨습니다. 물고기로 하여금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 요나를 다시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요나가 다시 살게 되었다고 해도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이제 막 육지로 나온 요나가 과연 온전한 모습이었겠습니까? 몰골이 엉망이었을 겁니다.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에게 추스릴 시간을 주지 않으십니다. 대신에 곧바로 다시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3장입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에 불순종한 선지자를, 실패한 우리를 다시 똑같은 명령 앞에, 우리가 도망친 그 말씀 앞에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불순종한다고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불순종 때문에 우리와 관계를 끊거나 그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불순종했다고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과 불순종에 상관없이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5. 하나님의 사랑이 이끌어 가시는 나의 사명의 자리는 어디인지 나눠봅시다.

 

함께하는 기도

 

-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6:16)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도록

-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니라 그저 그 은혜가 필요한 자임을 깨달을 수 있도록

- 죄인에게 은혜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내 모습 그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도록

- 하나님의 사랑이 인도하는 그 사명의 자리에 우리가 설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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