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구역공과 24-37
구역공과 37
제목 : 나그네의 찬송 제목 벧전1:1-7
찬송 : 나는 길 잃은 나그네였네, 마라나타
■ 시작하는 이야기.
명절이 되면 고향이 생각나는 까닭은 우리 인생은 근본적으로 나그네여서 우리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심어 놓은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 곧 귀소본능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마음에는 이 땅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영원한 하늘본향에 대한 그리움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 영원(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3:11)’
그래서 이번 주는 추석 명절을 맞아 영원한 하늘 본향을 찾는 우리 성도의 믿음의 길에 대한 벧전 1장 말씀을 잠시 생각하려 합니다.
■ 말씀과 삶 나눔
1. 눅2:29,32 히11:13-16을 읽어 봅시다. 믿음의 사람들은 살아있는 날 동안 잘 살고 동시에 늘 어떤 마음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까?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 주의 백성의 영광이니이다.(눅2:29,32)’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하늘에 있는 것이라 .. 이러므로 하나님이 ..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3-16)’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과 구주의 피 뿌림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성도들을 ‘나그네’라 부른 것은 항상 ‘나그네 의식’ 가지고 살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모든 하나님 백성은 ‘나그네 의식’ 속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고향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 본향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하나님 백성은 ‘나그네 의식’ 속에 살아야 한다는 말은 늘 떠날 준비를 잘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시간이 소중하지 않다거나 육신의 생명은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허락하신 날 동안 믿음으로 건강 잘 지키고 사명 위해 잘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애씀과 비례해 떠날 준비도 잘 해야 하는 것이 ‘나그네 의식’ 입니다.
2. 우리 성도를 나그네로 부르는 일은 세상이 말하는 나그네와는 의미가 사뭇 다릅니다. 우리 성도는 나그네이기에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43:21과 느8:10을 읽어 봅시다. 우리 나그네 길에서 찬송이 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흩어진 나그네(에게)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3절)’
베드로는 나그네 된 우리 성도의 삶에 제일 어울리는 일이 찬송이라고 합니다. 성도는 서러움에 늘 눈물짓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갈 길을 몰라 정처 없이 방황하는 나그네도 아닙니다. 오히려 죄 많은 세상에서 분명한 하늘 본향을 바라보기에 절로 찬송하게 되는 나그네입니다. 숲속 옹달샘에서는 언제나 맑은 물이 솟아나듯 하늘 나그네의 영혼에는 자연스럽게 찬송이 흘러나옵니다.
성경을 보면 ‘내가 주를 찬송합니다.’는 고백이 있는가 하면 ‘내 영혼아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도 있다.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리라’ 하는 결단도 있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29:13)’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1-2)’ 찬송한다는 고백만 아니라 찬송하라는 명령이나 찬송하리라는 결단도 있는 것은 우리 찬송이 다양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느껴져서 자연스럽게 찬송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고난 중에 의지적으로 드리는 찬송도 있습니다. 너무 기뻐서 나도 모르게 부르는 찬송도 있지만 어려움 가운데서 주의 도우심을 바라고 부르는 찬송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도 찬송하는 나그네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평생 사는 동안 이런 일도 저런 일도 겪게 하시는 것은 이런 찬송으로도 저런 찬송으로도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우리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다 우리의 찬송의 재료들입니다. 이렇게 늘 찬송하는 나그네로 살아갈 때 찬송은 우리 나그네 길에 어떤 어려움도 시험도 다 이기고 승리하게 만드는 큰 위로와 능력으로 역사할 것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찬송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8:10)’
3. 나그네길 가는 동안 우리 성도가 늘 하나님께 찬송할 세 가지 제목을 말해 봅시다.
① 3절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첫 번째 찬송 제목은 구원의 은혜, 거듭남의 은혜 입니다.
죄가 왕 노릇하는 이 세상에 육신으로 한 번만 태어난 사람은 이 땅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과 그 후에 영원한 심판에 처해지는 죽음까지 두 번 죽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아 두 번째 태어난 사람은 육신의 죽음 이후 정죄 받는 영원한 심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두 번 태어남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는데, 우리의 무슨 자격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하셨습니다. 세상은 흔히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것은 우리에게 뭔가 될 것 같은 가능성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무한한 긍휼 때문 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무슨 자격이나 가능성 때문 아니라 그저 긍휼로 구원해주신 새생명의 선물은 우리 성도의 영원한 찬송이 됩니다.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시106:2)’
② 두 번째 찬송의 제목은 영원한 산 소망의 유업입니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3b-4)’ 세상은 그저 정처 없이 떠나는 인생이니 너무 욕심 부릴 것 없는 나그네라고 하는데, 믿음의 자녀는 나그네이기 때문에 허무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소망을 노래합니다. 이 땅에 마음 둘 진짜 고향이 없는 허무가 아니라 도리어 감사의 이유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그네인 우리에게 산 소망의 유업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산 소망’이기에 결코 헛되지 않는 거짓 없는 소망입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이라 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해 두신 이 유업은 이 땅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썩지 않는다, 더럽지도 않다, 쇠하지도 않는다,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산 소망’을 붙들고 살면 우리는 정말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③ 세 번째 찬송 제목은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은혜’이다. 5절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우리를 주님이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때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나그네 길에 끝없이 환난의 바람이 불고 안과 밖으로 시험이 있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보호해 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보호하심으로 인하여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에서 능히 보호 받을 뿐 아니라 그 모든 시험이 결국 우리를 아름답게 빚어지게 하여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시는 날 칭찬 영광 존귀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 함께 하는 기도
⚫ 본향이 약속된 나그네임을 알고 오늘은 은혜 안에 사명을 위해 달려가게 하소서
⚫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일이 우리 찬송의 이유가 되어 날마다 찬송하는 나그네로 살게 하소서
⚫ 구원받은 우리 위해 하나님 준비한 하늘 기업 있음 알고 땅의 것에 집착하지 않게 하소서
⚫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 보호하신다는 약속 붙잡고 다시 오실 주님 맞을 준비 잘 하도록
⚫ 가을학기 각종 사역들 위해 – 일대일, 전도팀, 아기학교, 구역/권찰회, 부부세미나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