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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이성진
  • May 27, 2024
  • 51
  • 첨부1

구역공과 24-21

성도의 합당한 예절로 영접하고

16:1-5 (220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주 안에서 우린 하나)

 

시작하는 이야기.

로마서는 36명이나 되는 성도들의 이름들을 거론하면서 긴 문안인사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거론하는 바울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다 모르기는 해도 바울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적을 때마다 가슴 속에는 감사와 기쁨이 넘쳤을 것 같습니다. 내 가는 나그네 길에 이 성도가 함께 해 주어서 참 고맙다, 복음 위해 걸어온 가시밭길에 이 성도가 말없이 아픔을 같이 해 주어 얼마나 힘이 되었든가! 그렇게 바울은 지난 세월들 사랑으로 함께 해 준 귀한 동역자들을 인한 벅찬 감사의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적었을 것입니다. 오늘 여기까지 믿음으로 사는 동안 우리 각자의 신앙여정에도 큰 위로와 힘이 된 귀한 성도들 얼굴을 떠올리며 감사하면서 이번 주 말씀 묵상해 보십시다.

 

말씀과 삶 나눔

 

1. 오늘 여기까지 믿음의 순례길 걷는 동안 나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 분들을 기억해 보십시다. 누가 언제 어떻게 큰 힘이 되었습니까?

함께 나누어 봅시다.

 

2. 로마서를 여자 일꾼인 뵈뵈를 통해 전하려는 것은 뵈뵈가 여러 사람과 바울의 보호자였기 때문입니다. 오늘까지 믿음으로 살 동안 나의 보호자가 되었던 분은 누구입니까? 혹은 나는 누군가에게 보호자가 되어 준 일이 있습니까?

함께 나누어 봅시다.

 

3. 우리가 서로 성도의 합당한 예절을 잘 지켜야 하는 이유를 말해 봅시다.(34:17-19 참조)

 

17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18 너희가 좋은 꼴을 먹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을 마시는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19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하셨느니라.(34)’

 

나는 하나님의 양이라 하면서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좋은 꼴과 좋은 물을 먹고 마신다. 그렇게 내가 하나님의 양으로 좋은 꼴과 좋은 물을 마셨으면 다른 양들도 좋을 꼴과 좋은 물을 마시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양들은 숫염소 같은 일을 한다. 그래서 다른 양들이 먹을 좋은 꼴과 물을 짓밟아 더럽힌다. 다른 양들이 하나님 주시는 좋은 꼴과 물을 먹고 마실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이다. 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 숫양과 숫염소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양의 탈을 썼지만 숫염소 역할을 하는 거짓 양은 진짜 양과 구분하겠다고 하신다. 다른 성도에게 무례하게 행함으로 마음에 상처를 주면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꼴과 좋은 물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다른 성도가 좋은 꼴과 물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합당한 성도의 예절 곧 서로를 존중하는 예절로 서로 대해야 한다. 서로 합당한 예절과 사랑을 베풀면 막혔던 은혜의 길까지 열리게 되는 것이다.

 

4.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하나님 나라가 필요한 곳에 머물고 하나님이 필요한 일에 자기를 드리는 일꾼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에베소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봅시다.

바울과 함께 고린도교회 사역을 돕다가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안디옥으로 가기 위해 에베소로 갈 때 브리스가 부부도 함께 한다. 그런데 에베소에서 배를 기다리는 시간에 바울이 복음을 전해 짧은 시간이지만 믿는 이가 많이 생긴다. 이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주님을 믿게 된 이 초신자들을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 부탁한다.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에베소교회 어린 신자들을 돌보아 달라고 부탁한다. 바울의 이런 부탁이 부부에게는 서운할 수도 있었다. 바울 곁에는 디모데와 실라도 있다. 그런데 그들은 데려가고 자기들은 남으라고 하니 서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들 부부는 그렇게 인간적으로 생각지 않고 이제 갓 믿기 시작한 어린 신자들을 우리에게 부탁하는 것을 감사하게 여기며 기꺼이 에베소에 머물러서 에베소교회를 돌보는 사역을 한다. 말하자면 부부는 하나님 나라가 필요로 하는 곳에 머물고 하나님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일을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신실한 동역자들이었다.

 

5. 바울이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에게 문안하라면서 세 가지 귀한 덕을 이야기 합니다. 어떤 덕들입니까?

 

첫째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한다. 성경은 브리스가 부부가 언제 바울을 위해 목까지 내놓았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하진 않았다. 다만 많은 성경학자들은 행19장 에베소사역 말미에 있었던 폭동 사건과 관련될 것으로 추측한다. 에베소는 아데미라는 큰 우상의 신전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아데미 여신상을 만들 팔아 고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이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 함으로 장사가 지장을 받아 폭동을 일으킨다. 그 폭동 때에 목숨을 걸고 바울을 구했다고 본다. 아무튼 브리스가 부부는 복음을 위해서는 어떤 위험이나 손해도 능히 감수하는 진짜 헌신된 일꾼이요 동역자였다. 하나님 나라 위하여 살다가 어려움이 오고 위험이 오면 바로 원망하고 회피하는 성도가 아니라, 어려움이 오고 위험을 만나도 하나님 위해 나도 뭔가 희생할 기회다 하고 더 헌신하는 멋진 동역자들이었다.

둘째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한다. 브리스가 부부는 로마에서 신앙생활 시작했고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를 섬겼다. 바울이 지금 로마서를 쓰는 시점에는 다시 로마교회에 가 있다. 하나님이 바울의 동역자로 쓰시려고 여러 교회들을 다니며 섬기게 하셨다. 그런데 브리스가 부부가 거쳐 간 교회들마다 저들 부부에게 감사한다. 말하자면 어디를 가도 브리스가 부부는 덕을 세우는 부부였다. 겸손히 섬기는 부부였다. 그러니 만나는 성도마다 거쳐 간 교회마다 이구동성으로 칭찬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셋째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하신다. 1세기 초대교회들은 오늘 우리와 같은 좋은 예배당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성전과 회당에서 모이기도 했지만,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더 이상 성전과 회당에서 모일 수 없게 될 때 큰 집을 가지고 있던 성도들이 헌신을 해서 자기 집을 예배 처소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래서 성경에는 누구누구의 집에 있는 교회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난다.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도 내 놓았던 동역자, 거쳐 간 교회들마다 감사하는 동역자인 브리스가 아굴라 부부는 마지막에 로마로 돌아가서는 바로 자기 집을 예배처소로 내 놓았다. 이에 바울은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 한다.

 

함께 하는 기도

 

평생 같은 믿음으로 생가고락을 같이 하는 동역자들 많이 만나 함께 주의 길 걷게 하소서

서로에게 합당한 예절을 잘 지킴으로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막히지 않고 잘 흐르는 교회

하나님 나라가 필요로 하는 곳에 가고,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일에 나를 드리는 청지기

어디를 가든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로 인해 감사하게 되는 그리스도의 향기 되도록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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