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구역공과 23-49
구역공과 49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원리
본문 : 롬 9:27-33 (찬송 : 지금까지 지내온 것, 구원으로 인도하는)
■ 시작하는 이야기
세월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오늘은 23년도 마지막 달 첫 주일입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달’에 이르렀습니다. 우리의 전 인생도 그럴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는데 어느 순간 ‘마지막 해, 마지막 달,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이 눈앞에 와 있을 것입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나를 찾아와 부를 때 어떤 마음이겠습니까?
우리가 요즈음 새벽마다 욥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어제(12월 1일) 본문이었던 욥기 27장에서, 욥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욥 27:7). 고난이 오기 전에도 세상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즐거워하여 경건하게 살았고, 고난 중에도 하나님 향한 순전한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욥은 마지막 순간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잘 살았다고 하나님께 감사할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12월을 시작하면서 우리도 마지막 날을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도 욥처럼 마지막 날 내 생애를 돌아보면서 잘못 살았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앞으로 남은 시간 온 마음 다해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 사랑하고 주의 일에 힘쓰면서 살아가십시다.
■ 찬양
■ 말씀과 나눔
1. 로마서 9장에는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역사에 대한 세 가지 질문에 답합니다.
세 가지 질문은 무엇이며, 바울은 어떻게 대답하였습니까?
① 첫째는 과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실패하지 않는 것이 맞느냐 하는 의문이다. 이에 바울은 많은 유대인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절대 실패가 아니라 단정한다. 이유는 진짜 유대인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동일한 믿음을 따라 하나님에게서 태어나는 영적출생에 의해 되기 때문이라 했다.
② 두 번째 문제는 구원이 하나님의 선택과 영적 출생으로 된다면 하나님이 불공평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다.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니 불공평하다 항변한다. 이에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은 놀랍게도 우리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100% 허용하는 신비한 것이요. 구원의 문을 만민에게 열어 놓으셨기에 아무도 불공평하다 말할 수 없다 하였다.
③ 세 번째 문제는 구원이 하나님 주권으로 시작되는 것이라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옳지 않다 하는 반문이다. 이에 바울은 진노의 그릇들을 향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심으로 기회를 주신 것을 들어 선하신 하나님이 선악 간에 행위보응의 원칙을 따라 심판하시는 일은 너무 합당하고 의로운 일이라 답변하였다.
2. 로마서 9장을 마치면서 하나님이 변개할 수 없도록 확정하신 구원의 원리를 어떻게 선포합니까?
27절이 하나님의 확고한 불변의 결정이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3. 열왕기상 19장에서 ‘남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사야 1:9에서 ‘남은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열왕기상 19장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 때의 사건이다. 이방 여인 이세벨을 왕비로 맞은 아합은 북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하나님 경외하는 백성을 심히 핍박하고 심지어 죽였다. 그래서 온 나라 전체가 배도의 길을 갔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갈멜산 사건을 계기로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돌아올 줄 알았다. 이세벨은 더 완악해서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살기만 등등하고 백성들도 왕비가 두려워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를 않았다. 이에 너무나 실망한 엘리야는 자신의 선지 사역은 실패했고 앞으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죽여 달라 간구하였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엘리야갸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믿음을 지키는 사람을 남기신다.
이사야는 이렇게 외친다.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29절,사1:9)’ 남은 자는 한편으로는 환난과 유혹의 시대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사람이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 ‘씨’로서 남겨 두심을 입은 사람이다. 그 환난의 시대에도 하나님 향한 순전한 믿음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이 저들을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4. 히브리서 12:1-2을 읽어봅시다. 이 말씀에서 ‘남은 자’들이 할 일은 무엇입니까?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12:1-2)’ 함께 읽은 말씀의 핵심은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는 것이다. 남은 자는 믿음의 경주를 계속하는 사람이다.
5. 많은 유대인들이 ‘남은 자’ 되지 못하고 넘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방인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남은 자’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이 율법을 가지고 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율법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율법은 무엇이 선이며 무엇이 악인지를 우리에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룩한 것 곧 ‘의의 법’이다. 따라서 율법 앞에 정직하게 서면 인생은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고 의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1차적 목적을 오해하고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자신을 속여서 율법 때문에 예수님을 거역하는 오류에 빠져버렸다. 이를 두고 32절은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하신다.
이방인들은 하나님 없이 살았다. 온갖 우상을 만들어 그것들이 다 신인 줄 알고 섬기고 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주셔서 모든 것을 밝히 알게 하셨다. 이방인은 그저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게 되었다.
■ 함께 기도하기
어떤 환난과 핍박, 유혹과 미혹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남은 자’ 되게 하소서.
날마다 주님 바라봄으로 믿음의 경주를 쉬지 않으며, 마침내 승리의 관을 쓰게 하소서.
구원의 은혜는 생명의 씨인 줄 알고,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되어 복음과 섬김의 사명 감당하도록
새해 교회를 섬길 일군들과 자원하는 봉사자들이 일어나도록, 2교육관 건축 위해.
■ 찬양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