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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탁영성
  • Oct 12, 2023
  • 69
  • 첨부1

23-39 구역공과

 

확신 가지고 달려갑시다.  

[로마서 8장 29-30절 / 428장, 546장]

 

■ 시작하는 이야기.  사랑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 마음에는 늘 두 가지 염려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아들 딸이 너무 자신 없어 하고 겁부터 먹고는 담대하게 힘있게 살지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들 딸이 혹 방종에 빠지거나 나쁜 길로 갈까 하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 있는 일은 안 하고 게임만 빠져 살거나 나쁜 친구와 어울리면 부모 마음은 무너집니다.  부모는 아들 딸이 건강한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용기 있고 의미 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까지 내어 주신 우리 하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십니다.  하나님 자녀 된 우리 성도들이 한편으로는 하나님 자녀로서 확신을 가지고 담대하게 살기 바라고, 다른 한편은 혹여라도 방종과 게으름에 빠지는 일이 없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 성도들에게 확신과 담대함을 주는 말씀도 많이 있고, 반대로 안일함과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시는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롬 8:29-30은 우리 성도에게 확신과 담대함을 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잘 배워 우리 모두가 확신과 담대함을 가지고 주를 위해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음식 및 다과 나눔(모임 전 혹은 모임 후)

■ 찬양(10분) 

■ 말씀과 삶 나눔 

 

1. 예정교리를 우리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예정교리는 구원받은 우리 성도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교리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신실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미리 작정을 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신실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창세전에 작정하여 시작된 일이니 누가 우리 구원을 중도에 가로막겠습니까? 무엇이 우리 구원을 좌절시키겠습니까? 

내 구원이 예정으로 시작된 줄을 깨달으면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2. 예정교리를 불신자들에게 잘못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말해 봅시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영국 출신이면서 인도 선교사로 한 평생을 바친 윌리엄 캐리입니다. 그런데 윌리엄 캐리가 인도 선교사로 가려고 하니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캐리를 교만하다고 책망합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계획에 따라 예정된 사람은 하나님 방법으로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인데 왜 주제넘게 선교사가 가야한다고 하느냐며 나무랐던 것입니다. 

선교사로 가려는 윌리엄 캐리를 책망한 18세기 영국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예정을 

“모든 사람에 대한 기계적인 운명론”으로 잘못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정 교리는 아직 믿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믿을 것인가 누가 끝까지 믿지 않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교리가 아닙니다. 예정된 사람은 굳이 복음 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구원한다는 이상한 교리 아닙니다. 예정은 절대 운명론도 아니고 복음전파 사명을 부정하는 교리도 아닙니다. 

다만 나의 구원을 생각할 땐 나같은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나! 그것은 정말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은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예정교리일 뿐입니다. 

 

3. 예정교리를 우리 신자에게 잘못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지도 말해 봅시다.  

예정교리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이미 믿는 우리 신자에게 잘못 적용을 하는 경우입니다. 우리 구원이 예정에 근거한다면 나는 아무렇게나 해도 결국 구원을 받는다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사명과 책임을 부정하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예정론이 불신자에 대한 운명론이 아니듯이, 우리 신자에게도 운명이 아닙니다. 예정교리가 불신자의 운명론이 아니듯이 예정교리는 또 신자의 게으름과 불충성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짧은 이해를 초월하여 우리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한 예정 교리는 우리 신자들로 하여금 도리어 감사함으로 더욱 주를 위한 선한 청지기로 살게합니다. 

그래서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미리 아심을 따라 구원을 받았습니까? 은혜를 핑계로 악하고 게으르고 무익한 종으로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 우리를 구원하려고 자기 목숨도 내주신 아들, 죽기까지 복종하신 아들 우리 주님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4. 우리가 본받아야 할 주님 모습을 말해 봅시다.  

첫째 주님의 긍휼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늘 긍휼로 가득하셨습니다. 

마12장 보면 유대인들이 주님을 올무에 빠뜨리려 일부러 안식일에 주님이 가시는 회당에 손 마른 사람을 데려다 놓았습니다. 주님이 고쳐주시면 안식일을 범했다는 빌미로 고발하고 박해하려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이런 악한 생각을 다 아시고도 주님은 이후 주님이 당하게 될 곤란에도 불구하고 그를 긍휼히 여겨 고치셨습니다. 주님은 나에게 이익이냐 손해냐를 생각지 않고 항상 긍휼에 근거하여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벧전3장이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3:8)’ 우리도  평생 긍휼의 목자이신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주님의 순종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 별칭 중 하나가 ‘아멘’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계3:14)’ 주님 별칭이 아멘이신 것은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아멘’ 곧 ‘예’ 하고 순종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후1:19)” 

주님은 아버지께 한 번도 ‘아니오’ 하지 않고 오직 ‘예’만 하셔서 온전히 순종하셨는데, 어디까지 그리 하셨습니까?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예’ 하셨습니다. 

주님이 보여내신 순종을 우리도 본 받아야 합니다.

 

 

■ 함께 하는 기도

 

우리 구원이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완성 속에 있을 알고 구원의 확신과 감격 누리도록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와 예정으로 구원받았기에 게으른 것 아니라 더 충성된 종 되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그 아들을 본받게 하심인 줄 알고 부지런히 주님 배우고 따르도록

주님의 긍휼과 ‘아멘’되심을 본받아 우리도 긍휼을 베풀고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도록

어려운 당하는 성도들 위해, 2교육관 건축 순조롭게 마치도록, 모든 성도의 믿음성장 위해

 

■ 찬양

■ 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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