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해설
구역공과 21-49
구역공과 49
다시 주의 말씀 받은 성도들에게로
본문 : 행 15:36-41 (찬송 : 들풀에 깃든 사랑, 442장, 당신의 그 섬김이, 315장)
■ 시작하는 이야기.
봄에 농부가 씨만 뿌렸다고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저절로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린 후에도 농부는 하루도 쉴 틈이 없습니다. 물도 잘 대 주어야 하고 거름도 충분히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병충해나 다른 농사를 망치는 일들을 제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보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믿음도 그렇습니다. 한 번 복음을 들은 것으로 우리 영혼이 건강하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영적 은혜와 사랑 말씀을 공급받아야 건강해지고 믿음이 자라고 열매도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특히 새가족들에게 새가족교육도 받고 일대일 제자훈련도 하고 성경대학에서 또 배우고 구역 모임 가서 교제도 나누시라고 계속 강조하는 것은 복음을 듣고 심겨진 말씀의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여행 때 복음 전한 교회와 성도들을 다시 돌아보려 합니다. 우리도 영혼을 계속해서 돌보고 우리를 통해 믿음이 자라는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기 바랍니다.
■ 말씀과 나눔.
1. 바울과 바나바가 아주 즐겁게 함께 하기로 한 일이 무엇입니까?
해설 :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어려운 문제가 다 해결되고 평안해지자, 다시 1차 선교여행 지역을 방문하고자 합니다. 1차 선교여행 지역은 안디옥보다 더 신앙연수도 짧고, 박해도 많기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토르스 산맥을 넘어 1차 선교여행지로 방문하려고 한 것입니다.
토르스 산맥을 넘는 일은 산적 떼의 위험이 있고, 바울을 돌로 친 무리들도 있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만 영혼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호주에서 온 데이비스선교사, 왕길지 선교사도 목숨을 걸고 오셨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덕에 우리가 구원을 받았습니다.
2. 바울과 바나바가 서로 의견이 달라서 결국 일치하지 못한 일이 무엇입니까?
해설 :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지를 방문하는 것은 의견이 일치했지만, 마가를 데려가는 일은 일치하지 못했습니다. 1차 선교여행 때 마가는 왜 그랬는지 선배들을 두고 도망가 버렸습니다. 바나바가 이번에도 마가를 데려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반대합니다. 마가는 그동안 회개하지도 않고 더 좋아졌다는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믿고 데려가느냐는 것입니다.
3. 어떤 면에서 바나바의 말이 옳습니까? 어떤 면에서 바울의 말도 옳습니까?
해설 : 바나바는 한 때 바울이 복음의 훼방자였다가 회심했을 때, 교회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왔던 사람입니다. 바나바는 바울의 실수를 잘 압니다. 마가의 실수는 바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기회를 얻었던 것처럼 바울이 용서하고 격려해주면 다시 일어설 것 같은데 매정하게 끊어버리는 바울이 야속합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한편 바울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지금 가는 길이 한가로운 여행길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가는 길입니다.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로 치면 교회를 맡아 섬길 목회자를 아무나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검증이 되기 전에는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이것도 맞는 말입니다.
4. 두 사람의 말이 다 옳은 딜레마에 빠졌던 경험을 이야기 해 봅시다.
해설 :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보세요.
5. 두 사람이 다 옳을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합니까? (빌2:3)
해설 :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경우에 따라서 한 가지의 해결법이 아닌 둘 이상의 해결법도 존재합니다. 그러기에 나만 옳다고 주장하기보다 상대방 역시 옳음을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우리 모두가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해설 : 그렇지 않습니다. 39절에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라고 나와 있는데, 원문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심히 다투어’로 번역된 헬라어는 ‘파락쉬스모스’인데 본문을 포함하여 신약성경에 두 번 나옵니다. 히 10:24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격려’라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도 다르게 번역될 수가 있습니다. ‘(의견이 달라서) 결국 서로 격려하면서 피차 다른 길로 가기로 하니’입니다. 이렇게 보면,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싸우고 헤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와 맞지 않지만 서로의 다른 의견을 인정하며 각자의 방법으로 사역을 이어나간 것입니다. 우리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넓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함께 기도하기
∙ 세상에 오신 주님 마음 본받아 영혼을 섬기는 기쁨을 배우고 누리고 살게 하소서.
∙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면서 겸손히 주의 나라 위해 협력하고 서로 격려하게 하소서.
∙ 연약한 우릴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믿고 오늘 부족하여도 주의 일 위해 일어나게 하소서.
■ 찬양
■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