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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QT 매일성경] 시96편
시96편은 시93-99편에 자주 등장하는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라고 하는(오늘 본문에서는 10절에 나타나죠? 이처럼) ‘여호와의 통치’를 주제로 노래하는 시편 중 하나이다. 이 시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가운데 드러난, 하나님의 왕권과 창조 세계에 대한 통치를 강조한다. 오늘 본문인 시96편도 역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왕권과 창조 세계에 대한 통치를 강조하는데, 우주적이고도 의로운 통치에 대해 노래한다.
1-6절 첫 번째 찬양에의 부름과 찬양의 내용 1-3절 ‘여호와께 노래하라’하며 세 번에 걸친 찬양에의 부름 4-6절 찬양의 내용-여호와는 창조주요 참된 신이시다. 7-13절 두 번째 찬양에의 부름과 찬양의 내용 7-9절 ‘여호와께 돌릴지어다’하며 세 번에 걸친 찬양에의 부름 10-13절 찬양의 내용-여호와께서 의와 공평으로 세계를 통치하신다. |
시96편은 ‘노래할지어다’라고 시작하는 찬양으로의 부름과 찬양의 내용/‘영광을 돌리지어다’라고 시작하는 찬양(예배)으로의 부름과 찬양의 내용, 이렇게 두 번에 걸친 찬양으로의 부름과 찬양의 내용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찬양으로의 부름과 찬양의 내용은 1-6절이고, 두 번째 찬양으로의 부름과 찬양의 내용은 7-13절이다. 두 찬양으로의 부름은 1-3절, 7-9절인데, 여기서 똑같이 세 번에 걸쳐, 즉 첫 번째 찬양으로의 부름에서는 ‘노래하라’라는 단어를 세 번 반복하고(1,2절), 두 번째 찬양으로의 부름에서는 ‘돌릴지어다’라는 단어를 세 번 반복하는 것(7,8절)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반복은 찬양 또는 예배로 강력하게 초청함을 나타낸다. 한편, 이 ‘노래하라’와 ‘돌릴지어다’라는 단어는, 2절에 ‘송축하다, 전파하다’와 3절에 ‘선포하다’, 4절에 ‘경외하다’와 9절에 ‘예배하다, 떨다’라는 단어들과 함께 사용되는데, 이는 찬양과 예배의 다양한 측면들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되,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전파하며, 그의 기이한 행적을 선포하며, 경외하며, 경배하며, 떨며... 노래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동사가 모두 ‘여호와께’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되거나, ‘여호와’와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여호와만이 찬양의 대상이 되시며, 오직 여호와만이 영광 받으실 대상이 되신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첫 번째 찬양으로의 부름 뒤 찬양의 내용에 대해 말하고 있는 4-6절과 두 번째 찬양으로의 부름 뒤 찬양의 내용에 대해 말하고 있는 10-1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여호와는 창조주요, 참된 신이시기 때문이고, 여호와는 의와 공평으로 세계를 심판, 곧 통치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여호와께서 창조주가 되시고 참 왕이 되시기에, 여호와만이 찬양의 대상이 되고, 영광 받으실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 시인은 창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와 왕권이 우주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찬양의 주체와 찬양으로 초대된 대상과 찬양을 듣는 대상이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우주적이라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본시에서 찬양으로 초대된 대상은 누구인가? 1절에 ‘온 땅’과 7절에 ‘만국의 족속들’이다. 또, 찬양을 듣는 대상은 누구인가? 3절에 ‘만민’과 10절에 ‘모든 나라’(곧 열방)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11,12절에 하늘과 땅,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들, 밭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숲의 모든 나무들이다. 이처럼 찬양의 주체와 찬양으로 초대된 대상과 찬양을 듣는 대상이 전 우주적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전 우주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의 통치가 전 우주적이지 않다면(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어 있다면) 하늘과 땅, 바다와 거기에 충만한 것들, 밭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 그리고 숲의 모든 나무들이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할 수 있을까? 만약 하나님의 통치가 전 우주적이지 않다면, 어떻게 온 땅과 만국의 족속들에게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하자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새 노래’는 시98:1에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라고 하듯이,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에 대한 찬양을 말한다. 따라서 새 노래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자가 부르는 노래이다. 계14장은 구속함을 받은 자들 외에는 능히 새 노래로 부르는 노래를 배울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오늘 시인이 온 땅과 만국의 족속들에게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하자고 초대하고 있다는 것은, 온 땅과 만국의 족속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안다는 것인가? 모른다는 것인가? 경험을 했다는 것인가?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인가? 안다는 것이고, 경험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면 도저히 새 노래를 배울 수 없어 새 노래로 찬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 노래로 노래할 수 없는 존재들을 왜 초대하겠는가? 왜 그들에게 함께 노래하자. 라고 하겠는가? 새 노래로 노래할 수 있으니 노래하는 자리로 초청하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온 땅과 만국의 족속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알고 경험하게 된 것인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가 전 우주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왕권이 전 우주적이기 때문인 것이다.
끝으로,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가 전 우주적임을 강조한 시인은 하나님의 왕권과 통치가 의롭다고 강조한다. 오늘 본문 10-13절의 말씀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말과 ‘공평’이/‘의’가/‘진실함’이 각각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여호와께서 온 우주의 왕으로서 공평하게, 의롭게, 진실하게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11,12절을 보면, ‘즐거워하다’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완성되면 온 우주 만물은 즐거워하게 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롬8장에서처럼 비록 지금은 만물이 구원의 완성을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지만, 그러나 오늘 본문 13절의 말씀처럼 그가 임하시는 날, 그가 임하시어 땅을 심판하시되, 의로 세계를, 진실함으로 백성을 심판하시는 그 날은 올 것이다. 그리고 그 날에 구원을 고대했던 만물은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로 말미암아 진정한 기쁨과 안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마 지금은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드러나지 않아 때로는 답답하고, 때로는 화가 나고, 때로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우주적인 통치권을 가지신 왕이신 우리 하나님께 내 삶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의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내 삶의 영역을 하나님께 맡기셔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온전히 드러나기 전까지,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하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학수고대하는 것이 바로 의인의 삶인 것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라고 하였다. 끝까지 믿음으로 살면, 고대한 만큼 기쁨을 누리게 되고 위로받게 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의의 왕께서 오시면 반드시 그리될 것이다. 그러므로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그 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기를 날마다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