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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QT 매일성경] 시편 95편
찬송: 67장 영광의 왕께 다 경배하며
개요
이 시편은 하나님을 구원의 반석으로, 그리고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예배의 자리로 초대하는 찬양시편입니다. 아마도 제사장이나 레위인 봉사자가 성전에 모였을 때 회중들을 향하여 예배의 자리로 소집하는 찬양으로 많이 사용하였을 것 같습니다.
이 시편은 예배인도자가 두 번 회중들을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는 부분(1-5절, 6-7b절)과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히 들어야 한다는 권고의 말씀(7c-11)이 마지막에 선포됩니다.
찬양으로의 초대 (1-5절)
1-2절에서 ‘오라’ 하면서 회중들을 예배의 자리로 초대하며 예배하자고 권유합니다. 이 때 어떠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까? ‘감사함’과 ‘시’로 하나님을 즐겁게 찬양하자고 부릅니다. ‘감사함’은 기도응답과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 즐겁게 외치면서 박수치면서 찬양하자고 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 앞에서 찬양인도자가 기쁘게 찬양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우리가 온 마음을 열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찬양하자고 부르는 것입니다.
3절-5절은 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려줍니다. 우리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원문에서는 ‘왜냐하면’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왜 찬양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 ‘모든 신위에 크신 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크시다’는 표현은 어떤 신들이나 존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자이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사실 세상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이나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많은 신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민족에 따라 지역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고, 하늘과 땅과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각각의 신들이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전쟁의 신, 농사의 신, 비의 신, 기술과 생명의 신 등등 수만 수억의 신들을 스스로 만들어 섬깁니다. 심지어 바울이 아덴에 선교여행을 갔을 때 ‘알지 못하는 신에게’ 하며 바쳐진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거짓이며, 인간의 무지와 완악함이 만들어낸 것들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믿습니까?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믿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영역에 하나님님 외에는 다른 신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영역을 다 포함하여 말합니다. “땅의 깊은 곳”, “산들의 높은 곳”, 또 “바다”와 “육지”도 모두 그분의 것이고, 그분의 손이 지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유일하시고 지존자 되신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경배로의 초대 (6-7b절)
예배인도자는 회중들에게 다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왕이신 하나님을 경배하자고 초대합니다. 먼저는 기쁨과 감사, 즐거움으로 찬양하였다면, 지금은 ‘겸손한 경배’의 예배로 초대합니다. 하나님의 어떠한 속성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예배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그 분의 광활함과 초월적인 능력 앞에서 우리는 기쁨하며 환호합니다. 그 크고 높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를 그의 백성 삼아주시고, 또 우리가 드리는 예배 자리에 오심을 생각할 때, 경외함으로 공경과 겸손함으로 예배하게 됩니다.
크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스라엘의 목자장이 되실 것을 자청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가 기르시는 양이고, 돌보시는 양이 되었습니다. 애굽 바로왕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홍해를 갈라 구원하시고, 사막과 같은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강한 대적들이 그들을 공격할 때도 하나님께서 강한 팔로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신실함과 전능함으로 그분의 양인 이스라엘을 돌보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잘 아시며 능히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겸손함으로 예배드리고 감사하시는 모든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들으라는 초대 (7c-11절)
이러한 신실한 목자에 대해 양은 어떠한 자세로 따라가야 합니까? 요한복음 10장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설명합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 음성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양들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7절 하반절부터 하나님은 이스라엘 초기 역사를 들어 생생한 교재로 사용하십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 한두달 지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르비딤에 진을 칩니다. 거기에 물이 없었죠. 그래서 백성들이 모세에게 불평하며 시비를 걸었습니다.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들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 모세는 여호와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 후 모세는 이곳 이름을 ‘다툼’ 혹은 ‘격돌’이라는 의미로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나중에 40년 후쯤 광야 2세대 때 12정탐꾼의 사건 때도 가데스라는 곳에서 또 한번 물로 인해 ‘므리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때에도 모세에게 원망을 했고,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늘 하나님께 불평해 왔던 것입니다.
찬양이 마친 후 설교자가 설교를 하듯 다른 어투를 사용하여 말합니다. 하나님께 결코 완악한 마음으로 불평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양들이 가져야할 마땅한 자세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며 살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에게 안식이 주어집니다.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실 뿐 아니라 모든 대적의 위협에서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을 유일한 목자로 삼고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