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위원회 게시판
<유능한 교사의 성경교수법> 1-2장
다시금 책 읽는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바쁘고 힘든 가운데서도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완주해 주시길 바랍니다.
몇 몇 분들은 한 번 읽을 때에 완독을 해 버리시겠다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완독하신 분들은 댓글로, 완독 했습니다를 적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이 우리 부서에, 나에게 좋게 적용하기 위해 그냥 읽었습니다만 적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은 한 번 더 적고, 의문나는 것은 질문 하시고, 적용까지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장은 다음주 주일까지(28일부터 벌금체크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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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교사의 성경교수법>
- 1장 성경교수의 목적과 중요성 -
현대에는 수많은 교수방법들이 개발되고, 이를 보조하는 매체들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도구들이 성경교수 자체를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시대에 있어서 성경교수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 자체가 가지는 독특한 특징에 기초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시대에 그대로 적용되는 삶의 절대 기준이다. 이런 절대성은 급격한 시대의 변화와 발달에 따라 영향을 받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반대로 모든 시대가 그 다양성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절대 기준인 성경의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한다고 성경교수의 필요성과 그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원화되고 상대화되는 이 시대에 절대적인 성경의 가치는 더욱 더 증대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이 무너지고 참된 인간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변함없이 세상을 향한 참된 진리이며, 여기에 참된 소망이 있다. 따라서 성경을 교수하는 일을 맡은 교사들은 성경을 성실하게 연구하며 준비하여 학생들을 진리로 인도하며 바로 세우는 일에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성경을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배운 대로 순종할 의무를 가진다. 이처럼 성경을 배우고 이에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핵심적인 일이다. 이제 성경공교수의 의미, 유익, 목적을 검토하면서 성경교수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성경교수의 의미
교수는 일반적으로 어떤 것을 알고 있는 이 모르는 사람에게 일단의 지식을 전달하여 주는 행위로 본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학습은 제공되는 것이다. 그런데 학습은 단순히 제공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배우는 자들도 가르치는 자와 같이 역동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 학생들은 노력하고, 생각하고, 이해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콜만은 성경교수에 대하여 돕는 것, 안내하는 것,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라는 세 가지 활동으로 설명한다.
첫째로 성경교수는 학생이 잘 배우도록 돕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을 전달한다거나 학습을 제공한다거나 혹은 정보를 나누어주는 것과는 다르다. 가르친다는 것은 스스로 어떤 것을 잘 하도록 옆에서 돕는 일이며, 이를 위해서는 인내하면서 생각을 자극하고 방향지어 주는 일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배우도록 돕는 것을 가르침이라고 본다면 가르치는 자는 말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며 배우는 자가 잘 이해하고, 배운 것을 행하는 것에도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는 비록 그가 상당한 지식을 소유하였으나 그의 지식을 단순하게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것만으로 그치려하지 않았다. 그는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힘으로 지식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학생들이 궁극적으로 바른 결론에 이르도록 질문을 던지므로 진리의 탐구가 가능하도록 도와주었다. 이러한 교수법은 산파술이라 불린다. 여기서 maieutic이라는 단어는 ‘산파로서 봉사한다’는 헬라어 동사에서 유래된 용어이다. 산파가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낳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사인 소크라테스의 의도는 그의 학생들의 마음으로부터 사상르 산출하는 것이었다. 산파는 어머니를 돕는 위치에 있다. 산파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아이를 낳는 것은 어머니이다. 이것을 교수활동에 적용할 때 교사는 언제나 학생이 잘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둘째로 성경교수는 안내하는 것이다. 성경교수는 성경의 세계로 여행하려는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일과 같다. 어떤 사람이 한 번도 방문해 보지 않았던 곳으로 여행을 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 여행자에게는 안내자도 없고, 안내역할을 대신할만한 지도도 없다. 그러면 그 여행자는 낯선 지역에 적응하는 데에 수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런 많은 시간을 통해 여행자는 그 지역의 구조와 특징에 대해 조금은 터득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배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혼란을 겪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길안내를 맡아준다면 그와 같은 혼란을 피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무작정 성경책만 가지고 공부를 한다면 성경에 대해 무엇인가 알아내는 데에 수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그가 알아낸 지식이 과연 바른 것인지를 깨닫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성경을 공부하는 데에는 좋은 안내자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성경교수의 최선의 방법은 교사가 좋은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여기서 안내자는 돕는 자와 같이 스스로가 주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안내자는 여행자를 대신하여 모든 일을 하지는 않는다. 안내자가 여행자를 어느 한 장소에 머무르게 하고 그가 여행자 대신 마을 곳곳을 대신 여행한 후에 여행 기록을 전달해 준다면 그것을 아무 의미가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안내자가 옆에 있더라도 실제 여행은 여행자가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교수는 교사가 학생대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교사는 학생이 성경의 세계를 잘 여행하도록 때로는 나아가게 하고, 때로는 돌아서게 하면서 정로를 잃지 않게 도와주는 것이다.
셋째로 성경교수는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다.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교수의 필수 구성 요소이다. 교사는 오래전 처음 전하여진 과거의 말씀의 의미를 현대인들이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성경말씀이 바르게 해석되고 그 의미하는 바가 정확히 이해될 때 성경말씀은 더욱더 명확하게 실천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아래서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살도록 하는 것이 성경교수의 본래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성경교수는 교사가 조력자, 안내자, 해석자가 되어 학생들을 진리의 길로 인도하며, 그 진리에 순종하여 살게 하는 모든 활동이다. 수영을 가르칠 때에 교사는 말로만 설명하지 않는다. 말로 설명하면서 시범을 보인다. 또한 시범을 보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학생이 실제 수영할 수 있도록 이끈다. 그리고 능숙하게 수영을 할 때까지 인내하면서 잘못된 동작들을 순간순간 교정해 주는 것이다. 성경교수에서도 교사는 학생대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성경을 배우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조력하며 안내하며 해석하여 바른 삶을 살도록 도와야 한다.
2. 성경공부의 유익
헨드릭스와 헨드릭스의 공저 <삶을 변화시키는 성경연구>는 성경공부를 해야 할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로 성경공부는 영적 성장에 필수적이다. 베드로전서 2:2에는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성경을 말한다. 성경은 신령한 양식이며, 성경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양식을 먹는 것이다. 그러므로 갓난아이들이 배고플 때마다 젖을 먹기를 원하고 이 젖을 먹으므로 성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먹음으로 성장한다.
둘째로 성경공부는 영적 성숙에 필수적이다. 성장과 성숙은 모두 자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성장은 키가 크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과 같이 자연적으로 자란다는 말인 반면 성숙은 지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깊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것은 곧 내적인 힘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영적 성숙이란 말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영적 분별의 능력을 말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런 영적 분별력에 대해 가르친다.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 되었으나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영적 성숙은 젖을 먹던 어린 아이의 시기를 벗어나서 단단한 식물을 소화할 수 있는 성숙한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성숙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영적 지각을 훈련받음으로 선악을 분별한다. 성경공부는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초보의 수준을 지나서 성숙한 신앙을 이루게 한다.
셋째로 성경공부는 영적 생활에 필수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며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게 된다. 이처럼 성경공부는 영적 생활에 필수적인 것이다.
엘머 타운즈는 성경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유익을 열 가지로 정리한다. 성경공부는 신앙생활에 힘을 주고, 구원의 확신을 주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견고히 한다. 또 성경공부는 기도 응답을 받게 하고, 죄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며, 내적 기쁨을 준다. 성경공부는 평화를 가져다주고, 올바른 삶의 결단을 내리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한다. 궁극적으로 성경공부는 성공적인 기독교인의 삶을 살게 해준다. 이러한 열 가지 유익들은 그리스도인이 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또한 이런 유익들은 곧 성경공부의 목적이기도 하다. 이런 열 가지는 영적인 성장과 영적인 성숙 그리고 영적인 생활과 관련된다. 신앙생활에 힘이 되고, 구원의 확신을 얻으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견고히 하는 것, 또한 기도 응답을 받는 것, 죄를 극복하는 힘을 얻는 것, 내적 기쁨을 누리는 것, 바른 결단을 내리는 것, 복음을 전하는 것 등은 모두 영적 생활과 관련되면서 동시에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이루는 가운데 얻는 요소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소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대로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하는 것으로 집약된다.
3. 성경교수의 목적
성경공부는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일이며, 풍성한 유익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성경을 교수하는 일은 대단히 가치 있는 일이며, 교회교육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일이다. 크리스웰은 성경을 가르치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는 말씀을 들어 설명한다. 하나님의 생명은 그 말씀 안에 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참된 모습을 비추는 거울이다. 또 이 말씀은 주님의 생명과 활력을 담고 있는 씨앗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령을 꿰뚫는 검으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신다. 하나님 말씀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전달하는 살아있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영생은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성경을 믿는 것은 성경을 배울 때에 일어난다. 또한 성경을 믿는 이는 꾸준히 이 성경을 배움으로 그 믿은 바를 확인하고 강화해 나가야 한다. 여기서 성경을 배우는 과정은 곧 성경교수가 일어나는 현장이다. 성경은 생명을 담고 있고, 또 그 생명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고귀한 목적이 성경공부를 통해 성취될 것이 기대된다. 또한 성경을 배우는 자는 성경을 공부할 때 그 성경이 담고 있는 신성한 사건 앞에 자신을 드러낼 때 이 목적의 성취가 가능하게 된다. 즉 성경공부를 하는 목적은 학습자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대화로부터 귀결되는 신성한 사건들에 노출시키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를 보여준다.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은 저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교훈을 가르친다. 학습자는 성령의 조명 아래 주의 깊게 성경을 묵상함으로 하나님과 인간관계에 대해 배우며 자신의 삶에 적용하게 된다.
이처럼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반응을 이루게 하는 목적을 가진다. 골로새서 1:28에는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성경교수의 목적에 대해 중요한 가르침을 제공하고 있다. 교육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가르친다. 이때 가르침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인데, 이는 곧 성경을 가르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잘못되었거나, 목적을 상실한 가르침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분명한 목적, 또 합당한 목적에 따라 가르칠 때 그 가르침이 의미가 있고 거기에 바람직한 열매를 얻기를 기대할 수 있다.
성경을 교수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본연의 목적을 이루는 것과 일치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내포하는 의미와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점에서 모든 성경교수는 하나같이 이 목적을 지향한다. 이 점에서 성경교수는 단순히 지식을 하나 더 늘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경교수는 각 사람의 변화를 이루기를 지향한다. 그래서 각 사람을 일일이 권면해야 하고, 모든 지혜를 동원해야 하며,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까지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가르침을 위해 성령님께 순종하여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살피고 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고자 하는 성경교수의 목적을 이루기에 힘써야 한다.
4. 성경교수에 있어서 연구의 중요성
성경교수는 성경을 가르치는 일인데,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연구가 필연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대강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신앙을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로 성경을 배우는 학생의 위치에 있고, 다른 하나는 신앙의 연륜이 있는 자들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학생이거나 교사이거나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부단히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다. 특별히 교사는 성경공부의 필요성을 현실적으로 절실하게 인식하는 사람이다. 매주 교회학교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해야할 책임이 있으므로 그에게 성경연구는 현실적인 과제이다. 성경에도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딤후2:15)’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사는 언제나 성경 말씀을 연구하여 가르치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콜슨은 교사가 성경을 연구하는 일의 중요성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교사의 성경연구는 교사 자신에게 중요하며, 교사의 하는 모든 일에 중요하며, 교사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에게 중요하며, 교회를 위해 중요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중요하다.
첫째, 성경연구는 교사 자신에게 중요하다. 하나님께 헌신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의 영적 성숙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태와 능력의 성장은 신실한 성경연구와 실제적인 순종에 의해 자신을 준비시켜 나갈 때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화와 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실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은 영적 성숙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다. 성경연구는 먼저 성경읽기 시간을 따로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성경읽기가 성경연구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날마다 성경을 읽는 일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또한 규칙적인 성경읽기와 함께 성경을 연구하기 위한 정규적인 시간을 따로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학교 교사는 매주 성경공부를 인도하므로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따로 시간을 떼어서 성경 연구하는 일에 투자해야 한다. 매일 성경을 읽고 또 일정한 시간을 내어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언제나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도와 성경연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기도보다는 성경이 우선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떠나서는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없다. 또한 기도를 하지 않고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성경읽기와 성경연구를 기도하는 가운데 부단하게 훈련해야 한다.
둘째, 성경연구는 교사가 하는 모든 일에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교사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다. 학교 교사의 경험이 많고 그래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교회학교 교사를 한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유능하게 자신이 맡은 반을 지도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교사가 성경연구를 하지 않고 성경적 통찰이 부족하다면 합당한 교사라고 할 수는 없다. 교사로서 가르침의 기술이 있다고 해도 정작 가르침의 핵심 내용인 성경을 제대로 모른다면 그는 교사의 직분을 결코 감당할 수 없다. 물론 교사의 개인적 실력과 가르치는 기술도 중요하다. 그러나 교사의 자격 요건에는 이런 것들보다 교사의 성경연구가 중대한 준비 요소로 자리해야 한다. 교사가 한 주 동안에 성경연구에 투자하는 시간이 다른 어떤 일들을 통해 준비하는 것보다 더욱 결정적으로 성경교수에 있어서 영적 가치를 더 크게 결정할 수 있다.
에지도 교사의 성경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즉 교사는 필연적으로 그가 아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여 가르치지 않을 수 없다.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이 어떤 연령층이건 상관없이 교사 자신은 그가 가르치는 성경을 알아야 하고,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 연구해야 한다. 유아, 유치, 초등, 청소년 등과 같은 연령층에게 하나님, 교회, 인간의 죄, 그리고 구원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바른 신앙에 기초한 신학을 바탕으로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교사는 단지 가르치는 일에 유능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부단한 성경연구를 기초한 성경이해와 통찰을 구비해야 한다. 그럴 때에 학생들은 성경말씀 앞에 바르게 세울 수 있고, 학생들에게 영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성경연구에 소홀한 교사에게서 장차 교회와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영혼들이 양산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따라서 교사들이 성경을 소홀히 생각하거나 제대로 성경연구를 훈련하지 못하여 진실한 신앙과 영성이 쇠퇴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고 준비해야 한다. 오래 전에 크리소스톰은 ‘성경을 모르는 것이 우리의 모든 죄악의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셋째, 성경연구는 교사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에게 중요하다, 교회학교 학생들의 영적인 훈련은 자연히 그들의 교사에게 의존된다. 그렇다면 교사는 잘 준비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교사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와 같은 지식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며, 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성경교수를 전문가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성경공부란 본질적으로 함께 깨달음을 나누는 행위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성경연구자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이 유익한 점이 있겠으나, 준비된 지도자라면 소그룹에서 효과적인 성경공부를 인도할 수 있다. 훌륭한 성경교수는 비슷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모인 소그룹에서 그 반을 담당하는 교사와 함께 공부할 때에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적은 수의 대그룹보다는 많은 수의 소그룹을 구성하여 교육하는 것이 성공적이다. 이 점에서 훌륭한 성경교수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학자보다는 수많은 준비된 교사를 활용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또한 준비된 교사를 얻기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전문적인 성경교육을 제공해 주어야 하며, 교사 자신이 성경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 일에 몰두해야 한다.
한편 성경연구를 충실히 실천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을 준다. 열심히 연구하는 교사에게서 배우는 학생들은 자연히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자 한다. 그러나 교사가 성경연구에 열심을 잃어버리면 학생들 역시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성경을 배우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을 사랑하고 학생들과 함께 열정을 다해 성경을 알아가려는 교사가 있을 때 학생들에게 변화가 일어나고 성숙이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넷째로, 성경연구는 교회를 위해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교회의 할 일이다.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회는 모든 교사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요구할 뿐만 아니라 성경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제반 여건을 구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사가 개인적으로 훌륭한 성경교사가 되기 위해 성경을 충실히 연구하는 일은 실제적으로 교회를 위한 중요한 봉사가 된다는 점이다. 설교자가 주일 설교를 위해 오랜 시간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므로 준비하는 것은 교회를 위한 봉사이다. 마찬가지로 교사가 주일에 가르칠 성경공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준비하는 것 역시 교회를 위한 실제적인 봉사가 된다. 비록 전문 훈련을 받지 않은 평범한 교사라고 하더라도 그 마음에 신실함을 가지고 성경연구를 실천하는 사람은 교회를 위해 훌륭한 봉사를 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된 것으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된 것은 책망하고, 허물은 고쳐주며,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이다. 이 성경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모든 선한 일을 할만한 준비를 하게 된다. 이런 중요한 일의 기초는 교사가 진지하게 또 성실하게 성경을 정기적으로 연구할 때 가능하며, 이와 같은 성경연구가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다섯째로 성경연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중요하다. 교사가 성경을 연구하는 일이 교회를 위한 중요한 봉사라고 하면, 이 일은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서도 중요한 봉사가 된다. 어린 아이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은 없다. 어떤 연령에 있건 또는 어떤 환경에 있건 그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정체성을 발견하는 일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칠 때 일어난다. 교사로서의 경험이 많고 뛰어난 교수 기술을 갖춘 사람이라도 성경을 제쳐놓고 사람들을 바로 세울 수는 없다. 또한 성경이 없이 그리스도에게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하는 일은 교회와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봉사가 된다.
<2장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으로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으나, 사람이 하나님을 반역하였고, 이에 대해 하나님은 구원역사를 이루어나가시는 분이심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는 오랜 역사를 배경으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구약성경은 천지창조로부터 인간의 범죄와 에덴에서의 추방, 노아 홍수 사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 출애굽 사건, 이스라엘 왕국의 형성과 분열, 포로 생활과 귀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교회의 형성과 확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꼐 어떻게 반응해야 하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잘 가르쳐 준다. 본 장에서는 성경의 성격과 교훈 그리고 구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성경의 진정성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절대적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현대에 있어서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제기된 끊임없는 문제는 ‘성경은 과연 믿을만한 책인가?’라는 문제이다. 성경의 진정성에 관한 의문은 근대 이후 인간의 이성에 절대 권위를 부여하면서 더욱 가속화 되었다. 이성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였고, 결국 인간의 산물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마저도 판단하게 되었다. 이 결과 성경은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고, 많은 오류가 있으며, 단지 도덕적으로 교훈을 주는 책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비평 속에서도 성경의 역사성 문제는 거듭 확인되어 왔으며, 세상적인 도전에도 불구하고 그 신뢰성은 더욱 강화되어 왔다. 성경의 신뢰성에 관한 의문은 통일된 총체,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란 사실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에 해소된다.
첫째, 성경은 통일된 총체이므로 신뢰할 수 있다. 특정한 주제에 대한 전문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그들이 연구하는 주제에 동의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다. 성경은 한 권이면서도 한 권 속에 66권이라는 책이 묶어져 있다. 이 66권의 책들은 1,600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서 서로 다른 다양한 배경들을 지닌 40여명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주제로 하나의 통일성을 지닌 한 권의 책이다. 성경의 각 책, 각 단원, 각 단락, 각 절은 다른 책, 단원, 단락, 절들과 함께 통일된 하나님의 진리를 계시해 준다. 각 부분들이 서로 연관된 하나의 총체를 이루는 것이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므로 신뢰할 수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이것은 허상이나 추측이나 가정이 아니다. 인간이 가설을 세우고 이론화한 것이라면 예기치 않은 변수를 만날 때 그 이론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기 때문에 절대 진리이며 다른 어떤 것에 의해 변경되지 않는다.
셋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으므로 신뢰할 수 있다. 워필드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곧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하다’고 했다. 이것은 성경의 영감성을 말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까닭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들을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이 성경을 기록했다는 사실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은 역사 속에서 영감을 지닌 사람들이 기록한 것을 모은 훌륭한 책으로 생각한다. 이런 견해는 성경을 여타의 종교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경전들이나 오랜 세월 좋은 작품으로 읽혀진 고전들 중 하나로 보는 것이다. 그런 작품들도 저자의 영감이 담겨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영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다. 인간 저자는 하나님의 감동 아래 성경을 기록하였다. 원저자는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인간들이 성경을 기록한 것이다. 이 점에서 성경의 저자는 이중적이며, 또 성경은 오류 없이 정확하게 기록된 것이다. 베드로후서 1:21에서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라는 말씀은 성경의 영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2. 성경의 계시적 성격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실 때에 자연과 성경의 두 가지 다른 방식으로 계시하신다. 그런 점에서 성경이 없을지라도 자연 자체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계시해 주고 있다. 그러나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인간이 본성의 빛을 따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을 어느 정도 발휘하여 하나님을 감지할 수는 있으나, 그 본성은 죄로 인하여 타락하였으므로 참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범에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다. 또한 오직 성경에만 하나님의 구원이 계시되어 있으므로, 참되고 구원에 이르게 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성경의 계시적 성격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장에 나타나 있다.
본성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어서,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하나님과 그의 뜻을 아는 지식을 주는데 있어서 불충분하다. 하지만 그 지식은 구원을 얻는데 필요하다. 그래서 주님은 여러 시대에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기의 교회에 자신의 뜻을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으며, 그 후에는 진리를 더 잘 보존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그리고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비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위로하시기 위해서 바로 그 진리를 온전히 기록해 두게 하셨다. 이같은 이유로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 이로 인하여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한편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2문은 성경에 관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제2문 하나님께서 우리가 당신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해 어떤 규칙을 주셨는가?
답 구약과 신약 성경에 함의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하는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유일한 규칙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길은 인간 편에서는 알 수 없다. 이것은 높은 학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아무리 학식이 낮은 사람이라도 이 참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바른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은 두 가지 방편으로 인간에게 지식을 주신다. 하나는 자연계시라 부르고, 또 하나는 특별계시라 부른다. 인간은 자연 법칙을 통해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 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연계시를 통해 얻은 각각의 사실들은 하나님 말씀의 빛 아래 해석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는 분명한 목적과 의미를 알 수 없다. 아담이 범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인간은 특별계시를 거부하고 자연 계시만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것인 과학적 방법인데 이는 시험적이고 불완전한 방법이다. 그래서 개별적인 사실들을 많이 밝혀내었으나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성경만이 알려준다. 이런 점에서 성경은 특별계시이고 이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배운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구약 성경에 ‘함의되어 있다’는 말은 성경에서 발견하는 모든 말들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의도한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 유형의 이해 방식이 있다. 첫째는 자유주의 또는 고전적 현대주의이다. 이는 성경 안에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인간의 말들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결정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둘째는 종종 바르트주의라고도 하는 신정통주의 또는 신 현대주의이다. 이는 성경 전체가 오류가 있는 인간의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말을 읽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그것을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받아들이도록 인간의 말을 사용하신다고 믿는다. 성경의 어느 부분이든지 인간을 위한 하나님 말씀의 수단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는 개혁주의이다. 이는 역사적 기독교 신앙의 견해이다. 이 견해는 개개의 단어를 포함하여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진리라고 믿는다. 즉 영감을 입지 않은 부분이 없는 것이다. 불신자가 성경을 읽더라도 그것은 모두 하나님 말씀인 것이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지닌 특징에 대하여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 이때 성경의 모든 진술을 특정 상황이나 배경에서 취하지 않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 성경에는 오류가 결코 없다. 어떤 이는 번역상의 문제를 거론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때의 무오류성은 일차적인 원본에서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 성경은 명료하다. 하나님은 구원에 이르는 분명한 길을 성경 말씀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신다. 사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곳도 있다. 그런 까닭에 오랜 세월 수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왔음에도 해결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성경이 명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고, 그 구원에 이르도록 사람들을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성경이 불분명하여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는 결코 없다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길에 대해 명료하며 누구나 그 길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셋째, 성경은 충족하다. 무엇을 더 알기 위해 성경 자체에 어떤 것을 첨가할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의 충족성을 보조하기 위하여 다른 어떤 수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특히 성경 자체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현대 사상에 대하여 성경의 자기충족성은 매우 중요한 믿음이다. 인간이 성경을 받아들이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지 성경은 그 자체로 충족하며 완전한 계시이다.
3. 성경의 교훈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이것이 성경의 본질이며 성격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은 무엇을 중점적으로 교훈하고 있는가?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제3문은 성경의 교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3문 성경의 요긴한 교훈은 무엇인가?
답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믿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의무가 무엇인지를 요긴하게 가르친다.
사람들이 성경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경은 인류의 완전한 역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 또 현대의 다양한 영역의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해 주지도 않는다. 심지어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모든 세세한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는다. 사실 성경은 이런 정보들을 우리에게 전달할 목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성경은 이런 것 외에 어떤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다.
성경이 모든 것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모든 것에 대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준다. 이는 성경이 언급하는 것을 참고하지 않고서 인간이 어떤 것에 대해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음을 말한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과 세계를 알고자 할 때 하나님을 배제시킨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를 관찰한다는 점에서 언제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속에서 진리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진정한 지식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한 참 빛을 제공하는 것이 성경이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을 배우며 실천할 수 있다.
현대에서는 각 사람이 자신이 소망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신앙할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신앙의 주체를 인간 자신에게로 가져왔다. 그러나 인간에게 기원을 둔 신앙은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저 인간이 하나님에 관하여 믿어야 할 것 곧 신앙의 대상을 성경에서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또한 한 사람이 진실한 신앙을 가질 때, 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낟. 열매 없는 신앙이란 거짓이다. 믿음이 가장 우선하느 ㄴ것이며, 이 믿음이 바른 실천을 가능케 만든다. 만약 바른 실천을 도출하지 않는 믿음이라면 그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4. 성경의 구조
전술한 바와 같이 성경은 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40명이 넘는 저자들이 1,600년에 걸쳐 각기 다른 사회, 정치, 문화, 경제적 배경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독특한 시각과 문체로 표현한 작품들로 구성된 집합체이다. 또한 성경이 고대에 기록되었으므로 그 언어는 현대에는 사용되지 않는 것들인데, 곧 고대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이다. 유대교와 가톨릭교회 그리고 개신교의 구약성경 분류는 차이가 난다. (책 참고)
성경은 서기 90년에 24권이, 서기 369년에 또 다른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유대교는 90년에 확정된 24권을 그들의 경전으로 삼았고, 기독교는 유대교의 24권과 369년에 확정된 27권을 모두 받아들인다. 겉으로 보기에 성경은 단지 한 권이다. 그런데 성경은 여러 종류의 글들이 모여 있는 도서관과 같다. 성경의 영어 표기인 The Bible은 ‘books'라는 뜻의 헬라어 ’bibilia'에서 유래했다. 성경은 유대교와 기독교 공동체들에 의해 거룩한 글들로 고백된, 여러 종류의 문학들이 집합된 도서관이다.
유대교는 신약성경 없이 구약성경만을 정경으로 받는데, 총 24권인 이 책들은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의 히브리어 첫 글자를 따서 ‘타낙’이라 부른다. 이 타낙이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역대기로 끝나는 것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의 회복이란 희망을 안고, 그 소망의 성취를 염원하는 신앙인임을 증거하기 위함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개신교의 구약성경은 말라기로 끝나면서 이것이 곧 신약성경의 첫 책 마태복음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런 배치는 말라기에서 오랫동안 기다리던 하나님께서 오시기 전에 이를 알릴 선지자 엘리야를 예언하는데 그것이 신약에서 성취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말라기의 예언은 하나님께서 오시는 날이 크고 두려운 날 곧 진노와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 선언한다. 그런 점에서 구약 성경 전체는 앞으로 다가올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고대하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곧 구약의 예언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보여주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고 있다.
신약성경 27권은 복음서(4권), 역사서(1권), 바울서신(교회서신, 13권), 공동서신(일반서신, 8권), 예언서(1권)로 분류된다. 복음서 중에서 앞의 세 책들 곧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비슷한 성향을 가진다고 하여 하나로 묶어서 공관복음이라 하고 요한복음을 앞의 것과 구분하여 제4복음서라 하기도 한다. 또한 공동서신은 바울 이외의 여러 저자들이 쓴 서신들이므로 붙인 이름이다. 한편 역사서는 사도행전의 역사적 성격을 반영한 분류 명칭이고, 예언서는 요한계시록의 묵시적 성격을 반영한 분류 명칭이다.
구약성경은 정확히 몇 사람의 저자에 의해 기록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신약성경의 저자는 모두 9명이다. 복음서는 후에 저자의 이름을 따라 불리었는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같이 4명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에 의한 것인데, 본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한 권으로 붙어 있었다. 바울서신이라고도 불리는 13권의 책들은 바울의 저작으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이다. 여기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빌레몬서는 바울이 옥중에서 기록하였으므로 옥중서신이라 불리며,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목회자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것이라 하여 목회서신이라 불린다. 공동서신으로 불리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서, 요한2서, 요한3서와 유다서는 히브리서를 제외하면 그 책명이 곧 저자이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은 예언서로 요한에 의해 기록되었다.
우리는 성경이 지닌 계시적 성격, 성경의 교훈, 성경의 구조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성경은 신적인 기원을 가지며, 하나님에 관해 믿어야 할 것을 가르치며 또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요구한다. 이 성경은 고대로부터 형성된 것으로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며 각각은 몇 가지 분류에 따라 구분된다.
이러한 성경은 현대사회와는 동ᄄᅠᆯ어진 구시대에 기록된 것이고, 그래서 현대와는 상당히 먼 거리감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오늘날도 여전히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책이다. 그러나 성경이 단순히 위대한 문학이거나,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한 신빙성 있는 문헌이거나, 또는 신학지식의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성경은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한다. 그렇지만 성경이 문학이나 역사나, 신학은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단순히 과거에 기록된 고전 작품이 현대인들에게 가지는 유용성 정도를 지닌 것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절대적인 지침이 성경 한 권에 담겨 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목적이기도 하다. 성경이 현대에 의미를 가지는 까닭은 이것이 여전히 실제적인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실제적인 목적이란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이다. 모든 책에는 저자의 저작 의도가 담겨 있듯이 성경에도 그런 의도가 담겨 있다. 그 의도는 요한복음에서 밝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여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가르쳐준다. 성경은 이것을 통해 사람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확립해 준다. 그리고 성경은 이 세상 속에서 영적인 싸움을 수행하기 위한 장비를 갖추어 준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다운 바른 행실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에 따라 살도록 지도한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아직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귀중한 책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비밀스런 암호로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나 지각을 가진 이들이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을 읽을 때 성령께서 역사하시므로 믿음으로 그 가르침을 수용하게 된다. 이는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 성경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가능한 것이다.
성경은 신중하게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교사된 자들에게는 성경연구와 지도가 가장 중요한 사명이다. 성경은 단순히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니라 개인적 반응을 요구한다. 그리고 합당한 반응을 나타내는 자들에게 최고의 보상을 약속한다. 그러나 무엇ㅇ보다 성경의 메시지는 모든 시대에 전파되어야 한다. 그것이 성경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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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