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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구절
    사도행전 11:19-30(13:1-3)
    설교일
    2011-10-16

교회의 시대적 사명 행11:19-30(13:1-3), 

 

서론. 먼저 교회의 우리 주님과 하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린다. 저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셔서 은혜로 기장교회 목자로 세워 주셨다. 이 교회는 주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소중하고 거룩한 교회이다. 그러기에 교회의 머리와 주인이 그리스도이심을 잊지 않고 목회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가 말했듯이 ‘목자장’은 주님이요, 목회자는 목자장 되신 주님이 시키신 일을 하는 ‘종의 신분’임을 기억하고 사역하고자 한다.

우리 기장교회 성도님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107년 역사를 가졌고 기장의 대표적인 고신 교회인데, 부족한 사람을 담임목사로 불러 주셨다. 제 마음에는 부담감도 있고 기대감도 있다. 모세가 죽은 후에 새 시대를 이끌어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다. 담임목사의 막중한 소임을 감당할 힘과 지혜가 저에게는 없다. 그러기에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가운데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함으로 제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해 가고자 한다. 우리 성도님들도 많이 기도해 주시고 또 도와주시기 바란다.

 

오늘 첫 예배다.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나 기도하며 고민하다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최초의 이방인 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마음먹었다.

① 안디옥 교회가 어떻게 세워지고 ② 어떻게 은혜 가운데 부흥하고 칭송 받으며 ③ 또 어떻게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는지 살펴보면서, 안디옥교회를 거울삼아 우리 기장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에 대해 좀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안디옥교회 역사는 크게 4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처음 교회가 서는 개척기, 바나바 목사를 통한 1차 부흥기,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사역한 2차 부흥기, 그리고 다섯 명의 영적지도자의 동역 가운데 어려운 교회를 돕고 선교사도 파송하는 성숙기(사역기)이다.

 

1) 먼저 개척기다. 안디옥교회 개척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환난 가운데서 사도나 선지자 아닌 일반 성도들에 의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섰다는 점이다.

스데반의 순교사건이 시발점이 되어 예루살렘교회는 큰 환난의 바람을 맞는다. 사도 외에 성도들은 핍박을 피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복음 때문에 쫓겨난 이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은 흩어진 곳에서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려고 가만히 숨죽이고 살지 않았다. 예수 믿다가 유리방황하는 신세 되었다고 원망하고 불평만하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을 쫓겨나게 만든 그 복음을 동서남북 사방에 편만하게 전하였다. 환난과 핍박 중에서 복음은 오히려 더 흥왕하게 되었다.

이렇게 환난을 당한 성도들이 흩어져서 편만하게 복음을 전하는데, 처음에는 유대인에게만 전했다. 그러다가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서는 이방 헬라인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만 아니라 헬라인에게도 복음 전하는 일은 우리 주님이 원하셨던 일이었다. 그래서 주의 손이 이방인에게도 복음 전하는 이들과 함께 하여서 수많은 이들이 믿고 주께로 돌아온다. 그 결과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교회가 세워진다.

안디옥교회가 개척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 환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성도는 복음 전하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만약에 초대교회 사도들이나 성도들 그리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환난의 바람이 불 때, 그 환난이 지나가기까지 멈추었다가 후에 다시 평안해지면 복음을 전하겠다는 식으로 사역했다면, 우리 조선 땅에는 아직도 복음의 ‘복’자도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 선교역사를 보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선교사님들이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헌신과 수고를 하셨는지 모른다.

제임스 홀 선교사님 같은 분은 전염병으로 고통하는 사람들 곁을 끝까지 지키다가 결국 이 땅에서 순교한다. 홀 선교사의 부인이었던 로제타 선교사님은 남편을 잃고 시댁이 있던 캐나다로 돌아갔다가, 다시 남편이 목숨을 바친 이 땅을 위해 자기도 죽기로 각오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을 풍토병으로 잃게 된다. 이렇게 남편과 딸을 가슴에 묻고서도 로제타 선교사님과 그의 아들 셔도우 홀 선교사는 끝까지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하다가 결국 이 땅에 묻히게 되었다.

이처럼 환난의 바람이 불어도 굴하지 않는 복음의 정신을 가진 성도들이 있었기에, 오늘 안디옥교회도 세워지고, 어둠과 절망의 땅이었던 우리나라도 복음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2) 두번째는 안디옥교회 1차 부흥기다. 첫번째 이방인의 교회 안디옥교회가 일반 성도들의 수고로 개척되었는데, 이제 갓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어린 신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교회를 돌아보며, 복음 사역을 지속적으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영적 지도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한다. 말하자면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의 초대 목사라 할 수 있다. 행13:1을 보면 바나바를 선지자와 교사라고 하는데, 이것은 바나바가 안디옥교회 사역자로 왔음을 의미한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첫번째 목회자로 온 일이 계기가 되어 안디옥교회는 큰 부흥을 맛본다. 그래서 24절 끝을 보면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하고 바나바 사역의 열매를 말씀하신다.

그러면 안디옥교회의 1차 부흥의 원동력이 된 바나바는 어떤 사람인가? 행4:36-37을 보면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한다.

여기보면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 목회자로 파송되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교회에서 사도들과 성도들에게 공히 존경받고 인정받던 사람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사도들이 그의 이름을 바꾸어 부를 정도였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다. 그런데 구브로 섬 출신인 촌 사람 바나바가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가만 보니까, 바나바는 아픈 사람 외로운 사람 연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 잘 위로하는 은사가 있다. 지치고 낙망했던 성도들이 바나바를 만나면 힘을 얻고 믿음을 회복하는 역사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사도들은 아예 그 이름을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바나바’라고 고쳐 불렀다.

교회에는 이런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아야 한다. 그 마음이 하늘 아버지의 긍휼과 십자가 사랑과 은혜의 단비로 늘 적셔져 있어서, 누구라도 품고 상처를 달래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주님의 교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위로자인 바나바는 또 사랑과 헌신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낯선 땅 예루살렘에 와서 수고하여 모은 재산, 자기에게는 인색하게 살면서 아끼며 모은 재산을 팔아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사용하라고 사도들의 발 앞에 내어 놓았다.

이 바나바에 대해 오늘 본문도 2가지를 증거한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바나바는 그 인격이 하나님 은혜로 잘 다듬어져 있어서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지만 상처는 주지 않는 순진하며 어질고 착한 사람이었다. 또 영적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성령 충만하고 오직 믿음으로 사는 사역자였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는 맡겨주신 사역을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열심을 다해 섬기는 충성된 일군이었다. 23절을 보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뭔가? 안디옥의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보며 바나바는 그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를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안디옥교회 목사로 세우신 것을 감사하면서 말씀 사역에 열정을 쏟되, 한 영혼도 소홀히 하지 않도록 ‘모든 사람’을 은혜의 말씀으로 권했다.

그 결과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 지게 되었다고 24절은 증거한다.

 

오늘 우리 기장교회가 있기까지도 사실은 바나바 목사님 같은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의 섬김이 있었다.

기장교회 청빙을 받고 요람에 나오는 교회연혁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107년의 역사도 감동이지만 호주의 선교사님이 정덕생 조사와 함께 처음 개척하셨다는 사실이 제 마음에 자부심을 주었다. 왕길지 선교사님은 원래 독일에서 태어났는데, 인도 선교사로 사역을 하다가 후에 부인의 고향인 호주로 이민을 가서 사셨다. 그러다가 호주 장로교의 파송을 받고 조선에 오신 분이시다. 부산진교회도 개척하셨고 일신여학교와 평양신학교에서도 오래 섬기셨으며 울산을 비롯해서 여러 동부경남에서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폭넓게 사역 하신 분이시다.

그런가하면 왕길지 선교사님도 큰 아픔을 겪으셨는데 1905년 기장교회가 개척된 그 이듬해 1906년에 부인을 질병으로 잃으셨다. 이렇게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지만 슬픔을 딛고 일어나셔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셔서 1938년 향년 72세까지 이 땅에서 피땀 흘려 수고하시다가 귀국하셔서 이듬해 1939년에 73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왕길지 선교사님만 아니라, 그 후로 초대 영수로 섬기신 유봉수 성도를 필두로 해서 최근 최명식 목사님까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써 오는 동안 많은 종들의 눈물이 이 교회의 기초가 되었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다가 하늘나라에 입성하신 수많은 성도들의 희생이 이 교회의 기둥이 되었다.

이렇게 좋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남긴 신앙유산 위에서 이제 우리 기장교회는 21세기 기장 땅의 하나님 나라 역사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 바라기는 이제 저와 우리 성도들이 한 성령 안에서 한 마음 한 뜻 되어서 모든 겸손과 눈물과 사랑으로 사역함으로, 우리 교회도 안디옥교회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교회 그래서 큰 무리가 주께로 더하여지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3) 세 번째는 안디옥교회의 2차 부흥기다.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바나바의 섬김으로 안디옥교회가 양적으로 크게 부흥을 하는데, 바나바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까지 부흥한다.

이에 바나바는 고향 다소에 내려가서 말씀을 연구하고 있던 바울을 찾으러 간다. 그래서 바울을 안디옥교회 동역 사역자로 데리고 와서 둘이서 일년 동안 큰 무리를 모아 놓고 말씀을 가르친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26절 끝에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한다.

안디옥교회의 개척 단계의 핵심 개념은 환난 중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평신도였다면, 1차 부흥기의 핵심은 착하고 성령과 믿음 충만한 목회자를 통한 양적인 성장이었다.

이제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사역했던 2차 부흥기의 핵심은 사역자들이 함께 동역하는 말씀 사역 그 열매로 나타난 질적인 성장이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안디옥교회 부흥은 믿는 자의 수가 더해지는 양적 성장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이제 믿는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는 참된 영적 부흥으로 나아간 것이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을 보고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러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고 스스로 부르라고 주입시킨 적도 없다. 혹은 성도들이 모여 회의를 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게 말하자고 결정한 적도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다’ 그렇게 불러 주었다.

왜 세상 사람들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다’ 그렇게 불렀는가? 세상 사람들의 눈에 안디옥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을 보니 뭔가 사람이 달라진 것이 보였다. 삶이 변하고 인격이 변한다. 말도 달라지고 남을 섬기는 마음이 전과 같지를 않다. 겸손하면서도 진실해지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는다.

그런데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변화는 모습을 가만 보니까 공통점이 있는데, 누군가를 닮아가고 있다. 누구를 닮아 가는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눈에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의 눈빛이 깃들어 있고,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삶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과 헌신이 향기처럼 묻어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한다. ‘저 안디옥교회 다니는 사람들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 저 사람들 가까이 가면 예수님의 향기가 난다. 저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야. 그리스도인이야’ 그렇게 불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기장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정말로 소망한다. 우리 기장교회 성도들이 여기 안디옥교회 성도들처럼 ‘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야’ 정말로 그렇게 칭송듣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 맛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밟히는 소금과 같이 되어서 ‘저 예수쟁이 봐라, 잘-- 하네’하면서 조롱받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그런 성도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의 인격이 주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며, 우리의 삶이 주님처럼 희생하고 섬기며, 우리의 마음이 주님처럼 사랑과 긍휼로 가득해서 ‘사람다운 사람 만나고 싶으면 기장교회로 가 봐라, 거기가면 진짜 예수쟁이들이 있다’ 그렇게 칭송을 받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우리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진정한 영적 부흥을 한번 일으켜 보라고 무려 107년 전에 이 땅에 기장교회를 세우시고 오늘까지 은혜로 이끌어 오신 것 아니겠는가?

주님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장이 그렇게 넓은 동네가 아니다. 우리의 작은 말 한 마디조차도 세상 사람들 앞에 다 드러난다. 부디 바라기는 말 한 마디,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나는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영광이 되도록 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범사에 헤아려 조심하고 경성하여서, 우리의 빛된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의 빛이온 기장 땅 위에 환하게 비추이게 되기를 축원한다.

 

그러면 바울과 바나바는 어떻게 사역했길래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는가?

26절 앞부분을 같이 한 번 읽자.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서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여기서 두 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둘이’ 하는 단어고, 또 하나는 ‘일년간 가르쳤다’는 표현이다.

우선 ‘둘이’ 그랬다. 뭔가? 동역했다는 말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주의 일을 위해서 동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그래서 제가 기장교회 담임으로 청빙된 이후 지난 두 달 반 동안 줄곧 기도해온 첫 번째 기도제목이 좋은 동역자를 달라는 것이었다. 좋은 부교역자들을 주시고, 장로님들이 정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 되게 해 주시고, 나아가 우리 구역장들과 주일학교 교사들과 그 외에 모든 사역들에 동역자의 정신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수고하는 성령충만한 동역자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 왔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21세기 기장교회 역사에서 선한 믿음의 동역자 되어 주시기를 바란다.

그 다음은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다’고 한다. 뭔가? 바울과 바나바가 거의 매일 성도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고 훈련했다는 말씀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말씀에 있음을 믿고, 바울과 바나바는 주신 직분을 따라 말씀을 가르쳤는데, 그 가르친 하나님의 말씀이 인디옥교회 성도들을 변화시켰더라 그 말이다. 그래서 전에는 그 속에 세상의 사상 세상의 가치관 세상 욕심이 가득차서 인간 냄새가 물씬 풍기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차서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더라 그 말이다. 말씀이 성도들의 삶도 인격도 모두 변화시킨 것이다.

안디옥교회에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진정한 영적 부흥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 기장교회도 이제 하나님 말씀이 역사하여 진정한 영적부흥이 일어나는 교회 되기를 바란다.

 

4) 마지막 네 번째는 안디옥교회의 성숙기 또는 사역기이다.

환난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평신도들에 의해 개척되었고, 성령과 믿음 충만한 바나바를 통해 양적으로 부흥했고, 바울과 바나바의 말씀사역으로 삶이 변하여 세상에 칭송을 듣는 진정한 영적부흥까지 일어났다.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할 단계인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 은혜로 부흥한 다음에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 그러면 그것은 진정한 부흥이 아니다. 진정한 부흥의 열매는 온 교회가 힘을 모아 하나님의 선한 뜻들을 이루어 가는 데 있다.

 

오늘 본문 27-30을 보라. 부흥을 경험한 안디옥교회는 먼저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교회를 돌아보는 사역을 한다.

안디옥교회가 1차 부흥을 지나 2차 부흥의 은혜를 맛보고 있을 때,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내려온다.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으로 온 천하에 흉년이 들 것이라 한다. 아가보의 예언대도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 큰 흉년이 찾아오는데, 안디옥교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흉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예루살렘교회가 있는 유대 지방이었다. 그랬을 때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자신들도 흉년으로 힘들지만, 그러나 자기들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기꺼이 헌신하기로 뜻을 모은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결단한대로 각각 있는 힘을 다해 부조를 한다.

뭔가? 진정한 부흥을 맛본 성도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같아서, 지금까지는 움켜지기만 했던 손을 펼쳐서 나눔과 섬김을 실천하게 되더라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하늘 영광이 부요함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사 우리를 위해 당신을 허비하신 것처럼, 은혜를 받아 주님의 마음을 품은 성도도 낮은 자리로 가서 섬김의 손을 펼치더라 그 말이다. 진정한 부흥은 나눔과 섬김과 베풂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13:1-3을 같이 읽어보자. ‘안디옥교회에 ............. 안수하여 보내니라’.

11장 끝에까지만 해도 안디옥교회를 섬기는 영적 지도자는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 뿐이었다. 세월이 좀 더 지나면서 안디옥교회는 더 부흥을 하는데, 이제 13장에 오면 선지자와 교사 곧 목회자가 다섯 사람이나 된다.

게다가 저들은 하나같이 한눈 팔지 않는다. 오로지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의 뜻을 헤아리고 순종하는데 전념한다. 그래서 ‘주를 섬겨 금식했다’고 말씀하신다. 금식하면서까지 주님 앞에 경건하게 살려했고 주님의 뜻을 물으며 살려했고 주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려 했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주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니까, 성령께서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명을 주신다. 그 사명을 가리켜 2절에서는 ‘주님이 불러 시키는 일’이라고 하신다. 주님이 친히 불러서 시키시는 일이 뭔가? 바로 선교사를 세워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안수한 후에 파송하는 일이다. 선교하는 일이 주님이 시키신 마지막 사명이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은 선교사로 세움을 받았고, 다른 모든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세움을 받은 두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후원하는 일을 하게 하신 것이다.

이렇게 안디옥교회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건강한 지도자가 있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칭송을 받는 건강한 성도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은 바로 이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선한 일들을 이루어가시되, 마지막 시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거룩한 사명을 이루어가시려 하셨다.

 

마찬가지다. 이제 우리 기장교회와 성도들은 어떤 교회 어떤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는가? 먼저는 말씀으로 진정한 영적 부흥을 맛보는 교회, 기도로 진정한 은혜를 누리를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안디옥교회처럼 구제와 섬기는 일로, 온 세계 열방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로 쓰임 받는 그런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은 나이에 걸맞게 살아야 한다. 어린 아이가 어린양을 피우는 것은 귀엽고 예쁘다. 그런데 다 큰 어른이 어린애처럼 굴면 그것 참 볼썽사납고 민망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개척교회가 자기 역량과 맞지 않는 무리한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부흥을 경험한 교회, 역사와 전통이 있는 교회는 그에 걸 맞는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 그 교회도 성도들도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 우리 기장교회는 100년 넘는 역사와 견고한 신앙전통을 가진 교회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

힘대로 구제하고, 힘대로 지역사회도 섬기며, 힘대로 선교하고, 힘대로 선한 일 해야 한다.

 

2. 오늘은 우리 기장교회가 모델로 삼을 때 손색이 없는 초대 안디옥교회의 역사를 잠시 살펴보았다.

1) 안디옥교회는 어떤 교회였는가?

환난에도 굴하지 않는 평신도의 수고로 세워진 교회였다.

착하고 성령충만한 바나바 목사의 사역으로 부흥한 교회였다.

바나바와 바울이 동역하여 말씀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의 삶이 변해서 칭송받는 교회였다.

온전한 마음으로 주를 섬기고 금식하며 기도하기까지 주의 뜻을 구하는 교회였다.

구제하며 선교하는 일로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교회였다.

2) 이런 안디옥교회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우리 기장교회도 안디옥교회와 같은 부흥과 사역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결론. 우리 성도님들이 아마 많이들 궁금하실 것이다. 새로 오신 목사님은 어떤 방향으로 목회를 하시려나?

제가 기장교회 담임 후보가 된 뒤에 ‘목회계획’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받고, 제가 우리 장로님들께 보내드린 문서에 제가 생각하는 목회와 사역에 대해 정리한 글이 있다. 이 시간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잠시 들려주려 한다.

“제가 이해하고 있는 목회는 ① 주님께 소명을 받아 목회자로 세움을 받은 사역자가 ② 주님이 맡겨주신 양무리를 말씀과 기도와 사랑으로 가르치고 훈련하고 섬김으로 ③ 성도 개개인이 신앙인격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힘쓰게 하고 ④ 말씀중심의 건강한 가정을 이루게 하며 ⑤ 거룩하고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세워 예배하고 전도하고 선교하며 구제하며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목회관을 가졌다는 것은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목회를 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봐서는 우리 성도님들이 조금 이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다시 요약해서 말씀 드리면 세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복음전파이다. 개척교회만 아니라 아무리 대형교회라도 계속적으로 복음을 전해서 믿는 자의 수가 더해져야 한다.

둘째는 양육과 훈련이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인’이라 칭송받은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칭송받도록 양육되고, 또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때가 되매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선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 것이다.

셋째는 선한 사업이다. 안디옥교회가 구제하고 선교하는 선한 일 했듯이, 우리 성도들도 선한 일들을 감당하며 사는 성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최종적으로는 평신도라는 이름이 없어지기를 바란다. ‘나는 평신도다’는 생각을 버리고 모든 기장교회 성도들이 ‘나는 하나님 나라 사역자다 일군이다’ 하는 정신으로 주를 위해 일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무쪼록 안디옥교회처럼 날로 부흥하는 교회,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교회, 세상에 칭송받는 성도, 마지막 때 하나님께 쓰임받는 아름다운 기장교회의 새로운 역상에 우리 모든 성도들이 주인공들 되어 주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