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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주소
    http://gijangc.iptime.org/vod/
    성경구절
    마가복음 12장 28~37절
    설교일
    2018-03-28
    설교자
    권재완 담임목사

천국에 가깝지만 들어가지 못한 사람 12:28-37, 18-고난특새(침묵의 날)

 

서론. 고난주간 특새 셋째 날이다. 오늘도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가 가득하시기 바란다.

이번 고난 주간에는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던 때 마지막 한 주 동안 있었던 일을 맞추어 말씀을 살피는데, 첫 날은 권위의 날이라 부른다 했고, 둘째 날은 논쟁의 날이라 했다. 그러나 어제도 잠시 말씀 드린 것처럼 사실 정확하게 시간 순서로 사건을 다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단지 참조만 할 뿐이다. 셋째 날은 흔히 침묵의 날이라 부른다. 셋째 날에 주님이 하신 일을 기록상 찾아보기가 어려워서 그렇게 붙였다.

 

1. 그래서 침묵의 날 이라고 부르는 오늘은 셋째 날 있었던 일이 아니고, 주님 십자가 지시기 직전에 한 서기관과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우리 구원과 관련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주님께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의 사상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하나님 말씀으로 잘 드러내는 것을 듣고 있던 한 서기관이 주님께 질문을 한다.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바리새인들 특히 서기관들은 내세와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부활의 확실성을 잘 가르치신 주님을 보면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성경에 보면 대부분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님께 대해 적대적이지만, 그러나 저들 중에는 주님의 인격과 가르침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관심을 보인 사람도 많았는데, 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이 서기관은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이에 주님은 아주 명료하게 답하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 특별히 하나님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핵심은 사랑이라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원래 하나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이요 모습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우리네 인생을 진실한 사랑의 존재로 지어셨다. 말하자면 사랑은 원래 우리 인간 존재의 본질이다.

이렇게 사랑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단 한 가지 계명인데, 우리가 사랑해야할 대상은 크게 둘이라 하신다. 먼저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왜 그리고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주목해 보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서 사랑해야 한다고, 다시 말하면 정말 하나님 사랑하는 일에 우리 모든 것을 다 동원해야할 것을 알린다. 이 말씀은 동시에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서 사랑해야할 분은 하나님뿐이시라는 의미도 된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면서 정말 내 마음과 목숨까지 다하여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 있는가? 있다면 크게 세 부류 정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기 배우자나 자녀나 자기 자신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우리 인생이 마음과 목숨과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해야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진실로 하나님만이 우리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 쏟아 사랑해야할 분이시다. 그 분은 유일한 하나님이요 우리는 그가 지어셨고 그의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우선할 대상도 일도 없다. 그 대상이 무엇이며 그 일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 사랑보다 앞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번 주 고난주간을 지키고 있지만, 유일한 주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셨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힘과 뜻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에 이어 둘째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다. 가장 중요한 계명은 첫 번째도 사랑이었는데 두 번째도 또 사랑이라 하신다. 그런데 마음과 목숨까지 다하여 사랑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셨고, 이웃에 대해서는 너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다.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나와 이웃을 나누지 말라는 의미가 포함된다. 마치 하와를 만드실 때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심으로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이라고 했던 것처럼 나와 너를 따로 구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치 이웃을 나의 일부처럼 여기고 그렇게 가까이 하라는 말씀이다.

우리 사람은 자기에게 속한 것은 아낀다. 해롭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웃을 나와 관계없는 사람으로가 아니라 마치 나의 일부처럼 여기면, 우리는 이웃을 아끼게 될 것이고 또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2. 이렇게 주님께서 계명의 핵심을 잘 말씀하시니까 질문했던 서기관은 신이 났다. 자기 생각과 주님 생각이 너무 같다고 기뻐한다. 그래서 주님 말씀에 맞장구를 치면서 덧붙인다. 마음과 목숨까지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서는 하나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덧붙이고,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다른 제사나 번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고 해설을 덧붙이는 것이다.

어떻는가? 이 서기관은 참으로 말씀에 대해 나름대로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서기관이 계명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답하는 것을 들으시고 주님도 말씀하신다.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의 이 말씀을 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선 이 말씀은 서기관이 하나님 계명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가진 것에 대한 칭찬이다.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이 깊은 사람임을 칭찬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100% 칭찬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는 것은 아직 들어오지는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깝기는 한데, 여전히 하나님 나라 문 밖에 서 있을 뿐이지 들어오지를 않고 있는 것이다. 뭔가가 이 서기관으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다.

그러면 서기관의 문제가 무엇인가? 오늘 v.35-37을 보면 주님은 한 가지 질문을 통해 당시 내세도 인정하고 부활 소망도 가진 서기관들이 하나님 나라에 가깝기는 하되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는 이유를 지적하신다.

주님의 질문은 이것이다. 메시아가 누구의 후손으로 오시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서기관들은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런 문제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다윗의 후손이지요.’ 대답한다. 주님이 한 가지 질문을 더 하신다. 그러면 어찌하여 다윗은 성령에 감동을 받아서 메시아를 가리켜 내 주님이라고 고백 하였느냐? 묻는다. 이 두 번째 질문을 하니까 다른 많은 사람들은 즐겁게 듣는데, 조금 전만 해도 자신만만하던 서기관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한다. 주님이 왜 이 질문을 하신 것인가? 그리고 오늘 마가는 왜 주님의 이 질문을 한 서기관에게 네가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하신 말씀 다음에 기록을 해 놓은 것인가?

이 부분을 자세히 살피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 결론만 말씀드린다. 구약 성경에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 예언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다윗은 자기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해 내 주께라고 말했다. 자기 후손으로 오는 인물을 보고서는 다윗이 나의 주님이라 한 것이다. 다윗이 자기 후손을 보고 내 주여!’라고 한 것은, 메시아는 단순히 다윗의 후손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원래는 하나님과 동등이신 분이요 하나님 아들이신 분이심을 다윗은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오시는 방식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뿐이지, 원래 메시아는 다윗조차도 내 주님하고 믿고 따라야 창조주요 만민의 구주이신 분이심을 다윗은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다윗조차도 내 주님이라고 부른 이 메시아 때문에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 이 진리를 아는 고로 다윗은 자기 후손으로 오실 분을 보고 주님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면 왜 마가도 그렇고 마태도 그렇고 복음서는 이 사건을 한 서기관이 하나님 나라에 가깝다는 말을 들은 다음에 기록을 한 것인가?

오늘 주님께 계명 중의 첫째가 무엇인지 물었던 서기관은 겉으로 보기에는 계명에 대한 이해가 모자람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은 계명의 내용은 잘 알았지만, 하나님의 계명에 감추어진 진짜 중요한 비밀은 알지를 못했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의 힘과 의로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으며, 이웃을 또한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일은 계명을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계명을 통해서 자기들의 근본적인 죄성을 보지를 못했다. 그래서는 자기들은 계명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자기들의 의로 여겼고, 심지어 자기들의 죄의 실상에 눈을 감은 채 자기들은 계명이 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은 계명을 내용을 잘 깨달아 아는 서기관에 천국에 가깝기는 하다고 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서기관은 계명을 통해 더 중요한 자기의 죄를 보지 못한다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를 못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 죄를 봄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의를 베풀어주시는 메시아를 믿지 않는 이상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주님은 한 서기관에게 천국에 가깝다고 칭찬한 다음에, 다윗도 메시아를 주로 믿고 고백한 사실을 가르치려 하셨다. 서기관이 지금 가까이 서 있는 그 천국에 들어가려면, 다윗처럼 주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메시아를 만나, 메시아가 십자가를 통해 베푸시는 죄사함의 은혜와 성령의 은혜를 덧입어야만 하는 것을 일깨우려 하신 것이다.

메시아를 믿지 않는 이상, 아무리 계명을 잘 알아도 천국에 가까이는 설 수 있어도 들어가지는 못하는 것이다.

 

결론. 주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범죄한 우리 인생이 결코 스스로 의로워질 수도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기에, 우리 구주께서 십자가를 지셨다. 이제 이번 고난주간에 주님 십자가의 능력을 깨달아서, 더 이상 천국에 가까이만 서 있는 사람 되기 마시고 구주를 힘입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 되시기 바란다. 천국에 들어감으로 성령을 받아서, 이제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며 사는 천국 백성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