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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 아론
  • Nov 10, 2014
  • 4021

                         (아버지 학교 때 어떤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저~~ 보이소.....」

   「이제 우리 함께 살면 쌀밥만 해 주면 안되겠소」

   「때마다 따끈따끈하게 챙겨서 말이요」

 

   32년 전 결혼 후 첫 대화였지요.

   신혼 때 남편의 말이라고 그날부터 지금까지 아침저녁은 먹든 안먹든 항상 새로지은 따뜻한 밥으로 상을 차렸죠.

   나는 그렇게 하는것이 당연한 줄 알았고, 한해 두해 살면서 그게 아닌 줄 알았지만 강산이 세번씩이나 바꿔어도 고치지 못하고 살아왔소.

 

   가끔씩 외식으로 보리밥, 칼국수 먹자며 애기해도 당신과 애들만 먹으라며 외면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죠.

   때때로 나는 식은 밥만 먹는 식순이냐며 넉두리하듯 불평하여도 그것을 이해 못한 내가 못난 사람이었소.

   이렇게 잘못된 습관은 당신을 귀찮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먹거리가 부족했던 어린 시절 배불리 먹어 보는 것이 한이되어 그렇게 된 것 같고,  뇌리에는 항상 김이  모락거리는 따뜻한 흰 쌀밥 먹는 것이 평생 소원되어 그렇게 된 것 같소.

 

   국민학교 3학년 때 입 하나 덜기위해 이웃집 지겟꾼으로 일한 품값이 겨우 한끼 때운 마음의 멍이 아직도 남아 있고, 배급받은 강냉이 죽은 그렇다치고 꽁보리밥, 고구마 밥, 무밥은 그래도 먹기 나은 편인데 콩밥, 밀밥, 오뉴월 생보리밥은 입안에 뱅뱅돌며 목구멍으로 넘어가지않아 정말 죽지 못해 먹고 산 기억이 생생하오.

 

  형편이 안되는 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무이(엄마) ! 나도 졸업 여행 가면 안됩니꺼?

          못가는 사람은 내 혼자라고 하는데 좀 보내 주이소..........

                       " 아이고 야~야~  돈이 없어 그렇다 아이가 "

                       "  돈만 있어봐라 왜 안보내 겠노"

                       " 니는 안가몬 안되겠나?" 어머님 말씀에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혼자  텅 빈 교실을 3일동안 지키면서 산에 올라 나무 한 짐지고 서러운 눈물만 삼켰던 기억이 또렷하고, 장이 서는 날 겨울철은 땔감나무, 여름철은 가마니 팔고 돌아 올 때면 어린 마음에 지게 진 모습으로 지나가는 것이 친구들 보기에 부끄럽기도하고 창피하여 지름길을 두고 산길로 돌아 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소.

   이런 환경에서 자란탓에 마음의 여유와 남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소.

 

   또 하나 있소.

   아무리 없어도 한번뿐인 결혼식은 하얀 드레스에 금반지로 평생을 약속 한다는데 난 입혀주지도 끼워주지도 못하였고, 예식만 달랑 마친 후 어른들께 신혼 여행은 제주도로 떠난다며 나섰지만 빈 호주머니에 여행은 고사하고 이틀 동안 여관만 전전하다 밀감 한 박스 들고 간 것이 친정 첫 걸음이었지요.

   감추고 싶었던 신혼 여행이었는데 추억의 사진이 한장도 없었기에 곧 알게 되었고 그 순간 가진것 없는 나의 자존심만 상한 것이 아니라 당신 보기도 참으로 민망스럽고 내 자신이 원망 스러웠소.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당신에게 너무나 큰 빚을 졌구료.

   용서 바라오.

 

   언젠가 말 했죠

   나도 흰 드레스 입고 다시 결혼식을 올렸으면 좋겠다고..... 

   우리도 제주도 여행 한번 가면 안 되겠냐고.....

   난 그 말에 마음이 무너지고 찢어졌다오.

 

   지나간 일들이 옛 추억처럼 느껴지지만 나에게는 많은 형제들 틈에 살기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생존 경쟁이었고, 당신이 알다시피 우리 부모님은 10남매 다 건져 보자며 만주로, 일본으로 떠돌다가 온 식구 이끌고 겨우 찾아 정착 한 곳이 파란민들이 살다 떠난 거제도 둔덕골이 나의 고향이 되었잖소.

   그래도 염병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은 7남매를 위해 남의 전답을 빌려 소작농으로 겨우 연명하며 살아온 홀시아버지를 짫았지만 당신도 모시고 살지않았소.

 

   결혼 후 형편상 어쩔 수 없이  형님집에  얹혀 살 때가 있었는데 그 때보다는 세간살이 하나 없이 쫒겨나오듯 나와서 투병중인 시아버지와 두 아들과 함께 단칸방에 오손 도손 살던 때가 가장 행복했든 시절이라고 미소 짓는 당신 모습에 나는 진심으로 보였기에 그것이 정말 행복한 줄 알았던 미련하고 무심한 남편이었소.

 

       이제야 알았소.       

                그것이 행복이 아니었음을 ......

                          이제야 깨달았소.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능 하였는가를 ......

 

   이제 약속하리다

   늦었지만 우리의 소원 하나씩 지켜보겠노라고,

   또  내 자신을 깨트리고 낮추며 변화된 삶을 살아 보겠노라고. 

 

   순한 듯 보이지만 완고한 고집과 한번 옳다고 생각되면 뒤도 돌아보지않는 나를 그래도 하나님이 맺어준 남편이라고 믿고 섬기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당신이 오늘에야 새롭게 보였소.

   모난 돌이 정을 맞을 때 마다 둥글어지듯 나도 그렇게 되려하오.

   이제껏 한번도 당신을 여보라고 부르지 못한 못난 남편이 아버지학교 힘을 빌려 오늘 밤 꼭 껴안고 힘껏 불러 보렵니다.

       

         "여보" 미안하오.

                      "여보" 사랑하오.

                                그리고..... 고맙소.

 

   그래도 우리에겐 믿음의 후손 두 아들이 있잖소.

 

                                                                                                                                           2014. 11. 8 

 

  • profile
    천사와 결혼을 하셨군요~^^
    솔직한 사랑의 고백을 들은
    천사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보이는듯 합니다.
    앞으로 살갑게 더 잘해드리셔요.
    눈물나게 짠한 사랑의 고백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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