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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위원회 게시판

<3장 성경해석의 원리>

 

해석은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책을 읽을 때 독자는 그 책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를 위해 독자는 책의 저자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관심을 가진다. 또한 저자가 어떤 상황에서 책을 기록한 것인 지에도 관심을 가진다. 이런 관심에 답을 내리면서 독자는 책에서 말하고자하는 의미를 바르게 이해한다. 독자는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독자 자신의 삶에서 이 책이 주는 의미를 찾는다. 이것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수행하는 일반적인 해석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는 독자들도 성경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에 적용하는 일을 수행하는데, 이것이 성경해석이다. 그런데 성경해석은 적절한 방식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책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면 성경 저자의 의도를 알아야 한다. 성경은 신적인 기원을 가진 것으로 하나님께서 저자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를 사용하셨다는 점에서 이중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오늘날 독자들에게 들려지는 말씀이기 이전에 오래 전에 들려졌던 말씀이란 점에서 오늘날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진 고대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성경을 읽는 독자들은 이런 점들을 신중하게 고려하면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본 장에서는 성경해석의 필요성, 성경해석의 전제와 과제 그리고 원리를 통해 바른 성경해석의 방법을 알아보기로 한다.

 

1. 성경해석의 필요성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성경을 읽고, 믿고, 순종해야 한다.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원의 진리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으므로 누구나 성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굳이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성경이 가르치는 분명한 복음이 전문가들의 해석으로 인하여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을 적절히 해석할 때, 성경은 그 본래의 의도하고자 하는 것을 드러내게 된다. 물론 성경을 대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가르침에 순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해석의 목표는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만이 아니라, 본문의 명확한 의미를 확인하고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 해석 작업이 필수적인 이유는 성경을 읽는 독자의 본질과 성경 자체의 본질을 함께 고려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첫째로 독자는 해석자이다. 대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그 읽는 것을 당연히 이해한다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해하는 그것이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뜻과 일치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문의 용어나 사상을 이해하기 전에 성경 본문 안에 그들 자신의 경험, 문화, 관념, 선입관 같은 것들을 집어넣는다. 이렇게 성경 본문에 집어넣는 사람들의 가치들은 고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본래 의미를 흐리게 만든다.

일례로 서구 문화에 익숙해 있는 독자가 성경에서 십자가를 읽는다면 그는 수세기 동안 기독교 미술과 상징에 젖어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로마의 십자가를 연상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실제로 지신 십자가 모양은 ‘T’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개신교인들이나 가톨릭교인들은 교회에서 예배하는 성도들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에 당연히 의자들이 들어차 있는 건물 안에 앉아 있는 교인들을 연상한다. 그런데 초대교회 교인들은 오늘날의 교회 건물과 같은 곳에서 예배한 것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예는 롬13:14에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라는 부분을 읽을 때 육신육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육신은 육체가 아니라 죄악된 본성을 의미한다. 사실 바울이 육신이란 말을 사용할 때에는 육체를 가리키지 않고 대체로 영적인 병또는 죄악된 본성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에 독자는 해석자로서 자신의 의도는 아니지만, 성경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으며, 그 해석은 성경의 본래 의도와는 맞지 않을 때가 많은 것이다. 이 점에서 바른 성경해석은 성경 독자들의 잘못된 해석을 교정하며 성경 자체의 의도를 깨닫게 하여 바르게 순종하도록 돕는다. 한편 독자가 해석자인 까닭은 대부분의 독자들은 성경 번역본을 대하기 때문이다. 번역은 그 자체가 해석의 한 형태이다. 어떤 성경 번역본을 선택하든지 그 번역본은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완성된 해석의 산물이다. 성경 번역자들은 어떤 문장이나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몇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종종 봉착하는데, 여기서 그들이 선택한 의미가 독자들의 이해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번역본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독자들이 해석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로, 성경 자체가 본질상 해석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역사 속에서 사람의 말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러한 성경의 이중성 때문에 해석이 필요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영원한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성경은 특정한 역사적 배경을 깔고 특정한 민족에게 주어진 말씀이므로 역사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성경의 영원한 타당성과 역사적 특수성이란 긴장이 발생한다. 여기에 성경 해석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성경은 신적인 책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의해 기록되었기에 인간적인 면을 담고 있다. 이러한 이중성을 생각할 때 두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은 1,600년이란 세월에 걸쳐서 다양한 상황에 처했던 실존 인물들을 통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어휘와 사고방식을 통해 표현되며, 문화와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은 일차적으로 우리가 아니라 성경이 기록되었던 그 당시 사람들을 위한 말씀이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과거의 사람들의 위한 말씀을 지금 여기서 들어야 한다.

또 하나는 성경은 인간적인 상황에 맞게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설화적 역사, 계보, 연대기, , , 잠언, 예언, 수수께끼, 연극, 전기적 이야기, 비유, 편지, 설교 등 수많은 장르가 있다. 그러므로 성경 본문을 그 당시 그 곳에서 들려진 말씀으로 이해하려면 모든 성경 본문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일반 법칙을 알아야 함과 동시에 각각의 문학 장르에 적용되는 특수한 법칙도 알아야 한다.

 

2. 성경해석의 전제

 

모든 일에는 준비 활동들이 있다. 달리기를 하거나 수영을 할 때에 준비 운동을 거쳐야 한다. 그런 준비 운동을 거치지 않고 활동을 하면 부상의 위험에 놓이게 된다. 연구소에서 일정한 기간 프로젝트를 실행하려면 사전에 충분한 연구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무턱대고 일에 착수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없다. 모든 활동에 준비가 필요하듯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도 적절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경공부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신념과 올바른 방법에 대한 신념에서 출발해야 한다. 혹자는 신념을 기초해서 성경을 보아서는 안되며 열린 마음으로 성경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이 완전하게 열린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구든지 자신의 신념을 제쳐놓고 순수한 상태로 성경을 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건전한 신념에 기초하여 성경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신념이란 신,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번역본을 통해서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것과 성경의 통일성과 자증성 등에 관한 것들이다. 스트렛은 성경해석을 위한 출발과 관련한 신념들을 아래와 같이 일곱 가지로 이야기 한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책이란 신념이다. 이러한 확신이 없으면 성경공부를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없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성경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지, 그 성경에 대해 인간이 이해한 바가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한 것은 아니란 점이다. 즉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성경이 그렇게 가르친다고 믿는 것을 실제로는 말씀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의 어리석고 잘못된 생각을 성경 말씀에 일치시켜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경은 인간의 성경구절 이해가 옳다고 증명해 주는 책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해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둘째로, 성경은 번역본을 가지고도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어떤 이들은 성경 번역상의 문제 때문에 반드시 성경을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으로만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통해 대부분의 성도들은 번역도니 성경만을 알았다. 현대에서도 성경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대부분 성도들이 알지 못하도록 성경을 숨겨두시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번역된 성경이라도 성경의 핵심적인 의미는 그대로 전달해 준다. 물론 학자들의 연구가 우리의 성경 지식을 넓혀주고 값진 통찰을 얻게 한다. 특별히 성경 해석상의 어려움은 학자들의 연구 성과의 도움을 입는다. 그러나 원문 성경을 읽지 못한다고 해서 성경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번역본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이 아니란 점은 신약성경 저자들의 구약 인용의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성경의 원문인 히브리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음에도 70인역을 종종 활용하였다. 70인역은 기원전 280년경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인데 신약성경에 나오는 구약의 인용은 히브리어 원문 성경보다는 헬라어 번역본을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번역본을 활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하는 것이 전혀 잘못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신뢰할 수 없는 성경 번역본들도 있다. 경건한 학자들이 기도하며 신중하게 성경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영감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번역된 것들이 그러하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신뢰할만한 번역본을 선택해야 한다.

셋째로, 성경은 통일성이 있다는 신념이다. 그런데 이러한 통일성은 계시사적인 발전성을 나타내는 통일성임을 알아야 한다. 구약은 그리스도로 집약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하게 이해될 수 있다. 종국적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 성경 해석은 바람직한 결실을 얻을 수 없다.

넷째로, 성경의 자증성에 대한 신념이다. 자증성이란 성경 스스로가 하나님 말씀임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문맥으로 성경을 푼다는 것이다. 한 절의 성경 말씀은 다른 절의 해석을 위한 빛이 된다. 문자적 서술은 상징적 서술을 풀어주며, 신약의 역사와 교훈은 구약의 예언을 풀어준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성경해석을 비교할 때에도 전체적인 성경의 교훈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어떤 사람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과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는 말씀을 비교하여 자신의 모든 재산과 가족을 다 처분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면 이 사람의 가족은 남의 의존을 받아야 한다. 이 사람은 성경의 비교를 피상적으로 한 셈이다. 이 사람은 고전 16:2, 딤전 5:8, 6:17-19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로, 성경의 언어는 평상인의 언어라는 신념이다. 오래 전에는 신약성경은 높고 영적인 헬라어로 기록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1세기 당시 보통의 헬라어였음이 밝혀졌다. 성경의 저자들은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와 문법을 가지고 성경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여섯째, 성경의 이해는 그 메시지에 대한 지적인 반응과 동시에 순종하려는 숨김없는 반응을 수반해야 한다는 신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온전케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성경의 이해는 단지 지식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진리가 마음에 밝히 드러나면 의지가 따라야 한다. 아는 것과 순종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행하기 위해서 성경은 배운다. 행위가 없다면 참으로 배운 것이라 할 수 없다.

일곱째, 성경의 이해에는 성령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신념이다. 예수님은 성령에 대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은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하였다. 성경의 진리는 그 속에 있는 사실이나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경의 기본적인 의미는 영적인 것이다. 이러한 영적 의미를 배우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가르침이 있어야 한다.

 

3. 성경해석의 과제

성경해석은 바른 석의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즉 해석이란 석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방법이다.

 

석의 - 석의는 본래의 의도된 의미를 찾는 신중하고도 조직적인 연구 방법이다. 이 과제는 기본적으로 역사적인 과제이다. 하나님 말씀을 그 말씀의 본래 처음 들었던 자들이 들은 바 대로 듣고, 그리하여 성경 말씀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곧 석의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바른 석의를 위해서는 문맥과 내용에 대한 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문맥에 대한 질문은 역자적인 질문과 문학적인 질문이다. 역사적 문맥은 저자와 당대 독자들의 시대와 문화, 저자가 처한 상황과 관련된 지리학적, 지정학적, 정치적 요인들이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등과 같이 성경 저자들에 관련된 배경과 그들이 사역하던 시대의 특징을 이해하고 있다면 성경본문을 더 잘 알 수 있다. 또한 세례 요한과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에 퍼져 있었던 메시아 대망 사상을 아는 것, 고린도와 빌립보 지방과 같은 지역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성경을 더 잘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 독자들은 배경에 대한 자신의 지식에 따라 성경 본문 이해의 수준을 달리하게 된다. 예루살렘 산들과 미국의 록키 산맥은 다르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을 읽을 때에는 거대한 산맥을 연상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세세한 사항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각 책과 그 책들의 각 부분들의 배경과 목적을 파악하는 일이다. 즉 이스라엘 또는 교회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에 그런 책(성경 각권)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성경 저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기에 그런 책을 기록하게 되었는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이해는 성경 저작 의도와 관련된 배경 이해이며, 이것이 성경 본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 이런 배경 이해를 위해 독자는 성경 사전과 주석을 참고할 수 있는데, 일차적으로는 독자 스스로 성경을 통해 고민해 본 후 자신이 고민한 결과와 관련 자료를 대비하는 것이 좋다.

다음으로 고려할 문맥은 문학적 문맥이다. 문맥 속에서 무엇을 읽는다고 할 때에 그것은 문맥을 고려하는 석의이다. 독자들은 전문가를 찾지 않고도 기본적 언어와 문법 지식만 가지고 문맥을 통한 석의를 충실하게 할 수 있다. 문학적 문맥이란 본질적으로 단어는 문장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성경의 문장에 있어서는 대부분 앞뒤 문장과의 관계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모든 문장과 단락에 대해 반복해서 묻는 문맥적 질문은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는 왜 바로 여기서 그 말을 하고 있는가?’ 등이다. 이런 질문들은 석의의 목표인 원저자의 의도를 찾기 위한 질문이다. 이런 과제를 잘 수행하기 위해 운문과 단락이 잘 구분된 성경 번역본을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흠정역과 새 미국표준역이 그런 번역이다.

이제 독자들이 고려할 것은 내용의 문제이다. 단어들의 의미, 문장의 문법적 관계, 사본에 따라 진술하는 바가 다를 경우 원본을 택하는 문제들은 곧 내용의 문제이다. 이런 내용의 문제는 역사적, 문맥적 문제에 기초하여 접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데나리온이나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은 역사적 문맥을 기초로 이해해야 한다. 한편 고후 5:16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라고 하는데, 여기서 육체대로라는 것은 누구에 관한 말씀인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가 아니면 그리스도를 아는 독자들을 가리키는가? 바울은 우리가 더 이상 그리스도를 세상적인 안목으로 알지 않는다는 것이지,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상의 생애를 알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면 본문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달라진다. 이처럼 본문의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좋은 주석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먼저 독자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을 고민한 후에 마지막으로 주석을 참고해야 한다.

 

해석학 - 해석학은 석의를 포함해서 해석의 전 분야를 포괄하는 것으로 고대의 본문에 대한 현대적 타당성을 찾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경공부에서 성경해석이란 과거의 의미를 기초로 하여 지금 여기 독자들에게 주는 성경의 의미를 찾는 일을 말한다. 성경은 오늘날 다양한 환경에 처한 성도들에게 의미가 있으며 해결점을 제공한다. 이를 위해 해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경을 공부한다고 하면 석의의 과정을 구태여 거쳐야 하는가? 어떤 이들은 석의의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성령님께서 오늘날 독자들의 상황에 맞게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른 석의에 기초하지 않는 바른 성경공부는 불가능하다. 또한 바른 해석학은 언제나 바른 석의에 기초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성경을 공부할 때에 지금 여기의 문제로부터 출발해서는 안 되고, 성경본문 자체의 의미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런 출발을 고수해야 하는 까닭은 석의를 기초할 때에 본문의 명확한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본문의 본래 의미를 잃어버릴 때 성경해석은 각자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관적인 문제로 해석학이 변질되면 성경의 본래 의미는 찾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본래 성경의 의미를 찾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면서 그 의도에 맞추어 각자의 독특한 상황 속에 해결점을 발견하기를 구해야 한다. 사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통된 해석학이란 없다. 그 점이 해석의 과제를 어렵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올바른 석의를 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은 작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성경본문이 과거에 의미하지 않던 바를 현재에 의미하는 그런 예는 결코 없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현대 독자들을 향한 성경 본문의 참된 의미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처음 하셨을 때의 의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해석의 출발점이다.

 

4. 성경해석의 원리

성경해석은 하나님 중심, 저자 우선, 문맥중심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 중심적 구속사적 원리 - 바른 성경해석을 위해 독자들은 자기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 본문에서 인간의 삶이나 생각보다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그 분이 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성경에는 세상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성경인물들의 삶은 세상의 인간사 이야기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그래서 성경을 역사를 기록한 책, 윤리적 교훈을 담은 책 정도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성경읽기는 성경 인물들의 모범에 집착하는 잘못을 막아준다. 성경의 기사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기사들은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또 사람들을 통하여 어떻게 행하셨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들이다. 인간의 여러 가지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곧 신적인 기사들이다. 기사들마다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과 같은 대표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놓치면 성경을 제대로 알 수 없게 된다.

하나님 중심적인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역사에 집중하는 해석이므로, 구속사적인 접근 방법이다. 구속사적 해석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완결되었으므로, 그리스도 완결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많은 역사를 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의 역사를 담고 있는데, 그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므로 계시사이며, 계시는 발전되는 속성을 갖고 있으므로 구원 계시의 발전사이다. 이러한 구원 계시의 발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 진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며,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이고 다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다.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인물들은 모두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관련성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긍정적이기도 하고 부정적이기도 하다. 각각의 인물들은 이와 같은 하나의 역사 안에서 자신의 독특한 위치를 부여받았고, 이런 역사에 대해 그들의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모든 성경 이야기를 그들이 서로 갖고 있는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각각의 독특한 위치와 함께 계시의 발전적 전재를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자의 의도 중심 원리 - 저자의 의도 중심이란 성경 본문을 기록한 저자가 본래 의도했던 것을 우선시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해석의 중요한 전제는 성경 기자들이 본문을 기록할 때에는 분명히 그 기록 목적을 갖고 있었다는 것과 그 의도를 해석의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는데 있다. 이것이 저자의 의도중심해석이다.

저자의 의도에서 고려할 것은 성경저자의 이중성이다. 하나님은 성경의 원저자인데, 인간을 성경의 저자로 사용하셨다. 그렇다면 성경을 기록할 당시 하나님의 의도와 인간 저자의 의도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형성된다. 하나는 하나님의 의도와 인간 저자의 의도와 일치하는 관계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의 의도보다 더 깊고 넓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을 ‘sensus plenior'(더 완전한 의도)라고 한다. 일례로 창 3:15은 원시복음으로 알려져 있는데, 창세기를 기록할 당시 저자 모세가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의도와 인간 저자의 의도 사이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경에는 하나님에 의해서 의도되었으나, 인간 저자에 의해서는 분명하게 의도되지 않은 추가적인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본다. 이것은 성경 본문의 단어들 속에 또는 여러 본문들과 전체를 통해 담겨 있는데, 그 이후에 계시에 비추어 볼 때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구원계시의 발전적인 부분이다. 이와 같이 저자 의도를 우선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 본문을 기록했던 당시의 의도를 우선시하면서 동시에 성경 전체를 통해 계시사적인 발전성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성경해석의 원리이다.

 

문맥중심의 원리 - 존 스토트는 시므온의 말을 인용하여 내가 노력하며 애쓰는 바는 성경에 있는 것을 이끌어 내고 내가 거기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기에 밀어 넣지 않도록하는 일이다. 나는 이 항목을 매우 중히 여긴다. 내가 강해하고자 하는 구절에서 성령님의 뜻이라고 믿어지는 것 이상이나 그 이하를 말하지 않으려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성경의 본래 의도를 파악하려는 석의의 과제와 동일하다. 또한 본래 의도를 알기 위해서는 문맥을 잘 살펴야 한다. 사실상 문맥은 의미를 이해하려고 할 때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의미를 만든다. 한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 중에 인간의 인식 속에 들어오는 의미는 문맥으로 결정된다. 다른 나머지 의미들은 소멸된다. 이것은 의미가 이미 확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들에게서도 적용된다.

문맥이란 한 단어에서부터 출발하여, 문장, 단락, , , 그 책이 속한 성경 분류(율법서, 역사서, 예언서, 시가서, 서신서 등), 구약과 신약 그리고 성경전체로 확장된다. 문맥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성경본문만이 아니라 그 본문의 앞과 뒤를 잘 살펴야 한다. 해당 본문은 더 큰 부분의 일부이기에 전체 속에서 해석하지 않으면 바른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또한 본문 안에 주어지는 단어나 문장 혹은 단락도 앞과 뒤의 것들과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성경 전체에 맞추어 성경을 읽을 수 있고 성경 본래 의도에 맞게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중심, 저자의 의도, 문맥중심의 원리를 따라 성경을 해석하고자 할 때 잘못된 해석을 방지하고 성경의 본뜻을 발견하며 순종할 수 있다. 해석의 실제에서 독자들이 지켜야하는 해석의 원칙을 평이성, 역사성, 일반성을 들 수 있다.

첫째, 평이성은 자연스러운 뜻을 찾는 것이다. 특정인만을 위한 해석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한 자연스러운 뜻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빛이시며 그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연스러움이란 여자적인 자연스러움은 아니다. 성경은 여자적이기보다는 종종 표상적이다. 즉 여자주의에 빠진다면 니고데모의 경우처럼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한다는 식으로 중생을 오해하게 된다. 또한 은유적인 다양한 표현들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표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둘째, 역사성은 성경의 본래 의도를 찾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곧 석의의 과제이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를 초월하여 동일한 말씀을 주셨지만, 일차적으로 자기의 계시를 특정한 세대에 주셨다. 그러므로 후대의 생각들을 성경에 집어넣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역사성을 위해서는 저자의 상황, 문체, 언어를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지리적, 문화적 상황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일반성은 조화의 원칙이다. 성경은 여러 세대에 걸쳐 다양한 저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편에서 볼 때에 성경은 하나이며 유기적인 통일성을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전체적으로 보아야 하며,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5. 성경해석을 위한 도구 활용

 

성경해석을 위해 유용한 자료들을 준비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먼저 기본적으로 성경책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다양한 역본들이 있으므로 신뢰할만한 역본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글번역은 대개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판을 사용하는데 한자가 병기된 국한문 성경이 의미를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 외에도 공동번역, 표준새번역, 쉬운성경 등도 도움이 된다. 영역본인 경우에는 New International Version,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New American Standard Bible, King James Version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에 국어사전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흔히 자신의 나라 말은 사용은 하면서도 정확한 의미를 모를 때가 많다. 성경에 나타나는 어려운 단어는 사전을 참고하면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성경 단어가 국어사전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국어사전은 신학적인 용어 설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용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국어사전은 일반적인 수준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도움을 제공한다.

성경해석을 위한 부수적인 도구로는 성구사전, 성경사전, 주석이 있다. 성구사전은 성경에 나오는 낱말들을 총 정리한 것으로 자기가 원하는 성경구절을 한 단어만 가지고도 성경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성구사전은 특정한 단어가 성경 전체에 어떠한 용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 성경사전은 성경의 인명, 지명, 술어, 주제들을 설명해 놓은 책이다. 주석은 성경의 본문 각각에 대한 주석가의 해석이 담긴 것이다. 유용한 주석들은 한 부분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제공하면서 바람직한 해석을 제시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성경 해석을 위한 도구들은 도구 수준에서 활용될 때에 가치를 가진다. 만약 성경 도구에 의존하게 되면 더 이상 참된 해석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성경해석을 위해 성령의 조명을 의지하여 차분하게 성경을 읽으면서 바른 질문을 하고 관찰하는 귀납적인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그런 후에 필요할 때에 참고 자료를 활용해야 한다. 참고 자료는 독자들이 자신의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자신의 답을 가진 다음에 비교하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아무리 좋은 도구를 갖추고 있더라도 독자의 성경해석 능력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해석을 실천하면 할수록 성경의 본래 뜻은 더 밝혀지게 된다.

끝으로 성경해석에 있어서 강조해야 할 사항은 적용이다. 적용되지 않는 해석은 의미가 없다. 성경은 연구 자체를 위한 책이 아니라 순종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른 순종을 위해서는 바른 해석이 필요하다. 언제나 성경의 본래 뜻을 찾기에 집중해야 하며, 동시에 그 뜻에 순종하기를 더욱 추구해야 한다. 성경교사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성경의 뜻을 전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교훈을 따라 살 것을 격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말씀을 지킬 때까지 가르치는 수고를 마다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 교사는 자신이 먼저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먼저 순종하지 않고 학생들을 순종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2부 성경교수 이론의 원리와 과정]

<1장 유능한 성경교사>

 

개역한글 성경에는 유능이란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지혜로운이란 용어는 유능하다는 말과 유사하다. 고린도전서 3:10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지혜로운'New International Version에는 전문가또는 숙련자라는 의미의 ‘expert'로 번역하였다. 이것이 그리스어 원문은 'sopos'인데, 이 용어는 현명한‘, ’경험이 있는‘, ’학식 있는‘, ’숙련된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을 쉬운성경에서는 유능한이란 말로 번역하였다. 이 구절은 사도 바울이 유능한 교사로서 그가 맡은 고린도 교회의 터를 닦아 두었는데, 앞으로 이 터 위에 무엇인가 세우려면 신중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성경교사는 과거에 사도들의 전통과 오랜 교회 역사 속에 이미 세워진 바른 터전을 기초하여 온 교회를 계속적으로 견고하게 세워나가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도가 세운 터는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시다. 따라서 교사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사람들을 견고하게 세우는 자이며, 이런 일을 잘 감당하는 자가 유능한 교사이다.

성경교사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고 성장하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을 갖고 있다. 이 중요한 책임을 자각할 때 성경교사는 자신이 맡은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과업을 성실하게 감당하게 된다. 이러한 일을 위해 성경교사는 좋은 교수 방법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교수방법만으로 유능한 교사가 될 수는 없다. 성경교사는 그것과 함께 말씀의 비밀을 맡은 자라는 의식, 합당한 인격, 교사로서의 소명, 가르침에 대한 열정, 인간성장에 대한 이해, 목자적인 사랑을 구비해야 한다. 이런 요소들이 교사에게 있을 때에 유능한 교사가 될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양육되는 학생들에게서 많은 열매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1. 말씀의 비밀을 가진 자

성경교사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는 일을 담당한다. 이 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깨닫게 하는 교육이다. 성경교사는 학생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인도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교사 자신이 먼저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깨닫지 않은 것을 가르칠 수 없으며, 깨닫지 않은 것을 말하면서 깨달음을 요구할 수 없다. 신명기 6:6-7네 마음에 새기고, 가르치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말씀은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되풀이하여 깨우치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그 말씀을 자기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것이 입으로 나오는 법이다. 여기서 마음에 새기고 가르치라는 말씀은 깨달은 것을 가르치라는 의미이다. 먼저 깨달은 후에, 깨달은 것을 가르칠 때 참으로 생명력 있는 가르침이 된다. 교사는 자기와 무관한 말씀을 들고 서서 어린이들에게 가르칠 때가 종종 있는데, 여기에는 생명력 있는 가르침을 기대할 수 없다.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넣어주는 일은 아니다. 지식의 전달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성경교육은 지식의 전달을 초월하는 교육이다. 하나님에 대해 가르친다고 할 때에 성경사전이나 백과사전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 자신이 먼저 체험한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가르치는 태도이다. 이런 점에서 성경교육은 산 체험을 담은 고백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예언자라고도 부른다. 이때 예언자는 앞날에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일이 그들의 주된 임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임무는 그들의 사역의 일부분을 차지할 뿐이다.

성경을 맡은 교사의 기본자세는 예언자의 자세와 같다. 교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좋은 성경교사가 되는 것은 교사가 먼저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부단히 깨닫는 자가 될 때 가능하다. 교사는 한나ᅟᅵᆷ의 말슴을 맡은 자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맡기 위해서는 먼저 받아야 한다. 교사의 가장 큰 문제는 듣지 않고 말하는 것이고, 깨닫지 않고 깨닫게 하려는 것이고, 배우지 않고 가르치려는 자세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깨달음에로 인도하는 일이다. 말씀을 깨달음에로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의 눈을 열어주는 일이다. 이를 위해 교사가 먼저 눈이 밝아지는 체험을 해야 한다. 이런 체험이 있을 때에 비로소 다른 이의 눈을 열어줄 수 있다.

 

2. 본을 보이는 건전한 신앙인격

 

성경은 학생들을 순종으로 이끈다. 이것은 단순히 부모의 말이나 교사의 말을 잘 듣는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 말씀에 생을 위탁하고, 또한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자세를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듣기를 원하는 위안이나 권고가 아니라, 순종을 요구하는 명령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주님께서는 단순한 숭배자를 원하시지 않으시고, 제자를 원하신다는 말을 통해서 이 점을 강조하였다. 학생들을 순종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순종하는 교사가 필요하다. 학생들은 교사의 순종하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 먼저 순종하는 것은 교사의 특별한 사명이자 의무이다. 교사가 성경을 가르치는 데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는 교사가 먼저 배우고 순종하는 것이다. 둘째는 학생들로 하여금 행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여기서 교사의 순종이 선행될 때 학생들을 순종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신명기 6:7은 하나님의 법을 돌판 위에 두기 보다는 마음에 두라고 강조한다. 신명기 11:18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라고 명령하신다. 신약에 보면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키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에 따라 그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14:21의 말씀이나, 요한15:2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계명에 대한 순종을 말하는 것이다. 계명에 대한 순종은 다름 아니라 사랑의 산물이다. 결국 마음에 새기고 가르치라는 것은 행하면서 가르치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대단히 평범하게 들리지만, 성경교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교사에게서 배우는 학생들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실천되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사의 마음 판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교사는 언제나 말만이 아니라 행함과 모본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

사도행전 1:1에는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라고 기록하고 있다. 누가는 여기서 예수님은 가르치실 뿐 아니라 행하시면서 가르치셨음을 말하고 있다. 사도행전 3장에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가 돈을 구걸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베드로는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향하여 주목하여 말하기를 우리를 보라고 했다. 베드로가 보라고 한 것은 앉은뱅이에게 보여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은과 금은 갖지 않았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었다. 성경교사는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진정한 성경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23:3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 대해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라고 책망하셨다. 거짓 교사, 잘못된 교사의 모습이 이 말씀에 들어 있다. 교사가 바른 것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지키지 않는다면 바른 가르침일 수 없다. 에베소서 6:1-4은 자녀들에게 순종할 것을 명한 후, 부모들에게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자녀들을 가장 노엽게 하는 방법은 자녀들에게는 강요하면서도 부모들은 그것을 행치 않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자녀가 독서하기를 원한다면 부모가 먼저 자녀들 앞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들도 부모를 본받아 책을 읽게 된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이 성경을 읽고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성경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순종을 요구한다. 교사가 학생들의 순종을 원한다면 교사 자신이 먼저 순종하는 본을 보여야 한다. 선교사 존 패튼은 하나님은 내 아버지께 아주 실재적이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실재가 되셨다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은 추상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분은 우리 앞에서 살아계신 인격으로 활동하시며 존재하신다. 그러기에 우리도 그렇게 존재하기를 원하신다. 입술의 봉사만으로 그치는 신앙이 아니라, 참 제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일이다. 패튼의 말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는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을 실재로 여기고 살아갈 때, 그 아들도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사실이다.

 

3. 가르침의 소명과 열정

 

예전에는 흔히 소명이라고 하면 목사나 선교사에게 적용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자신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로 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소명이 특별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그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행하는가 하는 문제는 분명히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일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모든 사역을 하나님의 소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교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가르치는 사역이 하나님이 주신 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교사가 자신이 하는 과업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고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그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란 상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가르치는 일은 그 자체가 본질상 즐거움을 요구한다. 이것은 심리학적으로도 타당하다. 교사의 과업이 자기 자신을 자극하는 것일 경우에 그의 가르침은 쉽게 학생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유발하게 된다. 어거스틴은 사실 우리 스스로가 가르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을 때, 사람들도 큰 즐거움을 가지고 우리들의 말을 듣는다라고 하였다. 가르치는 일에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지 못하는 교사는 교육내용과 학생 사이에, 그리고 자신과 학생 사이에 심리적인 장벽을 쌓는 것이다.

독일의 교육학자인 헤르만 노올은 교육의 핵심을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 보고, 이를 교육학적 관계라는 개념으로 정리하였다. 교육학적 관계는 교육받는 자와 교육하는 자 사이의 인격적 관계가 그 중심이 되며, ‘성숙한 인간이 변화되어 가는 사람들과 맺어가는 정열적인 관계라고 말하였다. 교사는 성장도상에 있는 학생들을 위하여, 그들이 최선의 삶의 모습을 이룩하도록 정열적으로 간섭하고 도와주는 사람이다. 예일 대학교 교수 펠푸스는 나는 내가 가르침에서 느끼고 있는 즐거움을 다른 사람에게 모두 명백히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 보다는 가르침으로 생활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가르침이란 단순히 작업이나 직업, 혹은 과업이거나 투쟁이라기보다는 열정이다. 나는 가르치는 것을 사랑한다. 교사는 이런 소명과 열정의 소유자여야 한다.

 

4. 인간에 대한 이해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이해한다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 말을 듣는 이가 여기에 공감을 갖게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해 주고 상대방에게 마음을 써주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이 받아들여지고, 이해되고 있다고 생각될 때, 자신에 대한 긍정적이고도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되고, 자기 자신과 새롭게 대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담에서 중요한 원리이면서 모든 교육행위에서 중요한 원리가 된다.

어떤 젊은이가 범죄를 하고 심한 고뇌와 갈등으로 고민하다가 한 성자를 찾아왔다. 그 성자는 그 청년의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해 주었다. ‘당신은 어제 그런 죄를 짓고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일 그런 죄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이 청년은 성인의 대답을 듣고 힘을 얻고 돌아갔다. 사람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 나의 상황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느낄 때이다. 이렇게 볼 때 이해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의 봉사이다.

모든 가르침에서 그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해하는 일은 교육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인 교육목적, 교육내용 및 교육방법과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표는 성취될 수 있느 목표이어야 하는데, 피교육자에 대한 이해는 타당성 있고, 실현성 있는 목표를 세우는 일에 도움을 준다. 또한 이해하는 일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결정하는데 결정적인 자료가 된다. 바로크 시대의 교육학자 라트케는 쾨텐에서 학생들에게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히브리어, 칼데아어, 시리아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10개의 언어를 각각 6개월 만에 모두 5년 안에 가르치려고 시도하였던 적이 있었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물론 라트케는 반복과 연습을 통한 집중적인 수업 규칙을 창안하였고, 국민교육사상, 모국어의 중요성, 직업교육의 강조와 같은 면에서 탁월한 공헌을 한 학자이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분에 넘치는 교육목표를 강요한 것은 결국 건설적인 그의 계획을 실현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성경교수에 있어서도 교육목표는 교사가 맡은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한 것이어야 하고, 그 수준에 따라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위대하신 교사이신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이것은 인간을 이해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 분은 친히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의 모든 것 곧 피곤, 배고픔, 갈증, 슬픔, 아픔을 아신 자가 되셨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기 원하는 모든 교사들은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인식하고 이것을 자신의 사역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해한다는 것은 우선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대상에 대해 관심과 흥미를 갖는 일이다. 예를 들면 어린이를 아주 귀찮은 존재로 취급한다면 어린이에 대한 이해는 생기지 않는다. 어린이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질 때 어린이를 이해하는 좋은 교사가 될 수 있다. 또한 이해한다는 것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면서 동시에 그들의 입장이 되어 주고,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정을 나누는 노력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알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동기는 결국 그들을 잘 섬기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이해는 상대방을 누르고, 무시하고, 억압하는 일이 아니다. 이해한다는 동사는 영어로 ‘understand'인데, 이것은 아래라는 말과 선다는 말이 합해서 된 것이다. 이해한다는 것은 아래에 서는 일이며, 상대방의 종이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바른 이해는 백 마디의 충고보다도 더 강력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것이 모든 가르침의 참된 출발이다. 특별히 교회에서 교사역할을 맡은 이들은 모두가 이해의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한다. 말하기 전에, 지시하기 전에, 외치기 전에 조용히 경청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귀는 크게 열고, 눈은 높이 보고, 입은 작게 말하라는 말은 깊이 귀담아 둘 가치가 있는 말이다.

좋은 교사는 이해하는 교사이다. 학생들의 요구, 수준, 관심, 나아가서는 그들의 희망과 고민에 대해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어야 한다. 헨리 나웬은 이해가 없는 교육은 그 자체가 폭력이라 하였다.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내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교사들은 나는 좋은 교사입니다. 내가 내 학생을 알고 학생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5. 목자적인 사랑과 희생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사랑으로 인도하는 교육이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람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교육이다. 이를 위해 교사는 먼저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자가 되고, 그 사랑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신명기 6:5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크고도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존재의 전체를 바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다. 신명기에는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 행위의 기본적인 동기로서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이란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이라는 점이다. 즉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의 요구는 언제나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크레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종은 단지 그것이 자기 백성을 인도하였고,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일 때 가능하다... 사랑에 대한 명령은 주로 출애굽에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었으며, 넓게는 그들을 선택하시고 아브라함 때부터 그들을 부르신 일 가운데서 먼저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블레어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는 계명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아낌없는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의 빛 안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하였다. 또한 신명기 6:5-6은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의 자격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여기서 네 마음에 새기라고 명령한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곧 성경을 가르치는 자는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새기고 가르치라는 말씀은 교사의 가르침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입과 혀를 움직여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한 말, 사랑의 말이야 말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나온 말은 머리까지 들어가고, 마음에서 나온 말은 마음까지 들어간다는 말은 큰 공감을 준다. 교사들은 언제나 가르치는 일을 수행할 때, 배우는 학생들을 참으로 귀중히 생각하면서 사랑의 동기에서 가르치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그저 형식적인 가르침, 가르침을 위한 가르침은 아닌지, 아니면 나는 너에게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진지성을 가지고 가르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그들을 받아들여주고, 자신을 쏟아 주려는 용기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교사들이 배워야 할 바는 분명하다. 성경교사에게 가르치는 재능이 있어도 우주의 모든 비밀을 설명할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사랑이 없는 교사의 가르침은 기계적인 것이 되고 무의미하게 되고 만다. 사랑은 교사로 하여금 학생들의 성공에 같이 기뻐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의 실패에 같이 울 수 있게 한다. 성경은 선한 목자를 양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목자로 묘사하고 있다. 교사에게 해야 하는 질문은 바로 이 사랑의 동기를 묻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랑의 동기로 가르치는 자가 참된 교사이다. 요한복음 21장에서도 목자적 사랑의 동기가 강조된다.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고 양을 치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양을 치기 우해서 베드로는 주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고, 주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해야 했으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양을 돌보아야 했던 것이다. 주님은 양을 치는 유일한 조건으로 사랑을 요구하셨다. 이와 같이 성경을 가르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교육이다. 이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가 먼저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아야 하며, 더 나아가 교사와 학생이 함께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일이 요청된다.

 

6. 유능한 교사의 할 일

 

유능한 교사는 교수 현장에서 어떤 일을 수행하는가? 윌호이트와 라이켄은 유능한 교사가 해야 하는 일들로 적극적인 학습 유도, 동기 부여, 명확한 의사전달, 학생들에 대한 도전 촉구, 효율적인 시간관리, 중심사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건설적인 학습 분위기 조성, 핵심 사안과 부수적인 사안을 구별하는 것 등으로 열거한다.

유능한 교사는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학습하도록 유도한다. 이때 적극적 학습을 유도한다는 것은 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정보와 씨름하여 타당성을 검증하고 배운 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깨달아 이전의 학습내용과 관련시켜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교육경험을 말한다. 유능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욕구를 고취시키며,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한다. 그는 많은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내용이라도 중요한 것을 명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천천히 여행한다. 이러한 유능한 교사는 배우는 학생들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므로 시간을 투자하는 만큼 알뜰하게 배우게 한다. 또한 유능한 교사는 언제나 학습의 모든 과정을 중심사상에 두어서 산만하지 않게 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성경의 지식만을 전달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다음에 진리에 순종하는 교사 자신을 학생들과 나누는 자이다. 유능한 교사는 개방적이며 유머를 사용하여 건설적인 학습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리고 핵심적인 거소가 부수적인 것을 분명하게 구분하여 필요 없는 것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게 한다.

본 장에서 우리는 유능한 성경교사의 요건과 교수현장에서 할 일에 대해 살펴보았다. 유능한 성경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본을 보이는 신앙인격과 가르침에 대한 소명과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자이다. 유능한 성경교사는 이러한 자질과 함께 인간에 대한 이해와 목자적인 사랑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유능한 교사는 성경 안내자와 같다. 교사는 학생들이 성경 여행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이다. 이때 여행 안내자는 전문가이며, 학생들과 함께하는 동반자이고, 여행 과정 중에 팀의 지도자이며, 여행자들 간 좋은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자이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안내자는 종으로 학생들을 섬기는 자이다. 유능한 성경교사는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학생들이 하나님과 참된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날마다 자라도록 돕는다. 교회는 유능한 성경교사로 인하여 견고하게 성장하며, 여기에 진정한 생명과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교사는 곧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교사이며, 하늘의 빛과 같이 빛나는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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