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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May 31, 2014
  • 4750

성령을 믿사오며 행2:1-4, 13-3주일오전(187장

서론. 살아계신 하나님이 예배하는 우리 모두의 심령에 그 얼굴을 비추사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축원한다. 사도신경 강해 아홉 번째인데, ‘성령을 믿사오며’ 하는 부분을 살펴본다.

1. 지난 두 달 동안 살핀대로 사도신경은 먼저 성부 하나님에 대해 이어서 성자 예수님에 대해 신앙을 고백하고 마지막으로 성령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는데,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조금 차이가 있다.

성부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능하시고 천지를 만드시고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여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 가지로 요약해서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성자 하나님에 대해서도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서 나신 일부터 장차 심판하러 다시 오실 일까지 여섯 가지 핵심되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체적으로 고백했다.

그런데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성령을 믿사오며’ 라고만 돼 있어서, 성령님이 어떤 분이시며 또 무엇을 하시는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성령을 믿사오며’ 다음에 이어지는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까지가 전부 성령의 사역에 대한 고백이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아무튼 성령 하나님에 대한 고백은 ‘성령을 믿사오며’ 하고 간단히 돼 있는데, 이것은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고백할 것이 없어서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고 섬김에 있어 성령님의 도우심과 역사 없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해서 거듭나는 일부터,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사람으로 성화되어 가는 일, 예수님 명령을 따라 사명을 감당하고 사는 일, 마지막에 부활의 영광을 덧입고 영화로운 존재로 변화는 일까지 어느 하나 성령님의 역사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 사도신경이 성령님에 대해서 ‘성령을 믿사오며’ 라고만 고백하는 것은 신자의 모든 영적인 삶과 누리는 은혜가 모두 성령님의 역사임을 역설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오늘 말씀을 보면 오순절 곧 주님께서 죽으신 날로부터는 50일 주님이 부활승천하신 날로부터는 10일째 되던 날, 성도들이 다 같이 모인 곳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다. 그리고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보이더니,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게 된다. 그랬더니 모인 무리가 다 성령충만함을 받아서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한다. 성령의 역사로 저들은 각기 다른 언어로 말했지만, 그 말한 주제는 동일하였다. 그래서 행2:11에 보면 오순절 날 천하 각국으로부터 왔던 사람들이 이 광경을 심히 놀라워하면서 ‘우리가 다 우리의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 말함을 듣는도다(행2:11)’ 한다.

1)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신 사건에서 우리가 두어 가지 주의해서 볼 것이 있다.

첫째는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 하신 주님 명령을 따라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이다.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던 성도들 중에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 인간이 누구에게 주고 싶다고 주고 주기 싫다고 주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영이 아니시다. 성령님은 인격이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조정 당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당신의 선하신 뜻을 따라 역사하신다.

간혹 스스로 신령하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는 부흥사나 거짓 교사 중에는 자기가 마음대로 성령님을 조정해서 누구에게든지 주고 싶으면 주는 것처럼 말하는 분이 계신데, 그건 거짓말이다. 우리가 성령님을 조정하는 게 아니고, 반대로 성령님이 우리를 붙잡아서 쓰신다. 이처럼 성령님은 우리 사람이 조정할 수 있는 분이 전혀 아니신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진심으로 사모하고 기다리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눅11:13이다.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그렇다. 신실하시고 은혜에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은 진심으로 사모하고 기다리는 모든 성도에게 은혜의 성령님을 주신다. 진리의 성령님을 주신다. 성령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진리와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오늘 본문 v.3을 주의해서 보라.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주님 명령 따라 예루살렘에서 성령을 기다리던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되 각 사람 위에 임하셨다. 그렇다. 성령님은 모든 믿는 자 속에 임하신다. 예외가 없다. 성령을 받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고 진리를 깨달을 수도 없다. 오늘도 하나님은 진심으로 사모하는 심령에 성령을 주신다. 여러분! 날마다 성령의 은혜를 구하라. 성령충만을 사모하라.

2)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서 두 번째로 주목해 볼 것은 성령님이 임하실 때 저들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v.4이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이 임하실 때 많은 변화들이 있었는데, 그 핵심은 저들의 언어가 달라져 버린 것이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이 있다. 여기 행2:4의 말씀을 보고서, 성령을 받으면 누구나가 다 다른 언어 혹은 방언으로 말하게 되는가보다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안 된다. 지금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함으로 거기 모였던 사람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 구약 율법에 보면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언약 백성은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하도록 되어 있다. 유월절과 더불어 오순절은 바로 그 삼대 절기 중의 하나이기에, 지금 예루살렘에는 로마 전역으로부터 수많은 유대인들과 유대인은 아니지만 유대인을 통해 율법을 배워서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는 이방인들이 모여 있다. 바로 그때 성령님이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고, 그 성령님은 저들을 통해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큰 일 곧 예수 사건을 증거하기 원하셨다. 행1:8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이 지금 예루살렘에 모인 이 사람들로부터 성취되게 하려 하셨다. 그런데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히브리어를 알지는 못했다. 오순절이 지나면 저들은 다 떠나가 버릴 것이기 때문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배워서 저들에게 복음을 전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성령님은 오순절에 천하 각국에서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큰 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를 알게 하시려고 먼저 성령을 받은 사람들로 하여금 각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거다. 그래서 v.8에 그런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그러기에 오순절 날 성령님이 다른 언어로 말하게 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진짜 주목할 것은, 배우지 아니한 언어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런 이적을 통해서라도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의 큰 일 예수 사건을 전하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언어가 달라지는 것이다. 전에는 하나님을 훼방하던 입술이 변하여 하나님은 크고 거룩하시다 찬양하는 입술이 된다. 전에는 입만 열면 자기 자랑하던 입술이 변하여 이제는 자신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죄 많은 인생일 뿐입니다. 오직 주님 은혜가 나를 살리셨습니다’ 하고 주의 은혜를 증거하는 입술이 된다. 전날에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험담하던 입술이 변하여 이제는 위로하고 사랑하는 입술이 된다. 한 마디로 날마다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는 입술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행하신 큰 일, 그 예수님을 믿어 나를 변화시켜 새사람 만드신 큰 일, 장차 주님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의 큰 일을 증거하는 입술이 되는 거다.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으로 충만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큰 일을 자랑하고 증거하는 거룩한 입술 되시기를 축원한다.

3)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생각할 것이 있다. 여러분! 사람의 입의 말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그 사람 속에 뭐가 있느냐를 보여준다. 한두 번은 가식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것과는 다른 말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그리고 가식적으로 속에 없는 말을 지어서 할 때는 듣는 사람이 느낀다. 그래서 결국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입으로 말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충만케 된 사람들의 언어가 변했다는 것은 저들의 마음이 변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저들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거다. 그렇다. 성령님은 우리를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신다. 우리의 겉만 아니라, 우리 속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겔36:26-27을 같이 보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기 보면 성령님을 가리켜 ‘새 영’ ‘새 마음’이라고 하신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 마음이 새로워진다는 말씀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로워지는가? 우선 굳은 마음을 제거하신다. 그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신다.

여러분! 발이나 손에 굳은살이 박이면 어찌되는가? 분명히 내 몸의 일부인데도 굳은살은 감각이 없다. 아픈 것도 못 느낀다. 몸에 붙어 있지만 굳은살에는 생명이 없다. 마찬가지다. 우리 마음이 굳어지면 영적인 감각이 없다. 죄에 빠져 살면서도 그것이 죄인 줄을 모른다. 하나님이 지금 죄악에 빠져 사는 나를 인해 안타까워하시고 화를 내고 계신데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지를 모른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일을 행하며 살고자 하는 열망도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살면서도 은혜인 줄도 모르고 감사하는 마음도 없다. 어려운 이웃을 보아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나만 잘 먹고 잘 살면 족한 줄 여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할 줄도 사랑할 줄도 모르고 산다. 이런 게 굳은 마음인데, 이 굳은 마음이 제거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이 굳은 마음이 제거되지 않으면 하나님 뜻을 따라 살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을 수도 없는데, 이 굳은 마음을 제거해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성령님은 이렇게 굳은 마음을 제거하실 뿐 아니라 새 마음을 주신다. 부드러운 마음, 곧 겸손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하나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이 깃든 마음이다. 그런 놀라운 은혜로 이웃도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새 영 새 마음을 받아 그 마음이 부드러워진 사람은 기쁨으로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지게 된다. 내 뜻 내 고집 내 주장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는 거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는 진짜 하나님 자녀가 된다.

오늘 우리가 함께 찬송했죠? ‘비둘기 같이 온유한 은혜의 성령 오셔서 거친 맘 어루 만지사 위로와 평화 주소서’. 날마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만져 주셔서 거친 마음은 제거되고 하늘의 위로와 평화가 가득한 부드러운 마음 되도록 기도하기기 바란다.

3. 이렇게 성령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새 영’이신데, 이제 구체적으로 성령님이 하시는 일들을 간단 간단하게 몇 가지 정리해 보자.

1) 요16:8이다. ‘그가(성령님)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권고)하시리라’. 성령님이 하시는 첫째 사역은 우리 속에서 죄를 보게 하시는 일이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받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다 자기가 의로운 줄 안다. 죄가 뭔지도 모르고 하나님 의 눈에 자기 모습이 어떠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말 교만이 하늘을 찌르고 완고기가 짝이 없으면서도 스스로 의로운 척 한다. 그런 우리의 죄를 가르쳐 깨우쳐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다. 저는 정말로 우리 성도들 위해 기도할 때, 부디 성령님이 조명하셔서 자기 죄를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여러분! 자기 죄를 보는 것은 은혜의 집에 들어가는 출입문과 같다. 자기 죄가 보이면 하나님 사랑이 뭔지 깨닫기 시작하고 하나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도 알게 되는 거다. 성령의 빛이 비추어서 거짓과 이기심과 음란과 분노와 악독이 가득했던 자기 죄를 볼 줄 아는 영안이 열리기를 축원한다.

2) 둘째 요3:5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라’. 두 번째로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님을 믿어 거듭나게 하신다. 똑 같은 복음을 똑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전하지만 어떤 이는 마음으로 깨달아 믿게 되는데, 어떤 이는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는다. 머리로 이해는 된다면서 못 믿는다. 안 믿는다. 인생의 마음이 얼마나 완악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성령의 역사를 의지할 수밖에 없음도 보여준다. 성령님이 우리 속에 바람처럼 역사하여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거듭나게 하사 우리에게 새생명 얻게 하시고 하나님 자녀 되게 하심을 감사하라. 성령님은 거듭나게 하신다.

3) 셋째 성령님은 우리로 예수님 따라 가게 하고 또 본받게 하신다. 갈5:22 같이 보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여기 성령의 열매들이 뭔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삶이 이러하셨다. 여러분! 마음에 희락 기쁨이 없으시는가? 성령의 은혜로 희락의 열매가 맺히도록 기도하라. 어떤 일에 절제가 되지 않는가? 성령의 은혜로 끊을 것을 끊을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라.

이처럼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 닮도록 성령님이 우리 속에 맺게 하시는 열매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마땅히 순종해야할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전에 갈5:16에서는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하신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님이 맺게 하시는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구하고 순종할 도리인 것이다. 우리 성도님들의 삶과 인격에 정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해서 예수님 닮아 가시기를 축원한다.

4. 오늘 성령의 사역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다.

빌2:13이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여기 보면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성령님이 우리 속에 소원을 주셔서 행하게 하신다는 뜻의 말씀이다.

많이 고민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우리 교회는 증축을 하기로 공동의회에서 결정을 하고, 지금까지 일을 준비하고 진행해 왔다. 이제 설계가 끝나고 곧 공사를 시작할 것이다. 이 일들을 결정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성령께서 소원을 주셔서 하게 하신 일인 줄 안다.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소원을 가지고 우리 교회가 증축을 결정했는데, 이제 오늘과 다음 주는 이 일을 위하여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과 뜻을 모으고자 한다. 그래서 주보 간지에 작정 카드를 내어 드렸다.

우리 성도님들 사시는 모습과 헌신하시는 것을 생각하면 참 마음 아프고 또 감사하다. 우리 교회는 알다시피 연세 많은 분들이 많다. 자녀들에게 용돈 받아 사시는 분도 많고, 나라에서 지원하는 작은 수입으로 사시는 분도 많다. 그 작은 것으로 혼자 다 쓰도 모자랄 텐데, 안 먹고 안 입고 안 사고 그렇게 아끼고 아껴 2만원 3만원 5만원 그렇게 십일조 하시는 분들이 많다. 거기에다가 또 주님 명령 따라 살려고 선교헌금도 하신다. 목회자로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갚아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이렇게 어려운 분들이 많은데, 10억 넘는 재정을 들여 증축을 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다. 작년에 성도님들의 의견을 듣고 공동의회를 통해 증축을 결정 하고 설계와 교육관 7층 관리집사님 사택과 게스트 룸 공사를 하면서도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다. ‘하나님! 정말 증축을 해야 하는 건가요?’ ‘우리 성도들 다 어려운데, 증축을 해야 맞나요?’. ‘제가 목회하는 교회가 부흥하고 더 많은 성도들 모일 수 있도록 증축하는 것이 정말 제가 하나님 영광 위해 하는 일인가요? 아니면 제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성공에 대한 야망을 따라 하는 일은 아닌가요? 정말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중단하라 하시면 중단 시키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많은 밤을 자지 못하고 고민하고 기도하고 또 씨름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증축을 중단하지 않은 것은 용기가 없어서는 아니다. 많은 시간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지난 날들을 돌아볼 때 한 번은 하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화장실 시설, 휴게실, 소세미나실들, 그리고 교육기관을 위한 공간들, 카페, 식당 문제 등 예배와 교육 친교를 위한 공간 확보가 조금은 더 있어야 한다고 판단이 되어서 진행해 왔고, 이 일을 위해 오늘과 다음 주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성도들의 뜻을 모으려 한다.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다. 지금까지 많이 애써 주셨다는 것, 그리고 지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는 것. 그런 중에 주의 일 위해 우리가 다시 한 번 헌신할 때 그 모습을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겠는가?

제 마음에는 가능하다면 우리 하나님이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같은 헌신의 마음을 주시기 원한다. 같은 헌신의 마음이란 똑 같은 액수를 부담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좀 넉넉한 분들은 좀 더 많이 감당해주시고, 넉넉하지 못한 분들은 또 형편에 맞게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감당하는 액수는 달라도 헌신은 동일했으면 좋겠다.

결론. 오늘은 성령님에 대해 말씀드렸다. 성령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시고,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본받게 하신다. 또 성령님은 우리에게 새 마음과 소원을 주신다. 늘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 되시고, 성령님의 감화하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선한 역사에도 기쁨으로 동참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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