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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Dec 04, 2013
  • 6951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갑시다 100:1-5, 13-11추수감사(끝 찬송 338)

 

 

서론. 추수감사주일이다. 올 한 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는 날이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참된 지혜자는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줄 아는 사람이요, 참된 강자는 자신과 싸워 이기는 사람이요, 참된 부자는 자기 몫에 만족하며 감사하는 사람이다 는 말이 있다. 감사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인 줄 안다.

살전5:18범사에 감사하라하시고, 5:20에는 항상 감사하라했다. 2:7에서는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하신다. 성도는 범사에, 항상, 넘치도록 감사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범사에 항상 넘치도록 감사하려면 받은 은혜가 크고 형통한 날에도 감사하지만, 역경의 날 고난의 날에도 감사해야 한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작자 미상의 어느 성도의 감사 기도시를 하나 읽었다.

주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가끔 고독의 수렁에 던져주심도 감사합니다. 주님과 가까워지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된 것도 감사합니다. 나의 교만이 죽어지기 때문입니다.

때로 아들딸이 걱정거리가 되고, 부모 동기가 짐으로 느껴질 때도 있음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보람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먹고 사는 데 힘겹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눈물로 빵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허위가 득세하는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분명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땀과 고생의 잔을 맛보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깨닫기 때문이다.

주님!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심도 감사합니다.

지난 7일 목요일에는 수능이 있었다. 수능 시즌이 되면 우리는 수험생만 아니라 온 나라가 함께 시험을 친다. 그런데 어떤 수험생 어머니가 수능을 치는 아들에게 이런 편지를 주었다. ‘아들아 네가 우리 아들인 것이 정말 기쁘다. 너는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란다. 하나님께서 너를 우리 가정에 보내주신 것에 감사한다. 너로 인해 엄마 아빠는 너무 행복하단다. 네가 수능 때문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나도 조금은 알 것 같구나. 그런데 아들아, 입시에 합격하기 전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에 먼저 합격하면 어떻겠니? 그런 후에 너의 시험도 하나님께 맡기자꾸나. 우리 하나님은 엄마보다 너를 더 사랑하고 지켜주실 테니까. 사랑하는 엄마가’.

여러분! 어떻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에 먼저 합격했는가? 항상 범사에 넘치도록 감사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에 먼저 합격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란다.

 

 

1. 오늘 읽은 시편 100편은 표제에 <감사의 시> 그렇게 돼 있다. 이 시편 100편 외에도 감사하라고 권하거나 감사한다고 고백하는 시편은 많이 있다.

9:1이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전하리이다’.

44:8에서는 우리가 종일 하나님을 자랑하였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

57:9이다.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이렇게 전심으로 종일토록 영원히 만민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는 시편이 많은데, 그럼에도 <감사의 시> 그렇게 제목이 달린 시는 여기 100편이 유일하다. 말하자면 시편 100편은 가장 대표적인 감사의 시인 셈이다.

 

 

2. 이렇게 대표적인 감사의 시인 시편 100편은 마지막 v.5을 제외하고 v.1에서 v.4까지는 매절마다 권면하는 말씀이 이어진다.

v.1이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v.2도 보라.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v.4이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v.3도 보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여기 v.1-4에서 연속되는 권면의 말씀들을 잘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3. 먼저 온 땅을 향해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라 한다.

그렇다. 우리 하나님을 향해 드릴 첫 번째 감사의 표현은 즐겁게 찬송하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라도 하나님 찬송하기를 잊지 말라. 수요일마다 욥기를 살피고 있는데, 지지난주 수요일에 엘리후가 욥에게 하는 권면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다. 36:24이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욥기36장은 아직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욥이 당한 고난을 신원해주시기 전이다. 말하자면 아직도 욥은 여전히 고난과 시험 중에 처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숨결이 있는 엘리후는 하나님의 지혜로 권하기를 하나님 찬송하는 일을 잊지 말라고 했다. 말하자면 우리 성도는 형통한 날만 아니라, 시험과 고난의 밤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거룩한 백성이다.

우리 연세 드신 성도님들이 하나같이 좋아하는 찬송 중의 하나가 338<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리라 생각된다. 가사가 어떻는가? 1절이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 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이 죄악 세상에서 주님을 따르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라 슬픔과 고생이 많지만, 그래도 늘 찬송을 부르면서 주님 주시는 위로와 사랑으로 기꺼이 주님 따르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가겠다고 고백한다. 4절은 어떻게 노래하는가? “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여기 뭐라 하죠?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그렇다. 우리 성도는 우리의 마지막 호흡이 멈추는 그 순간까지 끝까지 찬송하다가 저 하늘 집 내 아버지 계신 집으로 가야 한다.

어떤 분이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을 보았다. ‘찬송은 매일의 순간마다 죽음에서 부활을 경험하게 한다’. 그렇다. 마음이 아플 때 찬송해보라.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하소서하며 찬송할 때 우리 마음의 빈 잔을 성령으로 채워주실 것이다. 은밀하게 죄짓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때도 찬송해 보라. 죄의 유혹을 끊을 수 있는 거룩한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길로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제가 성경책 다음으로 좋아하고 늘 가까이 두고 반복해서 읽는 경건서적이 몇 권 있다. 특별히 제 마음이 교만해지려하거나 안일해지려할 때 혹은 제 마음이 영적으로 메말라질 때 즐겨 있는 경건서적들이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 연세 드신 성도님들도 잘 아시는 출옥 성도 안이숙 사모님의 <죽으면 죽으리라>이다. 저는 그 책을 마치 수능시험 준비하는 학생들처럼 밑줄을 그어가면서 또 메모를 해 가면서 그렇게 읽었다. 아무튼 <죽으면 죽으리라>에 보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일본이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일본 국회 의사당에 들어가서 경고하다가 잡혀서 옥살이를 시작한 안이숙 사모님은, 그 열악한 감옥 안에서도 항상 은혜가 충만한 생활을 하신다. 그 비결 중의 하나가 뭐였느냐 하면 150장이나 되는 찬송을 통째로 다 외우고 100장이 넘는 성경을 또 통째로 다 외워두셨기 때문이다. 100절이 아니다. 100장이다. 그렇게 100장이 넘는 성경을 외우고 150장이 넘는 찬송을 다 외워 두셨기에, 감옥 안에서 성경책과 찬송가책이 없어도 사모님은 혼자서 아침 점심 저녁은 기본이고 시간만 나면 늘 부흥회를 하셨다. 그렇게 외운 말씀과 찬송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이 얼마나 컸든지 심지어 이런 고백까지 하신다.

찬송은 언제나 내 심령에 단비였다. 성경을 외우고 찬송을 힘껏 부르고 또 성경을 외우고 또 찬송을 부르고 나면 생명의 기도는 찬송의 기도가 되어 어떤 때는 더 할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아질 때도 있었다. ..... 하늘을 쳐다보며 부르는 내 노래는 아름답게 내 심령에서 울려 나왔다. 나는 내가 부르는 찬송에 감격이 되어서 언제나 눈물이 두 뺨을 적시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언제나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기뻐서 이 몸과 마음을 주님께 바치게 하신 이도 주님이신 것을 분명히 아는데, 그것을 아름답게 보시고 나를 너무도 은혜롭게 대접해 주시는 것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감격이 되었다. 일생을 감옥에 살아도 만족하다는 자신이 생겼다. 왜 나는 일생(一 生)만 가졌던가? 만일 내가 열 개의 생()이나 백 개의 생이나 천 개의 생을 가졌더라면 이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드려 순종했을 것 아닌가? 나는 내 희생이 너무도 적은 것을 한탄했다. 바치고 또 바쳐도 오직 부족하기만 한 것 같았다”.

여러분!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한 고백인가? 찬송을 통해 마음에 은혜가 가득해지니 일생이 아니라 백 개 천 개의 생을 가져서 그것 다 주님 위해 드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찬송으로 드려야하는 감사의 제사이다.

 

 

4. 하나님께 드릴 첫 번째 감사의 표현이 찬송이라면 두 번째 감사의 표현은 예배다. 오늘 본문 v.2v.4인데, 먼저 v.2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기 뭐라고 하는가? 여호와를 섬기라 한다. 또 그 앞에 나아가라 한다. 섬긴다는 것은 바로 예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예배하기 위해 거룩한 성도들이 모인 자리로 나오는 것이다. 예배는 구원받은 거룩한 하늘 백성들이 한 마음 한 은혜 한 성령으로 모여서 함께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을 높이는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되 기쁨으로 하라 하신다. 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나아가되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가라 그랬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나오는 우리 마음이 준비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 만남에 대한 사모함과 기대가 있어야 한다. 우리 성도에게 있어서 사실 예배하는 한 시간 보다 더 기쁘고 즐거운 시간은 없다. 그래서 기쁨으로 섬기고 노래하면서 나아가라 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배의 자리에 나올 때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를 의식하고 나오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영이신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재하심을 의식하고, 우리의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그 앞에 나와야 한다.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간절히 구하면서 나와야 한다. 억지로 나오지 말라. 고민 고민 하다가 나오지도 말라. 만유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즐거워하면서 달려 나오라. 오늘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슨 말씀을 들려주실까 어떤 은혜를 베풀어 주실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나올 때,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만나주시겠다 하신 하늘 아버지가 가장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다. 죄와 세상을 이길 힘을 주실 것이다. 시험을 감당할 힘도 주실 것이다. 풀리지 않았던 인생의 매듭들도 풀어주실 것이다.

올해 1월 달에 박삼우 목사님 모시고 우리가 부흥사경회를 가졌었다. 그때 박 목사님 전하신 말씀 중에 시84편으로 예배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예배의 기쁨과 감격을 누리지 못하는 첫째 이유는 준비 없는 예배를 드리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기억하시는가? 준비가 예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하셨다. 여러분! 맞는다. 예배에 있어서 사모하는 마음과 준비된 마음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래서 시편 84편의 기자는 예배를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준비했든지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그랬다. 예배하는 한 시간을 그 마음이 쇠약해 질 정도로 사모하고 기대하며 나오는 성도는 반드시 은혜를 받는다.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이어서 v.4에는 뭐라고 하는가?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v.2은 사모하고 기뻐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하러 나오는 데 초점이 있다면, 이제 v.4은 예배의 자리에 나온 다음 예배하는 모습이 중심이다.

우선 v.2에서 노래하면서 나오라 그랬는데, v.4에서는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라 한다. 이것은 역시 예배의 자리에 어떤 모습으로 나가야 하는지에 관한 교훈이다. 그렇게 감사함으로 혹은 찬송함으로 예배의 자리로 가서 그 다음 어찌 하라 하는가?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하신다. 여기 보면 우리의 예배에 빠져서는 안 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감사요 또 하나는 송축이다. 감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죠. 송축한다는 것은 뭔가? 송축한다는 말은 국어사전적인 의미로는 어떤 일을 기리고 축하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 마음으로부터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송축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하는가?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 장차 우리가 들어갈 영원한 하늘 집을 예배해 놓으셨다. 하나님의 존재의 위대하심과 하나님 하신 일들의 기이하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머리를 숙여서 하나님의 높고 영화로우심과 위대하심을 높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바로 송축이다.

사모하고 준비된 마음으로 노래하면서 나와서 지금까지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영육 간에 우리를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나아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심을 우리 마음으로 높여 송축하는 진정한 예배야 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감사의 표현인 것이다.

 

 

5. 오늘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표현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 같이 v.3을 같이 읽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뭔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 그 말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라 그 말이다.

인생이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공기로 숨을 쉬면서 우리는 하나님 계신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만드신 햇볕의 따뜻한 온기를 받아 살면서, 우리는 하나님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피조물임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주신 오곡백과를 식물로 먹고 살면서, 영육 간에 우리를 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고 범사에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1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아덴 그러니까 오늘날 그리스의 아테네 시를 방문한다. 이 도시는 고대 올림픽이 시작된 도시로도 유명하지 않는가? 그런데 아테네에 가 보니까 도시 전체가 우상의 소굴이다. 그야말로 사람 수보다 우상의 수가 더 많을 지경이다. 밟히는 것이 신상이요 우상이었다. 얼마나 이 사람들이 우상을 열심히도 섬기고 많이도 섬겼든지, 어떤 제단을 보니까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적어 놓고는 그 앞에 제물을 드리기까지 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바울이 마음에 의분이 가득해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사람이 만든 것이 참 신이 될 수 있느냐고 변론하고, 참되고 영원한 신은 사람이 만든 신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비롯해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심을 담대하게 가르치고 변론한다. 바울이 아레오바고라는 광장에서 헬라 철학자들과 변론하는 중에 이런 말을 한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 우리는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여기 바울의 담대한 외침을 보라. 우리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천지의 대주재가 되신다. 만물이 하나님의 뜻대로 운행되고 역사가 마쳐질 것이다. 나아가 천지의 대주재이신 우리 하나님이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도 주신다. 그러기에 우리 각 사람이 오늘을 살 수 있는 이유도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 때문이요, 우리가 코로 숨 쉬고 사는 것도 하나님을 힘입어 기식하고 존재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에서 살면서 나는 물에서 살지 않는다고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물에 안 사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물에서 사는 것이듯이, 우리네 인생과 천하 만민과 모든 만물은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살고 거동하고 그를 힘입어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알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우리네 인생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할 감사의 표현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여러분! 그렇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람으로 나게 하셔서 영적인 삶을 살게 하셨고, 하나님이 영육 간에 우리의 쓸 것도 공급하신다. 그 하나님이 부르실 때 우리는 다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시작이요 과정이요 마침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전부이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신다. 여호와가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3: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하셨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알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라.

 

 

결론.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되고 즐거운 추수감사주일을 지키고 있다. 찬송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바른 예배생활로 하나님께 감사하라.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을 범사에 인정함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 감사하는 마음에 하늘 아버지의 넘치는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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