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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Apr 09, 2015
  • 1448

감사와 영광이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반응인데..... 롬1:19-23, 14-12주일오전(79)

서론. 이 시간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아버지 하나님이 은혜와 평강 주시기를 소원한다.

주일 오전에 로마서를 살피고 있는데, 지난주에는 1:18에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신 말씀을 살폈다. 그런데 우리 성도님들이 눈을 조금만 돌려서 한 절 앞 1:17을 보시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하시는 말씀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v.17은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하고 v.18은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한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나타난다 하고,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한다.

여기서 모든 인생은 둘로 나뉜다. 한 부류는 하나님의 의를 덧입는 인생이요 또 한 부류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인생이다. 하나님의 의를 덧입으면 하나님의 진노는 받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덧입지 못하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고 성령 안에서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는 덧입고 ‘하나님의 진노’는 벗어버리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한다.

1. 오늘은 v.19-23 말씀을 읽었는데,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인생들의 경건하지 않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다.

좀 더 자세히 내용을 살펴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① 19-20절 :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셨다

② 21-23절 : 하나님을 알면서도 합당한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하는 인생들의 불경건은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는데도, 고의적으로 하나님께 합당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제가 종종 새가족 심방을 가면 이해하기 쉽도록 말씀드리기 위해 이런 비유를 사용한다. 여러분! 우리 가정의 자녀들이 자기 부모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불효가 무엇인가? 자식이 몸이 그렇게 건강하지 못해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가? 공부를 못해서 걱정을 끼치는 것인가? 장성했는데 직장이 그렇게 변변하지 않아 넉넉하게 용돈을 주지 않는 것인가? 물론 자식이 건강해서 병원이라고는 모르면 좋다. 공부도 잘 하면 좋다. 돈 많이 벌어 넉넉하게 부모님 드리면 더 좋다. 그렇다고 그러지 않는 자식을 보고 부모가 불효막심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자식이 부모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불효는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멀쩡하게 살아계신 부모를 유령 취급하는 거다. ‘당신은 내 부모 아냐’ 하면서 부모에게 막 대하고, 부모를 아예 무시하고, 설이고 추석이고 부모를 전혀 돌보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불효막심한 일이다.

마찬가지다. 피조물인 인생들이 하나님께 저지르는 가장 큰 불경건의 죄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멀쩡히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롬11:36을 보면 ‘이는 만물이 ① 주에게서 나오고주로 말미암고주에게로 돌아감이라’ 하신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라. 만물이, 곧 우리 인생이 터를 삼고 살아가는 온 우주 만물과 그리고 우리 인생까지 첫째는 주에게서 나왔다 그랬다. 자식이 부모에게서 나왔듯이 만물은 창조우 하나님에게서 나온 거다. 둘째로 주로 말미암는다 하신다. 주로 말미암는다는 것은 지금도 하나님이 만물을 붙들고 계시므로 만물이 그 질서대로 돌아가고 존재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그 손을 놓아버리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것만 아니라 셋째로 만물이 주에게로 돌아간다 하신다. 그렇다. 특별히 우리네 인생은 영혼이 있어서 죽으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창조주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우리 인생이 온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아 존재하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셔서 오늘을 살고 또 마지막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데, 단 하나도 하나님 없이 존재하지 않고 단 한 순간도 하나님 없이 살지 못하는데, 그러기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당연히 인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2. 오늘 먼저 v.19-20 보면,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셨다 한다.

1) v.19을 같이 읽자.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인간 창조의 특징이 뭔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영적이고 이성적인 존재가 되게 하셨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특별한 것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초월자를 찾고자 하는 마음이다.

칼빈은 이것을 ‘종교의 씨앗’이라 했다. 종교의 씨가 모든 인생들의 마음에 있다는 것이다. 칼빈은 또 말하기를 ‘하나님 계심을 아는 의식은 인간의 골수에까지 깊이 박혀 있어서 그것을 지워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차라리 천성을 바꾸는 것이 더 쉽다’ 그랬다. 어린아기가 태어나면 본능적으로 엄마 아빠를 찾듯이, 피조물인 인생에게 창조주를 찾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2)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 인생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v.20도 같이 읽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① v.20이 짧지만 사실은 굉장히 생각할 것이 많은 말씀이다. 우선 제가 파란색을 입혀 놓은 말씀만 보시면 ‘....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이 .........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하신다. 표현이 재미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여졌는데, 그것도 희미하게 보여지지 않고 분명히 보여졌다고 하신다. 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시는가? 그것은 창조주되신 우리 하나님은 영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네 인생과 수준이 같은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육신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영으로 계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 인간의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다. 간혹 자꾸만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만나고 육신의 귀로 듣는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려는 분이 계신데,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이다. 그런 식으로 하나님을 추구하는 분들이 이단에 빠지는 거다. 우리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보고 육신의 귀로 들으면서 섬길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성경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깨닫도록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경험하게 하시는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보이지 않는 분이신데, 그러면 인생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해서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고 변명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놀랍게도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하신다. 영이셔서 육신의 보이지 않는 분이지만, 분명하게 보여서 알려지셨다는 거다. 그 결과 아무도 핑계할 수가 없다. 희미하지 않고 분명하게 보여 하나님 당신을 알려 놓으셨기 때문에,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나는 하나님을 못 봐서 못 믿었다 하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못 봐서 못 믿은 것이 아니라, 봤지만 믿기 싫어서 그리고 하나님 제치고 내가 주인노릇하고 싶어서 안 믿은 것임을 증명해줄 증거가 있는 것이다.

② 그러면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어떻게 보여졌는가? 다시 v.20 중간을 보라.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속에다가 심어 놓으셔서, 만물 속에 있는 그 창조주의 능력과 신성을 통해서 하나님을 모를 수가 없도록 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19:1에 이렇게 선언한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요즈음은 공해 때문에 밤이 돼도 하늘에 별을 몇 개 밖에 볼 수 없다. 그런데 어릴 때 시골에서 정말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같이 무수한 별들을 보았다. 하늘의 별들의 수가 얼마나 엄청 나는가? 그리고 우주 공간의 넓이가 얼마나 엄청 나는가? 우리가 우주과학자가 되지 않아도, 우주를 한 번 쳐다만 봐도 정말 그 크기와 넓이와 오묘한 질서 앞에 감탄사가 나오지 않는가? 그러면 보라. 우주 만물이 이렇게 대단한데, 이것들을 지으신 하나님은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가? 만물이 이렇게 광활한데, 이것을 지으신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신가? 하늘이 지금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다. 저 광활한 궁창과 그 속에 있는 무수한 별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손의 권능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찬송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속이나 험한 산 골깍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1절만 우리 한 번 더 불러 볼까요?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몇 주 전 설교에서 예화로 들었던 중세 천재화가 미켈란제로를 우리는 만나 보지 못했다. 그러나 천지창조를 비롯해서 그가 남긴 작품들을 보면서 아무도 미켈란제로가 중세 화가로 살았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의 경이함을 인해 미켈란제로의 솜씨를 부정하지 않는다. 헨델이라는 음악가를 우리가 만나 보았는가?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메시아’를 비롯한 명작들을 통해서 그의 영성 음악가로서 재능을 우리는 확실히 안다.

마찬가지다. 하나님 만드신 만물 속에 깃들어 있는 능력 신성 경이로움을 인하여 우리는 위대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모를 수가 없다. 알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하신다.

③ ‘창조는 과학적 사실이다’는 책에 보면,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거리에 놓여져 있다. 기가 막히다. 만약 지구 평균 온도가 2-3도만 올라가면 남극 북극 다 녹아 버려서 엄청난 재앙이 온다. 2-3도만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구가 지금 위치보다 태양으로부터 10만 킬로만 가깝거나 멀어도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다. 거리도 거리지만, 크기도 문제다. 지구의 지름이 지금보다 한 50퍼센트만 더 커지면 어찌될까요? 땅이 엄청 넓어지니까 좋겠죠? 그런데 땅이 넓어서 좋기 이전에, 지구상에는 어떤 생명체도 살 수가 없어져 버린다. 지구의 크기도 태양과의 거리도 한 치의 오차가 없이 생명체들이 살 수 있도록 그렇게 설계되어 있는 거다.

이 신비를 보면서도 이것이 우연히 되었다고 할 것인가? 빅뱅 곧 우주 대폭발이 일어나서 이렇게 되었다고 할 것인가? 만물의 질서와 조화는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과 솜씨와 위대함을 밤낮으로 증거하고 증거하고 또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랬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하나님을 가르쳐 주는 교과서다’.

④ 스마트 폰을 처음 샀을 때 한 동안 저는 폰으로 세상의 절경들을 찍어놓은 사진을 검색해서 모아 보았었다. 중국의 황산 장가개 비롯해서 나이아가라 폭포 이과수 폭포 빅토리아 폭포 그리고 유럽의 정말 그림 같은 알프스 풍경 캐나다 로키 산맥의 절경 또 미국의 그랜더캐년 등 1000장이 넘는 사진들을 모았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기회가 되면 정말 이런 곳에 한 번 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또 하나는 장차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상상하는 것이었다. 여러분! 처음 하나님이 창조하신 현재의 이 땅과 하늘이 장차 어떻게 되죠? 불로 다 심판받아 없어질 것이다. 인간의 죄로 인해 가시와 엉겅키를 내고 그래서 처음 창조될 때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잃어버린 처음 세상은 우리 하나님이 다 불태워 없이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보라. 가시와 엉겅키로 인해 처음 창조될 때의 영광을 잃어버린 상태요 그래서 하나님 보실 때 그다지 아름답지가 않아서 장차 불태워 버리실 처음 세상인데, 그럼에도 우리 눈에 보기에 얼마나 우주만물과 이 지구가 기막히고 아름답는가? 그렇다면 장차 하나님이 새롭게 만들어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솜씨와 신성을 보여주는 우주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솟아난다.

하나님 만드신 만물은 오늘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줄 뿐 아니라, 장차 미래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3. 이렇게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은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까지 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들이 어찌 해야 하는가? 이 천지만물을 이토록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지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가 방금 전에 같이 불렀던 것처럼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한다.

1) 그런데 악한 의도로 진리를 막아버린 인생들이 어찌한다고 했는가? v.21 보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피조물로서 마땅히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화롭게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이다.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공기와 물을 마시고 산다. 하나님 창조하신 땅 위를 걸으며 하나님 창조하신 하늘 아래서 하나님 창조하신 오곡백과를 먹으며 사는 존재다. 하나님의 숨결을 떠나서는 단 1초도 살 수 없고 단 한 걸음도 걸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당연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배은망덕이다. 계4:11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아멘

교회를 다니신 지 조금 오래되신 우리 성도님들은 소교리문답 1문을 잘 기억하실 거다. 먼저 질문이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답이 뭐죠? ‘사람의 첫째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같이 간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때 우리 속에는 하나님으로 인한 즐거움 기쁨이 가득한 것이다. 인생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겨 있을 때 가장 평안하고 행복하듯, 인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운데 가장 큰 만족과 기쁨을 누리도록 지음을 받은 것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신 말씀 마음에 잘 새겨서, 늘 하나님께 감사하고 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축원한다.

2) 이렇게 인생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화롭게 해야 함에도 죄의 종이 되어서 도리어 감사치도 영화롭게도 아니함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할 뿐 아니라, 이번에는 마땅히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v.21b-23 같이 보자. ‘오히려 ①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②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③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나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제가 번호를 붙여 놓은 것은 원인에 해당하고, 파란 색은 결과에 해당된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생들은 그 생각이 허망해질 수밖에 없다. 마치 우리가 와이셔츠를 입을 때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는 다 잘못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만물과 나를 창조했다는 사실이 모든 진리의 출발점인데, 그것을 부정해 버리면 그 다음 인간이 하는 모든 생각은 다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 부정하고서 엉뚱한 신들을 찾아야 한다. 엉뚱한 우주와 인간의 기원 창조주를 찾아야 하는 거다. 멀쩡히 살아계신 내 부모님을 부모가 아니라고 여기면, 나를 낳아준 분은 누군가 엉뚱한 부모를 찾게 되는 것 아닌가? 그것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해버리면, 그 다음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어리석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나 그러기도 하고, 우주에 블랙홀이 있어 지금도 우주가 계속 생성되고 있나 그러기도 하는 거다. 요즈음은 이렇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진화론이나 빅뱅이론 같은 것을 믿으려 하지만, 과거에는 자기 손으로 사람의 모양이든지 새의 모양이든지 짐승의 모양이든지 어떤 나라는 소나 뱀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들이 자기를 만든 신이요 자기에게 복을 주는 신이라고 여기고 살았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들인가? 여러분! 모든 우상은 인간이 그 손으로 만들었다. 누가 위대하는가? 만든 인간인가? 만들어진 우상들인가? 당연히 만든 인간이 더 위대한 거다. 그런데 지가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절을 하면서 나에게 복을 달라한다. 얼마나 마음이 미련하냐 그 말이다. 얼마나 생각이 허망하냐 그 말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화롭게 하는 마땅한 일은 안 하고, 대신에 창조주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멀쩡한 창조주 하나님을 놓아두고, 엉뚱한 우상이나 이론을 더 믿는 거다.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무시하는 거다.

여기 말씀도 사실 자세히 더 생각할 게 많은데,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그랬다. 무슨 말인가? 인생들이 끝까지 고집을 피운다는 말이다. 내 생각이 옳다고 고집한다는 말이다.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긴다는 거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믿으면서도 그걸 믿는 것이 지혜라 여긴다.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 앞에 절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다고 여긴다.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한 인생들은 끝까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더라는 거다.

결론. 오늘 말씀 정리한다. 여러분! 우주 만물을 잘 보라. 거기에는 하나님의 솜씨와 능력과 신성이 깊이 새겨져 있다. 분명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다. 하나님께 늘 감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생이 되라.

악한 의로도 진리를 막음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진리인 줄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랑하고 감사함으로 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속에 살아가는 복된 인생 되시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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