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공과해설

  • 자니완
  • Jul 03, 2015
  • 786

무늬만 그리스도인 아니라 참 그리스도인 됩시다. 롬2:17-29

서론. 복된 주일이다. 출16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지 45일 정도 지났을 때,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양식이 다 바다난다. 여기저기서 이 광야에서 굶겨 죽이려고 데려왔냐고 원망하기 시작한다. 우리 하나님이 다 들으셨다. 다른 말씀 안 하시고 하늘로부터 양식을 내려주마 하신다.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을 먹으면서 하나님 계명을 기억하여 잘 지키되 특별히 안식일을 구별하여 섬기라 하신다. 말하자면 하나님 주신 양식으로 살아가는 인생의 본분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일주일에 하루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함에 있는 거다. 주일마다 우리가 예배하는 것은 성도로서 가장 중요한 본분이면서 하나님 주신 은혜로 사는 인생의 보람인 줄 알고,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살아가는 성도들 되시기 바란다.

1. 세상에는 참 억울한 일들이 많다. 누군가 없는 말을 지어 내어 나를 욕하는 것도 억울하고, 나는 참 잘 해주었는데 상대는 그러지 못할 때도 억울하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실패로 돌아가는 경험도 참 억울하다.

그런데 여러분! 무엇보다 억울하여 말문이 막히지만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 있다. 나는 당연히 구원 받을 줄 알았는데 천국 문 앞에서 하나님이 ‘아니라’ 하시는 일이다.

과연 그런 일이 있겠는가? 그렇다. 작년에 살려본 마25장 양과 염소 비유를 보라. 왼쪽 염소의 편에 선 사람들을 보고 주님이 내가 주릴 때 먹이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도 영접하지 않았다면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하신다. 이에 왼편에 선 사람들이 언제 우리가 주님이 주린 것 보고 먹이지 않고 나그네된 것 보고 영접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는다. 이게 뭔가? 왼편에 선 사람들 중 상당수는 당연히 자기들은 영생을 얻을 줄 여겼다는 말이다. 그런데 뜻밖에 영벌에 처하여짐으로 억울해서 묻고 있다.

어느 청교도 목사님이 그러셨다. 천국에 가면 우리가 세 번 놀랄 것이라 하셨다. 첫째는 당연히 천국 올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오지 못한 것 보고 놀라고, 둘째는 저 사람은 구원 받은 백성 아닌 줄 여겼는데 천국에 와 있는 것 보고 놀라고, 셋째는 나 같은 죄인이 주의 은혜로 천국에 이른 것 인해 더욱 놀랄 것이라 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성도님들 중에는 한 사람도 천국 갈 줄 알았다가 하나님이 아니라 하셔서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구원 얻는 바른 신앙 잘 준비해서 천국잔치에 참여하기 바란다.

2. 당연히 구원받을 줄 알았는데 오해였고 그래서 낭패를 당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롬2장에 나오는 유대인이다.

본문 v.17-20을 보면, 자기들은 당연히 구원받는다고 여긴 유대인들의 자부심을 잘 보여준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온 세상이 다 멸망해도 자기들만큼은 구원받을 것이며, 이방인들은 모두 다 지옥의 땔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을 딱 둘로만 구분한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다. 세상에는 유대인 아니면 모두 다 지옥 백성이라 여긴 거다.

유대인이 왜 이런 오만불손한 착각에 빠졌는가? 먼저 저들은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 율법이 저들을 천국으로 인도해 주리라 여겼다. 유대인은 또 거짓 우상이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었다. 사실 이방인은 아예 모른다. 이런 저런 신들을 만들어 섬기지만, 그 신이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줄을 생각지도 못한다. 그런데 유대인은 세상을 창조하고 심판하실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었다. 유대인은 또 율법이 가르치는 교훈을 배움으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할 줄도 알았다. 사실 율법이 없는 인생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 주신 율법을 잘 들여다보면, 사람에게 무엇이인 정말 선한 것인지 깨닫는다.

이렇게 율법을 배워 선한 것을 분별할 수가 있기에 v.19에서는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 된다 생각했다. 여기 맹인 혹은 어둠에 속한 자는 이방인이다. 율법을 갖지 못하여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방인이다. 이방인은 맹인인데 유대인은 율법의 등불로 이방인의 길을 자랑스럽게 인도하는 위치에 있다고 믿은 거다.

v.20에서는 또 뭐라 하는가? 유대인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라 한다. 우선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라고 했다. 참된 지식과 진리는 율법에 있다. 지식과 진리의 모본’이라고 했다. ‘모본’이라는 말은 ‘정답’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율법에 들어있는 지식과 진리가 정답이고, 그 외에 다른 지식과 진리는 온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을 좀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알려주신 것이 진짜 진리다. 그 외 인생들이 사고하고 상상하고 나름대로 연구해서 제시하는 것들은 온전한 진리가 아닌 거다.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러분! 사람이 어디서 왔는가? 오늘날 과학자들은 진화되었다 한다. 우주는 어디서 생겨났는가? 대폭발로 생겨났다 한다. 이렇게 사람이 만든 지식은 참 진리가 못 된다. 그런데 율법은 뭐라고 하는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율법은 천지 만물과 우리 사람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분명히 가르쳐준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 무한하신 지혜와 능력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스스로 있는 것이 없이. 다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다.

하나 더 예를 들어 보자. 사람은 죽으면 어찌되는가? 참 다양한 대답이 있다. 어떤 사람은 죽으면 끝이라 생각한다. 죽으면 끝이라 생각하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어떻게든 오래 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될 것이다. 또 죽으면 끝이라 생각하면 어떻게든 악착같이 사는 동안 내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또 윤회한다 생각한다. 돌고 돈다는 거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율법은 죽음에 대해 뭐라 가르치는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몸은 여전이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기억하라(전12:7)’.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어 죽음으로 모든 게 끝나지 않고 창조주께 돌아가서 심판을 받는다. 죽음으로 끝이 아니기에 한편으로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죽음 이후 심판받을 준비를 하며 잘 살아야 한다.

이처럼 율법이 하나님과 인생에 대한 모든 참 진리를 가르치기에 ‘지식과 진리의 모본’이라 하고, 이 중요한 진리의 모본을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주셨기에 저들은 우리 유대인은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다 믿었다.

이렇게 유대인은 하나님을 알았고 또 선악을 분별할 줄도 알고 불변하는 진리의 모본도 가졌기에, 당연히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진리를 가지고 남을 가르치는 유대인이 구원받지 못하면 세상에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고 여긴 거다.

3. 이런 유대인들에게 오늘 v.21-24은 충격적인 선언을 한다. 아무리 유대인이 율법을 가져서 하나님을 알고 선악을 분별해도, 저들에게 내려질 마지막 하나님의 판결은 영생이 아니라 영벌이라 한다. 그러니 유대인들은 빨리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을 알고 선악도 분별할 줄도 아는 유대인들이 왜 영벌의 판결을 받게 되는가? v.21-24에서 바울은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명쾌하게 지적한다.

1) 율법을 가진 유대인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영벌에 처해지는 첫째 이유는 다른 사람을 잘 가르치고 다른 사람 잘못은 잘 지적도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고 또 자신의 참 모습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v.21a 같이 읽자.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3주 전에 롬2장 첫 번째 설교를 할 때도 말씀드렸다. 우리가 남을 잘 판단한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잘 지적한다고 내가 의로워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남을 판단한 것이 기준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 ‘행위대로’ 하나님은 심판하신다. 유대인은 율법을 가지고 남에게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면 안 된다고 잘 가르치고 판단도 잘 하면서,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가르치지를 못했고 자기 모습을 보지도 못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 첫 번째 모순은 오늘날 목회자들과 교사들, 또 우리 성도들 역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여러분!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울 때, 그 말씀으로 제일 먼저 누구의 모습을 들여다보아야 하는가? 바로 자기 모습이다. 누구를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 자기 자신이다. 여러분! 유대인이 빠진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이런 모순된 신앙생활하는 분이 많을 수 있다.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일에 열심을 내는 분이 있는 거다. 이것은 정말 하나님이 싫어하는 위선이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율법 곧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데서 시작된다. 말씀 안 배우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도 없고, 세상을 살아갈 신령한 능력을 공급받을 수도 없다. 말씀을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이 신앙의 출발이다. 그런데 말씀만 배우면 다가 아니다. 자신에게 적용을 해야 한다. 말씀의 거울에 비추어진 내 모습을 보고 회개하고, 말씀의 요구 앞에서 나를 쳐서 복종케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가르치고 성숙시키는 일이 말씀을 배우는 목적이 돼야 한다.

2) 하나님을 알았던 유대인들이 스스로의 지혜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둘째 이유는 남에게 하지 말라 한 것을 자기가 하고, 남에게 하라 한 것을 자기는 정작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v.21b-22이다.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이 두 번째 문제가 사실 유대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지 못하였음에도 저들은 율법을 지켰다고 착각히였다. 그래서 율법을 행한 자기 자신의 의로움에 근거해서 구원받을 줄로 오해한 것이다.

유대인의 이런 큰 착각을 한 부자 청년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어느 날 한 부자 청년이 주님을 찾아왔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느냐고 물었다. 부자 청년의 질문을 보면 유대인들의 구원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무슨 선한 일을 함으로 구원받는다고 여김으로, 무엇을 해야 구원받는지 물은 거다. 이에 주님이 십계명을 죽 말씀하신다. 놀랍게도 부자 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 대답한다. 이에 주님이 부자 청년을 사랑하사, 정말 계명을 지켰다면 그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하신다. 주님 말씀이 무슨 의도인가? 계명의 핵심 정신은 바로 사랑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과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핵심인데, 그 핵심은 놓쳐 버리고 형식적으로 살인하지 않았다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착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 볼 때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인생이 다 하나님 계명에는 특 없이 부족한 죄인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실 구원의 은혜는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절감하는 데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유대인은 율법을 가졌지만, 율법대로 살지 못함으로 율법에 근거해서는 결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바울은 못 박아 말하고 있다.

3) 율법을 가짐으로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유대인들이 그것으로는 구원받지 못하는 세 번째 이유는, 저들의 죄악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다. v.23-24이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여러분! 보라. 유대인들은 우리는 세상을 창조하신 참신이신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정작 삶에서는 하나님 경외하는 모습이 없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다. 우리는 안식일마다 하나님께 제사하고 예배한다고 하면서 정작 저들의 삶에서는 거룩하고 진실함이 없어서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 모르는 이방 사람 중에서 모독을 받게 하였다. 차라리 하나님을 모른다고 했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먹지는 않았을 거다. 그런데 하나님을 안다, 율법에 근거해서 선과 악을 잘 분별한다고 하면서 그 삶은 온갖 불의와 위선과 거짓과 욕심으로 가득하니, 저들을 인해 하나님 영광이 훼방을 받은 거다. 그러니 어떻게 율법이 저들을 구원할 수 있겠는가? 율법은 저들을 구원하기는커녕 반대로, 유대인은 율법만 가졌을 뿐 하나도 지켜 행하지 않는 죄인이라고 정죄하고 고발할 뿐이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우리 성도들이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바가 우리와 너무 닮았지 않는가? 유대인이 율법을 의지한 것처럼 우리도 성경을 의지한다. 유대인이 하나님을 안다고 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안다. 유대인이 율법에 근거하여 선악을 분별한 것처럼 우리도 말씀에 근거해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한다. 유대인이 진리의 모본을 가진 것처럼 우리도 진리의 모본이 있어 사람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생의 본분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저 유대인들이 교만에 빠져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행하지도 하나님 경외하지도 않아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처럼, 오늘날도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서 욕되게 하는 거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구원에 이를 것이다 장담할 수 있겠는가? 주일에 예배만 드리면 구원 받는다 확증할 수 있는가?

4. 그러면 유대인들이 정말 구원을 받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도 마지막 심판 날에 영벌의 판결이 아니라 영생의 판결을 받아 천국 잔치에 참여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오늘 v.25-29에서 대답해 준다. v.25-29이 조금은 어려운 내용인데, 핵심은 v.28-29a이다. 같이 보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여기 잘 보라. 표면적 유대인이 나오고 이면적 유대인이 나온다.

1) 먼저 표면적 유대인은 겉으로는 분명이 유대인이다. 아브라함의 혈통이고 율법을 따라 난지 팔일 만에 할례도 받은 사람이다. 그렇게 겉은 유대인인데, 하나님이 그를 진짜 유대인이라고 인정을 안 해 주신다. v.29 맨 끝에 그러죠.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니라’. 형식적으로 할례만 받으면 사람은 유대인이라 인정을 해 주는데, 우리 하나님은 형식적인 육신의 할례를 받았다고 다 유대인이가 그렇게 인정을 안 하신다는 거다.

표면적 유대인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무늬만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겉모양은 그리스도인인데, 속은 아니라는 것이다. 겉으로 볼 때는 주일 날 교회 가고 성경책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례도 받았다. 겉으로는 그리스도인 맞다. 그런데 그 내면 그 마음 그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면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거듭나지 않았기에 하나님 말씀에 대해 전체적으로 순종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순종도 자기 하고 싶은 것만 순종한다. 날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신령한 영적 삶도 알지를 못한다. 율법을 가지고 할례를 받았다고 유대인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처럼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되는 구원에 이른다고 장담을 못하는 거다.

2) 그 다음 이면적 유대인이 나온다. 이 사람은 단지 육신의 할례만 받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이 변화를 받은 사람이다. 그 영혼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그 심령 깊은 곳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새생명이 솟아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다.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싶은 소원을 가진다. 남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날마다 회개한다. 그리고 나 같은 죄인도 구원하신 은혜 감사하여 이웃을 불쌍히 여긴다. 말씀과 성령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와 거룩한 영적 교제를 나누며 산다. 주님의 교회는 나처럼 거듭나고 마음의 할례 받은 같은 영적 가족의 모임인 줄을 알고 교회를 사랑하고 지체들을 사랑한다. 내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인 줄을 알고, 주님 말씀처럼 ‘나의 착한 행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지’하는 거룩한 열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마음의 할례 성령의 세례를 받아 거듭나서 주님 닮은 거룩한 새 성품을 받은 사람만이 이면적 유대인 오늘날로 말하자면 ‘참 그리스도인’인 것이다.

결론. 여러분! 누가 마지막 날 영생의 판결을 받는가? 율법을 가진 자인가? 표면적 유대인 무늬만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다. 하나님을 알기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야고보서에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 이신 줄 알고 뜬다고 했다.

그러면 누가 영생의 판결을 받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가? 이면적 유대인 곧 그 마음에 할례를 받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참 그리스도인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거듭나서 진리로 깨우침을 받아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겸손한 사람이다. 내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한다. 나아가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여서 예수님을 본받기를 소원한다. 나의 힘이 아닌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기뻐하는 거룩한 열매를 맺기를 소원하고 또 크기를 떠나 열매를 맺어가며 사는 사람이다.

이제 자기 모습을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여 돌아보라. 여러분은 무늬만 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정말로 거듭난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있는 참 그리스도인인가? 성령께서 우리 모두를 거듭나게 하셔서 참 그리스도인 되어 영생을 얻으며, 그 결과 날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쫓아 사는 하나님 자녀 천국 백성 되시기를 축원한다.

제목 날짜
구역공과 22-20   2022.05.20
구역공과 22-19   2022.05.12
구역공과 22-18   2022.05.06
구역공과 22-17   2022.04.27
구역공과 22-16   2022.04.21
구역공과 22-15   2022.04.13
구역공과 22-14   2022.04.07
구역공과 22-13   2022.03.29
구역공과 22-12   2022.03.22
구역공과 22-11   2022.03.16
구역공과 22-10   2022.03.11
구역공과 22-9   2022.03.02
구역공과 22-8   2022.02.24
구역공과 22-7   2022.02.16
구역공과 22-6   2022.02.10
구역공과 22-5   2022.02.03
구역공과 22-4   2022.01.26
구역공과 22-3   2022.01.18
구역공과 22-1   2022.01.05
구역공과 21-52   202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