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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Aug 24, 2012
  • 9408
 

서론. 오늘 읽은 말씀은 경건하지 않는 나라들을 징벌하기 위하여 도구 삼으신 앗수르 제국에 대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먼저 5절을 보시면, 앗수르 제국에 대해 하나님께서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분노의 몽둥이라’ 하신다. 인류 역사에서 세상을 제패한 첫 번째 제국이라 할 수 있는 앗수르가 강성해진 것은 하나님이 앗수르를 통해서 하실 일이 계셨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앗수르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시려고 힘 있는 제국 되게 하신 것이다. 세상 나라의 흥망성쇠가 그저 우연이나 힘의 원리로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이면에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어떤 도구로 사용하려 했는가? 6절을 보면  두 가지 일에 도구로 쓰려 하신다. 첫째는 경건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하나님을 능멸하는 이방 나라들을 치는 막대기로 쓰려 하신다. 둘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서도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백성들도 징벌하는 도구로 사용하려 하신다.

그런데 이사야 10장 전체를 잘 읽어보면, 경건치 않는 이방 나라를 치는 일과 유다를 치는 일의 성격이 조금 다르다. 경건하지 않는 이방 나라는 아예 짓밟고 파멸하여 완전히 포로로 잡아가도록 하시지만,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해서는 단지 매를 드는 정도로만 사용하려 하셨다.


2. 그런데 7절을 보면, 앗수르의 뜻은 하나님의 마음과 같지를 아니한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당신의 막대기로 쓰려고 강성한 나라 되게 하셨는데, 앗수르는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 되는 것을 거절하고 자기 마음대로 허다한 나라를 그저 파괴하고 멸절하려고 하되, 예루살렘과 유다까지 멸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앗수르를 강성하게 하신 것을 인정치 않고, 스스로 강성해진 양 그 힘으로 닥치는 대로 짓밟고 학대하면서 제국을 확장하는 일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8-11절을 보면, 하나님의 도구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마음대로 모든 나라를 파멸하려 하는 앗수르의 교만한 마음을 보여준다. 앗수르가 얼마나 교만하냐하면, 앗수르 제국의 고관들은 다 왕이라 한다. 말하자면 앗수르 제국의 일개 장관도 다른 나라의 왕보다 더 낫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앗수르가 그 강성한 힘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자랑한다. 아람 나라의 여러 견고한 성읍들인 갈그미스 아르밧 다메섹을 정복한 일을 자랑한다. 그렇게 아람 나라의 성읍들을 정복한 것처럼 이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성읍인 갈로 하맛 사마리아 예루살렘을 정복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일이라고 거만하게 떠들고 있다. 아람의 여러 견고한 성읍들은 유다와 예루살렘보다 더 많은 신상들을 섬기는 나라였어도 앗수르 앞에 꼼짝을 못했거든, 이제 유다는 누가 있어 앗수르의 손에서 건지겠느냐고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있다.


3. 하나님이 당신의 도구로 쓰시려고 강성하게 했을 뿐인데도 이렇게 교만하여 하나님의 도구 되기를 거절하고 스스로 강성해진 것처럼 자의로 행하려 하는 앗수르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가?

12절 같이 읽자.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여기 보면 두 가지를 말씀하신다. 하나는 비록 앗수르가 교만에 빠져 자기는 하나님의 도구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은 앗수르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않는 시온 산과 예루살렘을 징계하시는 일에 도구로 사용하시겠다 하신다. 둘째는 그러나 앗수르에게 예루살렘을 완전히 망하게 하시지는 않고 다만 경고만 하신 다음, 하나님의 도구 되기를 거역한 앗수르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겠다고 하시는 거다.

열왕기서와 역대기서 그리고 세계 역사를 실제로 살펴보면 지금 여기 12절 말씀 그대로 예루살렘은 앗수르 때문에 혼쭐은 나지만 망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교만해서 하나님의 도구되기를 거절한 앗수르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에 의해 18만5천의 군사가 하루 아침에 몰살하여 제국의 문을 닫게 되어진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앗수르의 교만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신 것이다.

이런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혹여라도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하고 우리 눈도 높아지지 않아야 하는 줄 안다.


4. 13-14절에서는, 앗수르의 교만한 마음의 열매와 높아진 눈이 어떠한지 자세히 말씀하신다. 먼저 13절을 보면, 앗수르가 하는 말이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한다. 지금처럼 앗수르가 강성하게 된 것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힘과 지혜로 되었다는 거다. 자기를 가리켜 스스로 ‘나는 총명한 자라’고 한다. 사실 앗수르의 이런 교만한 말을 우리는 오늘날에도 날마다 듣고 산다.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기업들, 강성한 나라들이 교만한 태도로 다들 뭐라고 소리치는가? ‘내 손의 힘과 지혜와 노력이 산물이라’고 외치는 소리를 우리가 날마다 듣지 않는가?

그것만 아니다. 앗수르가 얼마나 교만에 빠졌는지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 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높은 곳에 거주하는 자들까지 낮추었으며’ 한다.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 치웠다는 말은 세계 지도를 자기 마음대로 다시 그리고 있다는 말이다. 행17장의 아덴에서의 바울의 설교를 보면 인류의 거주의 경계를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민족마다 나라마다 경계선을 그으사 혹 더듬어서라도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거주의 한계를 정하신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나 민족이든지 조금만 힘이 생기면 자기 마음대로 세계의 지도를 그리려고 덤벼든다. 힘만 있으면 자기 원하는 대로 열국의 경계선을 다시 그을 수 있다고 교만한 착각에 살아간다. 지금도 일본은 강점기 때의 만행을 사과할 생각은 안 하고, 독도를 자기들 땅이라고 망언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처럼 앗수르도 교만이 하늘을 찔러서 열국의 경계를 자기가 다시 정하고 있다고 하는 거다.

이어지는 14절에도 보면, 앗수르가 얼마나 강한 나라이든지 열국을 정복해서 그 나라들의 재물을 취한 것이 마치 새의 둥지를 찾아서 둥지 안에 알을 줍는 것같이 쉬웠다고 자랑한다. 어미 새가 겁이 나서 도망을 가 버림으로 새의 알을 손으로 취할 때 날개짓 하거나 지저귀면서 방해하는 새가 하나도 없었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5. 이렇게 교만히 하늘을 찔러 자기 힘과 지혜로 강성해져서 열국이 경계선까지 자기 마음먹은 대로 다시 정할 수 있다고 하는 앗수르를 보고서 하나님은 웃으신다. 너무 어이가 없어 웃으신다. 기가 막혀 그저 웃으신다.

15절이다. 앗수르가 하나님의 도구되기를 거부하고 자기 힘으로 강성해진 줄 알고 자기 마음대로 열국을 파멸하려 하는 것은 도끼나 톱이 그것을 손에 들고 사용하는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는 것과 같다 하신다. 도끼나 톱이 아무리 예리하고 힘이 있어도, 그것을 든 사람이 정한 목적에 따라 사용한다.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끼나 톱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도끼나 톱이 자기를 들고 부리는 사람 앞에 자랑하고 큰 체 한다면 참으로 우스운 이야기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도구로 쓰려고 강성하게 하신 앗수르가 스스로 자고해져서 멋대로 행하려 하는 것은 참으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다.


결론. 오늘 하나님이 열방을 징벌하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강하게 하신 앗수르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스스로 자고해진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두어가지 교훈을 배워야 한다.

첫째, 오늘 우리 각자에게 혹은 우리 가정에 혹은 우리 교회에 주신 축복과 은사가 있다면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것인 줄 알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스스로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닌 줄 알고 겸손히 행하되, 주의 뜻을 위해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둘째, 땅의 거주의 경계를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자. 독도 문제로 교만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 일본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 속에 우리를 괴롭히는 중국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이 나라 민족을 지켜 주시고, 마지막 때 온 세상에 복음 전하는 나라와 민족 되도록 기도하는 일이 필요한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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