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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해설

  • 자니완
  • May 31, 2014
  • 4693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 눅24:50-53/행1:9-11, 14-2주일오전

서론. 복된 주님의 날이다.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우리 모두에게 삼위일체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축원한다. 사도행전 강해 일곱 번째다. 오늘은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는 고백을 살핀다.

1. 부활하신 지 사십일 되던 날 주님은 다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감람산 기슭을 넘어 베다니 앞까지 친히 데려가신다. 죽으셨던 주님이 이제는 어떤 원수도 손댈 수 없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셔서 자기들과 함께 거니실 때, 제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든든하고 기쁨이 충만했겠는가? 게다가 행1:3을 보면, 그냥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직 제자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풀어 가르쳐 주셨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이 풀어주시는 성경 말씀은 얼마나 은혜로웠겠는가?

드디어 베다니 앞에 다다랐다. 베다니는 마리아와 마르다 자매의 귀한 헌신과,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종종 쉬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던 신앙의 추억이 스며있는 곳이다.

바로 거기서 제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다. 은혜로운 말씀을 다 마친 주님이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시는데, 아직 축복이 채 끝나기도 전에 축복하시는 모습 그대로 서서히 하늘로 올리어지신다. 주님께서 축복이 다 끝나기도 전에 축복하시는 모습으로 하늘로 올리어지신 것은 지금도 주님의 축복은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땅을 떠나 하늘로 가신 주님은 오늘도 이 땅의 교회와 우리 성도들을 지극한 사랑으로 축복하신다.

자기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제자들은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하늘이 뚫어지도록 쳐다보았다. 자세히 쳐다보았다.

주님이 부활하시는 장면은 제자들도 목격하지 못했다. 주님이 어떻게 죽음의 결박과 죄악의 사슬을 끊고 일어나시는지는 보지 못하고, 다만 이미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셔서 찾아오신 모습만 뵈었다. 그러나 지금 승천하시는 순간에는 그 놀라운 광경을 친히 보게 하신다. 땅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가 하나로 이어지는 놀라운 일을 보게 하신다.

찬란한 광채 가운데 하늘로 올리우시는 주님을 쳐다볼 때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그 감격과 놀라움 그리고 기쁨은 가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게 흥분된 마음으로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는 순간 신비로운 구름이 와서 주님의 몸을 가리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그 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신령한 음성을 들려준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행1:11)’. 저들이 눈으로 본 것만으로도 그 감격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데, 거기에 더하여 천사를 통해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약속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의 기쁨은 절정에 이른다.

그래서 눅24장을 보면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주님께 온 마음을 다해 경배한다.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하나님을 찬송한다. 사도행전에서는 예루살렘에 돌아가 주를 믿는 성도들이 다 같이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고, 거리로 달려 나가서 ‘나사렛 예수가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올리우셨다’고 외치기 시작한다.

그렇다. 우리 위해 죽으사 우리 죄값을 치루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사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길을 여시고, 하늘로 승천하사 다시 오실 주님은 날마다 우리의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하늘에 오르신 주님 생각하며 우리도 제자들처럼 날마다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고, 주님의 부활과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실 영광을 만방에 외쳐 전해야 한다.

2.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주님이 승천하신 것은 겉으로 보기에 주님이 제자들을 떠나시는 일인데, 어떻게 제자들은 주님이 떠나시는 것을 그렇게 기뻐하고 찬송하는가? 십자가도 사실 주님이 제자들 곁을 떠나시는 일이었다. 그때 제자들은 하나같이 두려워 떨면서 부인하고 도망가 버렸었다. 이번에도 주님이 또 떠나시는데, 이번에는 정 반대의 반응을 보인다. 왜 인가?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승천의 의미를 잘 모르면, 오늘 우리는 승천하신 주님을 기뻐했던 제자들과 달리 주님이 승천하셔서 지금 몸으로는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음을 인해 두려워 떠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마치 우리가 고아와 같이 버려진 자처럼, 그렇게 이상하게 신앙생활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기에 승천의 의미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하는데, 오늘 세 가지로 말씀드린다.

1) 첫째 주님의 승천으로 땅의 세계와 하늘의 세계가 주님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요7:33-34, 13:36을 같이 보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①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요7:33-34). 내가 가는 곳에 ②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13:36)’.

요7장은 예수님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요 13장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다. 주님이 가신다는 말씀이다. 주님이 머지않아 아버지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 땅의 세계를 떠나 하늘 세계로 돌아가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런 공통점 말고 이 두 구절은 차이점도 있다. 뭔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머지않아 주님이 가실 곳에 올 수 없다고 하신 반면, 제자들에게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후에는 따라올 수 있다고 하신다. 무슨 말인가? 주님이 이 땅을 떠나 들어가신 하늘의 세계는 이 땅의 세계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인생들이 가고 싶다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러면 아무도 못 가는가?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그 신비로운 세계에 들어간다. 어떻게 들어가는가? 주님께서 이 땅의 세계와 그 신비로운 하늘 세계를 연결해 놓으셨기에, 주님께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들어간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하늘에 오르신 승천 사건은 단순히 주님이 원래 계시던 하늘 세계로 돌아가신 사건만이 아니다. 이 땅에 사람이 되어 오셨다가 우리 위해 죄값을 지불하시고 부활승천하실 때, 주님은 육신의 몸을 입은 사람으로서는 이를 수 없었던 곳 죄인에게는 원칙적으로 출입이 차단되어 들어갈 수 없었던 그 신령한 하늘 세계의 문을 여신 것이다. 말하자면 주님의 승천은 죄로 인해 막혀 있었던 하늘 세계의 문을 우리 위해 열어 놓으시는 사건이다. 죄인이라도 의로우신 그리스도만 믿으면 그 신령한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일은 일찍이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이요 또 제자들을 처음 부르실 때도 보여주신 소망이었다. 창28:12이다.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더라(창28:12)’. 요1:51이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요1:51)’. 승천 하신 주님은 우리 위해 하늘문을 여시고 우리가 들어오는 날을 기다리고 계신다.

2) 둘째, 승천하심으로 주님은 성부 하나님께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

마28:18 같이 보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 마태복음은 예수님 승천 사건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성부 하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사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한다.

여기 하늘과 땅이 뭔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는 고백을 살필 때 말씀드린 것처럼, 하늘과 땅은 하늘의 세계와 땅의 세계를 일컫는다. 따라서 하늘과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포함된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다. 이 사실을 사도신경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고 표현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다는 말은, 세상에서는 우리 위해 고난과 멸시를 당하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이 이제는 편안하게 앉아서 그저 쉬신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에서 오른손 혹은 오른편은 권세 능력 위엄을 상징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이제 만유를 그 뜻대로 다스리심을 뜻한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다 가지셨다는 뜻을 생각하기 위해 성경을 한 구절 찾겠다. 마8장이다. ① 먼저 v.23-27이다. 어느 날 주님이 배에 오르시니 제자들도 따랐다. 각 촌과 마을에 두루 다니며 천국복음을 전하시던 주님은 심히 피곤하셔서 깊이 잠이 드신다. 그때 갑자기 큰 풍랑이 일어나 물결이 배를 삼킬 듯 덤벼든다. 제자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큰 파도가 이는 바다에서 배를 타 보신 분이라면 제자들의 심정이 이해 될 줄 안다. 저도 거제도에서 폭풍이 지난 다음 날 유람선을 한 번 탔다가 파도가 얼마나 무서운지 잠시 경험해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이 충분히 공감된다. 공포에 쌓인 제자들은 급히 주님을 깨운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주무시다 일어나신 주님은 먼저 제자들을 꾸짖는다.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이어서 주님은 바람과 바다를 또 꾸짖으신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렇게 흉용하던 바다와 바람이 아주 잔잔해진다. 이 놀라운 일을 보고 제자들이 서로 말한다.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마8:27)’. 자 여러분! 여기 보면 예수님께 어떤 권세가 있는가? 바람과 바다도 복종케 하는 능력이 있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일 년에 수차례 일어나는 태풍의 위력이 핵폭탄 수백 개보다 더 크다 한다. 이렇게 핵폭탄 수백 개의 위력보다 더 강력한 위력의 풍랑이 주님 말씀 한 마디에 그 힘을 잃어버린다. 뭔가? 주님은 보이는 세계, 곧 땅의 세계를 그 뜻대로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권세를 가지셨다. 땅의 세계의 모든 권세가 다 승천하신 주님의 손에 있다.

그런데 제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이런 권세를 미처 제대로 몰랐기에 눈에 보이는 큰 풍랑 앞에 죽을 것처럼 두려워 떨었다. 오늘 우리도 주님이 이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것을 믿지 못하고, 이 세상은 눈에 보이는 권세자들과 돈 가진 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것처럼 여기고 세상의 권세와 힘 있는 자들 앞에 주눅 들고,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것같이 크고 작은 인생의 풍파와 어려움이 닥칠 때 낙심하고 절망하고 두려워하지는 않는가? 이런 우리를 보시고 오늘 부활 승천하사 땅의 세계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은 말씀하신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부활 승천하신 주님이 땅의 세계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줄 알고, 그 주님 의지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사시기를 축원한다.

② 이어서 v.28-34도 보자. 배에서 내린 주님은 가다라 지방에 가신다. 거기서 무덤 사이에 사는 군대귀신 들린 자 한 사람을 만난다. 귀신에게 완전히 사로잡혀서 더러운 무덤을 거처로 삼고 사는 사람,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온유하고 의로운 모습은 전혀 없고 그저 거칠고 사나운 짐승같이 변해 버린 사람이다. 놀라운 것은 당시 유대인은 물론이고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하나님 아들된 영광과 권세를 제대로 몰랐는데, 이 귀신들은 예수님을 똑바로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오셨나이까’. 그러면서 가능하다면 자기들을 그 사람에게서 쫓아내지 마시되, 정 쫓아내려거든 돼지 떼에라도 들어가게 허락해 달라 한다. 이에 주님이 허락하시자 귀신들이 사람에게 나와서 돼지 때에 들어가 돼지 떼를 이끌고 바다로 달려 한꺼번에 몰살시켜 버린다. 귀신들의 속성이 얼마나 파괴적이고 악한 지 보여 준다.

이 사건을 보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귀신들은 예수님을 만나면 꼼짝 못할 줄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피해 귀신들린 그 사람을 이끌고 멀리 도망가 버리지 왜 계속해서 무덤 사이에 머물다가 결국 쫓겨나는가? 귀신들은 우리 인생보다는 지혜가 탁월하기 때문에 알았다. 아무리 피해서 도망을 친다고 예수님은 피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심을 알았다. 말하자면 귀신들은 예수님께서 인생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 곧 하늘 세계에 대한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심을 알았다. 그렇다. 여러분! 군대귀신이라도 꼼짝 못하고 쫓겨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주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신령한 하늘 세계에 대한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시다.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신 데서 드러났듯이 눈에 보이는 땅의 세계와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까지 다스리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주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심령을 얽매는 두려움과 여러분 영혼을 짓누르는 고통이 있으신가? 보이지 않는 모든 영적 세계까지 다스리시는 주님을 의지하라. 여러분 심령에 참 자유와 평안을 주시기를 구하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우리 영혼에 참 평강을 주실 것이다.

③ 이처럼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셨다. 이것을 믿는 우리 성도가 어찌 해야 하는가? 다시 마28:19-20을 본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①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② 가르쳐 ③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임을 믿는다면 우리는 먼저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믿고 담대해야 한다. 여러분! 담대하라.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렇게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우리가 할 일이 있다. 뭔가? 세 가지다. 첫째는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주님이 분부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 성도들은 가르침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는 말씀을 가르침 받는 사람이다. 세상에서도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지는가? 스승은 가르치고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다. 여러분! 간곡히 부탁한다. 말씀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라. 주님 부르시는 날까지 신자가 할 일은 말씀 배우는 일이다. 둘째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의 명령은 지키라는 말씀이다. 배운 말씀을 성령의 은혜 도우심 가운데 지켜야 한다. 우리가 배운 주님의 말씀대로 지키며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방식이다.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어떻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의 통치를 받는가? 국가의 법을 지킴으로 서다. 마찬가지다. 주님이 분부하신 말씀을 배워서 지킴으로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게 된다. 셋째로 그렇게 말씀을 배우고 지켜 살면서 또 다른 사람을 주님의 제자로 삼는 일,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섬기는 일을 하라 하신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여러분! 여러분이 주님 사랑으로 섬겨서 구원받은 영혼이 있는가? 여러분이 주님 말씀으로 섬겨서 믿음이 세워지고 자라게 된 영혼이 있는가? 여러분의 사랑과 수고와 섬김으로 예수님 제자 된 사람이 있으신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여러분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주님의 뜻을 잘 헤아리고 사는 사람이다. 여러분! 주님이 승천하시면서 열어놓으신 하늘문을 통해 저 하늘 세계에 들어가실 때, 홀로 가지 말라. 여러분 오른손과 왼손에 여러분 때문에 예수님 제자 된 영혼들의 이름을 붙들고 가라. 이 일을 감당하고 살아갈 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3) 주님은 승천하심은 셋째 이 땅에서 낮아지셨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온전한 영화를 입으인 일이다. 계1:13-16을 보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본 환상인데,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환상이다. 구체적인 뜻은 오늘 시간 관계상 다 말씀드릴 수 없고, 핵심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 얼마나 높은 분, 얼마나 존귀한 분이 되셨는지를 보여주는 환상이다. 한 마디로 주님은 승천하심으로 지극히 높아지시고 온전한 영화를 덧입으셨다. 더 놀라운 것은, 장차 우리도 주님의 이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이다. 주님이 열어 놓으신 하늘 문 통해 하늘 세계에 들어갈 때 우리도 이와 같은 영화를 입을 것이다.

결론. 이렇게 주님은 승천하심으로 땅의 세계와 하늘 세계를 연결하여 하늘문을 여셨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으며, 지극히 높고 영화롭게 되셨다. 그렇다면 이런 주님 앞에 모든 만물이 마땅히 꿇어 경배하며,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야 한다. 그런데도 오늘 이 땅의 역사를 보면 만왕의 왕으로 승천하신 주님께 경배하고 순종하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거역하고 대적하는 인생도 있다. 그 마지막이 어떠하는가?

시편 2편 말씀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복이 있도다(시2:11-12)’. 시편 2편은 하나님이 온 인류의 구원자요 메시아로 세우신 예수님의 높아지심과 통치하심을 노래하는 시다. 결론은 하나님 아들 곧 승천하신 예수님께 입 맞추라 한다. 예수님과 화목하라 한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과 화목하고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나, 그렇지 않는 사람은 그 진노의 철장을 피하지 못한다.

오늘 땅 위의 인생들은 예수님 안 믿어도 세상 잘만 산다고 여기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예수님을 믿지도 순종하지도 않으려 한다. 예수님이 당장 심판을 안 하니까, 예수님이 왕이 아닌 줄로 안다. 그런데 여러분! 그렇지 않다. 예수님이 죄 가운데 불순종하는 인생들을 당장 심판하지 않는 데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기회를 주시는 거다. 회개하고 돌아와서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 얻을 기회를 주는 거다. 또 하나는 장차 최후심판의 날에 쏟을 진노의 잔을 채워 가심이다. 예수님이 오늘 당장 거역하는 자를 심판하지 않는다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무시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심판에 처해질 뿐이다.

부활승천하사 만왕의 왕이 되신 예수님을 경배하라. 그 발에 입 맞추라. 그 권세로 영원히 함께 하심을 믿고 담대히 예수의 제자로 말씀 따라 살아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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